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분류 전체보기 (6776)
발칙한 QT
9장 7.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얼마나 솔로몬이 뛰어 났으면 시바의 여왕이 이처럼 감동을 할까? 솔직히 인간 솔로몬에 질투도 나며 한편으로 그의 뛰어남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세상사 안그럴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교 순교 .. 하면서 심지어는 하나님을 빌미로 '목회자'로 먹고살기까지 하면서 ^^; 아.. 나 같은 경우 하나님의 덕으로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으면서도 어느새 내 자랑과 내 자아만 그득하여 칭송을 받고 싶어하고 나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은 얼마나 교묘히 훈련되어 왔는지..........ㅠ.ㅠ;; 8.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하나님이 당신을 기뻐하시고 그 자리에 올리사 ..
1.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자기의 궁궐을 이십 년 동안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우선 하나님과의 관계(성전)를 '제대로 정리' 하고 자신과 자신의 관계(궁궐)도 역시 '정리'를 '마치고'나서 3.솔로몬이 가서 하맛소바를 쳐서 점령하고 조금은 시급하지 않아 돌려 놓았던 외부적 관계에 걸린 문제들, 하맛소바.. .등을 '쳐서' '점령하고' 4.또 광야에서 다드몰을 건축하고 하맛에서 모든 국고성들을 건축하고 '건축하고' 또 '건축'하고 5.또 윗 벧호론과 아랫 벧호론을 건축하되 성벽과 문과 문빗장이 있게 하여 견고한 성읍으로 만들고 견고한 성읍으로 '만들'었다. 6.또 바알랏과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들과 모든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가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
1.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최선을 다해 '성전'을 깨끗이 하고 새로운 마음과 온 정성으로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고 2.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해졌다. 그림이 그려진다. 놀랍다. 감동이다. 말씀을 읽을 때 전율이 일어날 때가 자주 있다. 그래서 , 말씀 묵상이 재미있다 .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시고 말씀이 단지 전설 속 , 우화속 옛날 이야기 같은 내용을 읽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이전과 똑같이 , 또 똑같이 , 글자 하나 달라질 수 없는 성경을 읽는 데도 어쩌면 이렇게 전율이 일듯 마음에..
12.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과 마주 서서 그의 손을 펴니라 만들어진 대에 올라서서는 솔로몬은 감동으로 외친다. 그의 감동이 '손을 펴니라'에 느껴진다. 별 문장이 아닐 '손을 펴니라'가 그 구절을 보면서 갑자기 솔로몬이 대 위에 오르면서 두 팔을 치켜 들더니 약간의 스냅을 주는 듯한 느낌으로 두 손을 활짝 펴며 격동으로 군중을 향하여 외치려는 그 찰나의 영상으로 다가온다. 감동. 아침에 일찍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반진공관식 블루투스 스피커 (브리츠에서 나온 .. 저렴한 , 꽤 음질이 좋은 ... 가성비 굿의..ㅎ )에 연결되어서 나오는 '유튜브'의 찬양에 갑자기 가슴 아래가 뜨거워 지면서 아랫배가 든든한 듯.. 이전에 자주 그리하였던 '은혜' 받을 때의 증상 ㅎㅎ.. 들이 ..
1.그 때에 솔로몬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정말 솔로몬의 말대로 주님께서 캄캄한데 계셨을까? 아르논 타작마당의 '여호와의 궤' 있는 곳이 캄캄한 데가 맞는가? 왕의 눈으로 평민의 그것을 넘 어둡게만 보고 하나님을 사람의 눈으로 낮춘 것은 아닌가? 2.내가 주를 위하여 거하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하고 성전건축. 정말 최고로 잘지었고 가장 정성드려 만든 것은 맞지만 그게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가 맞는가? 한세대가 가기 전 솔로몬은 타락하고 영원처럼 긴시간 처럼 인간들에게 느껴졌지만 주님의 눈, 우주의 시간이나 영원의 눈으로 보면 겨우 수천년 지난 지금 우리 앞에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남아 있기나 할 것이던가? 그런데.. '영원'이라 한다. 그..
1.솔로몬이 또 놋으로 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십 규빗이며 정말~ 적은 돈으로 용돈 남는 것 모아 MRES 앱을 통해 주식을 해보고 있다. 아무런 공부도 안하고 지식도 없다 . 그냥............. 그런데, 그게 많이 손해도 보지 않고 많이 이익도 보지는 않지만 줄 때, 또 늘 때는 하루 몇십이상씩 왔다 갔다 하니 나름 원칙을 정해 놓고 그것에 이끌리지 않겠다 결심하고 자중하며 넣다 뺐다 하고 있다보니 마음이 한번씩 울컥하기도 또 그 숫자에 환희하기도 한다. 세상을 열심히 잘 사는 사람들 눈에는 어쩌면 바보 처럼 보일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제대로 좁은 길 가는 분들의 눈에는 적당한 타협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주..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Gr4a3/btqMqekDtf3/Goi281P46QTKGTUgstN6a1/img.jpg)
1.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솔로몬, 저 대단한 왕이 역사에 드물 대공사로 성전을 짓기 '시작'한 곳 바로 그곳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다. 오르난의 타작 마당 이라면 아래에 묵상 구절을 다시 긁어다 놓았지만 ^^; 일상에서 영적 위인처럼 드러나지 않지 않지만 하나님의 제단 중심의 삶을 사는 우리 모든 믿는 자들 가운데의 선택적 소수의 삶의 터.. 를 의미하는 곳이 아니던가? 그 곳에 솔로몬의 성령충만으로 최선을 다한 새로운 성전건물의 리모델링이 수십년의 시간을 두고 이루어짐은 내게 우리 좁은 문을 통과하여 가려는 자들에게 말씀하시려는 어떤 뜻이 있지..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b6j4n7/btqMmo85v4f/6e6TzW06UxZCkSCJ4sAC30/img.jpg)
그랬습니다 지금까지 난 내 마음대로 살아왔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내가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초조해하고 분해하며 그렇고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방금 전까지요. 그런데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동안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아 아닙니다 깨달아 졌습니다 말로 만이 아닌 진정요 난 주님의 걸어다니는 성전이었고 잠시 성전을 맡아 살고 있는 청지기일 뿐이었습니다 어찌 내가 이 육신 성전의 주인처럼 그리 어리석게 행동해왔던지요 어찌 내가 수없이 많은 허탄한 생각들에 사로잡혀 주님 허락하시고 주님 들어 오셔 좌정하길 원하시는 이 성전을 이리 마음대로 휘젓고 살아왔던지요 솔로몬님의 내가 누구기에 어찌 능히 라시는 말씀이 가슴에 꽂힙니다 내가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라시는 말씀이 가슴을..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b94hQN/btqMhtuTIro/hihF6bRaCI1m7nAXze0DOk/img.jpg)
1.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 가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사 심히 창대하게 하시니라 당연하지만 '여호와께서 ' ' 함께 하'시어야 창대도 심히 창대한 삶이 될 수 있다. 그 창대의 범위가 과연 모두에게 물질적인가, 단지 심리적이고 영적인 것일것인가 지속적인가 잠시일까..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들, 하나님을 깊이 사모하는 자들은 인생에서의 창대의 어떠함에 대하여 최소한 '막연하지만' 나름 하나님으로 인하신 진정한 창대의 어떠함에 대한 것은 확신하고 있다. 그 창대함을 향하여 매일 몸부림치며 주님의 뜻을 준행하려고 하나님의 뜻을 내 인생에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을 뿐....... 그래서 그 창대함이 우리의 삶에 임할 때 가..
3.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이 시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그녀의 남편에 큰 죄를 지은 후 얼마 후 죄를 깨달은 후 지은 것이라 설교하신다. 나. 잘몰랐다. 그만큼 '신학'의 베이스는 적다 . 단지..... 하나님의 어떠하심, 그 분 하나님의 내게 원하심이 어떠하심 그래서 내가 어찌해야 하는 지 그렇기에 내 삶의 목적과 방향을 어찌 설정하고 그 안에서 매일 어떠하게 살아야 하는 지 .......정도의 중심을 잡을 정도의 공부를 하고 매일 말씀을 그 기준에서 들여다 볼 뿐....... 오늘 말씀 묵상은 역시 어려울 뻔 했다. 구약이 자주 그렇듯....... 하지만 말씀 주석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배경이야기를 듣고는 첫구절 부터 그 분 ..
23.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냥 너무도 유명한 구절이고 너무도 잘 아는 구절이라서 그냥 지나려 했는데 '주님'께서 내 모든 것을 당연히 아시고 당연히 '정하시고' 기뻐하셨음을 잠깐 잊고 또 홀로 흔들리려 했던 것인 것 처럼 ^^; '정하시고'라는 단어에 눈이 멈춘다. 마음이 역시 '흔들~'하고 ..ㅎ 그렇다 . 주님은 날 다 아신다. 괜히 머리가 복잡하고 괜히 마음이 약간은 가라앉으려 하며 또 괜히 불안하려 했던 것.. 나 홀로 남아 이 깊은 구덩이에 앉아 있는 듯한........ 너무도 오래되고 너무도 익숙하고 너무도 강하였던 이 헛된 레파토리 (난.. 사단의 레파토리라 규정하였다. ㅎ)에 또 여지없이 매몰되어 가려던 찰나 내 작은 결심, 주님의 말씀을 붙들려는 (말..
1.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래야지. 당연히... 하지만 오늘의 말씀은 잘 집중이 안된다. 주로 원수에 대한 이야기다. 미움에 대한 이야기고.. 너무 잘 아는 이야기.. 너무 좋아하는 구절들.. 의 이어짐. 하지만 오늘 내게는 조금 동떨어진 듯하게 느껴진다 ㅠ.ㅠ; 3.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다행이도 '땅에 머무는 동안' 이라는 구절과 이해는 잘 안가지만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으라 시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 나머지 내 남은 시간. 참.................. 몸이 힘들고 마음이 잠시 가라앉으면 내 나이 이후의 누구에게나 그러할 무게와 힘듦이 또 무너져 쓰려져 오려 온다...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b38e3r/btqLRleDYJh/YMUD4lkY1Mq5H2LaJITdy1/img.jpg)
주님의 빛 가운데서 어찌 눈을 뜰 수 있으랴 너무도 강한 어둠의 무게 가운데 어찌 홀로 빛을 발할 수 있을까 하지만 생명의 원천이신 주님이 계시고 빛이신 그 분께서 내 안에 계시며 내가 그 빛 가운데 거하게 되면 어찌 어둠이 안물러가고 어찌 미움이 그대로 있으랴 주님이 이 저녁에 그러신다 내 빛가운데 거할 너여 나의 빛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또 너를 바라보라 아멘이다 그러하시니 나 이제 그럴 수 있으리라 9.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날이 갈 수록 내 모든 삶의 원천이 주께 있음을 절감한다.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라시는 구절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 . 이전 같으면 너무 유행가 가사같은 과장된 표현처럼 느껴져 아~주 당연하게도 생명의 원천이 주님께 있음..
19.부당하게 나의 원수된 자가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서로 눈짓하지 못하게 하소서 세상에 살면서 '부당하게 나의 원수된 자'가 어찌 없을 수 있을까? 어쩌면 '까닭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는 ? 세상이 점차로 각박해지고 삶이 얽히고 섥혀가며 원치 않는 이해와 타산에 얽히고 갈등이 수도 없이 양산되는 시대이며 또 그럴 수 밖에 없는 일들이 SNS...의 발달로 너무도 쉽게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과거의 상처'나 아픔은 실은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된 자가 아님에도 부당하게 나의 원수로 느끼게 하는 경우도 많아졌으며 까닭없이 미워한다 느껴 삶이 위축되는 경우는 또 어떠할까? 무슨 이야기던가? 실제로 '타인'에 의한 원수나 미움의 고리에 얽히수도 '자신'의 ..
1.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게 여호와 하나님을 항상 송축하라시며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라 하신다. 당연히도 나는 하나님을 송축하고 찬양할 당위성을 너무도 잘안다. 감사하고 기뻐서다. 그분이 날 구원하셔서 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삶의 시간동안 ( 여러번 고백했다 .. 40이후의 삶......ㅠ.ㅠ;) 을 살아오게 하시며 단 한번도 그려보지 않았던 위치에 서게 (남들이 보면 별거 아닐지 몰라도 내 부정적 삶의 눈에는 불가능한 지금이다. ^^*) 하심 만 생각해도 그럴 것이지만 실은 '찬양하고 송축하는 시간' 동안 나는 정말 깊은 기쁨의 순간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서 그랬다 . 아.. 똑같은 멜로디, 똑같은 가사 , 되풀이 .. (난... 이거 정말 싫어..
1.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너희 의인들아"라시며 말씀을 시작하신다. '너희'라시는 단어에 마음이 움찔하며 '의인들아'로 이어지심에 부끄러움이나 나같은게.. 라는 이전의 쭈그러듦과는 달리 그래... 난 이제 의인이 될 자격이 주어진 자야.. 의인이 되어가고 있어 .. 라는 그런 개념으로 받아 들여지는 것 같다. 그것이 인식되어짐. 그래서 마음이 움직여짐을 느낌이 기쁘다. 솔직히 사랑스럽다. 그런 내가 그렇다기보다 그렇게 말씀으로 말씀으로 이어지며 내 삶과 내 안의 영혼까지 변화가 되어가고 있음을 살아계신 말씀으로 체험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함이 그렇다 . 이어지시는 말씀이 '즐거워 하라'다 '너희 의인들아 ' '즐거워하라' 누구를.. ? 당연히 하나님 여호..
1.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 허물의 사함을 받고 ' '죄가 가려진 자' 십자가 앞에서 어떤 죄든 주님의 십자가의 어떠함을 알고 믿으며 다가온 자에게는 '죄사함'을 받음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아는 것 하고 매일의 삶에서 지어지는 그 수없이 많은 오류들이 주님 십자가 앞에서 다 사함이 되어짐을 믿어지는 가? 아니.. 의식이라도 하고 있던가? 편할 때는 그냥 망각하고 있고 조금 불편할 때는 '의심'하진 않던가? 오늘 '허물의 사함'을 받고 '죄가 가려진다'심이 새롭게 다가옴이 무슨 뜻이던가? 당연히도 그러하니 당연하게도 허물과 죄를 들고 주님 앞에 다가오라........심은 아니던가? 당연하지만 당연하게 살지 못하던 그런 상황을 다시한번 '리모델링'하라 하심은 아니신가? 매..
1.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할 것이 이제 확실하고 주 만이 내 오직 , 아니 우리 모든 인생들에게 오직 피할 유일한 피난처이심을 이제는 '확신'한다. 정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당연한 구절에 당연히도 꽂힘은 ^^; 주님의 말씀이 이제 내 안에서 살아서 움직여서 내 삶, 매일의 움직임과 판단함에 의미가 되어 가고 있는 방증임을 스스로 알아가게 되어 점차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있는 의미로 동행하는 코람데오 하나님, 로고스 하나님을 코람데오 하는 내 신앙의 방향으로 인식되어가고 있어짐이다. 아.. 나.. 오늘, 요즈음 점차로 더 주께로 피해가고 있어야 할 일이 생긴다. 아.. 내 삶을 그리도 어렵게 만들었던 부끄러움....
2.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주여. 속히 고침 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대로 표현해내지는 못할 지라도 주님은 다 아시리라 압니다. 주여. 매사에 저는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특별히 또 걸리네요. 아니.. 이 아침에 마음이 무거우려 하고 괜한 걱정이 절 사로 잡으려 합니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안가능할지도 모르면서 자꾸만 걸리려 합니다. 이전의 '불안' .. 말입니다. 수도 없는 많은 체험과 주님의 말씀으로 인한 변화와 그로 인한 내 안의 체득으로 이제는 아님을 앎, 그것이 머리에 떠오를 정도로 정리가 되었음에도 또 불합리한 생각이 절 붙들려 합니다. 마치.. 어제 말씀의 홍수같은 소리처럼요.. 주여. 제가 부르짖습니다. 제 아는 , 알게하신 바처럼 제 마음..
3.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10.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여호와의 소리' 여호와의 소리... 일곱번 이상을 되풀이 하신다. 우렛소리, 위엄차신 하나님의 소리.. 말이다. 나보고 '들으라'하신다. 그렇게 홍수와 많은 물 같은 내 머리를 휘어잡고 마음을 짓누르려 하는 홍수와 많은 물 같은 '다른 소리' 의 '위' 많은 물 위 홍수 때 좌정 하신다. 정말 희한하고 어이없는 표현, 상황 아닌가? .. ㅎ 홍수에 .. ^^;; 좌정하시다니.. 깨달아지는 바가 없지 않지 않은가? 수없이 많은 가치를 주장하는 너무도 많은 생각과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