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관심(막9:30-37) 본문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그곳을 떠나'
떠난다는 게 눈에 들어온다.
예수께서 그러셨다.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며 떠나셨다.
과연.
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
그들이 세상을 살 원동력이 무엇일까?
'자신을 알아줌'이 아닐까?
돈을 범도
성공을 함도
자식들이 잘 길러짐도
학문적으로 일가를 이룸도
더 극명하게 K pap 무대의 아이돌이나
영화의 스타들.. 모두..
모두 그 안에 '자신을 드러내 놓고 싶음'이
인생을 살아가는 기본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고
왔다가 반드시 사라지고 없을
이 인생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바라고 살까?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모두 우울증에 빠지지 않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얼마든지 자신이 드러날 그 상황에서
그곳을 떠나셨다.
무엇이 예수님을
이땅의 그 고생을 감당케 하시고
세상의 나름대로 달콤한 관심을 과감히 버리고
아무에게 알려지지 않을 곳으로
떠나 버리셨을까?
당연히도 '하나님의 명령'이시다 .
하나님의 세상에 보내신 이유를 준행함이다.
그 분은 자신이 누구이신지 확실히 알고
자신의 소임을 확실히 아신 분이시다.
그러기에 그 분에게는
세상의 다른 대치물...
아담이후 인간에게 들어온
'자신이 우선'이고자 하는
이 달콤한 내적 유혹, 내적 결핍이 그에게는필요 없는 것이시다 .
그 만큼 하나님은
그 분 자체로 '완전'하심이시다 .
여호와 , 홀로계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은
그것 자체로 완전하다 .
그 완전함의 아주 작은 끄트머리로도
우리는 '은혜'와 '감사'의 터짐으로 가슴이 미어질 듯한데
2위 하나님이시자
하나님과 직통 하나이신 예수께서
세상의 그 부족한 대치물인
자신을 드러내는 데 어떤 유혹을 느끼시겠는가?
'관심'이다.
난..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진정 옳은 하나님,
그 하나님의 옳으신 명령을
과연 우리는 제대로 들을 수 있는가?
이들 제자들을 보라.
이때의 제자들은 아직 미성숙한 신앙인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대부분의 우리, 나에게
이런 모습은 없지 않을까?
매일 말씀으로
은혜로
살아계시는 증거로 내 삶을 간증거리로 채웠음에도
그 간증의 달콤한 것만 누리고
고난, 십자가 , 예수 ,보혈, .. 등에는
두려워만 하고 묻지도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 자신에게 묻는다.
'주하인아.. 너는 정말 깨닫지 못하고 두려워 하는가?'
아니다.
깨달았다.
두려워 하는 거 같지도 않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 보면
이땅에서 지금 주님이 허락하신
적당한 정도의 위치,
가족의 적당한 회복.
이곳 충주에서의 풍성한 환우들과 직원들의 관심..
기타... 누림들을 주신
하나님의 주심에만 더 매몰되어 있지 않는가?
혹은 그것들을 내가 잘나서 받은 것인양 오인하고
진실의 하나님.
더 제자들의 삶에 가까이 가기위해
내가 지어야할 십자가는
두려워 떨지는 않는가?
의도적으로 하루하루 밀어 놓고는 있지 않은가?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그, 아무 내 잘남도 드러나지 않는 것을
무서워 하는 것은 아니던가?
내 잘남에 대한 관심 만 충만한...
그 상황은 아닐까?
주께서 오늘 말씀하신다.
내 관심을 다시한번 돌아보자 .
주님 자체.
하나님 그 본질 ,
내 본향, 천국 만을 더 사모할 수는 없는가?
그래서
내가 드러나지 않는 상황 속에
내 관심을 돌려 볼수는 없을까...하고 말이다.
주님.
오늘도 말씀을 허락하셨습니다.
아침에 수술 한분, 시원하고 즐겁게 끝냈습니다.
주의 은혜로
오늘도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은 능력으로
수술 마치게 해주시고
인생의 하루를 이 기도로 시작하는데
이 수술방에 계신 모든 분들이
같은 성령으로 영향을 받도록 해달라고
크게 기도하고 시작했습니다.
주여.
그래서 그리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뻣습니다.
믿지 않는 분들의 아멘소리가 더 커서
내 속은 '성공했구나' 하는 기쁨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그 속을 잠시 바라보면
난... 어쩌면 하나님 명령을 진심으로 순종해서라기보다
내 멋진 전도법,
그들 믿지 않는 자들의 방심을 깨드리고
예수님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현명함을
스스로 만족스러워 하고있지는 않았던지요?
주님의 은혜로
점차로 나아지고 있는 내 수술 기법이
내 잘남의 영향으로 그리되었다고
속으로 기고 만장하지는 않았던지...요...
주님.
솔직히 제 깊은 속을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 관심을
온전히 주님이 하심으로
여기까지 왔음으로
깊이 깊이 고백하고 받아 들일 수 있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
이제 또 남은 많은 오늘의 시간동안
수도 없이 많은 동일한
나에 대한 관심과
주님의 명령에 대한 관심이
제 안에서
제 자아의 벽안에서 부딪치리라 이해하고 있습니다.
주여.
부디 주님의 뜻대로만
온전한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진정으로 제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만을 바라보는
순전한 믿음이 되게 하소서.
저는 죽게 하소서.
제 안에서 제 자아의 만족으로 하루를 버텨내기보다는
주님 예수님의 믿음만 굳건히 자라나
영생을 사모하는 자로서
하루 더 보람있게 살아낸 것으로만
만족하는 자 되게 하소서.
제 관심을 오직 그리 바꾸소서.
어제 묵상의 구절처럼
'믿음마져 도우소서.'
예수 내 주시여.
우리 주 예수 ,
그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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