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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QT
1.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제가 어찌' 이분의 고백처럼 '내가 ..완전함에 행하'였다 고백할 수 있으리요. 감히... 하지만 주여 저도 그리행할 수 있길 원합니다. 아니 그리 행하였다 고백할 수 있는 때까지 주님 앞에 당당할 수 있게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그리 나도' '흔들리지 아니'할 만큼 12.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섰사오니 무리 가운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섰'음을 고백할 수 있을 만큼 그리하여 주님을 송축하는 감탄의 노래로 매일을 살 수 있는 자 될 수 있도록 주여 저를 붙들고 가르치심을 제가 매일 알게 하소서. 저... 정말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그냥 주님 말씀을 매일 붙들려는 이 작은 결심..
1.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항상요...... 2.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믿습니다. 주여. 4.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항상 그리 기대합니다. 주여 7.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아.. 그렇습니다. 주여.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는 이유. 주님께서는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않으실 것임을 믿을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은 주님의 그 놀라우신 인자하심 만을 따라 날 기억하실 것을 믿기에 믿어지기에 여기까지 나름 열심히 살아..
문들아 머리 들어라(펌) 1.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당연한 것이지만 땅으로 표현된 이 세상과 거기에 꽉찬 ,충만한 모든 것과 이 세계와 그 가운데 부딪치며 사는 모든 것이 ' 다 여호와의 것' 이 맞다. 그것을 인정함으로 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모든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모든 풀리지 않는 매듭들이 풀려가기 시작하며 모든 결국이 다 하나로 꿰뚫어진다. 6.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그게 마땅히 우리 여호와를 찾는 족속인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그를 더 넘어서 좁은 문, 좁은 길을 들어 진정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의 할 바 할 태도이고 옳은 삶의 방향이다 . 이제 그 이상 더 ..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11.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솔직히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 줄'은 확실히 알고 믿는다. 또 그 분은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심을 많은 체험을 통해 잘 안다 . '나와 함께 계실 것'임도 믿는 다. 그렇지만 내 일상에서 항상 '알고 ' 있느냐 물으신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인듯 하다 . (난..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 또한 그분이 함께 계시기에 어떤 일이 있어..
15.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고린도 교회. 많이 말썽을 부린 교회라 한다. 그리도 목숨 걸고 이룬 교회이지만 분파가 되고 사도 바울을 대적하고 온통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미운(죄송.. 내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 교회다. 그런 그들이 두번째 편지 (주석 설교하시는 목사님께서 발견되지 않았다 하신다.)를 보낸 후 회심하고 돌아왔기에 이 세번째 편지를 통하여 저리도 기뻐한다. 그런데 내가 '사도 바울' 입장이라도 그들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할 수 있었을까? 물론 , 내 살아있는 이유가 선교임을 알고 있기에 당연히도 기뻐할 당위성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사도 바울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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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옥에 갇히고 매 맞고 죽을 뻔하고........ 이어지는 수도 없이 많은 고난들...........ㅜ.ㅜ; 그게 자랑할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아이들이나 범죄계 ^^;;에 사는 사람들이나 정신없는 성인아이 (아이같은 어른들)이나 하는 얘기지.. 그런데 그는 그런다. 저 마구 늘어 놓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바닥에나 있을 사람들이나 겪을 부끄러울 이야기들을 늘어 놓는다. 30.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그러면서 그는 부득불이란 표현으로 그게 부끄러움이 아니고 오히려 '약한 그것(약한 것이라는 표현으로 세상적인 ..
1.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용납'하라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용납은 容納, 허용하고 받아 들이다는 뜻이며 NIV에서는 'put up with' 로 KJV에서는 'bear with'로 나오는 바 영한 사전에서의 뜻은 1. (불평하지 않고) …을 참다 2. 인내하다(bear) 라고 나온다. 인터넷에서 이미지를 검색하려고 용납, 용서를 치니 용납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용서는 '은혜'로 하는 것이라 설교 하시는 구절이 나온다. 좀.. 극단적이고 교훈적 해설인 것처럼 느껴져서 지나치려다가 가만히 느껴보니 정말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은혜 아니고는 '용서'.. 불가할 것 같은 게 맞는 것 같았다 . 용서한다고 서로 가서 얼굴 부대끼고 울고 와서도 심리학적 기법으..
3.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나. 결국 주님 부르실 그날에 이 썩어질 육신을 벗어 놓고 주님의 나라에 갈 그러한 자가 할 수 없이 이땅을 살기 위해 주님의 만드신 그대로 '육신'을 입고 육신으로 행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육신'의 성질에 의하여 많이 좌우될 수 밖에 없는 '진정한 나' 이지만 이제는 '육신에 따라' 육신의 끌림대로 사는 것 육신의 정욕에 따라(짐승처럼..) 싸우지는 아니한다. ^^;; 아니하노니...라는 말은 아니하게 된 나.. 그러니 이제부터는.. 이라는 '육신'으로 살지만 육신에 속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할 자를 깨달았으니... 그리 결심하니... 라는 뜻 말이다. 4.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
2.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의 (주하인, 너의 !) 원함을 ' 안다" 라 신다. 그게 눈에 크게 들어온다 . 감사하다. 정말... 이 땅에 살면서 자기가 무엇을 진정 원하는 지 알고 사는 사람 몇이나 될까? ^^; 아니.. 본능이 이끄는 것, 상처의 허허로움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허걱대는 돈이나 섹스나.. 출세 .. 뭐 그런 동물과 다름없는 욕정 .. 말고 말이다. 아니, 솔직히 많은 뇌피셜을 거쳐 '형이상 학적'이나 '예술적' 으로 변화 시키고 치장하여 원하는 것.. 도 말구 말이다. 진정, 더 깊은 자신의 원함..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16.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같은 간절함. 동역, 동역자, 형제 , 자매....... 많은 기독교 안에서의 표현들이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가는 자들을 표현하고 있지만 과연 나는 그들과 '같은' 간절함을 공유했던 적은 있던가? 비대면 시대. 모임을 못하게 막아져 버린 시대. 예수님께서 '모이기를 힘쓰라' 시던 그 '주님의 인내의 시간 동안의 마땅히 해야할' 공유의 집단, 기독교 공동체, 교회............의 시간이 드디어는 '계시록적 '시대를 맞이해감에 따라 허락되어진 시간들이 아닌가 싶다. 이때..... 모이지 못하더라도 그들과 같은 영적 간절함은 불가능한 것일까? 나......... 간절함은 있으나 같은 간절함...... 방향은 ..
5.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주님을 믿는 삶을 살게 될 때 정말 중요한 것은 '먼저' (우선, 먼저~다.)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의 뜻을) 내려 놓고 주께 드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뜻에 맞추는 ) 그래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6.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은혜'를 허락 하신다. 그리고 그 은혜는 사모하는 우리에게 모든 삶의 사는 이유와 원동력이 되고 살아가는 에너지가 되며 이 땅에서 살아갈 , 존재의 이유를 어디에도 찾지 못하던 그 마음에 방향을 제시해 주신다. 7.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
13.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미쳤다 손가락질 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타인을, 세상을 위한 것이다. 그런 마음이 자연스레이 들게 하소서. 주여. 16.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다. 무엇이 그렇다는 이야기인가? 무엇이 그래서 그러므로.. 인가? 당연히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고 하나님 함께 하심이 내 일상에서 뚜렷이 느껴지니 그러하다는 이야기 아닐런가? 그러므로 "이제부터는"이다. 이제부터는.. 이라는 단어가 새삼 눈에 크게 들어옴은 앎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이후의 뚜렷한 변화가 선을 긋듯 이루어지지 않았었음이다. 정말..
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너무 당연하다고 알고 있지만 내 안에 '보배'이신 예수님을 담고 있다. 성령하나님을 담고 있다. 그게 나다. 그리고 난 질 그릇이다. 비록 아직도 내가 '질그릇'임을 잠깐씩 잊고 살다가 내가 질그릇임을 부정하려 몸부림치고 그러한 내가 또 속상하여 흔들리기도 하다가 그러한 내 질그릇에 담겨 주신(담겨지신.. 이 아니다. )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또 순간 차분하고 감사해고 숙연해지기도 하지만... 이 너무도 사랑하는 유명한 구절. "나는 보배담고 있는 질그릇" 내 존재 자체를 꿰뚫어 주는 구절이 오늘 새삼 '레마'로 눈에 들어옴은 위의 고백이 이유이기도 하다 . 그렇다. 질그릇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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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스스로 만족은 '자기 만족'이고 결국 그 자기 만족은 모든 사람의 살아가는 동기이며 이 땅, 눈에 보이는 물질이나 마음.. 정도에 국한 되었으며 그러함의 결국은 '불만족'이다. 만족은 끝이 없다. 그 만족의 대표적 예시가 '마약'은 아닐까? 모든 약이나... 이 땅의 물질적, 육체적 만족은 특징이 끝이 없이 커져가는 역치 (Threshold)라는 것이다. 만족을 채울만한 조건이 없다. 우리 믿는 우리, 믿는 나는 이제 확실히 안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 부터 나는 것 뿐이 없다. 아.. 말장난이나 개념적 정의라 생각하실 모든 분들께 권한다. '성령'의 은혜... 를 체험해보라. ..
2장 4.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 눌림과 걱정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근심이 없는 사람......말이다 사도 바울님도 큰~ 눌림과 걱정과 근심이 있었다 한다. 아.. ' 근심' 전문가로서 ^^; 그 분도 그러셨음이 위로가 된다. 성령의 감동으로 씌여진 '성경' . 그 성경을 통해 흐르는 성령님께서 그 분의 감성, 그분의 고민, 그분의 갈등, 그 분의 그럼함...... 예수님과 절절히 교통하시는 사도 바울 마져 '큰 눌림'과 '걱정'과 '근심'에 대하여 말씀하시니 공감받는 느낌이 든다. 성령의 그렇게 하심............. 그런데 그 분은 많..
22.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온 우주에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있을까? 정말?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래서 난 아니 누구라도 주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 . 특별히 오늘 더. 3.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그래서 안될 사정이나 조건이지만 '찬송'할 수 있길 진정으로 바란다. 위의 모든 것 다아시는 하나님을 내가 실제로 더 인정하고 받아 들이어 '주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오시는 은혜와 평강'으로 부터 마음이 녹아내려지고 상황이 풀어져버리고 늘....
15.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얼마나 마음 조렸었을까? 아버지 야곱이 살아 계시는 동안 돌아가실 것을 염려하며.....ㅠ.ㅠ;; 얼마나 두려울까? 죄의 결과에 대하여.... 그래도 다행인것은 그 두려움으로 인하여 죄에 대하여 돌이키고 힘들어 하였음이다. 고난이 유익이고 의지할 바 주변에 하나도 없다는 것이 진정한 축복인 것은 아프고 난 후에 안아프면 날아갈 것 같이 편안한 (실제다.. 난.. 의사다.ㅎ) 기쁨도 있지만 고난은 그로인하여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매달릴 바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여 하나님 앞으로 다가갈 수 밖에 없게 함이 진정 유익이다 . ' 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49장 29.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3.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147년 인생의 마감. 야곱. 태어날 때부터 처절한 경쟁과 수모와 쟁취 그리고 하나님앞에서의 열렬한 삶. 정말, 누구보다도 많은 인생의 풍파를 겪어가면서 살던 그도 결국 돌아가리니 돌아갔더라... 돌아가셨다. 죽었다. 누구나 반드시 한번 가야할 길. 유사 이래 에녹과 엘리야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었던 '과정' 죽음 50장 1.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다행이도 그 죽음에 죽었던 것으로 알고 평생을 가장 아픔으로 남아 있던 아들 요셉이 ..
13.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14.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17.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18.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19.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20.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21.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스블론, 잇사갈, 단, 갓, 아셀, 납달리.. 모두 '小 지파' 그러나 가만히 그들에게 주어진 축복의 말을 들어 보면 그 작은 반경에서 그들의 달란트에 따라 (누구는 바닷가, 누구는 농부, 누구는 길섶, 누구는 추격받고 하기도 하는 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