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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심령이 강해지다[눅1:57-8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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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심령이 강해지다[눅1:57-80]

주하인 2021. 1. 3. 09:55

 

57.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모든 일에는

당연히 '기한'이 있다

 

 늙어가도 임신할 수 있을 기한이 있고

임신할 아기가 태어날 '기한'도 있다 .

 

 

58.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그런데

남들 다하는 임신을 늙어가 포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도

그 늙은 몸으로 분만을 해야하는 것도

즐거워 할 일이 맞는가?

 실은

수술의 아픔 후에 안아픈게 더 편안하고

오래 기다렸던 기대가 포기할 즈음 우연히 생겨서

더 크게 기뻐지는 그런 '상대적' 기쁨 말고 말이다.

 진정

남들처럼 안아프고 안기려도

쉽게 되는게 더 큰 즐거움 아닐까?

 

그런데

주께서

그를 , 우리를

크게 긍휼히 여기시어

그렇게 되었음,

그리함이 '진정 기뻐할 이유'가 된다면

그거

진정한 기쁨,

진정한 즐거움이

그제야

될 수 있지 않을까?

 

 

7.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성령'의 전제

성령충만함으로 

크게 즐거워할 수 있음이 되면

그 어떤 일도 진정한 기쁨이 될 수 있으리라.

 남들처럼 순조롭게 되어지지 않고

늙어 포기할 때까지 되어서야 이루어지는 임신 같은

그런 일이 오히려 크게 즐거워할 일이고

오히려 하나님이 

그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심의 증거로 

확신하게 되는 것.

그 

진정 올바른 '시선'.

진정한 행복.

올바로 사는 인생의 증거들이 되기 위하여는

'성령' 충만이 전제가 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

 

 

 

80.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그런 

진정 올바른 시선.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통하여

진정 무엇을 바라고 계시던가를 

정말 올바로 아는 자 되는 것.

 

 그것이 

'심령이 강하여지'는 것이며

제대로 사는 것이고

사는 이유다 .

이 아무 의미 없는 세상에 말이다. ..

 

 손녀가 놀러 왔다. 

21개월 채 몇일 안된 아이가 하는 짓이 비범하다. 

누구 눈에도 안그렇겠는가마는

좀 독특하다. 

말도 빠르고 대화가 이루어진다. ㅎ

 걱정 많은 큰 아들.

지금까지는 자상한 아버지로 잘 처신하는 것이 보여 

다행이긴 하지만

세상의 영향인지 ... 아이의 발전 속도를 보며

좀 더 커서 겪을 분란이 예상되어

마음 한켠이 

괜한 걱정으로 차오르려 한다. 

 

 아침 묵상을 이어나가다가

아내와 식탁에서 이야기하니

그런다. 

기도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으니

맨땅으로 헤딩하는 것 같던 우리 세대와 다르지 않겠냐고.. .

그렇다.

나.. 걱정 많으신 역기능 아버지어머니 품에서 

겨우 자라다가 부모 준비 안된 상태로 

아들들 기르면서 풍파가 많았다. ㅠ.ㅠ;

이제 하나님 안에서 다잡고 싶지만

많은 시간이 흘러 뜻대로 되지 않아 지내다가

하나님 안에서 

내 문제 내려 놓고 

나름의 방향을 잡아 가고 있는 상태... 

 큰 아들이 아버지로 

저 빨리 이쁘게도 변화되는 아기(고슴도치 손녀일 수도 잇겟지..ㅎ)의 아버지 노릇할 때 

겪을 수 도 있을 초조함을 

자꾸만 눈치 채이게 되니 

난.. 내 속에 무거움이 조금 싹트려 했었단 것이다. 

 

새해.

새롭게 '강한 심령'으로 

보내진 자로서 정체성을 더 굳건히 하고 살고 싶었다. 

괜한 걱정은 

오늘 사가랴 등의 모습을 보며 

겪을 수 있을 혼란이지만

오히려 그것을 큰 즐거움으로 받아 들일 수 있음은

오직 '성령'의 임하심을 전제로 가능한 것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

 혼란 , 혼돈, 어려움, 기다림, 포기, 좌절.............모두 인생을 겪는 누구에게나 가능하고

반드시 겪게 할, 

어쩌면 그를 기회로 십자가를 같이 지길 하나님의 뜻이신 것을 

성경에서는 확실히 말씀하지만

이 미련한 인생은

세상에 나가서 겪는 순간

들은 적도 없는 듯 혼란 한 심령으로 행하며

허겁거리며 살아오던게 지금까지의 삶이었다. 

이제는 '강한 심령'의 새해가 시작되길 원한다. 

그러기 위하여

그 방향이 

말씀으로 인하여

령으로 인하여 뚜렷해야 한다. 

 

보이지 않고 

뚜렷지 않아도 

강한 심령으로 

주님 나라를 향하여 한발 한발 나갈 수 있음은

또 성령의 함께 하심 이 기본이다. 

당연하다 .

당연하지만 잊고 사는게 우리 인지라 

주께서 는 그리 말씀하신다. 

주하인아 

흔들리지 말거라. 

강하고 담대하라.

성령으로 함께 하리라. . 

 

아멘입니다. 

주여.

전 제 변화없는 이 소시민적 삶의 테두리,

끝없이 되풀이 되는 것 같은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이 의미없을 듯한 삶에 

맣이 지쳐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매일 살면서 

많은 부분 정리되고 차분해져 가지만

가끔 가끔 또 흔들립니다. 

제 혼자의 문제로도 힘들 이 삶이 

내 밑, 

그 아래 손녀까지 쳐다보면

괜한 걱정과 근심과 허탄함이 사로잡아 오려 합니다. 

그것.

기도하는 아내의 입에서 

우리는 기도하는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이기에 

다르다는 말이 나옴을 들으면서 

괜한 걱정으로 부터 순간 자유로와 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여.

약한 심령이 될 뻔 했습니다. 

강한 심령이 되어

오히려 즐거워하고 

더 크게 기뻐하며 

기다리고 인내하고 바라보아야 할 삶의 태도를

사단의 그러했던대로 

또 걱정하려 했었습니다. 

이 미약했던 심령, 구습의 흔적으로 말입니다. 

 

다행이도 

성령의 임하심으로 

새로운 한해의 벽두를 

강한 심령으로 이겨나갈 기회를 잡았습니다. 

다시요.

감사합니다.

내주여.

 

기뻐할 것 기뻐하게 하는 

강한 심령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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