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나는 질 그릇이나 [고후4:1-18] 본문

신약 QT

나는 질 그릇이나 [고후4:1-18]

주하인 2020. 9. 30. 08:45

 

 
7.우리가 이 보배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너무 당연하다고 알고 있지만

내 안에

'보배'이신 예수님을 담고 있다.

성령하나님을 담고 있다.

그게 나다.

 

 그리고

난 질 그릇이다.

비록

아직도 내가 '질그릇'임을

잠깐씩 잊고 살다가

내가 질그릇임을 부정하려 몸부림치고

그러한 내가

또 속상하여 흔들리기도 하다가

그러한 내 질그릇에 담겨 주신(담겨지신.. 이 아니다. )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또 순간

차분하고 감사해고 숙연해지기도 하지만...

 

 이 너무도 사랑하는 유명한 구절.

"나는 보배담고 있는 질그릇"

내 존재 자체를 꿰뚫어 주는 구절이

오늘 새삼 '레마'로 눈에 들어옴은

위의 고백이 이유이기도 하다 .

 

그렇다.

질그릇이 아니라고

그 질그릇임을 감추려고

사뭇 몸부림치고 투쟁하고 열렬히 헛된 망상을 향해 살다가

그런 자신의 한계를 가지고 그냥 깨져 버리는게

모든 인생의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주님을 영접하고

그 주님을 우리의 영혼안에 담고 사는,

즉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깨닫고 사는 자들은

그때부터

'보배'담은 질 그릇이 됨이며

인식하고 사는 그 순간 부터

우리는

질그릇이 아니고

보배그릇이 됨이며

따라서

세상의 어떤 상황에 부딪쳐도

어떤 모습으로 위치한다해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보배담은 그릇의 당당함, 자연스러움, 감사함, 차분함........으로 살수 있게 된다. ^^*

 

 질그릇

투박한 토기.

깨지고 쉽고 사방으로 볼 것 없는 듯... 한 그런 게 질그릇이다.

그런 질그릇은

질그릇의 , 세상 모든 인생들은

그러기에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적' 한계가 있다.

태생적 한계.

 

 그러나....

보배를 담게 되는 날,

어찌 그러한 토기로 선택을 받게 되었는지

질그릇인 우리는 도저히 알 수 없지만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으로

우리 안에 '보배'로우신 성령하나님을 담게 된 순간부터

우리의 그러함과는 상관없는

자격이 부어지게 됨이다.

'보배 그릇' 말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질그릇'으로

더 아름다운 보배를 드러내게 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보배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릇이 휘항찬란하면

보배의 아름다움의 칭송이 줄어들지 않겠는가?

 

 오히려

우리의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것이며

하나님이 영광이 보배롭게 드러날 수로

난..

더이상 질그릇이 아닌

보배그릇으로 불리게 되지 않겠는가?

 

약함이 강함.

 

 

 

8.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그러기에

이제

살아가며 받는 그 어떤 우겨쌈도 싸이지 않은 당위성이  생긴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을 이유도 생기고

 

9.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

 

 우겨쌈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연단'의 과정이며

답답한 일은

내 질그릇으로서의 소산일 수 있고

박해도 내가 받아내는 내 주관적 이유일 수 있다.

거꾸로 뜨림 당하여 온것도

나 홀로 있을 때의 일이다.

내 안에 계신 보배이신 예수 께서

날 홀로 두지 않으실 것이고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모든 것을 다 허락하신

보배 예수 그리스도의 뜻 가운데

난...있기 때문이며

그 분이 내 안에 계시기에

그 어떤 것도

보배그릇으로서의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결국 질그릇이자 보배그릇인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완성되게 하려하심이다.

 

 

 그렇다.

이 삶.

이 땅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 성화,

보배그릇으로서의 우리 스스로를 인정하고 깨닫고

자연스레이 받아 들이게 되어

주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려는 과정임이다.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어떻게

내 질그릇 의 부분을 자극할 지몰라도

더이상 우겨쌈을 쌓이지 않을 수 있을 듯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살려 하기 때문이다.

감사하다.

 

 

 

주님.

너무도 좋아하는 구절.

참으로 힘들었던 수년 전

붙들고 헤쳐나오게 하셨던 그 구절.

사방으로 우겨쌈을 쌓여도 ..............

그렇습니다.

주님.

우리 질그릇 같던 인생들.

그래서 쉽게 깨지고 온통 어둡기만 했던 인생들이

보배이신 하나님이 제 안에 계심을 인정함으로

스스로 보배그릇임을 인정하는 과정으로

주여..

허락하신 그 어떤 것도

이제는

주님 계심으로

보배그릇으로서의 '나'.. 우리를

인정하게 하는 연단의 도구임이

인정 되게 하소서.

내 주여.

힘주소서.

 

오늘 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이 됩니다.

많은 분들이 이동이시작이 됩니다.

이들

질그릇 인생들이

보배그릇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는

계기들이

도처에서

주님 뜻대로 벌어지게 하소서.

내주여.

감사하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