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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평안 안에 사는 내가 복된 자다[렘49:23-3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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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평안 안에 사는 내가 복된 자다[렘49:23-39]

주하인 2024. 8. 13. 06:25

부제)주님을 전제로하는 평안이 '평강'이고 샬롬이다

        평강은 천국백성의 기본 심성이리라

이 글을 읽고 AI, Copilot통해 그린 그림 #1, 엘람이 이랬을까? 수천년간 ?..ㅠㅠ

 주님 몰라도 편안은 유지되고

주님을 잊어도 행복함은 있을 수 있을 듯도 하다

그리고 그 편안과 평안한 체제가

수천년 유지 가능할 듯도 하고..

엘람이 그랬고

다메섹도 어쩌면이다

 

하지만 정말 그 편안과 그 고요가

진정하고 영원할 수 있을까?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자주 누리는

그 눈물 날 듯한 감사와

잔잔한 소망으로 느껴지는

그 인생의 동기를

영원히 유지할 수 있는

그 본질..

그 평강

그 샬롬의 그것

 

그것이 과연

주님 없이도 가능할까?

 

외적이고 수치적으로 가능한

역사의 기록들은 엘람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있지만

그 안에 살아왔던 자들의내면,

그 들 영혼 속에도 과연

내내 그러함이 유지되었을까?

 

오직 주님 안

오직 천국의 영생에서만 허락되어진게

진실이고 사실이며 진리다.

 

다행이도 우리에겐

우리의 그러하지 못함을 

철저히 아시고 긍휼히 여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으시다

성령의 은혜가 있으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있으시다. 

 

그런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할 따름이다.

 

할렐루야다.

 


23 다메섹에 대한 말씀이라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니라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평안이 없도다
24 다메섹이 피곤하여 몸을 돌이켜 달아나려 하니 떨림이 그를 움켜잡고 해산하는 여인 같이 고통과 슬픔이 그를 사로잡았도다

 다메섹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평안'이 없는 다메섹이다.

'피곤하고 떨림'의 삶..

다메섹은 아래에 긁어다 붙혀 놓았듯

성경에 많이 거론되는 의미있는 지명이다. 

하지만.. 그곳에 '평안'이 없단다. 

 영어로는 restless , 쉼이 없다고 NIV에서는 나온다. 

 

 peace가 아니다. 

평강이 아니고 

샬롬이 아니다. 

그들의 수준, 하나님 모르는 자들의 수준은

단지 거기에 머물 수 있을 뿐이다. ㅠ.ㅠ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

 엘람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에 대하여 나온다. 

역시 아래에 붙혀 놓았지만

이 나라는 기원전에 2000년 이상을 존재하면서

페르시아에 영향을 미칠 만큼 강대하고 번성한 나라가 맞다.

 역시 

평안 (NIV로는  at ease, 편안하게, 쉽게 ..라 나온다)하고 

고요하게 사는 백성들로서

성문이나 문빗장 없이 살았다 한다. 

 

 그런데 그런 백성을 '치라'라 하신다. 

역시 주님이 전제되지 않은 '평안'은 

rest이지 

peace, 평안,평화, 평강이 아니다.

 

 무엇인가?

다메섹

엘람 왕국 모두

의미있는 구약시대의 '왕국'이고 도시이지만

그리고 '평안'이라 표현되어 있는 

나름의 잘 살고 있는 평화로운 지역이다. 

하지만... 

그 곳 모두 '하나님의 뜻' 가운데

제한된 평안, 제한된 고요일 뿐이라하심이시다. 

 

 하나님께서 '치라' 명하실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져야할

'거짓 , 유사 평안'..

지금 당장은

하나님 허락하에

오래도 유지된 허깨비 .. .말이다. ㅠ.ㅠ

 

 나.

고요하고 

평안한 것...

정말 좋아한다. 

캠핑을 좋아하는 것.. 

어디 가서 그냥 머리 뉘이고 

'평화, 고요'를 누리고 옴을 즐김이다. 

 

평생을 그래왔다. 

많은 생각의 휘저음.. 

그래서 '갈등'과 '갈증'이 휘몰아치는 내면으로

참.. 힘들게 살아왔다. 

그러다가 '주님의 강권적 첫사랑'으로

주님 예수님의 '평안' 가운데 들어오니

정말... 뭐라 말하기 힘든 '안정감' .. 안온감이 

내 삶을 그야말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하던 차원의 행복으로 물들였다.

 

참 좋았다. 

예수님의 구원 안에서 누리는 '평안' 말이다. 

그 평안이 너무 좋아 

내 평생의 소원은

'평안' 안에 거하는 삶이라 정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러한 '평안'.. 을 잊지 않기 위한

내 결심을 기뻐하신 주님께서

누구에게나 허락하신 

이 인생광야의 고난 가운데서도

'은혜'.. 

성령 안에서 거하는 자의 어떠함을 허락하심으로

'심령천국의 삶'에 대하여 깨닫게 하셨고

그러함을 사모함

그러함을 놓치지 않기 위한 

내 당연히 해야할 방법으로

'기도'와 '말씀 묵상' 을 놓치지 않게 하신 거다.

 

그거.. 

어쩌면 '그 평안'.. 

주님이 허락하신 그 '샬롬', 평강을 놓치지 않기 위한

그래서 이 모진 인생.. 

아무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던 삶에 

언제고 다 털어버리고 완전한 망각으로 도피하고 픈 유혹만 있던.. ㅠ.ㅠ

유일하신 동기로 허락하셔서

내 살아갈 이유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한

어쩌면 나의 이기적인 목표가 되기는 하였지만

그 어떠한 동기,

그 어떠한 내면의 이기적 이유일지라도

들어서 쓰셔서

가장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 오심이 

주님의 방법과 뜻 아니시겠는가?
 애굽의 노예 생활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나마 하나님의 인도, 

불기둥 구름기동을 좇을 수 밖에 없던 것이

'젖과 꿀이 따르는 가나안 땅'이 

이기적이지만 목표가 되어서가 아니겠던가?

 

 나에게는

그 가나안 땅,

천국의 '3차원적 그림'.. 

내가 그릴 수있는 실제적 목표가 

'평안'이었다. 

샬롬,

평강.. 

영혼이 고요하고 덜흔들리며 살아가다가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달콤한 ' 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 말이다.  ^^;

 

 그런데........

자꾸만 이땅에서도 

고요하고 평안한게 있는 거 같다. 

그리고 그들의 증거로 

2000년 넘는 시간동안 '왕국'을 유지하여온

'영적 엘람'과'

시끌 벅적 유명하게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 보면 '평안'이 있을 듯한

'영적 다메섹' 말이다. 

 

 이 땅에는 아닌가?

우리나라만을 보아도 그렇다 .

주님 모르는 고대역사가 수천년이다. 

나름의 고난은 있었지만

그래도 세계 역사상 별로 없는 '전쟁이 드문' 나라였단다.

어떤 역사학자들의 이야기를 따르면.. 

지금은 이 조그만 나라가 '세상을 뒤엎는 '한류의 물결로

휘적이어 간다. 

 

거기에 '하나님의 이름'이 끼어들 틈을 

세상은 주지 않는다. 

기독교를 'x독교'라 폄하하면서 절래 절래하면서

유사 '평안'의 나라.. 

세상의 드문 나라처럼 보이게 한다. 

 

 그런 일들은 주변에 또 많다. 

나.. .

솔직히 '이슬람'은 모르겠고

타 이방종교들은 비교적 후진ㄱ 에서 믿는 종교라서 모르겠지만

'불교' 쪽은 

그들 믿는 자들의 왜곡을 빼고는 

수천년을 이어오며 '고요'하고 '평안'을 유지하는

나름의 좋은 .. .방법처럼 느껴지기도한다. 

 

물론, 당연히도 '구원'이라는 면에서는

전혀 .....지만... 

 

 

 이거...

유사 평안.

유사 고요...........

그것들을 무조건 '무시' 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이 부분..

'평안'.. 에 대하여

오늘 말씀을 들여다 보면

'peace' 가 아니다. 

 

'rest' ..잠시의 쉼..이고

'at ease'.. .편안함'이다.

 

 rest

쉬는 것.. 

그를 통하여 회복하고 .. 좋다. 

하지만 조금은 '잠시'의 느낌이다.

성경에도 많이 나온다. 

'쉼이 끝없이 이어짐'이

'평화'.. 평안.. '평강'의 일부분의 요소가 아닐까?^^*

 

'편안'함..

역시 이 표현 역시 좋지만

일시적인 , 잠시의 느낌이다. 

주로 '육신'에 치중된 .. 

안마기계 속에 들어가 '근육'이 나른하게 풀어지면 

잠이 솔솔 올 것 같은 느낌의 표현.. 

 

 편안하고 고요하게...

수천년을 살아오면

그 안에 정말 ' 평안' .. 평화.. peace가 있을까?

2008년 캐나다 비전트립 중 일행 아가.. ^^*

 나...

캐나다에 십수년전 

mission trip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병원에서 

믿는 선교 지향의 의사들로 이루어진 여행을 

부부 동반으로 다녀온적 있었다. 

 밴쿠버, 

로키...

한국사람들이 제일 가고 싶어하는 곳.. 

그곳에 가니 정말 '황홀'할 정도의 아름다움,

기가막힐 '평화'로움이 있는 듯해서

입을 쩍 벌리고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펌) 지나친 아름다움은 두려움이었다. 주님 없는 지속된 편안과 고요는 '무료함의 지옥'일 뿐이고.. ㅠ.ㅠ

그런 데 조금있으니 

'자연'이 너무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평안이 두려워지기 시작하고

그 고요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밤이 되어 숙소 주변에서 캠프파이어 벌어지는 동안

10대 중반 밖에 안되는 아이들의 

마치 마약절은 듯.. 

동ㅅ애를 암시하는 듯한 유혹을 하며 

휘적거리는 듯한 사람들.. 이 다가왔고...

 귀국하기 전 '한국인 음식점' 에서의 식사 중

사람을 그리워하는 .. 

무언가 몸부림치는 듯한 local개업 이민자 주인의 

그 느껴지는 허탈함...ㅠ.ㅠ

 

캐나다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거기까지였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쩌르르할 정도의 아름다운 자연.. 

그러나 그 안에 숨겨진 완전하지 못한 '갈증'에 대하여

다시금 떠오른다. 

 

 그렇다. 

어찌 생각하면

'엘람'의 고요와 편안함...의 이어짐

다메섹 , 그 유명한 도시의 '쉼'이 없음.. 평안이 없음에 대하여

다시한번 돌이키게 하신다. 

 

주님이 전제로 되지 않은

평안은

편안함이나

잠시의 쉼이지만

'온전한 평강의 평안'이 될수 없음

영적인 '평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일시적 쉼,

대체의 평안이 아닐까 싶으며

하나님의 얼굴.. 

그렇다 하나님의 얼굴이 뵈어지지 않는 고요는

메마름의 저주가 아닐까 싶다. 

그냥. .탈출하고 싶은 무미건조의 지옥....ㅠ.ㅠ... 말이다. 

 

수천년을 저러하게 고요하게 살면

그게 지옥이지 뭐가 지옥일까? ㅠ.ㅠ

 

 난.. 점차.. 

초연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민수기 20장 22-29절에서

하나님이 형 아론의 죽음을 예고하시며 호르산으로 불러올리신 가운데 

형의 아들인 조카 엘르아살과 모세가

죽을 수밖에 없는 아론과 같이 걸어올라갔다가

조카와 둘만 내려오는 그 과정,

그 과정에서 느껴져 오는 담담함... 

그게 초연일 것임을 느끼게 하셨었다. 

확실히.. 

그리고 내 삶에서도 

당연히도 

적용되어지면서 

그 방향으로 추구하고 변하게 하시는 것... ^^*

말씀과 삶이 떨어질 수 없는 

당연한 말씀 묵상의 삶

난 오늘도 또

이어지는 말씀의 살아계신 인도하에서

눈을 떳다 .

할렐루야

가나안 땅 바로 전,

호르산에 올라가게 하시는 그 장면,

그게 '초연'이라는 말로 상징되는 ... 

그 '고요한 흔들림 없는 영혼'의 상태가 

정말 '평안'의 기초,

온전한 평화,

마음을 넘어서는 영적인 고요의 현상.. 말이다. 

 (아.. 궁금하시면 읽어보세요.^^*  -> 모세와 아론의 이별* [민20:14-29] (tistory.com))

그리고 그러한 영적 평안함까지를 포함시키는 개념이

평강이고.. 샬롬인거.. 말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으로 부터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내면 깊이 부어지는

'생기' .. '에너지'.. 로 인하여

잔잔한 기쁨을 동반한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의 지속.. 말이다. 

 

그리고 그러함 자체가 

예수그리스도의 주권적 선택으로 이루어진

절대의 은총의 결과임을

우리 영혼이 알아 채려 버려진 상태.........

그 상태로 영원을 살아가는 것.. 

 

그러한 비밀을 깨닫게 되어지는 이땅...  

그러한 삶을 사는 내가 복된 자다

할렐루야

 

 주님.

그랬습니다. 

고요와 평안.

 

더 정확히는 '초연한 평화'.. 

샬롬

평강입니다. 

잔잔한 기쁨이 동반되는 고요한 삶.. 

무엇인지 모를 감동이 저변에 깔린듯

기대가 동반되는 

소망이 이어지며 지속되는 삶.. 

그게 '평강'이라고 

전 이해가 됩니다. 

 

 지루하고 무료한 고요가 끝없이 이어지는 지옥,

그러함을 또 탈피하기 위한

거짓 편안을 추구하는 

어이없는 이방의 종교의 결과나

이땅의 눈앞에 화려히 보여지는 

오래 지속되는 거짓 편안들을 

육신의 틀을 입고 살아가기에 

어쩔수 없이 자주 자주 유혹 당하지만

엘람과 다메섹을 묵상하며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주님이외

주님을 전제로 하지 않은

그어떤 평안이나 평화도

진실이나 진리가 될 수가 없음을요.

 

오직 기쁨,

오직 소망

오직 고요의 지속되는

평안은 

주님 안에서 밖에 있을 수 없음을요.

 

귀하고 감사하신 주님.

그 귀한 지혜와 실제와

우리의 끝,

영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오며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다메섹 & 엘람)

이 글을 읽고 AI, Copilot통해 그린 그림 #2

1.

**다메섹**(Damascus)은 성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시로, 현재 시리아의 수도입니다. 다메섹은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약 230km 떨어져 있으며, 해발 671m의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¹².

성경에서 다메섹은 여러 번 언급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사도 바울**(당시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 있습니다.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중, 하늘에서 빛이 비추며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회심하게 됩니다(사도행전 9:1-9)¹.

다메섹은 또한 **아람 왕국**의 수도로, 구약성경에서 여러 전투와 관련된 기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람 왕 벤하닷과 이스라엘 왕 아합 사이의 전투가 다메섹 근처에서 벌어졌습니다(열왕기상 20장)³.

이 도시는 고대부터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으며, 팔레스타인 남쪽과 북쪽의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국제 도로가 관통하는 상업적,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⁴. 다메섹은 또한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출신지로 알려져 있으며(창세기 15:2), 아브라함이 롯을 구출하기 위해 다메섹까지 추격한 기록도 있습니다(창세기 14:15)⁴.

다메섹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다른 성경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도 질문해 주세요!

 

2.

**엘람**은 고대 문명으로, 오늘날의 이란 서부와 이라크 남부 지역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엘람 제국은 기원전 2700년경부터 기원전 539년까지 존재했으며, 수사와 안샨 같은 주요 도시들이 있었습니다. 엘람은 아케메네스 제국에 의해 멸망했지만, 그 문화는 페르시아 제국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⁶⁸.

이 두 주제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원본: Copilot과의 대화, 2024. 8. 13.
(3) 엘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wiki/%EC%97%98%EB%9E%8C.
(4) 엘람 - Wikiwand. https://www.wikiwand.com/ko/%EC%97%98%EB%9E%8C.
(8) 엘람 (성경 인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wiki/%EC%97%98%EB%9E%8C_%28%EC%84%B1%EA%B2%BD_%EC%9D%B8%EB%AC%BC%29.
(9) 엘람 왕국 - 이란 역사의 출발점? <이란 고원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nudeheart/222075296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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