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신약 QT (2210)
발칙한 QT
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십자가 그 귀중하고 놀라운 구원의 원리를 알면서도 불구하고 자꾸만 잊고 살게 된다. 십자가 피 가시관 고통 ......... 피하고 싶은 내용들 뿐이라서 우리의 무의식이 자신도 모르게 의식 한구석에 묻어 두려 하는 습관 탓인듯하다. 십자가는 고통 뿐인가? 십자가는 '예수'께서 홀로 감당하시고 끝인... 우리를 편하게 하는 도구일 뿐이던가? 생각하면 너무도 많은 '죄송스러움'이 있음에도 그 죄스러움의 무게가 또 마음을 무겁게 하고 무거운 마음에 자꾸만 망각하게 되는 모양이다 . 그러나.. . 그 마져 주님이 모르실까? 그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 피의 정결화 하심을 통해 우..
가장 볼품없는 것 들이 경쟁하듯이 풍성히들 자라나니 진료실을 드나드는 환우 분들이 그러한 그들을 보고 감탄을 하신다. 자라는 것은 중요하다. 더 자라야 하고 항상 자라야 한다. 자라지 못하거나 규격없이 크는 어떤 것들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창틀의 햇빛과 며칠 마다의 작은 물을 의지해 풍성히 자라나는 저들의 기쁨은 생기 덕이다. 이쁘고 옳게 자라나는 것들이 주는 기쁨의 정체 生氣 ! 주께서도 우리를 보고 그리 기뻐하실 것이다. 이 나이지만 아직도 주 안에서 자라나는 나.......말이다.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당연히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뜻으로 말미암아 .. .여기까지 왔다 . 비록, 각개인의 선택의 이유로 돌고 돌아왔을 지언정 나 또한 내..
19.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이 구절이 아닌지는 잘~알고 있지만 ^^; 내 안의 어떠한 부대낌 때문인지 마치 '바울님의 잘난체' 하는 것 처럼 느껴져 (아... 엉터리 편견이 내 인생을 얼마나..ㅠ.ㅠ;;) 스쳐 지나던 부분이고 오늘도 또 그러려 했지만 목사님의 주석 설교하시는 중 '우리가 얼마나 예수께 빚진 자로 살던가...얼마나 잊고... ' 라시는 말씀에 크게 다가왔다 아. 그렇다. ' 내 '사망으로 부터의 구원'(아.. 이러면 너무 식상한 듯 하지만 실제로의 감사다.. 그게 그리 느껴지니 감사하다.) 뿐 아니라 내 일상의 매일을 바로 세울수 있는 무료의 도움을 매일 받는 빚도, 내 살아가야 할 이유를 뚜렷이 , 나를..
그는 온전한 관계 안에 있는 자였다. 그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이루고 동역자와의 고른 관계를 유지하며 말씀에 순종할 줄 아는 자다. 그리고 그리함으로 오는 은혜를 깊이 체험한 자 그 평강의 기쁨을 놀랍고 깊이 경험한 자다 그래서 그는 종을 받아 들이는 놀라운 사회정서적 충격을 승화 성화시켜내게 된 자다 아니다. 그보다 종을 형제로 받아 들이는 격정적 갈등을 이겨낸 자다 아... 저도 그리되게 하소서. 주여.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빌레몬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동역자들 속, 옳은 관계 속에 있었다 . '인간(人間)' 사람과 사람 사이. 그렇지만..
11.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내 손으로' 직접, 주님께서 강하게 '너희에게' 나에게 '이렇게' 어떻게인지 묘사는 못하겠지만 내 영혼을 흔들어 집중시키듯 그렇게.. '큰 글자로' 집중하도록 , 아 집중되도록 쓴것을 '보라'라 신다. 기도하려 해도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자꾸만 멍하려 한다. 그럼에도 그 메마름 속에서도 이전처럼 극과 극을 달리는 흔들림은 없다 . 그때처럼 메마를 때 주님 앞에 다가가기가 그렇게 힘들거나 저항도 덜하다. 다행이다. 이제는 이 메마름의 시간들이 또 허락되어진 다른 하나님의 연단이심이 믿어지기도 한다. 이전처럼 죄책감.. .뭐 이런 거 덜하고.. 그럼에도 아침에 일어나서 묵상하려는데 그냥 멍~~하고 집중이 안된다. 오래가면 안될 것 같은데 더 열정..
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신령한 너희' 나.. 하나님이 그러신다 . 하나님은 영이시고 영이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너는 신령한 자다. 그러기에 말씀하시는 대로 '신령한 나'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라시는 이야기시다. 그들. 그들에 포함된 것은 '나'에게는 절실한 부분이다. 깊은 .. 밝히진 못하지만 반드시 그래야할 부분.....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그 일이 쉽지 않음을 아시기에 짐을 지라 신다 . 일방적 내 잘못도 일방적 그들 잘못도 아니다. 그들도 몰라서 그럴 수 있다. 그러기..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당연하게도 육신의 것과 성령의 것은 양립할수가 없다.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 빛과 그림자 ..가 어찌... 그런데 간과되기 쉬운 것이 있다. 이 모든 것..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아니면 관계의 여파이든..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러기에 삶속에서 , 그 삶의 갈등에서 육신의 일과 성령의 특성은 번연히 드러나기에 허락되어진 우리네 인생의 모든 버거움과 기쁨, ... 그 모든 것 십자가에 달려 육신의 것을 벗고 성령으로 충만히 되길 바라시는 허락되어진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그리스도께서 '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이유는 '온전한 자유' 최소한 이 땅에서도 은혜 받을 때, 성령 충만할 때에 저 천국시민으로 영생을 살 기본적 권리를 조금이라도 눈치를 챌 수 있을 (그러니 성령 받지 못하고는 어찌 이해할 수 있으랴... 불쌍한 그들.. ㅜ.ㅜ;) 그 온전한 자유를 우리에게 주시려고 오셨다 . 그리고 그 때까지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최소한 '율법' 즉 죽어갈 이 세상의 모든 원리 , 육신을 제어할 인생의 노력의 왜곡된 결과들, 자아의 가장 발달한 유형, 어찌할 바 없는 원죄의 끝 결과물....인 그 율법을 선택하든지 '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원리' 즉..
늘 그랬지만 오늘도 여지없이 그랬습니다. 말씀을 붙들기 전 버겁고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면서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내 인생을 걸며 주님의 진리, 복음의 원리를 깨달은 이후 그 전의 나를 이끌던 뒤죽박죽 더러움과 두려움의 생각의 기조로 매일을 이끌리며 살던 나로 부터 이제는 매일 '말씀'으로 하루 하루 이끌리며 살겠다. 그런 결심으로 말씀 묵상을 놓치지 않으려 하던 제가 이전에는 훨씬 자주였지만 그래도 근래에는 '말씀'이 훨씬 뚜렷이 제 생각의 기조와 마음의 안정을 유지 시켜 왔었는데 또 어떤 싸이클 처럼, 리듬처럼 '멍'~하니 말씀을 보되 말씀에 큰 감흥을 얻지 못하고 저녁에 잘 즈음에 되어서야 머리를 털며 '오늘' 내가 무엇하고 살았지.. 하는 그런 날들이 되풀이 되고 덜 불안하고 비교적 안정..
13.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본질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것을 이유로 모든 우리네 인생의 어려움, 육체의 약함으로 표현되는 이 길고 험하고 어려운 인생의 버거움들이 다 허락되어진 것이고 하나님을 인식함으로 하나님의 뜻 '복음 전함'을 우리 삶의 목표로 삼는 그때 부터 모든 것이 이해가 되고 풀려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14.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그리고 그 전함을 위하여서는 모든 '관계'가 전제가 안된 홀로의 그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하는 자와 받는 자 모두에게 '시험', 즉 갈등이 있으며 ..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때가 차'야 한다 . 때가 되면 내 몸, 내 육신, 내 마음 안에 그득히 자리잡고 있는 율법적 성향이 벗어지고 그 율법으로도 다룰 수 없던 남아 있던 죄성, 죄의 소리, 습관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진정 하나님의 아들로서 쑥스러움을 내려놓고 ^^; 진정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그리 행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아들이므로" 라는 단어가 어찌 그리 좋은지........ 둘째가 가끔 앙탈처럼 장난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그러면 '야... 너.. 어찌.... ?.. " 하면 '아들이잖아요" 한다. 그 순..
26.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 믿기만 하며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간단하다. 삶의 목표다 뚜렷하게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에 대하여 정리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한 것' 그것이 사는 이유다. 아... 그렇게 표현하면 살고 죽고 인생이 모두 우리의 결심에 달렸고 우리가 삶의 중심인 것 처럼 (인본주의의 함정 ^^;) 느껴지지만 우리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달렸음이다. 그것.. 어쩌면 신정정치, 신본주의가 왜곡된 과거 인간들의 오류로 왜곡되어서이고 그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의 허락 가운데 인간적이고 르네상스적인^^;; 쉬어감일 뿐이지 어찌 신본과 인본이 다를 수 있단 말이던가? 어찌 인본과 신본이 나뉘고 ..
10.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 율법에 매이면 '죄'고 그 죄가 우리를 '사망'에 들어가게하며 옭매이는 올무지만 11.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그 율법으로 죽어갈 이 미련한 깡통 인간들을 '살게 하심'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하다. 예수님은 사랑이시고 자유이시다. 1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기에 우리는 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 율법의 옭죄임..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11.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책망 비록 게바(베드로)와 바울님 사이에 악한 의도로 싸움의 소지가 될 '책망'이란 부정적의미는 아니고 발전적의미의 책망이라할지라도 '책망'이라는 단어만 가지고도 책망이 일상이던 분위기에서 자라던, 그래서 내면이 책망에 대하여 민감하고 힘들던 나에게는 '책망'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긴장이 되며 내면의 톤이 업되려함을 금할 길 없다 .ㅠ.ㅠ 16.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그..
20.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 '보라' 나는 '하나님 앞에서 ' 거짓말이 아닌 삶을 살고 있다. " 늘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인식하고 사는 자. 사도 바울의 선언이다. '보라'라.......함은 그의 삶의 힘있음 그 힘있음의 이유가 하나님 앞에 서 있기에 아무런 흔들림이 없을 수 밖에 없음을 힘껏 고백함이다. 아니다. 탄성과 더불어 힘있게 고백되어짐이 원인이다. 내 하루는 어떤가? 난 정말 하나님을 매시 매초 인식하고 사는가? 멍청하게 넋을 잃은 듯 유혹에 끌리고 홀로 있을 두려움에 , 외로움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하여 눈을 잡아끄는 영상, TV...........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니던가? 24.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살다보니 사는게 아무런 이유를 못찾겠더라. 자식들을 위하여?................ 동물들도 자식을 위하여 헌신하는데 그것 당연한 본능의 산물이지 인생의 목적은 아닌 것을.. 사랑을 위하여? 사랑 멋지게 하고 죽어도 좋다는 드라마 같은 심사... 알지만 모든 인간의 사랑은 옥시토신 분비 효과가 최대 3년, 그후의 의지로 사랑을 하려 하지만 그 모든 것, '자아'의 고집의 다른 변형.. 그 안에 깊이 깊이 들어가보면 추악한 자아의 지옥이외 다른게 있을까? 재산, 재물? 바람 불면 없어져 버릴 모래성 같음은 굳이 성경의 구절을 들추지 않아도 적신으로 돌아갈 인생임은 수..
12.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13.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누가' ' 누가' 하신다. 그 누가 '바닷물을 손바닥'에 뼘으로 하늘을 덮고 땅을 티끌처럼... 되에 담을 것을 말씀하신다. 어떤 뉘앙스인가? 나.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매일의 삶, 하루 하루 중 과연 내 마음의 방향, 내 하루를 움직이는 동기가 어떠한 것인지 돌아보았던가? 혹여.......매일 매시 살아 움직이고 먹고 마시고 판단하고 고민하고 걱정하고 갈증나 하는것... 어쩌면 '좌절' 하고 '갈구하는 것'...........그 어떤 것도 난.. 누구를 바라보던가? 누가 한 이야기..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위로하라' 위로하라 신다 . 그 말씀이 위로가 된다. 내 백성을 위로하는 도구로 나보고 위로하라신다. 그 백성에는 나도 포함됨은 물론이다. '위로' 아.. 정말 ...... 위로가 필요한 요즈음이다. 하지만 위로하라.. 신다. 그 위로가 그들을 위로하라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로하신다는 말씀처럼도 들린다. 위로. 어찌할까? 위로를 받아야 할 내가 어찌 위로를 할까? 그런데.....말씀은 늘 보장이 있으시다. 그러기에 명령을 하신다. 명령을 준행하는 지 안하는 지 보시려 하심이다. 그를 순종하면 오히려 도리어 하나님의 위로가 내 안에 쏟아져 올 것임은 익히 걸어온 시간들을 통해서도 잘 안다. 할렐루야다. 위로하라시는게 위로 받을 시간이기..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라 하신다. 기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게 우리의 마땅한 믿는 자로서의 기본임을 알면서도 매일 매일 삶이라는 일상에 들어가서 허덕이다 보면 그리고, '고난'.. 특별히 힘든 경우 들어가면 자신도 모르게 그 문제에만 매몰되어 '기도'를 뒤로 미루는 (이제.. 이 정도의 시간이 되었는데 기도를 잊겠는가? ^^;;.. .하지만 실제의 기도 , 믿음의 기도는 아니지 않을까? ㅠ.ㅠ;) 그런 상태를 짚어 주심이실 수도 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 있는냐? .. 그런데 어찌...' 라시는 것 같기도 하다 . 아니, 어쩌면 기도가 뒤로 미루어지기 보다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