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육체의 자녀 약속의 자녀[갈4:21-31] 본문
늘 그랬지만
오늘도 여지없이 그랬습니다.
말씀을 붙들기 전
버겁고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면서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내 인생을 걸며
주님의 진리, 복음의 원리를 깨달은 이후
그 전의 나를 이끌던 뒤죽박죽 더러움과 두려움의 생각의 기조로
매일을 이끌리며 살던 나로 부터
이제는 매일 '말씀'으로
하루 하루 이끌리며 살겠다.
그런 결심으로 말씀 묵상을 놓치지 않으려 하던 제가
이전에는 훨씬 자주였지만
그래도 근래에는 '말씀'이 훨씬 뚜렷이
제 생각의 기조와 마음의 안정을 유지 시켜 왔었는데
또 어떤 싸이클 처럼, 리듬처럼
'멍'~하니
말씀을 보되
말씀에 큰 감흥을 얻지 못하고
저녁에 잘 즈음에 되어서야
머리를 털며 '오늘' 내가 무엇하고 살았지.. 하는
그런 날들이 되풀이 되고
덜 불안하고 비교적 안정되니
나도 모르게 말씀 앞에 서는게
'고역'처럼
안하면 안되는 숙제 같은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나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아침에 일어나는 제 마음은
또 예전의 주님을 깊이 모를 때의 그런 상황처럼
흔들 흔들 하려 함을 느꼈습니다
불안.. 말이지요...
23.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출근을 하고
그래도 습관화된 (얼마나 다행인지요... ^^*) 말씀 묵상을 블로그에 올리기 위하여
말씀을 복사하여 이 곳에 내려 놓으니
여지없이 , 그리 아닐 거 같은 부정감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듣는 말씀 묵상 구절에
거부하는 느낌의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말씀은 살아계셔서 제 눈에 띄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
'레마'
당연하지만
여종의 마음은 '불안'하고 '긴장'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자식을 잉태하자마자
그 마음이 돌변하여 본처를 공격하는 포악성이 올라오니
그것 ...
아침에 깨달은 마음의 흔들림과 비슷한 마음의 공유가 아닐까 합니다
반면
본처의 마음과 비교가 되었습니다.
물론, 하녀의 먼저 임신과 급변하는 인성에 대한 실망은 있었겠지만
일반적으로 하녀의 그 초조함과 번들거리는 눈빛을 소유하게 하는
그 사망, 죽음 계통의 마음과는 번연히 달랐을 것입니다.
자유하는 자.
아무리 그래도 '본처'이고
선택 받은 자로서의 당당함은
어찌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러다가 문득
제 마음과 비교되었습니다.
이전의 하나님을 모르던 시절,
그리고 말씀과 성령으로 치유를 받으면서도
남아 꿈틀거리고 있는
이 아침의 어이없는 불안의 영역에 속하는
하녀의 마음과
성령으로 흐르는 말씀의 인도를 받을 때의 그마음이 대비가 되며
그 모든것
단 하나도 두 여인의 잘못과 잘함에 의한 결과가 아닌
그렇게 선택되어진
철저히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결과임을
말씀을 통하여 대비되며
갑자기
말씀묵상을 통하여
28.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약속의 자녀로
선택받은
그럼으로 인하여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가슴 조이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될
제 운명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이 터지듯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이전과는 다르게
그러함을 먼저 저도 모르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29.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렇습니다.
자유, 약속, 성령의 흐름........
그 모든 것이
어찌 제가 자격이 있어서
어찌 제가 그럴 만한 일을 해서 였겠습니까?
하나님으로 인하여 같은 자녀가 주어졌어도
자유하는 자와
옭매이고 얽매임에 풀려 나지 못한 자의 두 극명한 대비가 보입니다.
그 모든 것........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신 자격이며
그러한 자격이
제게 허락되어져
옳지 않은 생각과 마음이 있을 이유가 없음을
그럴 필요가 없음을
'자유'라는 단어에 표시 해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주여..
제 안에 아직 남은 '종'의 부분을
매일 말씀을 통하여
주의 말씀을 받드는 결심을 가지고
하나님은 성령으로 인도하셔서
자유하는 자로 이끌어 주십니다.
주여.
이 오염된 3차원의 세상,
물질의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에
너무 많은 장해와 유혹이 있습니다 .
주님 아시고
허락되어진 약속의 자녀로서
누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흐르시는
성령의 임재로
다시금 회복 됨을 놓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하기 위하여
제 예상과는 다른
흐르는 성령의 감동으로
또 이 아침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자유하는 자의 어떠함.........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아.. 잊지 않도록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를
말씀 묵상을 통해서
또 이루어짐을
상기 시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오늘 아침
주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또 제 자격을 찾았습니다.
자유하던 본처의 흔들림으로 부터
다시 고요함을 되찾았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이끄시어
가장 좋은 곳으로 흔들리지 않고 방향잡아나가다가
저 천국에 인도하실 것을 믿어지게 하셨습니다.
부디 바라옵기는
제 어이없는 안목의 정욕, 육체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또 붙들려 '종의 고민'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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