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나는 내 것이 아니었다[대하2:1-18] 본문
그랬습니다
지금까지
난
내 마음대로 살아왔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내가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초조해하고 분해하며
그렇고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방금 전까지요.
그런데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동안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아
아닙니다
깨달아 졌습니다
말로 만이 아닌 진정요
난
주님의 걸어다니는 성전이었고
잠시
성전을 맡아 살고 있는
청지기일 뿐이었습니다
어찌 내가
이 육신 성전의 주인처럼
그리
어리석게 행동해왔던지요
어찌 내가
수없이 많은
허탄한 생각들에 사로잡혀
주님 허락하시고
주님 들어 오셔
좌정하길 원하시는
이 성전을
이리 마음대로
휘젓고 살아왔던지요
솔로몬님의
내가 누구기에
어찌 능히 라시는 말씀이
가슴에 꽂힙니다
내가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라시는 말씀이
가슴을 칩니다.
주여
이제부터라도
제가 주인처럼 마구 했던
이 육신의 모든 권리를
주 앞에 돌려 드리려 합니다
솔로몬님 처럼
귀한 결단과
최선의 것으로 꾸며 드리진 못해도
제가 할 수 있는
적은 것이라도
주께 드리려 하오니
주여 도우소서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이제 남은
제 나머지의 여생동안
눈을 뜨고 살아 움직이는
한순간 한순간
제 모든 것을 조심하여 쓰다가
부르실 그날에
그나마 가장 깨끗한
육신과 마음으로
주께 돌려 드릴 수 있길 원합니다
매일 임하시는 내 주시여
주님과 동행함으로
늘
그리되길 원합니다
제 안에
제 영혼의 지성소에 앉으소서
오직
주님 앞에 분향하는 마음으로
매일 살다가
주께 갈 수있길
기도합니다
6.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이기에 어찌 능히 그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
이 땅위에
'성전'을 지으려 하는 솔로몬이
자기가 어찌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 한다 하는가
단지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라 한다.
그러면서 "내가 누구기에' 라는 말을 덧 붙혔다.
무슨 말씀인가?
우선 '겸손'이 들어 가 있는 듯하다.
'내가 누구기에'......
내가 누구기에 '감히'.. 라는 단어가 생략된듯한 느낌.
감히 어찌 '성전'을 완성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인가?
내가..............라는 의미.
그러면서도 그는 성전을 짓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겸손과 더해진 '최선'
'내가 누구기에'라는 구절에 함축된 의미이다.
또,
'내가 누구기에' 라는 표현에는
'성전',
진정한 성전에 대한 '경외'의 표현이 들어 있으며
진정한 성전이란
단지 이 땅위의 '교회'나 '제사당' 같은
외적인 형태의 '성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지성소에 앉으시어
온전히 이루어질 때야
비로서 '진정한 성전'이 될 것임,
그래서 굉장히 조심하고 있으며
그래서 '내가 누구기에' 감히 어찌 성전을 지을 수 있겠는가?
성전의 완성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주권'이시며
그러기 그렇게 하기 위하여
나는 (솔로몬 자신은) 최선을 다해
겸손으로 성전 건물을 지어올릴 뿐이며
오직 '그 앞에 분향할 뿐'인
기도하는 장소로서의 건물을 지어올리는 것이란
'겸손'과 '최선'과 '경외'함의 표현이 맞는 것 같다 .
그렇다면
나.
솔로몬과 같이 성전을, 교회를 지어 올려 드릴 수 있는
재물과 능력과 믿음을 가진
세상의 아주 극소수 인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우리에게는
오늘의 구절,
특별히 '성전을 지어올리'지 못한다는 말씀이신가?
당연히도
매일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의 대상이
사모하는 모든 자들에게 임이 당연한 것을 감안한다면
오늘 우리에게
우리 믿는 자들에게 '성전'이란 어떠한 의미일까?
당연히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
성전은 여기도 저기도 아니고
우리 영혼 안에도 있다신 것 처럼,
우리는 걸어다니는 '성전'이며
우리 안에 '예수'께서 좌정할
뜰, 성소 , 지성소(육신, 마음, 영혼의 3부분)으로 이루어진게
바로 우리 아니시던가?
그러기에
성전을 온전히 건축한다함은
외적인 모습,
경건하고 봉사하고 십일조하고 구휼하고
기도하는,
어쩌면 성무일과 처럼 정해진 시간의 기도하는 시간까지
제대로 갖추어 매일 기도를 드리는 행위도
어쩌면 이땅위의 성전을 세우는 일이 맞을 게다 .
그렇다면
기도하고 .....이런 외적인 행위들이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을 세우는 일이 맞을까?
예수께서 '회칠한 무덤'이라 질타한 바리새인도
금식하고 기도하고
무슬림들도 하루 몇번씩 행위한다.
자신감을 가지고........^^;;
그 부분.
그와 대비되는 자세가
오늘 솔로몬이 선언한 '내가 누구기에'일 것이며
그러함 ....등 모든 것이
단지 '주님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라
생각하고 마음자세를 가지는 게
진정한 '성전'으로서의 '나' , 우리가 맞는 듯하다.
그렇다면
올바른 성전으로서의 나........가 되기 위한
내가 무엇이기에의 태도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오늘.. .
위에 썼지만
'겸손'과 '최선'과 '경외'의 마음을
그 표현에 녹여 낸 것이며
내가 오늘 하루 붙들고 살아야 할 마음은
(주님의 성전으로서)겸손하게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외적인 것을 이루어나가야할 것 이다 .
기도하고
겸손하며
구휼과 긍휼의 마음으로
주님을 경외하며
오늘 하루 조심해야 하리라.
감사하다.
주님.
또
변화없는 하루,
새로운 일주일
허락되어진 11월을 맞이 합니다.
전 '겨울'이 좋습니다.
여름은 옷을 벗어도 땀을 피할길 없지만
겨울을 옷을 입으면 피할 추위이기에
그리고 껴입은 옷 위로 튕겨져 나가는 칼바람들을 느끼는게 좋아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작들이 11월이라
또 즐겨 맞이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또 일년이 지나갔습니다.
감사하나이다.
주님 뵐 날이
주님의 성전을 직접 뵐날이 점점 더 빨리 다가옴이
기대가 됩니다.
주여.
비옵기는
제게 이땅에서 허락되어진
이 성전을
제게 허락되어진 외적인 결심과 결단으로
열심히 지을 수 있길 원합니다.
더 겸손할 수 있길 원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주여.
최선다해 기도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이웃과 나를 위해서도 최선다하는 제가 될 수 있길 원합니다.
주여..
내가 누구이기에........라시는 말씀 붙들고
오늘 하루 살려 하오니
로고스 주님을
코람데오 할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온전하신 하나님.
주의 성령으로 도우소서.
겸손하고
경외하며
최선다하는 하루 될 수 있길 기대하며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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