목록신약 QT (2210)
발칙한 QT
1.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그 때에'가 눈에 들어온다 . 그때는 언제인가? 아구스도가 호적하라 ( 처음으로 )세상에 명하여 모든 사람들이 혼란스럽지만 무조건 움직여야 했을 '세상적으로 의미있는 때'를 말하는 듯하다. '세상적으로 의미있는 ' '그 때에'..........말이다. 이 버거운 인생에 어쩌면 큰 의미 내지 위기가 될 수 도 있을 바로 '그 때에' .. 6.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반면에 다른 '그 때에'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해산달이 찬 몸으로 타지에서 호적하기 위하여 방황하던 그때. 해산해야 하는 데 어디에 마땅히 몸을 편안히 뉠 만한 장소하나 없던 ..
57.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모든 일에는 당연히 '기한'이 있다 늙어가도 임신할 수 있을 기한이 있고 임신할 아기가 태어날 '기한'도 있다 . 58.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그런데 남들 다하는 임신을 늙어가 포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도 그 늙은 몸으로 분만을 해야하는 것도 즐거워 할 일이 맞는가? 실은 수술의 아픔 후에 안아픈게 더 편안하고 오래 기다렸던 기대가 포기할 즈음 우연히 생겨서 더 크게 기뻐지는 그런 '상대적' 기쁨 말고 말이다. 진정 남들처럼 안아프고 안기려도 쉽게 되는게 더 큰 즐거움 아닐까? 그런데 주께서 그를 , 우리를 크게 긍휼히 여기시어 그렇게 되었음, 그리함이 '진정 기뻐할 이유'가 된다면 그거 진정한 기쁨,..
28.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어떤 일이 있어도 ( 고대, 미혼인 여성의 임신될 일 ^^;;;의 엄청난 일) 34.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46.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56.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
12.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하나님의 날' '그날'은 하늘이 풀어지고 물질이 불에 녹는 무서운 날이 될 지라도 '바라보고 사모하'여야할 당위성이 있다 .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렇다 . '바라보고 사모하라'고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는가? 그리고, 끝없이 되풀이 될 것만 같은 이 재미없고 다람쥐 쳇바퀴 같은 매일매일 (특히 ,코로나 때문에 더.....)에 아무리 해도 변화 없는 것 같은 내 영적인 성취 아니.. 오히려 이제는 말씀을 묵상해야겠다는 결심마져 흐려짐이 솔직히 자연스레이 그리되는 것 같아 시간이 오래 남아 있는게 두렵다 . 더 그리될 것 같아서.. 이제라도 무엇인가 사모하고 붙들어 날 유지하고 이끌게 있어야 할..
1.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사랑하는 자들아' 할렐루야. 자꾸 잊게되려 하지만 난 , 우리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이 맞으시다. 매일 매시 주님을 잊지 않으려 하고 그래야됨을 알기에 정신을 차리려 하지만 잠시 마음의 집중을 놓으면 어느새 흐트러져 버리고야 마는 이 '영적인 전쟁터'에서 사는 연약한 우리의 현재, 내 지금의 상태다. 주께서 그러한 나, 매일 잊는 , 매시 잊는 ^^; 이 엉터리 나를 깨우셔 주님의 진실하신 사랑을 생각나게 하려 하시기 위해 2.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그리고 그리함이 충실히 되기 위하여 아주 적게..
7.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의로운 롯' 의롭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과연 '롯'이 옳았던가? 삼촌인 아브라함과 알력으로 결국 분가해나갔으며 자녀들을 잘 기르지 못해 나중에 근친상간을 일으킬 정도로 도덕적으로 반듯이 키우지 못했으며 소돔 시내에서 살아가며 그냥 그 동네 사위를 얻어도 될 정도로 성경에 기록될 만큼 뛰어나지 못했던 자. 더구나 아내는 결국 소금더미로 바뀌었을 만큼 가정적으로 돈독여부까지는 몰라도 영적으로 깨어 있었던 증거라 보기에는 어딘 지 미흡했던... 그러면서 '자신의 딸들'을 '하나님의 사자'를 위하여 대신 소돔의 불량배들에게 내어 놓을 만큼 어딘 지 모르게 균형잡히지 못한 아버지로서도, 신앙인으로서도, 세상의 도덕기준에도... 조금은..
1.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나는 확신하고 있다. 주님이 오직 유일하신 진리. 온 우주에 홀로 하나이신 '여호와 '하나님. 그 진리에 서 있다. 난.. 그것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살고 있기에 난 비교적 든든하고 단단하다. 그래서 비교적 덜 불안하고 비교적 더 행복하다. 이전보다.. 비교적이라 함은 내 오래된 성품, 성향, 아직도 번연히 남아 있는 상처의 흔적 ... 상흔 때문에라도 그렇다. 그게 .. 사실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 남아서 날 붙드는 중독적 성향(성향일 뿐이다.. 이제..^^;) 은 깊이 어디에 빠져 주님을 게을리하게 하고 말씀이신 하나님을 잠깐 잠깐 잊어 버리고 마음과 몸이 멍하고 나른한 태만과 이전..
2.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은혜와 평강' 나, 우리 믿는 자들의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에너지, 영적 근거 ! 행복의 근간. 생명의 원천을 이 땅의 삶속에서 깨달아 아는 증거들. 하나님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 간단하고 쉽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철저하신 배려 ^^* 3.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은혜와 평강의 체험을 하는 자들 날이 갈수록 그러함이 커지고 그러함으로 인한 그 행복의 본질인 은혜와 평강을 사모함이 커지는 그래서 삶이 의미가 있어지고 힘이 있어지는 것.. 그것이야 말로 주님이 이 무료한 인생들에게 살아갈 힘있는 목적, 행..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11.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솔직히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 줄'은 확실히 알고 믿는다. 또 그 분은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심을 많은 체험을 통해 잘 안다 . '나와 함께 계실 것'임도 믿는 다. 그렇지만 내 일상에서 항상 '알고 ' 있느냐 물으신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인듯 하다 . (난..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 또한 그분이 함께 계시기에 어떤 일이 있어..
15.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고린도 교회. 많이 말썽을 부린 교회라 한다. 그리도 목숨 걸고 이룬 교회이지만 분파가 되고 사도 바울을 대적하고 온통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미운(죄송.. 내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 교회다. 그런 그들이 두번째 편지 (주석 설교하시는 목사님께서 발견되지 않았다 하신다.)를 보낸 후 회심하고 돌아왔기에 이 세번째 편지를 통하여 저리도 기뻐한다. 그런데 내가 '사도 바울' 입장이라도 그들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할 수 있었을까? 물론 , 내 살아있는 이유가 선교임을 알고 있기에 당연히도 기뻐할 당위성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사도 바울님은..
23.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옥에 갇히고 매 맞고 죽을 뻔하고........ 이어지는 수도 없이 많은 고난들...........ㅜ.ㅜ; 그게 자랑할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아이들이나 범죄계 ^^;;에 사는 사람들이나 정신없는 성인아이 (아이같은 어른들)이나 하는 얘기지.. 그런데 그는 그런다. 저 마구 늘어 놓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바닥에나 있을 사람들이나 겪을 부끄러울 이야기들을 늘어 놓는다. 30.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그러면서 그는 부득불이란 표현으로 그게 부끄러움이 아니고 오히려 '약한 그것(약한 것이라는 표현으로 세상적인 ..
1.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용납'하라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용납은 容納, 허용하고 받아 들이다는 뜻이며 NIV에서는 'put up with' 로 KJV에서는 'bear with'로 나오는 바 영한 사전에서의 뜻은 1. (불평하지 않고) …을 참다 2. 인내하다(bear) 라고 나온다. 인터넷에서 이미지를 검색하려고 용납, 용서를 치니 용납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용서는 '은혜'로 하는 것이라 설교 하시는 구절이 나온다. 좀.. 극단적이고 교훈적 해설인 것처럼 느껴져서 지나치려다가 가만히 느껴보니 정말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은혜 아니고는 '용서'.. 불가할 것 같은 게 맞는 것 같았다 . 용서한다고 서로 가서 얼굴 부대끼고 울고 와서도 심리학적 기법으..
3.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나. 결국 주님 부르실 그날에 이 썩어질 육신을 벗어 놓고 주님의 나라에 갈 그러한 자가 할 수 없이 이땅을 살기 위해 주님의 만드신 그대로 '육신'을 입고 육신으로 행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육신'의 성질에 의하여 많이 좌우될 수 밖에 없는 '진정한 나' 이지만 이제는 '육신에 따라' 육신의 끌림대로 사는 것 육신의 정욕에 따라(짐승처럼..) 싸우지는 아니한다. ^^;; 아니하노니...라는 말은 아니하게 된 나.. 그러니 이제부터는.. 이라는 '육신'으로 살지만 육신에 속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할 자를 깨달았으니... 그리 결심하니... 라는 뜻 말이다. 4.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
2.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의 (주하인, 너의 !) 원함을 ' 안다" 라 신다. 그게 눈에 크게 들어온다 . 감사하다. 정말... 이 땅에 살면서 자기가 무엇을 진정 원하는 지 알고 사는 사람 몇이나 될까? ^^; 아니.. 본능이 이끄는 것, 상처의 허허로움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허걱대는 돈이나 섹스나.. 출세 .. 뭐 그런 동물과 다름없는 욕정 .. 말고 말이다. 아니, 솔직히 많은 뇌피셜을 거쳐 '형이상 학적'이나 '예술적' 으로 변화 시키고 치장하여 원하는 것.. 도 말구 말이다. 진정, 더 깊은 자신의 원함..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16.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같은 간절함. 동역, 동역자, 형제 , 자매....... 많은 기독교 안에서의 표현들이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가는 자들을 표현하고 있지만 과연 나는 그들과 '같은' 간절함을 공유했던 적은 있던가? 비대면 시대. 모임을 못하게 막아져 버린 시대. 예수님께서 '모이기를 힘쓰라' 시던 그 '주님의 인내의 시간 동안의 마땅히 해야할' 공유의 집단, 기독교 공동체, 교회............의 시간이 드디어는 '계시록적 '시대를 맞이해감에 따라 허락되어진 시간들이 아닌가 싶다. 이때..... 모이지 못하더라도 그들과 같은 영적 간절함은 불가능한 것일까? 나......... 간절함은 있으나 같은 간절함...... 방향은 ..
5.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주님을 믿는 삶을 살게 될 때 정말 중요한 것은 '먼저' (우선, 먼저~다.)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의 뜻을) 내려 놓고 주께 드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뜻에 맞추는 ) 그래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6.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은혜'를 허락 하신다. 그리고 그 은혜는 사모하는 우리에게 모든 삶의 사는 이유와 원동력이 되고 살아가는 에너지가 되며 이 땅에서 살아갈 , 존재의 이유를 어디에도 찾지 못하던 그 마음에 방향을 제시해 주신다. 7.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
13.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미쳤다 손가락질 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타인을, 세상을 위한 것이다. 그런 마음이 자연스레이 들게 하소서. 주여. 16.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다. 무엇이 그렇다는 이야기인가? 무엇이 그래서 그러므로.. 인가? 당연히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고 하나님 함께 하심이 내 일상에서 뚜렷이 느껴지니 그러하다는 이야기 아닐런가? 그러므로 "이제부터는"이다. 이제부터는.. 이라는 단어가 새삼 눈에 크게 들어옴은 앎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이후의 뚜렷한 변화가 선을 긋듯 이루어지지 않았었음이다. 정말..
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너무 당연하다고 알고 있지만 내 안에 '보배'이신 예수님을 담고 있다. 성령하나님을 담고 있다. 그게 나다. 그리고 난 질 그릇이다. 비록 아직도 내가 '질그릇'임을 잠깐씩 잊고 살다가 내가 질그릇임을 부정하려 몸부림치고 그러한 내가 또 속상하여 흔들리기도 하다가 그러한 내 질그릇에 담겨 주신(담겨지신.. 이 아니다. )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또 순간 차분하고 감사해고 숙연해지기도 하지만... 이 너무도 사랑하는 유명한 구절. "나는 보배담고 있는 질그릇" 내 존재 자체를 꿰뚫어 주는 구절이 오늘 새삼 '레마'로 눈에 들어옴은 위의 고백이 이유이기도 하다 . 그렇다. 질그릇이 아니라..
5.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스스로 만족은 '자기 만족'이고 결국 그 자기 만족은 모든 사람의 살아가는 동기이며 이 땅, 눈에 보이는 물질이나 마음.. 정도에 국한 되었으며 그러함의 결국은 '불만족'이다. 만족은 끝이 없다. 그 만족의 대표적 예시가 '마약'은 아닐까? 모든 약이나... 이 땅의 물질적, 육체적 만족은 특징이 끝이 없이 커져가는 역치 (Threshold)라는 것이다. 만족을 채울만한 조건이 없다. 우리 믿는 우리, 믿는 나는 이제 확실히 안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 부터 나는 것 뿐이 없다. 아.. 말장난이나 개념적 정의라 생각하실 모든 분들께 권한다. '성령'의 은혜... 를 체험해보라. ..
2장 4.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 눌림과 걱정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근심이 없는 사람......말이다 사도 바울님도 큰~ 눌림과 걱정과 근심이 있었다 한다. 아.. ' 근심' 전문가로서 ^^; 그 분도 그러셨음이 위로가 된다. 성령의 감동으로 씌여진 '성경' . 그 성경을 통해 흐르는 성령님께서 그 분의 감성, 그분의 고민, 그분의 갈등, 그 분의 그럼함...... 예수님과 절절히 교통하시는 사도 바울 마져 '큰 눌림'과 '걱정'과 '근심'에 대하여 말씀하시니 공감받는 느낌이 든다. 성령의 그렇게 하심............. 그런데 그 분은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