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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막9:30-37)

주하인 2015. 3. 11. 11:37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그곳을 떠나'

 

떠난다는 게 눈에 들어온다.

예수께서 그러셨다.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며 떠나셨다.

 

과연.

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

그들이 세상을 살 원동력이 무엇일까?

 

'자신을 알아줌'이 아닐까?

돈을 범도

성공을 함도

자식들이 잘 길러짐도

학문적으로 일가를 이룸도

더 극명하게 K pap 무대의 아이돌이나

영화의 스타들.. 모두..

모두 그 안에 '자신을 드러내 놓고 싶음'이

인생을 살아가는 기본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고

왔다가 반드시 사라지고 없을

이 인생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바라고 살까?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모두 우울증에 빠지지 않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얼마든지 자신이 드러날 그 상황에서

그곳을 떠나셨다.

 

무엇이 예수님을

이땅의 그 고생을 감당케 하시고

세상의 나름대로 달콤한 관심을 과감히 버리고

아무에게 알려지지 않을 곳으로

떠나 버리셨을까?

 

 당연히도 '하나님의 명령'이시다 .

하나님의 세상에 보내신 이유를 준행함이다.

그 분은 자신이 누구이신지 확실히 알고

자신의 소임을 확실히 아신 분이시다.

그러기에 그 분에게는

세상의 다른 대치물...

 아담이후 인간에게 들어온

'자신이 우선'이고자 하는

이 달콤한 내적 유혹, 내적 결핍이 그에게는필요 없는 것이시다 .

 

그 만큼 하나님은

그 분 자체로 '완전'하심이시다 .

여호와 , 홀로계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은

그것 자체로 완전하다 .

그 완전함의 아주 작은 끄트머리로도

우리는 '은혜'와 '감사'의 터짐으로 가슴이 미어질 듯한데

2위 하나님이시자

하나님과 직통 하나이신 예수께서

세상의 그 부족한 대치물인

자신을 드러내는 데 어떤 유혹을 느끼시겠는가?

 

'관심'이다.

난..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진정 옳은 하나님,

그 하나님의 옳으신 명령을

과연 우리는 제대로 들을 수 있는가?

이들 제자들을 보라.

 이때의 제자들은 아직 미성숙한 신앙인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대부분의 우리, 나에게

이런 모습은 없지 않을까?

 

 매일 말씀으로

은혜로

살아계시는 증거로 내 삶을 간증거리로 채웠음에도

그 간증의 달콤한 것만 누리고

고난, 십자가 , 예수 ,보혈, .. 등에는

두려워만 하고 묻지도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 자신에게 묻는다.

'주하인아.. 너는 정말 깨닫지 못하고 두려워 하는가?'

 

아니다.

깨달았다.

두려워 하는 거 같지도 않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 보면

이땅에서 지금 주님이 허락하신

적당한 정도의 위치,

가족의 적당한 회복.

이곳 충주에서의 풍성한 환우들과 직원들의 관심..

기타... 누림들을 주신

하나님의 주심에만 더 매몰되어 있지 않는가?

혹은 그것들을 내가 잘나서 받은 것인양 오인하고

진실의 하나님.

더 제자들의 삶에 가까이 가기위해

내가 지어야할 십자가는

두려워 떨지는 않는가?

의도적으로 하루하루 밀어 놓고는 있지 않은가?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그, 아무 내 잘남도 드러나지 않는 것을

무서워 하는 것은 아니던가?

 

내 잘남에 대한 관심 만 충만한...

그 상황은 아닐까?

 

 

 주께서 오늘 말씀하신다.

내 관심을 다시한번 돌아보자 .

주님 자체.

하나님 그 본질 ,

내 본향, 천국 만을 더 사모할 수는 없는가?

그래서

내가 드러나지 않는 상황 속에

내 관심을 돌려 볼수는 없을까...하고 말이다.

 

주님.

오늘도 말씀을 허락하셨습니다.

 

아침에 수술 한분, 시원하고 즐겁게 끝냈습니다.

주의 은혜로

오늘도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은 능력으로

수술 마치게 해주시고

인생의 하루를 이 기도로 시작하는데

이 수술방에 계신 모든 분들이

같은 성령으로 영향을 받도록 해달라고

크게 기도하고 시작했습니다.

주여.

그래서 그리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뻣습니다.

믿지 않는 분들의 아멘소리가 더 커서

내 속은 '성공했구나' 하는 기쁨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그 속을 잠시 바라보면

난... 어쩌면 하나님 명령을 진심으로 순종해서라기보다

내 멋진 전도법,

그들 믿지 않는 자들의 방심을 깨드리고

예수님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현명함을

스스로 만족스러워 하고있지는 않았던지요?

주님의 은혜로

점차로 나아지고 있는 내 수술 기법이

내 잘남의 영향으로 그리되었다고

속으로 기고 만장하지는 않았던지...요...

주님.

솔직히 제 깊은 속을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 관심을

온전히 주님이 하심으로

여기까지 왔음으로

깊이 깊이 고백하고 받아 들일 수 있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

 

이제 또 남은 많은 오늘의 시간동안

수도 없이 많은 동일한

나에 대한 관심과

주님의 명령에 대한 관심이

제 안에서

제 자아의 벽안에서 부딪치리라 이해하고 있습니다.

 

주여.

부디 주님의 뜻대로만

온전한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진정으로 제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만을 바라보는

순전한 믿음이 되게 하소서.

 

저는 죽게 하소서.

제 안에서 제 자아의 만족으로 하루를 버텨내기보다는

주님 예수님의 믿음만 굳건히 자라나

영생을 사모하는 자로서

하루 더 보람있게 살아낸 것으로만

만족하는 자 되게 하소서.

 

제 관심을 오직 그리 바꾸소서.

어제 묵상의 구절처럼

'믿음마져 도우소서.'

예수 내 주시여.

 

우리 주 예수 ,

그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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