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분명히 주를 알다[수9:16-27] 본문
16.그들과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이웃에서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들이라 함을 들으니라
'자주' 인생에 후회할 일들을 만들어 놓고 산다.
그리하여
내 나이.. 되면
그러함으로
많이들 안타까워하며 지내게 되기도 한다. ㅠ.ㅠ;
24.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그런데 이제는 좀 ...안다.
그 회한 마져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었음을 ..
그리고 매사에
'분명한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살았더라면
분명히 들리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사는 매일이 되었더라면
지금의 회한은
분명코 더 아름다운 주님 뜻 가운데서의 고뇌로 바뀔 것을 말이다.
갑자기 몇주 전에 자다가 일어나니
핑~하고 도는 것이다 .
아.. 나이가 들어가니 온갖 문제들이 쉴틈없이 몰려들어와
이 낡은 육신을 괴롭히는 구나..싶어
걱정이 밀려오려 했다 .
기도한대로 되려면 10몇년은 더
지금처럼 이 육신을 끌고 가야할 텐데...하면서
걱정이 덜컥 되며
혹시라도 큰 병이 아니어도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하는
두려움이 날 사로잡으려 해서
얼른 이비인후과 가니 아무렇지 않은 듯
'이석(耳石)'이라하며 몇번 고개를 좌우로 젖히며 자세를 유지터니
아무렇지 않게 되었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잘지내다가
어제 아침 또 그러는 게 아닌가?
아. ...
이전보다는 덜 뚜렷하지만 이석이 재발한 것은 맞는 것 같다며
똑같이 치료하고는 약을 처방해주었다 .
그러고는 하루 종일 약간 씩 어지러운 느낌으로
잠이 쏟아 져서
초저녁 부터 내리 아침까지 잤다.
일어나니 아직도 조금은 그렇다 .
어제도 기도 제대로 못하고
말씀 묵상도 제대로 못했다.
아침에 몸이 무거운 만큼
마음이 더 무거운게 아닌가?
새벽에 알람 소리 맞추어 조금 일찍 깨었으나
무거운 마음으로
일어나기도 싫었다 .
그러나, 약간의 의지를 발휘하여
어지러운 마음 조차,
어지러운 몸도
주님께서... 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나..
주님의 살아계심.
이런 작은 ,세미함에 의하여
또다시 깨달아진다.
말씀을 들여다 보니
거짓으로 이스라엘 백성 안으로 들어온
기브온 백성들의 실체를 깨닫는 게 보인다.
'들은 후'.. 라고..
그렇다.
내 육신의 약해짐, 나이들어가며 겪는 여러.. 어려움들..
그것으로 인하여
속을 필요는 없었다.
말씀을 들으니.. 더욱 그러함이 깨달아 진다.
어차피, 허락받아진 (나이들면 다.. , 주님이 모를 바 없으신 환란들.. ) 어려움 속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말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영혼으로 받아 들여짐이
주님이 원하심이 아닐 것인가 .. 하는 깨달음이
들어온다.
그리고 나서는
기브온 백성들의 고백이
점입가경이 아니던가?
여호와 하나님의 하신 일이
'분명히 들렸다 '
그렇다 .
내 세미한 깨달음을 통해서
매일매일 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이제는 더
분명히 알아 깨닫는 하루가 되길 원한다 .
창문을 열고 출근 준비를 하는데
가을 하늘의 청명한 햇살이
마음을 맑게 한다 .
아직, 약간은 어질거리지만 견딜만하다
앞으로 살아가며
(하루하루 점점 더 나이가 들어가며 ㅆㅆ;)
여러 또 예상못한 어려움들이 덜컥하고
어쩌면 내 삶속으로 튀쳐 들어올 지 모르지만
그때도 또
하나님의 살아계심으로 인한 일들임이
분명코 깨달아 알게 되고
그 깨달음이 더욱 분명한 하나님의 소리로
내게 들려진다면
그리 염려할 일 아니며
오히려 더 감사할 일이 아니지 않겠느가?
'약함을 감사하게 , .. 욱여쌈을 쌓였음으로 더 쌓이지 않게'.. 말이다.
그것이 삶속에서 더 깊이 알아지는
그러한 시간들이
한편으로 더 기대되기도 한다.
감사하다.
주님.
어지럽고
위장이 더 문제를 일으키며
오래된 허리문제
남자들 만의 그러함,
두통........
그러고 보니 전 '병'덩어리가 맞았었습니다.
주님의 깨닫게 하시고
매일 인도하심으로
그냥 끼어안고 살면서 잊어 먹고 살아 왔을 뿐이지요.
이러함에 하나 더 더한다고 문제될 것은 없는데
괜한
나 혼자 만의 자아적 고민으로
고민을 키우려 했었습니다.
다행이도 말씀을 붙드는 동안
그러함에도 행복한 지금까지의 삶이 되어가고 있던 것처럼
더 뚜렷하고 분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이 이후의 삶이 되길 기대합니다.
내주여.
주님이 주신
그 어떤 환란도
주님의 영광위해 받쳐지는
확실한 이 시간 이후의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내 주여.
아침..
찬란하게 밝혀주시며
내 속의 어두움을 몰아내시는 하나님.
말씀 따라 살려 하는 저를 기쁘게 보시는 주님의 살아계심에
오늘 또
내일 더
주님 ,코람데오 하며 살게 되길 기대합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과거 묵상 분 1 (2013.11.28)
받아 들여야만 하는 것들
이전의 집이 팔리며
급히 이사온 집이다.
잠시 거하다
본 집으로 들어가려하는 바
애정을 쏟지 않으려 하니
더 썰렁한듯하고
그러다 보니
겨울이 더 춥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차가운 거실 바닥과 공기에
태양이 비쳐드니
한편 아름답고
따스한 온기가 차는 듯하다
그렇다
하나님의 뜻으로
나를 들여다 보고
받아들일 것을
기쁨으로 받아 들이는 것은
능력이고 지혜다
어쩌면
그러함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미리
십자가를 지시는
모범을 보이신 것일 수도 있다
16.그들과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이웃에서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들이라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의 일이라 굳게 믿고 일을 진행했으나
그들의 행사가 '거짓'이란 것을
곧 알게 되었다. ㅜ.ㅜ.;;;;
19.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그러나, 그들을 이제는
건드리지 못하게 되었다.
24.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다.
그들도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의 일에 끼어 들었다.
그리고 '역사'는 그렇게 흘러 갔다.
아마 이때의 잘못으로 오늘날 이스라엘의 곤란이 있지 않을까?
수천년을 흐르는 죄의 결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지는 않았어도
유유히 이 세상에 흐르는 '죄의 결과'들...
나.
내 과거의 잘못들.
순간순간 자제하지 못하는 실수들...
많은 부분은 하나님 앞에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 받음을 믿지만
그래서 나 자신은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혜로
다시 새롭게 거듭 난 것을 믿지만
일상은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럴 때 힘이 빠진다.
이런 거..
예수님 모를 때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아버지의 역할 부재로
자식들까지 영향을 받은 것..
오랜 상처로 방황하고 번민할 때
세상 될대로 되라 식으로
세상을 향해 분노를 뿜어내듯할 때
그로 인한 '관계'의 단절.
그들을 회복시켜 보려 무진 애를 쓰고
하나님 앞에 오랜 시간 맡기어 보는 노력도 했고 , 또 하고 있지만
그리 큰 변화가 없이
나이 들어감에 따라
내 생각과 하나님 앞에서의 보낸 시간으로 인한 기대와는 달리
그냥 그렇게 굳어지는 듯 할 때..........
어디까지 기도하고 어디까지 기대하여야 할지........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분명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통하여
'내 노년까지 내 백발까지 인도하시고 ,
나를 품고 안고 구하여 내실 것'을 믿지만
어떻게.....라는 의구심은
가끔 힘없게 할 때가 있다.
'이것..........
기도해도 안되는 것.
기도해도 안될 것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분명 '의혹'임을 알아
얼른 믿음의 뒤켠으로 던져 넣지만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불씨'... 같이
내 약한 믿음,
무지한 신앙을 흔드는 기저들.. 이지 않는가?
오늘 말씀 중에
조금은 해결의 실마리를 보는 듯하다.
어쩌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잘 승리해가지만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한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세상에 허락할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다.
오늘의 저들.. 처럼..
그것을 없애기 위하여 기도하고 몸부림 치고 기대함은
어쩌면 '미련'한 일이 아니던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된 것들인데..
비록 그들의 잘못이 맞지만..
그리고 그들의 그 약간의 잘못처럼 보이는 실수로
현재까지 이스라엘의 불씨거리로 남아 있지 않는가?
그렇지만 , 그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 '축복'을 약속하고 계시고
축복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세상대로 흘러가
오늘의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렇다면,
축복의 한계를 어디까지 볼것인가?
'진정 축복'은
일상적 일이 잘 풀리고
눈에 보이는 세상의 어려움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님은
여기까지 생각을 펼친다면
쉽게 ~ 아주 쉽~게 알 수 있음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세상에 당신의 이름을 걸고
간섭하시고 도모하시는 한계를 두셨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인생은 '광야의 연단'을 넘어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도구로 세상의 권세 잡은 '사단'의 세력들에게
잠시 허락된 '틈'을 주신다.
그 안에 내려 놓아진 당신의 자녀들,
기독교인들,
그 중에서도 '좁은 길, '좁은 문'의 존재를 이해하고
인간의 한계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을 수용하는 생각을 가지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진정 준행하려 하는 자들에게는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평강을 맛보게 하시고
영생을 사모할 의지와 의욕을 주시어
성령으로 이끄신 후
마지막 이 땅의 소천의 날까지
흰옷 입은 영혼으로 거듭나게 하신 후
영생의 영광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시다.
그렇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깨닫는 그들에게
깊은 기쁨의 눈으로 보시면서
그들의 기도와 헌신과 말씀 묵상과 구제.. 의 열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령으로 교통하시는 것이시다.
그 교통의 기쁨이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우리를 이 땅에 존재케 하시는 이유이신지도 모른다.
자녀를 바라보는
어버이의 눈.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은 안타까우나
그들이 '아버지'를 바라보며
다시 일어서는 몸사위를 바라보며
성장하는 그들의 '성장통' 마져
'행복'으로 갈무리하는
좋은 부모.
그렇다.
그렇다면
자녀인 내가 해야 할 것이 있다.
일단, 다시한번 이 땅의 영화와 부귀 만이 '축복'이라는 고정관념을 내려 놓는 것이다.
어찌 세상 살면서 넘어지지 않는 아들이 있단 말이던가?
내 잘못이 심할 때는 회초리도 맞고
오랜 시간 독립의 힘을 기를 때까지 노력을 해보아야 할 필요도 있지 않는가?
거기에 끊이지 않는 아버지와의 대화, 그분 앞에 소식을 알려드림이 필요하다.
전화하고 방문하지 않는 자식은 호레 자식이다.
어려울 때 더 붙어야 한다.
열심히 공부잘하는 차가운 아들보다
엉터리지만 애교 부리며 눈앞에 띄면서 추억을 만들어주는 자식이 이쁘다.
힘이 들어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가고
상황이 내 기준에 변화가 없는 듯하여도 주님 앞에 나가야 한다.
그리고는 그 분이 내 상황을 결국 '선'하게 변화시킬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잘못하면 회개하고 빌어야 한다.
그리고 기대하여야 한다.
내가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더 좋은 결과를 나의 앞에 주실 분도 아버지시다.
지금 내 앞에
내 판단과 맞지 않는 변치 않을 듯한 어려움들이 있다.
사실이다.
오래된 것,..
새로운 것..
기도하고 나름 깨달음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왔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랬다.
하지만 실망할 일이 아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 잘못, 하나님의 일이라 생각하며 실수했던 결과로 벌어졌던,
내 과거의 돌이키지 못하는 결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던
내 생물학적 변이에 따른 심적 부담이든 ..
어떤 돌이키지 못할 것도
다 하나님의 '관리 '가운데 있으시다.
다 그분의 뜻이시다.
더 크게 바라보면
하나님의 우주 운행의 원리 가운데 그냥 벌어진 일이다.
그렇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으면
주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한다.
세상의 그런 것은 바꾸지 못한 다해도
나는 바꿀 수 있다.
날 바꾸는 것이 현명하고 편하고 우주적 원리에 맞다.
저들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려고 몸부림 쳤다.
그 결과다.
도저히 안되면 내가 받으 들여야 한다.
그것이 내겐 능력이 되는 것이다.
겸손의 능력.
하나님의 아드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힘.. 말이다.
내적인 능력. ~~!!
하나님 아버지
사뭇 세상을 바라보면
정답이 없습니다.
내 살아온 길이 다 허구 인듯하고
아무 힘쓸 수 없는
거센 물결에 흔들려 떨구어져 버릴 것 같은
어지러움이 한번씩 느껴지려 합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을 후회하여도
이제는 돌릴 수 없는 물길을 느끼며
좌절도 되어 집니다.
주여.
하지만 오늘 묵상을 하면서
돌아본 주님의 말씀의 원리를 통해서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러고 보면
그런 것을 받아들이고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이유로
잘 녹여 받아 들일 수 있길 원합니다.
안되는 것 마음 조리고
가슴아파하고
영적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는
주님의 뜻 가운데
그런 나를 ,스스로를 받아 들일 수 있길 원합니다.
진정으로요.
주님 안에서 순응하고 받아 들이고
오히려 그런 나를 기뻐할 자 되길 원합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말씀으로 더욱 깊이침착하고
기도로 더욱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자 되게 하시되
늘 지혜와 겸손으로 넘치는 자 되게 하소서.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알게하시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닌 것은
주여... 얼른 바꾸어 주소서.
자식들 앞길을 열어주시고
가족을 단합하게 하시옵소서.
더 평화롭게 하시고
더 온유하게 하소서.
세상적 축복도 준비하신 것이 있으시면
어서어서 베푸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과거 묵상 분 2 (2006.11.30)
나를 위하여 주님을 선택하다
16. 그들과 언약을 맺은 후 삼일이 지나서야
18. 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한 고로
22.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일러 가로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주하거늘 어찌하여
23.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영영히 종이 되어서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26. 여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 두려움을 무릅쓰고 건너야 하는 선택을 하는 자 만이 더 좋은 것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 )
여호와에게 묻지 않은 죄는
그게 의도적이든
그게 실수이든
또는 나태함의 결과이든
절대로 피해야 한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행히 3일이 지나고 나서야..
발견은 되었다.
문제는 이제 부터다 .
여러가지 '선택'이 눈 앞에 놓여 있다.
우선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이건 많은 게으르고 깨어 있지 않은 자들의 선택이다.
급속도로 나태해지는 지름길이다.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이다.
또 하나의 선택은
마음 속에 부담을 가지고는 있지만
의지의 부족으로 인하여
완전하게 돌이키지 못하는 경우.
역시 주님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어느정도의 개전의 여지는 있겠지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단의 공격에 전초기지가 될 가능성이 많은 선택이다.
오늘 보이는 개중의 최선의 선택은
잘못된 결과를 돌이키기 위한 과감한 행동.
오늘의 예를 들어
과감히 척결해버리는 ...
그러나 주님의 뜻을 또한번 거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이 그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및 여호수아의 선택의 예로 볼 수 있듯이
주님의 뜻과 이름을 존중하며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선택이다.
실수에 대한 아픔과 주님의 두려운 질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죄를 돌이킬 수 없을 바에야 차선의 대책이 되는 모습이다.
배울 것은 이렇다.
실수나 죄의 이유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어떤 비판이나 자책이나 정죄를 하기 전에 우선 전 후 상황에 대하여 모조리 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어떤 것이 과연 주님의 뜻이 될 것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전과 같은 죄...
특별히 주님을 도외시 하는 죄는 절대로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판단이 서면
과감히 지켜가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전의 죄는 죄다.
주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그 분의 뜻이라 생각되면 과감히 쫓아야 한다.
그래도,
그렇지만
그렇기는 하지만...
등의 단서는 미련만 남긴다.
미련은 또다른 죄를 유발할 수도 있다.
( 승리는 수없는 선택의 결과가 꿰어져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 )
오늘 특별히
죄와 그에 대한 선택에 대하여 말씀을 주신다.
과연 나는 어떠한가?
일상에 살면서
주님의 뜻을 맞추어서 생각하고 행동한 적은 있던가?
있었다면 어떠한 경우이던가?
있었다면 그 빈도는 과거에 비해서 어느 정도인가?
아니라면
어떤 경우에 아버지 뜻을 생각지 못하던가?
그러고 난 후의 나의 선택은 어떠했던가?
점차로 선택이 오늘에 보이는 여호수아 등의 모습을 닮아가기는 하던가?
난 이런 일에 대하여 실은 부담을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던가?
특별히 ..
개인적으로 죄책감이 많은 경우는
오늘 같은 일이 오는 경우
그 무거움에 질려
아마도 회피하려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 앞에서 여호수아처럼
그냥 있는 대로 자신의 잘못을 하나하나 드러내놓기를 원하시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런 다음 십자가 하나님께서 모든 걸 다 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결단의 마음을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묵상이다.
그리하고 나서 똑같은 죄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일상의 하루는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이 주님 앞에서 주님뜻대로 주님을 위하여 .. 하다보면
어느새 그 분이 기쁨으로 나를 위하여 세상의 일 마져
여호수아의 힘있는 승리행진 처럼 이어나가게 해주실 것이다.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어리석고 죄덩어리인 무지한 자를 구해주시고
그것도 모자라 늘 이렇게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도우시는
이제는 그것도 부족하여 예화로써 가르치시려는 그 인자하심이 눈물 겹나이다.
참으로 눈을 들고
주님을 보면
모든 것이 행복이고
또한
모든 것이 기쁨일진데
세상에 묻혀서
눈을 썩어질 것에 고정하다 보면
어찌 이 내 속은 요동치는 욕망덩어리의 미련한 시야만 가지고 있는지요..?
이제
주님의 뜻을 하루에 단 일초라도 더 생각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변하여서
주님의 향기의 흔적이라도 발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생각을 하고
주님으로 인하여 조심을 하고
주님 때문에 말을 절제하고
주님이 이유로 참아내고
주님을 이유로 용기를 내고
주님 당신 때문에 올바른 선택을 하는
그런 자가 되길 원합니다.
세상은 갈 수록 주님 생각을 하기 어렵도록 변해만 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단 한번이라도 주님의 이름을 외울 수 있는 의지와 결단을 허락하소서.
늘 도우셨던 것처럼
이제도 올바른 선택을 도울 수 있도록 힘주시길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온생애를 다하여 (아버지 학교 특송 0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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