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온전하게 살다[암5:1-15] 본문
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살리라'
무엇이 살아야 하는가?
육체?
예수님으로 인해 부활육신을 가지고 천국의 삶을 살것은 안다.
그런데 오늘 새삼 말씀으로 살리라.. 심은
아니면 죽는다는 절대절명의 말씀이 아니신가?
육체.
육체의 삶을 나에게 말씀하시는가?
내 죄가 그리 당장 육신이 꺼져 산화될 정도로 죽을 죄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말씀이신가?
영혼 ?
영혼은 하나님이 예수 십자가로 살 것을 확신 시키시지 않았는가?
나에게 오늘'살리라'는 말씀은 무엇인가?
'자아'
죽어야 한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아 내가 죽어야 온전한 부활의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자아가 '죽다' 와 오늘 말씀의 '살리라'가
나에 대하여 어떠한 의미인가?
죽어야 산다.
'나는 죽고 주가 산다'는 노래 가사도 성경구절도 있다 .
이래서 이루어지는
오늘 이후의 삶속에서 온전히 사는 것,
나는 죽고 주가 내 안에서 사셔서
'진정한 내가 ' '온전히' 사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
온전한 삶은 살기 위한 전제는 무엇인가?
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되풀이 나오지만 '여호와를 찾으라' 라 하신다 .
그리하면 '산다'라 하신다.
온전히 사는 자, 자아가 죽고 하나님의 생명이 그 안에 거하는 자란
과연 어떤 논리로 이해가 가능할까.. .?
자아가 죽고 하나님의 영이 산 자라면
어쩌면.. 어쩌면이다. ...이렇지는 않을까?
내 경우 말이다. ^^;;
사뭇 만나기만 해도 마음이 혼돈 스러워지던 분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뭇 편안해지고
누구 앞에 서기전 실패의 두려움.. 으로 긴장하던 상태인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마음이 고요해지며
부담이 안생기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하고
외롭기보다는 한가하고 여유로우며
고통의 때에 오히려 마음이 둥둥 떠다니듯 든든하고 .............
내 것의 사라짐의 허탈함, 내 의지의 약화, 내 건강의 악화에 대한 두려움
오지않은 미래의 불안에 대한 어려움, 내 자식들이 비교하여 부족한 듯함에 대한 속상함...................등
모두 '나'와 상관이 되어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내' 가 죽어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주위의 비교와 찔러옴이
더 이상 해가 되지 못하고
그제야 이웃이 보이고 그들을 향한 긍휼이 늘어나며
그 인애지심이 내 일시적 마음의 장난이나
누구나 마땅히 가져야 할 도의적 마음에 대한 강박으로
일시적으로 그리 되는 듯한 착각이어서
오히려 깊은 내재하는 멍한 자괴감이 아니고
하나님으로 인한
아주 맑은 '기쁨' 탓임을 깨닫게 되는 것.........
내 작은 신앙 연수에서 비집고 채취된 일천한 경험을 정리한 것이지만
훨씬 더 큰 기쁨과 고요함..
그리도 '샬롬'과 '평강'으로 정리하고 싶어하는
천국의 감성이
이 땅에서 '크게 확장되어'
내가 그러함을
내가 알고
타인도 알아지는 것.
그게 진정한 삶, 온전하게 살아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심령 천국'의 시민이 가지고 경험해질
천국의 감정의 아주 일부분일 것이고...
그래서 난.. 나는 죽고 하나님이 내 안에 살아
부활할 내 온전한 육신과 정신의 그것을
이 땅에서도 누리게 되는 것..
그것이 오늘 말씀하신 '살리라' 시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더 열심히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14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살려면'이라 했다 .
선을 구하라 했다 .
선을 행하라.. .하시지 않으셨다.
당연히도 결과적으로 선을 행해지는 게 원리다.
당연하다 .
하나님을 온전히 찾음으로
내 안의 자아가 죽어지고 하나님의 영, 성령이 폭포수처럼 운행하게 되면
그리 하려해도 그리할 수 없을 정도로
'선한' 자신이 되어버림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주기철 목사님.. ....
그들이 자식을 죽인 원수를 아들로 삼아 살아간게
대단한 '위인적 마음'이라서 세상의 기독교인들에게 그리 존경 받을까?
아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영에 임하지 않고는
그리 선을 행할 수 없다.
그들은 '선을 구한' 까닭에 하나님의 영이 그들의 영을 사로잡으셔서 그렇다 .
그렇다.
그게 온전히 사는 자의 운명이다.
그리 되어 버리는 것이
우리의 바램이고
성화의 궁극이다.
나.
솔직히 그 과정에서 싸움을 치열히 하고 있다 .
죽기 싫어하는 내 자아
하나님의 말씀.
얼마나 강력히도 날 사로잡는지
시계추 왔다 갔다 하듯이
자아의 죽음과 온전한 삶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다
죄스럽다 .
그래서 더 매달린다.
조만간 내 죽어 내 사는
온전한 삶을 기대하며...
주여.
오늘은 '살다'에 눈이 갑니다.
자아가 죽어야 진정한 삶이 시작되는 것을 알면서도
십자가에 죽다.
자아가 죽다... 라는 단어는 '어두움'의 느낌처럼
죽음이란 단어가 주는 무게감만 눌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살다'에 눈이 갑니다.
부활하여 온전한 삶을 사는 삶...
이땅에 육신을 가지고 장막의 삶을 살고
그 육신이 그토록 끌어 잡아 다니는 '사망'의 냄새는
아직 나의 영혼을 흔들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주시는 은헤로
이땅에서 부활의 삶을 매일 같이 사는 삶의 비밀을 알기에
오늘은 특별히 '온전히 사는 ' 자의 삶에 대하여 묵상합니다.
주여.
아직 자아와 성령으로 합일된 자의 삶 속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때로 송곳 같이 날카롭기도
때로는 온유한 바람 같은 부드러움이 절 사로잡아
날 바라보는 자들에게 그러한 버거움으로 비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죽음과 온전한 삶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점차로 하나님의 영으로 자아를 못박는
온전한 승리를 이루게 될 지 믿습니다 .
내 주여.
도우소서.
다 내려 놓을 수 있게 하소서.
오직 하나님만 찾고 또 찾는
하나님 영으로만 갈증을 느끼게 하는 자 되게 하소서.
내 주여.
인생의 모든 것.
내 자아의 죽지 않음이 갈등의 주 원인임을 깨달아
아프고 힘들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탈피하게 하소서.
나머지.. 결과와 현상.. 다 주님께 맡깁니다.
제가 할수 없는 것.
주께서 다 알아서 해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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