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인내로 결실하게 하소서[눅8:1-15] 본문
14.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이생의 염려'
참.. 표현은 간결하지만
고난에 들어갈 때는 우리네 마음을 그대로 응축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오늘처럼 그러한 상태에 있을 때 (있었을 때.... 있을지 모를 때... )
'난 가시떨기'의 심령인가 보다.
15.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그래서 '좋은 땅'이 아닌가 하며
그렇잖아도 힘든 마음에 부담이 가해지던 부분이기도 하다. ㅠ.ㅠ
그런데
'인내로 결실하는 것'
'이생의 염려가 있고 없는 것'..모두
지금 현재로 결정되어 지는 것이 아닌 부분 아니던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지어져 이루어지는 부분...
그렇다면
좋은 땅, 가시떨기 땅 , 바위.... 등 모든 영혼의 상태는
그런 조건을 가지고 그렇게 태어난 자라기 보다는
말씀을 듣고
그런 선택을 통해 점차 굳어져 가는
'선택' 부분을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
즉...
주님이 말씀하시고 자 하심은
너는 가시 떨기 나무 땅이니 안되고
너는 좋은 땅이니 되고.. 의
더 이상 변하지 못하는 '규정'이 아니고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선택..
그 선택의 결과로 매일 매일이 결정되어져
결국 이루어질
현재의 우리의 '상태'에 대한 것 만을 말씀하시고자 함은 아닌가?
또
그렇다면
주님이 오늘 말씀하시는 이 유명한 구절은
'주하인들아..
이러한 땅이 되기 위하여
이러한 선택을 하는게 맞겠다.. '하심이다.
그렇다면
오늘 내게 찔러 오는 구절
' 이생의 염려'다.
이생의 염려 부분으로
사뭇 흔들린다.
말씀을 듣되 기쁨과 평안보다
자꾸만 머리 속을 파고들며 마음을 뒤 흔드는 고민들이 있다.
거기에 ' 난, 좋은 땅은 아닌 것 같다'는 비아냥 비슷한 느낌이 자책으로 들어 오려 한다.
하지만 잠시의 의지적으로 (^^;) 묵상을 하다보니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성품이나 자질 부분 같으면
의지를 말씀하시겠는가?
자연스레이 의지도 발휘되고 염려가 염려가 아니게 되겠지... ' 라는
당연한 깨달음이 왔고
그렇다면 '이생의 염려' 부분..
그 부분에 사로잡히고
이전, 믿음이 깊지 않았고 주님의 동행하시던 경험이 적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또 똑같은 염려에 매몰되어 생각을 내어 놓는 일들을 지속한다면
그것은 '가시나무로 우거진 땅'으로 굳어지는 것이며
다시 그렇다면
그 가시나무 땅이나 좋은 땅의 이룸은
이러한 선택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지
하나님께서 절대 바꾸지 못할 운명적 자질로
그렇게 만들어 보내신 것은 아니실 것이란 깨달음이 왔다 .
그런데..
이 '이생의 염려'..
내가 안한다고 결심하면 안할 수 있을까?
좋은 땅 되기 위하여
'인내로 결실'할 결심을 하면 결실이 될 것인가?
내 상황.
나
의사로서
꼭 내 인내로서만 해결되지 않는 부분의
이생의 염려 .. 말이다.
그 부분을
좋은 땅, 가시 나무 땅으로
쉬이 말씀하시는 것 같아
그동안....
아마도 힘든 분들도 마찬가시지겠지만
이 부분에 시험드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도저히 내가 인내로만 어찌할 수 없는 부분.. (그러고 보니 인내의 버퍼가 좀 커져 있다.. .이전보다.. ^^*)
그것을 주님이 과연 모르시고 말씀하셨을 것인가?
정말?
인내를 결심하고
이생의 염려를
홀로
그렇게 이겨내서
다행이도 건너 뛰어 성공하면
그것. .정말 좋은 땅일까?
세상의 많은 잘 이겨내는 자들 중에
인격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분들도 많다. ㅠ.ㅠ
그 분들도 좋은 땅인가?
바리새인은?...
그렇다면
당연히도 다시 인내와 이생의 염려 부분에 들어가
그를 위하여
당연히도 '기도'하고 (말씀이 있으시니 옳은 방향을 깨닫고 깊이 하는 ... )
허락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이생에 문제가 있어서 '이생의 염려'를 주님 앞에 맡겨 놓고
허락하시는 은혜로 '염려'대신
차분한 가운데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말씀이 있으시니
그 상황에서도 더 인내와
다른 상황에 대하여 말씀대로 또 나가는 것..
그러다 허락되어진 가운데 해결을 보거나
그 염려되는 일 가운데서
내게 부족했던, 주님이 원하시는 바꿔야 할 부분을 깨닫거나
다른 크신 하나님의 계획 중 일부임을 자연스레이 알아
아.. .모든게 주님의 뜻이었구나 .. 고백하며 살아가게 되는
그것이
좋은 땅으로 일구어져 가는
믿는 우리의 마땅히 선택해야할..
아니
내가 오늘 선택해야 하고
받아 취사하여 내 안에 녹여야할
말씀, 레마이신 듯하다.
감사하다.
주님.
솔직히
많이 좌절할 뻔 했습니다
이제는
그만해도 될 만한 일들이
또 다가오며
제 삶의 기조를 온통 어둡게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아주 익숙했던
연민의 태세를 갖추고 들어앉아
팔다리 힘풀고 아무 것도 안하려 했습니다.
그런 제게
말씀으로 '마침 그때 ' 다가오셔서
제 영적 맹인의 눈을 뜨시게 하는 것 같이
제 마음이 차분 해져 며칠을 지냈습니다.
주님의 뜻이신 줄 알았습니다.
주님이 하신 현상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주여.
이생의 그 염려 스러운일들은
이 자꾸만 들어가는 나이와 더불어 반항하듯
자꾸만 오동작하는 육신의 문제와 더불어
좌절로 저를 이끌려 하고 있습니다.
그냥.. 대상이 더 이상 없어
나도 모르게 주님을 향하려는
그 속상함을 깜짝 놀라 되돌리고 있던 참입니다.
다행이도
오래 말씀을 묵상하던 습관과
억지로라도 주님의 뜻을 맞추려는 결심을 통해
주님의 늘 그러하시듯 인도하심을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 주여.
오늘 말씀을 들어가며
이전에 그러하였듯
난.. 아닌가 보다 하는 걸림이 되어 얼른 넘어 가려다가
그럴리가 없음을 알고
묵상을 하니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여.
좋은 땅은 아닐지라도
좋은 땅이 되기 위한 옳은 선택을 할때
주님께서 좋은 땅이 될수 있도록
당연히도 허락하시어 주시는
기뻐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통해
또 이겨내고 이겨내서
주여..
좋은 땅으로서 완전히 익혀져
항상
주의 원하시는 모습을
제 삶에서 펼쳐내는 제가 되도록
조금만
조금만 더 도우소서.
제게 이생의 염려로 매몰되지 않게
성령의 강력한 은혜로 붙들어 주소서.
그리함을 제 남은 생애 내내 유지될 수 있도록
주여.. 절 인도하소서.
시편 말씀 읽은 것중
우레 속 은밀한 중에 내게 응답하신다신 것처럼
또 그리하소서.
염려 속 우레 같은 사단의 속삭이는 소리 중
마치 은밀한 듯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소리로
절 붙드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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