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마침 이때에[눅7:18-35] 본문
21.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마침 그 때에'라신다.
마침 그 때가 정말 아무 이유없이 만나시던 우연을 의미하시던가?
그 분께서 역사하시고 기적을 나타내 보이시며
인도하시던 모든 일들이 '우연'의 복권추첨하듯 이루어진 것일까?
솔직히 온 세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던가?
그들 중의 많은 분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그 말씀이 정말 복음인 줄을 알며
은혜와 깊은 경지의 믿음으로 나가게 되는 것은
소수이며
그것을 '좁은 문'이라 말씀하신 것을 보아서도
'마침 그때'의 우연처럼
아주 낮은 확률의 진정한 축복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게 진정 감사함도 맞긴하다.
진정으로 ... !
그리고 그러한 그 분의 세상에 아주 적게 간섭하심의
전적인 주님의 주권도 인정한다.
하지만...
정말 필요할 때 '기도'하면 응답하시고
기도할 때마다 나타나 주셔서 해결을 주시지 않음도
이 '마침 그때'의 우연과 같이 드문 확률로 또 이루어지고
그 우연의 기적들을
또 남들이 '간증'으로 간증하는 것처럼 지나간다면
참 .. 힘들 때
특별히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이 '코로나 '같이 지속되어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상황에서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없으심도
그 우연에
그 마침 그때에 만나주시지 않은 대부분의 확률이라 치면
어쩌면
많은 기도하는 자들에게
그게 '좌절'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코로나 우울은 믿지 않는 자들,
믿으면서도 그냥 아직은 성장하지 않는 자들에게 만 해당되는 개념일까?
'마침 그 때에'라는 구절을 보면서
마침
힘이 든 상황에 들어가며
갑자기 온 몸에 힘을 풀고 아무것도 안하고 싶던
이 오래된 버팀의 끈이 풀어질 것만 같은 이 시간에
눈을 치고 들어오는 말씀 구절이다.
'마침 그때에'..........
그런데
오늘의 마침 그때에 .. 는
또 다르게 느껴진다 .
마침 그 때에 ...가
주님께서 분명코 어떤 의도를 가지시고
우주적 시간의 꼬이고 얽히고 엮여진 (크로노스 , 카이로스)
그 시간의 거기에 나타내 보이심이고
그것은
또
기력없는 눈을 들어
힘없는 마음을 부여잡고
겨우 집중한 말씀 구절에서
내게 다가오시는 듯한 느낌이시다.
말씀을 묵상하는 자의 어떠함.
그 말씀의 살아계심은
모든 현실의 그러함 조차
때로는 마치 짙히 내려 깔리려하는 운무를 걷어 내시듯
마음이 변하게 하신다.
그랬다.
아침에 친한 'O'과장이 설레발을 치며 다가온다.
" 들었는데..^&*(..........기도했지만...
생각보다 차분하네?..."
그러고 보니
내가 차분해졌다.
나도 모르게.................
그것 .......'마침 그때에' 처럼
'마침 이 때에'
내게 임하셔서 나도 모르는 내 꼬인 부분을 쓸어 내리셔서
막힌 눈을 뜨게 하신 모양이다.
불안은 사라지고
잔잔함 만 남았다.
희한 케.............
24.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고 주께서 물어보신다.
무엇을 위하여
난 , 우리는 지금 이리 안절 부절 못하고 살던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이제
이렇게 자꾸만 나는 질문한다.
주님은 무엇을 원하시며
나를 지금 여기에 세우셨던가?
마침 그때에..가
우연처럼,
굉장히 희박한 확률처럼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인한 해결 같지만
무엇 때문에.. 어떻게..
주안에서... 그리.. 를 묵상하다 보면
말씀으로 이렇게 또 찾아 오심이시다.
앞으로 살 날.
남은 여명.
지속적으로 주님을 놓치지 않고
더 주님의 뜻을 깊이 묵상하며
기도하며 살 일이다.
주님.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
말씀을 통해 허락하시는 내용을 알듯합니다.
주여.
하루 종일 또 붙들고 살겠습니다.
주님.
이제... 남은 시간들을 정리하는 시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하는 지..
그게 주님 안에서 진정 주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제 상황상 눈에 보이는 길,
열렬한 선교와 순교... 의 길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지만
제 삶의 터에서
제게 허락되어진 버퍼 만큼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정리해가는 것이
진정 주님이 원하시는 것인지도 잘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루한 , 사그러져 가는 사회 생물학적 기간 동안
제게 또
원치 않는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아..
너무도 질겨 도망가고만 싶은 일 말입니다.
마치.. 저 눈먼 자들이
숙명처럼 지고 살아가는 보이지 않음 처럼요...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기대와 예측과는 전혀 상관없는
'마침 그때에'의 시간을 통해
바람처럼 다가오셔서 그를 낫게 하십니다.
주여
무엇을 보려고.. 라 하셨습니까?
전..
이 주님이 아니시고는
답이 없는 이 시간의 흐름 속에
내 의지와 의욕과는 아무 상관없이 몰려 가는
제 상황 속에서
좌절이나 불안함에 매몰되기 보다는
주님이
마침 그때에 .. 처럼 다가오셔서
마침 이때에 주하인이 이렇게 깨어서
말씀을 통해 눈치 채고 있었으므로
제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던
해결책을 보고
그 감사함과 깨어 있음을 통해
하나님의 이 땅에서 같이 역사하시는 어떠함을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주여.
현재 겪어야 될
실제적 문제와
마음의 혼란과
영혼의 문제..
그리고 그 들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함을 제게 허락하소서.
마침 이때에
이렇게 말씀하시어
마침 그때에 거기에 있던 그 맹인이 눈뜬 것처럼
마침 거기에 있어 듣고 있던 제자들처럼
제게도
확실한 깨달음으로 인도하시고
해결하여 주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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