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갈5:1-13] 본문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그리스도께서 '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이유는
'온전한 자유'
최소한 이 땅에서도 은혜 받을 때, 성령 충만할 때에
저 천국시민으로 영생을 살 기본적 권리를
조금이라도 눈치를 챌 수 있을 (그러니 성령 받지 못하고는 어찌 이해할 수 있으랴... 불쌍한 그들.. ㅜ.ㅜ;)
그 온전한 자유를 우리에게 주시려고 오셨다 .
그리고
그 때까지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최소한 '율법'
즉 죽어갈 이 세상의 모든 원리 ,
육신을 제어할 인생의 노력의 왜곡된 결과들,
자아의 가장 발달한 유형,
어찌할 바 없는 원죄의 끝 결과물....인
그 율법을 선택하든지
'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원리'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우리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든지 '선택' 할 자유를 주셨다.
왜, 그러한 선택을 통하여 '허락되어진 자유'를 위한 '선택의 힘듦'을 주셨는지
온전히 하나님의 뜻이지만(우리는 안다...식탁에 둘러앉은 아이의 조곤거리는 것을 보시는 아버지의 관계에서 추측하듯..)
그것은
또다시 '굳건하게 서서' 이전의 '죄의 멍에'를 다시는 지지 않기를
강하게 기대하시는 그 분의 원리 가운데 하나임을 ... .
오늘 말씀에서
다시금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하여야 함을 강하게 느낀다.
나.. 우리 ..
예수님의 십자가 몸바치심의 거룩한 희생을 바탕으로
온전한 자유자로서 자격을 얻었음이 다시한번 감동이다.
그리고
그 자유를 위하여
죄의 멍에로 부터 오늘 또 멀리하여야할 결심을 할 당위성을 깨닫는다.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아무 것도 없는
이 루프탑 텐트 안의 조용한 아침에
무슨 '죄', 무슨 결심, 무슨 선택, 무슨 자유냐고?
아..
눈뜨면서 부터 시작되는 죄는
굳이 입밖으로 드러내기도 창피하다.
'미움'을 몰고 다가오는 상념들,
괜한 비교거리,
또 멍~하게 만드는 '죄의 유혹'들..
이전엔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매몰되어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이리저리 뒤흔들리던 '불신'의 시간을 지나
그리스도 예수님의 강력한 부르심 이후
내... 온전한 자유자로서의 자격에 대하여 인식하게 되고
'죄'와 싸움이 일어기 시작하며
많은 갈등,
죄와 죄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판단으로 혼란으로 인한 격동의 시간들을 지내고나서
'말씀'으로 매일 성령의 인도하심 받는
내 나머지 인생의 시간들을 깨닫고 결심하게 된 후 부터는
그래도 훨~~ 자유자에 가까워지게 되어 왔다.
훨 많은 시간을 착하게 (차카게..ㅎ..)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결심이 늘어나고
말씀에 의거한 그러한 선택은
점점 더 많은 하루의 시간을 고요하고 편안한
말 그대로 '자유'의 시간 ( 죄로 부터 자유, 갈등으로 부터의 자유, 심적 고통으로 부터의 자유...)이 허락되어지게 되며
지금까지
여기까지
지금 이 자리 (이 아침, 이 텐트 안에서 자유를 깊이 생각하게 되는 바로 이 시점 까지..ㅎㅎ)까지 오게 되었다 .
그렇다 함은
아직도 갈 길이 남았음이고
오늘 표현대로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라는 말씀대로
단지 어지럽게 하는 정도가 남아 (사단의 붙듦, 상처의 상흔의 흔적 말이다)
날 놓지 않으려
몸부림 치고 있음을
이제는 느낀다.
매일 말씀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
정말.. 이제는 거의 매일 ( 빈도가 중요한게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빈도가 늘어났음은 내 발전의 지표이라는 의미로 '매일'이 강조되어 느껴진다 . ) 말씀 묵상을 하려 이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그때마다
매일 매일 주시는 말씀이
내 삶의 궤적에 한치의 어긋남없이 들어 맞는다.
계속 고백이지만
때로는 예언으로
때로는 축복으로
때로는 가르치심으로
때로는 경계로
때로는 강력한 위안으로 ,보호의 요새같이
때로는 순식간의 회복을 주심으로 ........
말씀은 그리 그리 살아서 내 인생을 간증거리로 채워가는 길잡이시고 ( 내 발의 등이고 내 길의 빛치심이 전적으로 공감된다 ^^*) 인도하여 오시고 계시다.
그리고
오늘,
죄는
아직도 내 안에 잔존하고 남아서 번연히
나를 어지럽게 하려 한다.
나를 잠시라도 무릅꿀려 앉힘으로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도록 하고
그 분과의 사이가 천리 만리 떨어져 흔적이 보이지 않게 하여
홀로 있도록 하게 하고
그럼의 시간이 길어지면
나로 하여금 실족하게 되는 계기가 되게 하려 한다.
온전한 자유를 위하여 주어진
선택의 자유를 빌미로
죄는
다시 멍에를 씌우려 한단 말이다.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자유로 부르심을 입었다.
선택은 자유다.
하지만 그냥 방치가 아니심은
다시금 그리스도 예수께서 온전한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음을
오늘 다시
이 부족한 지혜자, 미련한 자, 자꾸만 잊는 자
육신의 끌림이 너무도 강한 자에게
말씀으로
다시한번 이렇게 상기 시키신다.
그리고
또다시 내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
'입었다'시며
말씀 구절 하나하나 마다
영혼을 터치하시며
자유로운 선택시 내 부족함으로 인하여 실패하고 실족할 약한 고리를 메우심이시다.
자유로운 선택의
오늘 하루에서
내가 해야할 지표를 말씀하신다.
"오직'
오직이라신다.
'사랑으로 '
사랑하라신다.
사랑의 선택을 하라신다.
그것이 내게... 깊은 반발과 저항을 통한 원망을 힘입어
비록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눈 뜨게 되었지만
어리고 젊은 시절을 버티게 하여온
내 소경지팡이 같다.
버리기 힘든 ..
그러나, 이제는 그러함을 버리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랑으로 주변을 바라보라신다.
그들을 바라보라신다.
아침부터 상념으로 스물거리는 대상들을 사랑하라신다.
그게 쉽지 않을 것을 아시니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선택을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
종노릇은 모든 자존심을 버리는 레벨까지 임을 의미하신다.
사랑이 바탕이되고
말씀을 근거로
자존심을 내려놓을 정도로 선택해야 하고
그 모든 이유가
'온전한 자유'를 위함이라 심이시다.
그게 '온전한 자유자'로서
진정한 자유를
이땅에서도 누리고
저 천국에서도 누리는...
아.. .그러함으로
나의 조근거리는 '승리'의 순간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자랑스레이 읖조리는
어이없고 어쩌면 유치하지만
진정한 관계속의 기쁨,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들로서의 기쁨을 그 분께 드리는 것이 아닐런가?
쉽지만 어려운 말씀을 하신다.
오늘 잊지 말고 붙들고 살
가슴 저르르 하신 말씀을
또 이 아침,
이곳 단양 생태공원 안 루프탑 텐트 안에서 주신다. ^^*
주님.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드려도 모자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제가 살아 났습니다
철저히 죄의 종, 원망의 포로,
어제의 표현대로 육신의 자녀로 살던 저를 구원하셔서
온전한 자유의 자격을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한번 감사함을 , 이 늦은 나이의 가슴에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자유에 대하여 묵상케 하시고
늘 사모하며 살던 진정한 자유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저를 깨닫게 하시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제 오랫동안의 기도와 바램을 듣고 응답하고 계심을
다시금 깨달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매일 이처럼 오셔서
부족하고 어이없는 저를 사랑하셔서
평생의 두려움처럼 버림 받지 않고 살게 됨을
확신처럼 깨닫게 되게 하시오니
그게 또 감사합니다.
내 주여.
제게는 아직도 남은 과거의 흔적들, 강하게 남은 육신의 성질들, 미련한 잘못된 선택들과
순간 빠져 들어가는 결점들이 남아 있습니다.
잘나가도 리듬을 가지고 다가오는 강력한 과거의 습관들이 남아 있어서
그것들이
저를 어지럽게 합니다.
오늘 말씀으로
저를 어지럽게 만드는 '죄'의 흔적들을 상기하게 하시고
그 정도를 깨닫게하시니
진정 감사합니다.
살아계셔서 모든 것을 알게 하시고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이제 .. 너무 불안해서 견디지 못했던 과거의 기억들은 잊혀진지 오래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이제 그마져 지나갈 것이고
또 말씀으로 순간 필요없는 고민이 사라지게 하심을
수도 없이 많이 체험하면서
이제
어지럽히는 죄들은
내 안의 깨닫지 못한 미련함으로 붙들고 있던 죄와
내 홀로 어찌 할수 없이 강력하였던 상처의 흔적이며
어쩌면 그를 매개로
말씀이 살아서 어찌 운행하시는 지 보게 하실
수없이 많은 다른 분들의
지침으로 쓰게 하실 이유로
남겨 놓으셨을 수도 있다 생각되어집니다.
그래서 그도 또한 감사합니다.
주여.
주께서 '원망'에서 '사랑'으로
원수도 사랑하라 시는 것 같은
정말..............제게는.........
저 홀로는 불가능하고
지금도 생각만으로 속이 울렁거릴 어지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종노릇할 '자유의 선택'을 권하셨으니
그리 선택합니다.
미워할 자를 사랑하겠습니다.
자유를 위하여
그리 선택하오니
그 사실을 잊지 않게 하시고
제 안에서
제 외부에
그리 표출되게 하소서
사랑으로 말입니다
이중적이지 않는 승리의 눈빛이며
가증하지 않은 올바른 선택이고
자유를 위한 또다른 발걸음이
제 .. 속에서 부글거리는 저항을 이길 것임을 깨닫게 하소서.
순간 그리되게 하소서.
주여.
힘을 주실 줄 믿사오며
오직 사랑이시며
온전한 자유를 위하여
주님의 모든 것을 바치신
거룩하시고 귀하신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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