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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의 소금(막9:38-50)

주하인 2015. 3. 12. 12:14

 


 
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소금

맛을 내기 위한 필수조건.

 

맛.

음식의 가장 본질 중 하나.

 

인생.

산다는 것.

 사는 이유.

먹고 눈뜨고 움직이고 잠자고 웃고 ... 그게 단가?

누구도 모르지만

분명코 인생의 '맛'이라 표현되는

그 무엇이 있기에 그들은 그리도 열심히 산다.

 

그 무엇이 무엇인가?

그 맛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던가?

 

이제 하나님은 소금, 그 유명한 비유를 통하여

인생의 맛을 내는 자가 되라 한다.

 

소금.

맛.

되고 싶다고 되는가?

 

그런데 하나님이 오늘 특별히 내게 하시는 말씀이 있으시다 .

 

'주하인

네 안에 소금을 두고... '

 

'화목하라'

 

내 안에 소금을 두라는 것은 무슨 의미실까?

맛을 낼 조건을 내 안에 두라신다.

 

내가 각박하고

내가 조건적이고

내가 따지는 사람이고

내가 분석만 하는 사람이면

과연 내가 내 안에 '맛'을 둘 수 있는가?

 

 오늘 특별히 '누구에게도 화목하라' 신다.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자들에게 '맛'을 줄 사람.

아니.. 맛을 내 안에 두라심은

그게 말로는 쉽지만

버퍼가 충분치 못해서 잘 될까?

특별히 외향적인 성품이 아님에....

그럼에도 그러하라신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이 인생에 의미가 있을까?

하나님을 전제로,

말씀을  주신, 명령과 그로 부수되는 에너지의 충만함... 은혜를 먹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기 전에는 말이다.

 

이 땅에서

사는 의미를 다양하게도 분석하여

결론 내리는 나름의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이 많다 .

어떤이는 '이름' ,

어떤 이는 '사랑'

성공... . ...

그를 위한 '관계'의 중요성.

세상에 모든 이들이 '중심'이 되어가는

이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그들을 위한 '관계'의 중요성은 역설적으로 더 커져만 간다.

마치  핸폰의 '지인'의 수가 '천개' 넘어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양 그리되어가는 시대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인간의 '맛'을

다른 표현이지만 인간성이 좋게 보이기 위하여

갖은 성공책자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설령 그리된다 해도

그게 성공일까?

인생의 맛을 낼 ,

그래서 제법 많은 명성과

더 많은 재물이 그들에게 몰리고

멋있다는 칭찬이 그들에게 쏟아져도...

그 후에...

그들이 혼자 있을때

그들이 죽음 앞에 직면하고

인간들이 누구도 손을 내밀 수 없을 때에도

과연 절절한 '고독'의 두려움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지닐수 있을까?

 

대부분은 실제로 그러한 버퍼가 있는 인간이 또 얼마나 될까?

그래서 '감정 노동'이란 단어가 만들어진 시대가 아닐까?

 

그것을 모르실 이 없는 주님께서

나에게

'내 안에 소금을 가진 자가 되어

이웃과 화목하라'는 명령을 하신다.

 

더더구나 난.. 누구의 눈치를 보기

정말.. 싫어하는

'눈치 습관자' 아니던가?

이런 감정 노동의 역치가 낮은 나에게

내부에 소금을 가지라는 명령은

이전 같으면

얼른 도망가고 싶은

그런 구절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 소금... 이 유명한 비유..

불신자들도 문학에 자주 비유로 올리는 이 구절에서

특별히 '내 안에 소금'을 보게 하심은

어느정도 내 안에 그럴 만한 버퍼가 생기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의 결과를

내가 스스로 인정하고 돌아보길 바라심은 또 아니실까?

 

그러하다 .

그 많은 시간 동안

주님은 내게 필요한 것을

필요한 순서대로

내가 알든 모르던 어느새 그리되게 하셨다.

그러하고, 아직은 버겁다는 생각을 할지 몰라도

명령은 그것이 준행하면

나도 모르게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 안에서

감정 노동은 없다.

감정 노동일 두려운 일을

말씀 따라 순종하면

다 없어지고

더 커지는 영혼의 버퍼의 지평을 경험하게 하심을 의미한다 .

그러기에

하나님은 명령하시고

내가 순종하기를 기다리셔

순종함을 기뻐함으로 내게 평강의 기쁨을 주시고

그것으로 인하여

내 인생의 목표와 의미와 그 삶의 과정이

풍~성해지는 경험을 하게 하심이시다 .

 

그렇다 .

그러기에

세상의 성공론, 인간관계론에 의한

인간관계의 화목을 추구함은 같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우리에게는

나에게는

감정의 버거움,

노동의 의미 대신

그것 자체가 인생의 다른 의미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

(아무리 사유를 해보아라..

 불신자들아.

 인간관계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던가?

 안태어나면.. 노력해서 그리될 일이 없지 않던가?  ^^;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말씀 순종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이고 기쁨이고 목적이 된다. ^^*)

 

 그러기에

난 오늘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

내가 과연 내 안에 맛을 지니고 있던가?

소금을 지니고 있던가?

혹여 날카로운 비수를 그들을 향해 벨 준비를 하고 있지만

상황이 달하지 않아서 그냥 웃고 있는 척하는 것 아닌가?

임계 상황, 그 낮은 Boiling Point 에 달하면

확~하고 끓어 올라 터져 버리는..

그래서 하나님이 그토록

예수님으로 보길 원하시는

당신의 피조물들에 대하여

분노와 버거움을 퍼뜨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주여.

아침.. 잠시 버거운 환자 분을 만났습니다 .

자꾸만 되풀이 되어 의심하는 말투.

나름 조심하려 했지만

조금 짜증이 났습니다.

다가오는 죄책감이 그분을 보내고 더 크게

제 마음을 누르려 했습니다.

주여.

이 모든 비합리적인 내 안의 부조리들.

주님이 오늘 말씀하시는 '소금'...

내안의 소금이 부족해서 임을 압니다.

주여.

이제까지 소금없이

과거의 말들,

이전의 습관들,

순간적으로 돌아버리는 관념의 결과들로

저를 무의식적, 저항못하고 맡겨 버리던

잘못된 습관들로 부터 벗어나야 겠습니다.

 

조금 한발을 떼어

주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

오늘 특별히 더 원하시는 것은

화목이심을 깨달아

내 안에 '소금'을 지니기 위해

주께 기도합니다.

 

주여.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나보다 나음을 믿게 하소서.

특별히 제게 '감성적 '우월감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 커트라인을 낮추시어

주여.

교만하지 않게 하소서.

저를 낮춤으로

그들을 높이고

제 자존감은

주를 이유로 높이게 하소서.

내주여.

 

내 가족..

내 주위

주님께 다 의탁합니다.

주 안에서 그런 존재들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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