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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QT
28.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 이 말씀을 하신 후 ' 라신다. 어떤 말씀이신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 아니시던가? 그 말씀이 과연 그 때의 제자들에게 '의미'로 다가오던 말씀이신가? 분명코 가장 귀한 말씀이시고 성장하던 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지침이자 생명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고 그냥 감흥없이 (^^;) 지나간게 맞다. 보라..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 쯤까지 그들의 삶이나 내적인 어떠한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음을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 쯤되어'라고 그 변화없는 시간을 얘기하고 계시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 말씀 후의 변화없는 시간이 아무 의미없는 시간이 맞는가? 수영을 ..
18.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시고 나자마자 제자들, 가까이 있던 그들에게 갑자기 물어 이르신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어찌 부르고 있던가? 무슨 의미일까? 왜 그러셨을까? 그것도 갑자기. ... 따로 기도를 하신 후 ... 말이다. 어쩌면 '멍'하고 아무 생각없이 편견이 지정하는 대로 내 성품대로 , 느껴지는 대로 (내 느낌이란 것 .. 과연 정확할까?... 이 블로그에 많이 써 놓았다. ) 사는게 제대로 살고 있는 것 맞을까? 혹시 잘산다고 , 잘 나가고 있다고 (나.. 십수년 이곳에 말씀 올리는 행위를 하고 있으니 혹여 난... ? ) 생각하고 있는게 정말 맞는지..........물으시는 것 같다 . 책..
13.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안되는 것, 불가능한 것을 뻔히 아심에도 (제자들.. 아니, 누구의 생각일지라도.. ㅠ.ㅠ) 주님은 그리 명령하신다. 묘~ 하다. 그 당연한 불가능 (너무 큰 장애물, 안됨, 어두움, 부정적, 답답함, ... )을 그리 말씀하시니 답은 말씀 드려야지만 너무도 당연한 어이없는 답을 드리는 마음이 '두마리 밖에'..라는 단어에 표현되고 있다. '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에 다 응축되어 있다. 아... 이 숙명같은 버거움들.. .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겠지만 그 가슴 깊이 숨어서 저항하는 좌절, 부정..
쉬었다 가세요... 절 쉬게 하시려 허락한 21개월된 제 손녀랍니다.ㅎ 둠칫둠칫.. ^^* 40.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예수님을 다 기다리는 상황 이 '다' 기다리는 자에 속했으면 즉, 아직 스스로 판단해도 주님을 기다리는 자라 판단되면 좌절할 필요없다. 41.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43.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죽기 직전의 딸을 가진 '야이로' 아버지나 12년씩 출혈하는 그 시대의 가장 비참한 여인도 주님을 찾으니 아버지 야이로 이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아이는 살아나고 12년씩 빈혈과 살이 허는 고통(얼마나 눅눅하였을까?.... )과 손가락질 ..
16.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말씀은 '등불'이고 '빛'이다. 말씀을 듣고 내 속의 어둠이 밝혀져 드러나 없어지고 사라져야 한다. 그런 말씀이 가리워지도록 평상 아래 두는 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17.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빛이신 예수께서 말씀으로 다가오셔서 숨겨진 것이 드러나고 감추인것이 알려지게 하시기 위하여 더 말씀에 깊이 묵상하여야 하리라 . 2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그리고 그것이 삶에 의미가 되고 힘이 있어지도록 삶속의 영성이 되어..
14.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이생의 염려' 참.. 표현은 간결하지만 고난에 들어갈 때는 우리네 마음을 그대로 응축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오늘처럼 그러한 상태에 있을 때 (있었을 때.... 있을지 모를 때... ) '난 가시떨기'의 심령인가 보다. 15.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그래서 '좋은 땅'이 아닌가 하며 그렇잖아도 힘든 마음에 부담이 가해지던 부분이기도 하다. ㅠ.ㅠ 그런데 '인내로 결실하는 것' '이생의 염려가 있고 없는 것'..모두 지금 현재로 결정되어 지는 것이 아닌 부분 아니던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지어져 이루어지는..
4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바리새인 시몬' 그가 그 시대에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대단한 일. 그는 모든 사회적 예상되는 손실, 손상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청해서 대접했으며 이때 자격의 제한없이 그의 집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음을 볼 수 있다 . 그 시몬. 과연 어떠한 사람이었을까? 진리에 갈급한 사람 아니었을까? 비진리, 비본질 보다는 본질을 사모하는 자... 말이다. 전통과 사회적 관습을 중시하여 바리새인의 자리에는 섰지만 항상 갈급했던 무언가를 채워줄 대상, 예수님을 뵙고는 확신을 가지고 '집'에 모신................... 이상히도 그 '시몬'에 정이간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향유옥합을 부..
21.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마침 그 때에'라신다. 마침 그 때가 정말 아무 이유없이 만나시던 우연을 의미하시던가? 그 분께서 역사하시고 기적을 나타내 보이시며 인도하시던 모든 일들이 '우연'의 복권추첨하듯 이루어진 것일까? 솔직히 온 세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던가? 그들 중의 많은 분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그 말씀이 정말 복음인 줄을 알며 은혜와 깊은 경지의 믿음으로 나가게 되는 것은 소수이며 그것을 '좁은 문'이라 말씀하신 것을 보아서도 '마침 그때'의 우연처럼 아주 낮은 확률의 진정한 축복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게 진정 감사함도 맞긴하다. 진정으로 ... ! 그리고 그러한 그 분의 세상에 아주 적게 간섭하심..
4.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주여. 조금 못마땅하실지 몰라도 이렇게 이 일을 제게 해주시는 것이 합당한 것 같습니다 주여. 아시지요? 주여 아시지요? 이 일을 제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게 합당한 것 제가 확인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주여....... 아시지요? 아시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42.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말씀하시는 뜻은 당연히도 안다 . 비유시라는 것을 ... 남을 비난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아 스스로 정결케 하는게 우선이시라는.. 그래서 그렇게 하는 우리를 주님은 기뻐하실 것임도.. 오늘은 다르게 다가온다 . '들보'가 눈에 들어 있다면 그 빼는게 어찌나 힘들것인가.. 몸서리 쳐질 것만 같다 . 그 부분에 눈이 간다 . 모르실리가 있으실까? 하나님께서? 그래서 그 분은 그 분을 의지하며 '들보'를 빼기를 원하심이다 . 그리하고 그 빼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
27.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 듣는 자'라시는 데 부터 갑자기 가슴이 '쿵'하며 따뜻해진다. 레마시다. 내게는 이런 식으로 '은혜'와 '성령'의 느낌이 온다. 보시라시는 것 같다. 그러시면서 '너희' '너희 '너희.. ' 하시며 너희라는 말을 보게 하신다. 그 '너희'가 누구인가? 말씀을 지금 보고 있는 자. 그 말씀을 통하여 '레마'를 사모하는 자. 그 레마가 하나님의 말씀이심을,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심을 알아 말씀이신 하나님과 말씀 묵상을 통하여 동행하려 꾀하는 자들 ^^* 아니겟는가? 나. 우리 좁은 문을 사모하는 자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자들. 그들에게 오늘 '너희 듣는 자'라 하심은 아니시던가? 그 너희 그 ..
12.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기도'하러 산에 가셨고 밤새 '기도'하셨다. 13.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밝으매.. 라는 단어에 홀로 기도하시고 그 깊은 하나님과의 임재 기도 안에서 제자들을 선택할 응답 부분도 포함이 되어 있음을 암시하시는 것 같다. 기도. 매사의 기도. 모든 것을 아뢰고 모든 것을 혼자 판단하지 않으시는 기도. 모든 것을 다 아시게 되는 기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인도받는 분의 기도. '깊고 오래'하시는 기도...를 보이심이시다. 16.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그리고 그 기도 하시는 예수님께서 배반할 자 있음을 분명코 아시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굳이..
2.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그냥.. 아무 것도 하기 싫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 ^^; 그냥 목소리도 내기 싫어 가만히 있다. 그냥 알아내고 해결하고 응답받고 더 편해지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그냥 단지 가만히 있을 뿐이다. 그러는 내게 오래된 생각의 꼬임들이 몰려 오려 한다 .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죄인지 모르는가? 어서 어서 돌려 놓고 더 나가야하지 않겠는가? 어찌 그리도 변함없는가? 왜 그런거냐. ... ... 오늘 묵상 구절 중 '어찌하여'라는 소릴 보며 순간 익숙한 내 안의 방어하려는 마음, 움찔하는 느낌이 들려한다. 그러면서 아주 아주 오랫동안 훈련해왔던 익숙한 '방어'의 논리들을 마구마구 내 머리속에서 검색하려는 습관이 올라오려 한..
27.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레위'라는 세리, 그가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그 후', 즉 예수님께서 모든 일을 마치신 후의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나가'실 결심을 하시고 나가셔서 (분명코 아시고 나가셨을 것이 분명하시지만... ^^*) 만나려 나오신 그 시간에 앉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에 앉아 있는 사람이 그 사람 뿐이었으랴? 아마도 세리 마태는 "나를 따르라"시는 그 말씀에 28.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아니 따르게 만들어진 그 어떤 내면적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갈등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순간적으로 그 말씀이 진리이고 일생을 바쳐도 될 분이심을 깨달..
12.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 다. 그 분. 어떤 분이신줄 알고 기도해야하는 줄도 알고 다 안다. 하지만 그 분이 그 분의 능력으로 내게 임하실 때는 '한 동네'인 '내'가 있는 곳에 '계실 때'다. 항상 하나님과 함께 계시지만 내 그 분의 함께 하심을 인식하고 내게 의미로 다가오는 시간은 내 '열심'과 내 '간절함'이 바탕이 되었을 때 그 분의 임재감이 느껴질 것이며 또 , 당연히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시간에 따라 그 분이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되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을 '한 동네에 계실 때'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신 듯하다. ..
1.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무리. 3.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그 무리를 가르치시려고 배를 빌려 올라타시고 그들을 향해 돌아 앉으셔서 말씀을 조잔조잔 하셨다 .(이거.. 마이크도 없고 공연장도 아닌데.. 호수 안에서 하신 말씀이 그들 귀에 들렸을 것이 또 기적이시다. ^^*) 그리고는 배 안의 뒷편. 그를 보고 있는 베드로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직은 '시몬'이었지만... 4.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을 마치시고..........가 눈에 들어온다. 말씀은 무리에게 했지만 더 '깊은 데'의 이야기는 시몬인 베드로에 대한 ..
14.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성령이 충만히 임하신 후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 성령은 능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소문이 퍼지는 , 때가 되어서 이루어질 것은 이루어지고 주님의 공생애를 준비하기 위한 준비하게 하시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이루시는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 . 아무 것도 몸부림 칠 것도 안타까워할 일도 없다 . 때가 되어 성령이 온전히 인도하시면 시작도 되고 반드시 이루어지는 끝도 되기도 한다 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성령이 임하시니 당연히도 가난한 자에게 복음 전해지고 기름이 부어..
1.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육신을 입으신 예수께서 마리아님 집에서 30년간의 자람을 마치시고 인간 '세례요한'의 주도하에 세상적 집례를 시행 받은 후 '성령'의 강한 임재를 받으셨다. 그리고 나서는 '성령의 충만함'에 '이끌리어' 요단강에서 광야로 오셨고 40일간의 시험을 받으셨다. 무엇이 보이는가? 하나님이신 예수님. 우리의 눈에 보이도록 허락하신 그분의 창조물인 우주를 통해서도 그 수치의 어마어마함에 질리는 바 어찌 하나님을 짐작조차 할수 있을까? 인간으로서.. 과연? 그런데 그러한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육신'을 입으시고 육신의 성장과정을 30년간을 인간으로 보내시고 (특별하신 성장과정은 성경 외경에 나온다 ^^*) 인간들의 ..
15.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오늘 말씀 역시 계보가 쭉 나열되어서 묵상하기는 쉽지는 않다. 하지만 시작부터 백성들의 '바라고 기다리'는 방향이 옳든 틀리든 그들의 그리스도를 바라는 마음이 눈에 들어온다. 나. 나는 정말 '바라고 기다리'는 자인가? 일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살려 무진 애를 쓰기도 하고 다행이도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임하셔서 쓰다듬어 주시기고 인도하시기도 하시지만 나의 이 연약하고 게으름에 그 바라고 기다림이 정말 열정적이고 더 깊은 수준까지는 내려가지 못한 듯 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바라고 기다리므로'라시는 구절에 눈이 가게 하신 듯하다. 묵상하고 글을 옮기려는 순간 마음이 뜨거워진다. 그래서 오늘 주시고자 하시는 ..
3.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죄'는 처음엔 달콤하나 그 끝이 무섭고 무겁다 . 죄의 가장 큰 무서움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결국은 사망이다. 그 사망이라 함이 죽고 끝나고 마는게 아니라 살아도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것을 의미하고 살아도 사는게 아닌 것을 의미한다. 부흥하고 잘나가는 자들 같은 분들의 마음 안에 항상 기쁨 만 있을까? 복을 그리도 원하는데 복의 궁극적 바탕은 무엇일까? 돈 많이 벌고 사회적 경제적으로 잘 나가는 것이 다 일까? 복이란 '육신적 ' 물질적 뿐 아니라 마음의 잘나감도 포함되는 개념이 아닐까? 정말 하나님을 모르고 복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온전한 마음의 평화가 하나님을 모르고 있을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