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오르난 마당에 솔로몬의 전을 세우다[대하3:1-17] 본문
1.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솔로몬,
저 대단한 왕이
역사에 드물 대공사로
성전을 짓기 '시작'한 곳
바로
그곳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다.
오르난의 타작 마당 이라면
아래에 묵상 구절을 다시 긁어다 놓았지만 ^^;
일상에서
영적 위인처럼
드러나지 않지 않지만
하나님의 제단 중심의 삶을 사는
우리 모든 믿는 자들 가운데의
선택적 소수의
삶의 터.. 를 의미하는 곳이 아니던가?
그 곳에
솔로몬의 성령충만으로
최선을 다한 새로운 성전건물의 리모델링이
수십년의 시간을 두고
이루어짐은
내게
우리 좁은 문을 통과하여 가려는 자들에게
말씀하시려는 어떤 뜻이 있지 않던가?
8. 또 지성소를 지었으니 성전 넓이대로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도 이십 규빗이라 순금 육백
달란트로 입혔으니
16.성소 같이 사슬을 만들어 그 기둥 머리에 두르고 석류 백 개를 만들어 사슬에 달았으며
성전은
육신을 의미하는 '뜰'과
마음을 뜻하시는 '성소'와
주님 앉으시는 '영혼'의 자리인 '지성소'로 구분된다.
그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 마져
최대한의 정성으로
가장 좋은 것으로 건축한다.
궁금한 마음이 문득 들어오는 것,
저 대단한 세공과 건축도 그렇지만
그 안의 여러 장식들..
모두 의미를 가지고 상징으로 만들었을 텐데
누가 설계하고
어떤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며
그 뜻을 알아 건축자 들과 세공사들이 어찌 표현해냈으며
그 최종 감수는 '솔로몬'이 했겠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통합적이고 힘든 일이었을지
감탄이 나오려 한다.
각설하고
그렇다면
오늘 내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이실까?
나.
허락되어진 '주하인' 육신에
잠시 머물러 살며
주님의 뜻 가운데
성화되어가는 영혼이 되게 하기 위하여
이곳 영적 오르난 터 PT시 와 AY에 잠시 잠시 머물러 사는
청지기.
그래도 아직 다행인 것이
주님께서 '오르난' 같은 자로 인정을 하심이심이지만
새롭게
이 빌려 살고 있는 영적 성전을
새롭게 터를 다지길 원하심 같다 .
마치 솔로몬의 그 포텐터질 듯한 (^^;;) 영적 기쁨으로 말이다 .
새롭게 .....성소와 지성소를
더 세심히...............
더 아름답게 말이다.
아...
그래야 하리라.
주여.
알겠습니다.
빌려 입은 옷 같은
빌려 살고 있는 이 육신의 삶동안
나름 오르난의 삶,
오르난 타작 마당의 인생을 살 개연성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나이다.
그러나,
자꾸 오염되고 흩어지며
그 열심과
그 변화없는 일상 이지만
주님을 감동하며 사는 자의 감동이
흐려지려 함을 아시고
그 자리에
내 있는 자리에서 새롭게
마치 솔로몬의 성전을 세우듯
새로 다시
정성을 드려
스스로 들여다 보고 바라보고
새롭게 설계도면을 짜고
리모델링 아름답게 하듯
주님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살게 하소서.
그길 바라시니
오늘
저 그리 되게 하소서
내 주여.
내 기뻐하는 것 보다
주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게 하소서.
대충이 아니라
확 뒤집어 볼 그런 마음을 허락하시고
그리 인도하소서.
주여.
마음이 무겁고 힘이 들려 하지만
주님의 영광위해
주인이신 주님이
제 영혼의 지성소에 내려 앉으시기에
하등 어려움이 없으시도록
더 깨끗하고 맑게
오늘 하루 지키소서.
거룩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오르난 타작 마당에 대한 과거 묵상글 (2012.05.23)
오르난 타작마당의 진실(대상 21:18-30)
오르난은
네 아들들과 함께
마당에서 타작하다가
하나님을 보고
놀라 숨었습니다
저와 제 아들들도
주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다가
주님을 만나뵐 때가 될 때
저들처럼놀라지 않길 원합니다
늘 마음속에
주님을 모시고 살며
주의 임재하심을
사모하고 살길 원합니다
주여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저희 가족과
주앞에 겸허히 살려는
모든 당신의 자손들에게
오르난 타작 마당의
놀라운 풍성함을
속히 허락하소서
18.
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오르난 타작 마당.
하나님의 궤가 계시던 곳.
무엇 때문이던가?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왜" 오르난의 집일까?
오르난이 뛰어난 일을 해서이던가?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 무엇을 의미하던가?
그곳을 통하여 무엇을 말씀해 주시려던가?
19.
이에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다윗이 올라가니라
그곳은 '회복'의 장소이다.
하나님의 이르신 말씀대로
전적으로 따라 회복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20.
그 때에 오르난이 밀을 타작하다가 돌이켜 천사를 보고 오르난이 네 명의 아들과 함께 숨었더니
21.
다윗이 오르난에게 나아가매 오르난이 내다보다가 다윗을 보고 타작 마당에서 나와 얼굴을
땅에 대고 다윗에게 절하매
오르난은 '서민'이다.
밀을 타작하다 천사를 보고 '네 아들'과 함께 숨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 타작 마당은 '타작'하는 마당이다.
삶을 사는 곳이다.
정직한 삶을 사는 곳이다.
다윗은 왕의 삶을 충실히 살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서민의 순수한 삶을 사는 자들이다.
서민과 왕의 차이는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음은 물론 일 것인데도
늘 위와 비교하는 습관성 비교 자인
우리 인간들에겐
오르난 타작 마당이 그리 귀치 않아 보였을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묵상의 중심은
그
'삶의 현장'이다.
풍성한 소출의 현장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절절히 느껴지는 곳은
평범한 일상이기도 하다.
22.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넘기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내게 넘기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제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전염병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하니
평범한 삶은 무시되어도 되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한 일상의 삶'을 귀히 여기신다.
타인을 높여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일상에 임하셔 우리와 친교를 나누길 원하시지만
그 분은 함부로 대하여 드려야 할 분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늘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분에 대한 최선의 삶을 살아드려야 하는 존재들이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무게는 가벼워 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늘 조신한 마음으로 주님께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23.
오르난이 다윗에게 말하되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삼으시기 위하여 다 드리나이다 하는지라
하나님께서 이 평범한 오르난의 집을
평범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기뻐하시는 이유.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거침없이 하나님께 가진 것 중 많은 것을 내 놓을 줄 아는
그런 마음이 겸비된 사람이었다.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타작을 통한 수확의 풍성함을 ,
마당이 주는 너른 여유로움,
그 주인의 그 안에 펼쳐진 모든 것을 만족하게 살줄 아는 감사함,
자식들과의 함께하는 온유한 교제,
늘 주님을 생각하고 두려워 할 줄 아는 올바른 信心.
세상의 권위에 순종할 줄 아는 겸손... 이 있는 곳이었음이 읽혀진다.
24.
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반드시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빼앗지 아니하겠고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니라
25.
그리하여 다윗은 그 터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
오르난 타작마당은 '하나님의 궤'가 거하시는 곳이다.
하나님의 성전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자기의 인생 타작마당에 모시는 자는
반드시 '보응'을 받는다.
아니다.
인생의 중심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영혼의 성전에 중심으로 모시고 사는 자,
그 분으로 인하여 생기는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받는 자...
그분이 주시는 것을 '진정 ' 감사하고
함부로 생각지 않는 자...
귀히 여기는 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주시는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
타작은 수확의 최절정이다.
오르난 타작마당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려 노력하는 자 들에게
우리의 인간적 노력을 넘어서는
하나님이 쏟아 부어 주시는
축복의 절정이기도 하다.
우리의 열심과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합치되는
진정한 축복의 장소이기도 하다.
26.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27.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
28.
이 때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응답하심을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으니
이전의 잘못을 돌이킬 '회복'의 장소이기도 하다.
오르난 타작 마당.
오르난은 그리 뛰어난 열정과 열심을 보였다고 어디에도 기록을 찾기는 어렵다.
그는 '다윗'의 폼나는 일생에 비하면
초야에 묻혀 살다가 죽을
다른 평범한 수백 수천만 명의 범인들과 하나도 차이가 없다.
그냥 열심히 , 정직히 .. 살다가
또 그렇게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 묻혀서 꺼지고 말..
하지만
하나님은 그 오르난을 선택하고
그 사람의 '마당'에 하나님의 궤를 놓으시고
그로 인하여 그에게 놀라운 축복의 경험을 하시게 한다.
그의 이름이 성경에 많은 부분을 나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적 '사랑에 의하여 선택받은 자고,
하나님의 인생에 대한 주권적인 부분을
오늘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통해 보이시려 하시며
그 부분은
주권적 사랑을 받기 위한
평범한 자들의 조건에 대하여서도 보이신다.
최선을 다한 일상의 삶,
그안에 펼쳐지는 그들 속의 '정결함',
그리고 '다윗'과의 비교를 통하여
왕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의 그것과
일상을 사는 소소한 서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부분'은
그들의 화려함과 덜 화려함의 차이가 아님이다.
삶의 중심을 '하나님의 동행'하심으로 삼고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상에서의 최선을
늘 생각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시는
현상태에서의 것을 영광으로 드러내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소출'보다는
기뻐하시는 소출이다.
자식들과 합치된 마음의 경작,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식하는 마음,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는 마음.. 등이다.
나에게 원하시는
오늘의 말씀은 그것이다.
더 깊이 묵상하고
더 깊이 회개하고
더 깊이 감사하고
자족하는 삶,
내 일상이 '타작마당'이 되는 삶이다.
적용
1. 내 눈뜨고 살아가는 곳이 '오르난 타작마당'임을 잊지말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
수확하는 곳.
전도로 수확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수확하는 곳.
내 자식들과 지인들과의 관계를 수확하는 곳.
환우들의 건강을 수확하는 곳이다.
2. 하나님은 '왕'보다 '궤'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보신다.
높고 잘나고 뛰어난 것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주님은 우리의 능력보다는
주님 앞에서 우리의 겸허함을 귀히 여기신다.
3. 일상도 최선을 다하자.
주님은 눌리고 어두운 분이 아니시다.
겸손에 최선을 다하고
일상의 것도 최선을 다하자.
단, 주님을 앞서지 말자.
4. 회개하자.
잘못은 철저히 회개하자.
5. 하나님의 성전을 모시고 다니는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보응을 받는다.
오르난도 금으로 다윗에게 보상 받지 않았는가?
6. 성경 세장 읽겠다.
기도
주님.
주님이 진정 바라시는 것은
통합적인 것임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영적인 추구 만을 통하여 세상을 도외시 하는 것도 옳지 않고
세상만을 추구함으로 주님을 도외시 함은 더욱 싫어하십니다.
그것을 다시한번 상기하게 하십니다.
주님은 통전적이고 통합적이신 것을 원하십니다.
막힘보다는 '흐름을 원하십니다.
주여.
막히지 않게 하소서.
주여.
타인에게 아픔을 주지 않도록 하소서.
특히 저에게 화합의 마음을 깊이 각인시키소서.
흐르지 못하는 것은 주님의 원하심이 아니시되
하나님의 원리가 아닌 것을 흐른 다 착각하는
무지함은 더더욱 막으소서.
오늘.. 밀 밭 사이에서 떨며 눈을 내밀어 살피는
오르난 가족의 그 순수함을 묵상합니다.
함께 하는 자의 겸손함을 봅니다.
그들의 가만히 있어도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봅니다.
다윗의 회개를 봅니다.
아마도 그를 보고난 오르난 가족의 더욱 신실해짐을 통한
그 가정의 대대로 융통함을 느낍니다.
주여.
저도 그리하소서.
제 가족도 그리하소서.
주님의 보여주심을 보고 있는 제 가족에게도
그리 놀라운 축복 허락하소서.
어려움 겪는 자.. 주님 아시오니
어서 주님의 말씀 앞에서 누리는
오르난 타작 마당의 진실을 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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