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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비아냥을 마주할 때[암7:10-17]

주하인 2015. 12. 14. 09:57

 

이전에는 그랬다

거기에서나 ..하면

춥고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었다

 

이제는 그렇다

거기에서나 ...해도

그곳을 누리고 즐길 줄 알게되었다

 

주님 안에서

주님 만 바라보면

내 서있는 곳 어디나

다 축복이고 풍경이며

삶의 모든 것 다

하나님의 함께 하실 매개인 것을

 

그래서 당당하고

그래서 기쁘고

그래서 자유로우며

또 그래서

점점 더 기쁘다

 

상황에 상관없이

 

 
 12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아마샤.

공식적 선지자.

 

그가

아모스에게서 그런다.

'거기에서나'....

촌놈이 네가 뭐냐...다.

거기에서나... 거기에서나.. 라며 비아냥 댄다.

악한 소리.

 

그 악한 소리의 결과는

하나님이 증거하신다.

곧.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15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그러나, 아모스는  스스로 말하기를 '선지자도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다' 라 한다.

그냥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 가 그의 본모습이다 .

그거.

 

아마샤의 사회적 지위에 비견하여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보잘것 없는 자다.

그런 그가 목회자에게 대적하였다 .

이거.. 사회적 지위에 비견하여 하는 소리다.

'비아냥 ' 댈 만하다 .

 

 가끔...

큰 교회 목회자 님들에게서 '권위', 하나님에게서 부여 받은 권위를 이야기하며

교인들의 충정어린 소리를

묵살해버리는 것을 보며 (소위 깨어있다는 목회자님들 중에서도.. && .. )

저런 '비아냥'의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

 

물론, 환상과 하나님의 응답을 착각하는

영적으로 어린 분들의 신비주의 성향으로 왜곡되어 그러시는 분들이나

정신적으로 건전하지 못하여 환영을 보거나 듣고 그러는 것이

실은 지금 세상의 기독교인 들 중에서 아주 다반사 인 것은 맞아..

그런 분들이 ' 광명의 천사'를 가장하는 사단의 도구로 이용되는 경우가 더 많아

그 분 목회자님은 그런 분들을 대상으로 하시지만

가끔은 자신의 논리에 가려

모든 옳은 소리를 자신의 이루어진 틀 속에서 '권위'로 눌러

갈등없는 편한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우도 아주 많으시다 .

 

 그렇다면 무엇이 어떠해야 옳은 영성이 될 수 있는가?

어차피 '기독교'는 '편한 ' , '넓은' 문이 아니다.

목회자는 늘 자신을 말씀에 부딪혀 보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반사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맞추어

옳은 소리 같으면 아파도 받아 들여야 한다 .

그래야 넘어지지 않는 목회자가 된다 .

계시록의 일곱교회 목회자 중 칭찬들은 목회자 몇분 처럼..

그렇지 않고는 '아마샤'가 될 뿐이다.

 

 또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비단 매사 목회자에 대한 것 뿐 아니라

삶속에서 세상에 대하여

부르짖기만 하는가?

내가 아모스 선지자인가?

착각하고 마구 외쳐대는 사람들은

그 비아냥이 비아냥인가?

치료에 대한 처방전이 되지 않을까?

 

 아모스는 자신의 처지를 아주 잘 알았다 .

그는 자신을 '목자'이자 '뽕따는 자'로 확실히 인식했다.

그러나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옳음을 확신하자

 (확신하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과 교통하는 깨어 있는 자였음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

   보라 . .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알고

 사회적  권위의 누름에 대하여

  하등 흔들리는 느낌이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대로 행하였다.

 심지어는 목숨이나 도태될 위험까지 감수하며... )

외쳤다.

 

오늘 나에게

주님은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보이시려는가?

 

 아모스의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부동히 인식하는 겸손함.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듣고 외치는 자.

하나님의 권위와 세상의 권위와의 사이에서 올바른 순서를 매길 줄 아는 자....의 모습을 묵상케 하신다.

거기에

아마샤로 상징되는

세상의 합리를 가장한 거대한 소리에 대하여

비아냥에 대하여

말씀하시려는 것이다 .

'거기에서나' '거기에서나'...

듣는 순간 기분이 안좋으려 한다 .

 

그것

'비아냥'이다.

그리고 그 비아냥에 대처하는 올바른 태도다 .

 비아냥도

그게 아마샤의 그것처럼 논리적 근거로 사회적 폭압을 예상시키며 다가오면

굉장한 두려움이 된다.

 현실에서 '악플'들...

그것에 의하여 영혼이 깎아 먹여지는 현대인들..

 수치심.

좌절.

눈치.....................

우울.....

 

오늘은 그것을 마주하라는 이야기다.

우리의 길은

오직 하나님 만 전제로 할 때에야

온전하게 살 자격이 생기게 됨을 아모스의 모습을 보며

다시한번 감사하게 된다.

 

나.

나도 솔직히 의사로서 '목자나 뽕나무나 따는 ' 평범한 의사다.

이 조그만 시골 병원의 원장도 아니고

관심도 없지만

주위에 누구하나 날 올려세울 능력있는 행정가나 파워있는 그룹에 넣어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찌나 '갑질'하는 사람들은 또 늘었는지.. .

오래된 내 속의 '비아냥'들은 또 날 얼마나 괴롭히려 달려드는지.. .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진즉에 혀물고 죽거나

머리에 혈압 올라 그리되었지 않을까.. .

현실은.. 또...

 

오늘 그냥 '비아냥'을 마주할 것이다.

순수하게 하나님께서

목자이고 뽕나무 재배자이지만

하나님 소리만 듣고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당당한 자로서

비아냥을 물리치는 내가 될 것임을 묵상하리라.

 

 

주여.

잘 받아 들인 것 맞지요?

자꾸만 '자아'의 부인에 대하여 연계되어서

말씀이 진행이됩니다.

그렇지 않고 내가 '昇'할 때

결국 비아냥에 넘어져 쓰러질 수 밖에 없지만

내가 낮아져

하나님 만 이 내 존재와 행동의 이유로 남게 될 때

난 당당한 자유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됨을 보이십니다 .

제게.. 다시한번 그런 도전 하게 하소서.

 

저.

영적 농부이자

영적 목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택을 받고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아

지금껏 살아옵니다.

주여.

세상에 그리외치고

비아냥에 그리대치하오니

그들... 아무리 큰 위세를 가지고 나를 비교하려 해도

하나도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내것은 없고

하나님 것만 있어서

그리되게 하소서.

그것.. 명심 또 명심 되게 하소서.

우리주여..

도우실 줄 믿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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