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갑분싸 때에도[대상13:1-14] 본문
3.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자'
사람들에게 묻는다.
' 사울 때에는~아니하였는니라'
정말 중요한 것.
하나님께 묻는 것.
그것.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
난..
매사 매일 주님께 묻고 있던가?
솔직히 많이 버릇이 되어 있다
참... 기특한
내 인생의 옳은 선택, 가장 중요한 습관의 길에 들어 있다.
그것.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난.. 깨달아 알고있다 .
그러나..
매일이던가?
매사 이던가?
솔직히 '100%'가 아니고 .. 아니다... 이전보다는 좀 많아진게
하나님께서 기특히 여기시는 것이심을
내가 알아 채리고는 있어
내 마음의 풍성함을 가져오기는 하지만 ^^*
아직은 부족하다.
많이 .. ㅠ.ㅠ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
조금 더
그러한 모습을 취하라고 하심이신 것으로 느껴진다.
거기에 이들은 그러한 일치된 마음으로 북치고 장구치며
축제 분위기다 .
하나님으로 하나된 '축제의 삶'
이거...
영육혼의 일치된 삶
신행일치의 삶..
그래서 얻어지는 행복의 길... 인생이 행복해지는 길...
내가 추구하는 바,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귀히 여기시는 바.. 아니던가?
감사하다.
난.. 그 길에 서 있다. ^^*
9.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10.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 싸해진다. (갑분싸 ..)
어쩔 수 없이 , 자기도 모르게 ,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내밀어 '받아든 궤'에 의하여
웃사가 죽었다.
그것도 찢겨 죽었다.
하나님의 진노로..
아..
이 감정적 괴리,
이 충격..
12.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르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그래서
다윗은
그토록 사랑하고 그 안에서 모든 응석과 애교 (죄송.. 그런 마음 맞을 게다) 다 부리던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한 순간에 '두려움'으로 변하는
그래서 '어떻게 ' 해야 할 지 그 괴리 속에서
그는
그냥 그 곳에 궤를 두고 수개월 간을 칩거해 버렸다
그 마음.
그 혼란
그 어려움이 느껴진다 .
축제와 자신감에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 감정적 곤란.
다윗은 인생의 방향 자체가 흔들려 버리는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이 성경 구절에만 오면 느끼는 혼돈.
하나님의 갑작스러운 변화
오래 , 자라오며 겪던 그러한 분위기에
비슷한 상황만 와도 피해버리곤 하던 내 가련하고 연약하였던 심사^^;; 가 건드려지는 듯해서
피해버리던 구절들인데
오늘
주님의 은혜로, 들은 나이덕으로 많이많이 옅어진 그러한 버거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레마'를 받아들이는데
문제가 있었었다
그래서 그냥 출근을 서두르며
성서유니온 (매일성경, http://su.or.kr)의 목사님의 묵상 해설을 ▲
들어가며 세면하던 중
궤을 옮기는 방법 (체에 끼워서... ) 을 준행하지 않은 '죄'로
그가 죽었음을 알게 되었다 .
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
알고 있으면서도 잊었다
분위기 싸해지는 갑분싸는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고 (당연히 문제가 있을 턱이 없지 않은가?... )
내 문제다.
어이없음을 과장되이 느낌도
'내 문제'.. 내 안의 해결해야될 문제이고
내 잘못을 돌이킬 기회이며
다윗의 두려움도 그랬다
그렇다 .
하나님께 모든 것을 아뢰야 하고
그 아룀 조차 주변인을 주님께 다가오도록 조화롭게 이끌어야 한다 .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 주님 경외함에 대하여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
오늘.. 환우 분들이 밀려
말씀이 자주 끊겨서 이제야 마무리 기도 드립니다.
주님.
당연하고 확실한 것이
주님 생각, 늘 주님을 의식, 주님께 여쭘이고
그러함으로
평안과 번성의 누림도 기대하겠습니다.
하지만
과정 중에 다가오는
예기치 못하는 상황,
오늘의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는 ' 갑분싸의 상황 조차도
주님의 뜻이 있으심을 의심하지 말고
내 자신을 돌아보아
주께서 진정 원하심에 대하여 흐트러짐이 없던가
본질을 흐리는 합리에 혼동된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하소서.
그럴 때 그러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그러함 조차 내 강함을 위함이신
주님의 허락하신 상황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내 주여.
늘깨어 있게 하소서.
내 주 예수 그 거룩하신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과거 묵상 분 (12.05.12)
주님을 모심
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다윗이 사울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궤 ' 앞에서의 물음 여부다.
하나님의 궤..
어제 금요 예배 때 목사님께서 그러셨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큰 차이는
'상징'성을 이용하냐 아니냐..라는 것이다.
칼빈의 종교 개혁 이후 '쯔빙글리'라는 분의 노력으로
장로교는 '외적'인 '터부'의 시작인 '상징성'에 묶이는 것을 벗어났다는 말씀이시다.
그렇다.
'하나님의 궤'
하나님이 이 땅에 거하시는 장소.
하나님의 보좌와 세상을 연결하는 것.
궤 자체도 중요하지만
궤의 진정한 의미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궤는 현재로 말하면 '교회'가 될 수도 있지만
우리 자신 , 하나님의 성전이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이 거하시도록 하는 노력.
그것을 진정으로 노력함이 중요하다.
다윗의 왕으로서의 시작은
'하나님의 궤'를 올바로 자리잡음이다.
8.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
'하나님'을 내 영혼의 구주로 받아 들인다.
그것은 나 자신이 하나님의 '종', 하인이 됨을 의미한다.
그것은 구속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일부분의 자유를 속박당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은 그 속박은 더 큰 '자유'를 의미한다.
이 역설적 진리를 깨달은 자들은
'비파와 수금과 ... '로 연주하며 즐거워 할 수 있다.
이 블로그의 정체성.
'선택받은 소수'를 위한 ......
그 선택 받은 소수들은
진정으로
주님 오실 그날까지
그 속박을 기쁨으로 받을 체험을 한 자들이다.
그들은 이 역설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달은 자다.
그래서 , 나.....
이 가상의 공간을 통하여
모든 믿는 자들이 같이
이 하나님 궤 앞에서의 '기쁨'을 같이 누리는 자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 블로그를 지속한다.
물론, 그를 통하여 나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기에 난 더욱 그렇다.
9.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10.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게 이렇다.
하나님의 궤를 '다시금' 우리 영혼에 돌리는 작업을 하면서도
정도를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쁨 만을 추구하는 '감정적' 믿음은
결국 이러한 '영적인 죽음'까지 올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오늘 말씀 묵상의 포인트가 여기인듯하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나를 세워야 함을 말씀하시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원리를 깨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원리 .
내가 혹시 깨드리고 있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내가 두려워 해야 할 ' 하나님의 원리'는 무엇일까?
14.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모시는 자들에게는
복으로 화답하신다.
주님을 나를 아들로서 대하시지만
나는 주님 앞에
주님의 Servant (하인)이란 마음 가짐으로
나 자신을 낮추기 위한
마음가짐의 표현으로 지은 닉이라면
그에 합당하는 태도로 살아야 한다.
조금더 절제되고
조금더 주님 말씀에 귀기울이고
그 분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그래서 그 분, 내 주인님이 허락하시는
영육의 축복으로 통하여 '감격'하고 살아가는 인생이라
나 자신을 정의 했다면
내 하루 하루의 삶이 달라야 한다.
솔직히
하나님의 축복은 사모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감격의 기쁨의 감정적 달콤함은 사모하지만
내 의무라는 면,
오늘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공의'라는 면에서
부족한 것은 사실이고
실제로 자꾸만 하나님의 궤가 내 안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그런 것 같아 난 당혹스럽다.
예전에 한참 말씀으로 뜨거울 때는
열심히.....열심히 큐티도 나누고
오전 일찌기 말씀도 올리고 했었다.
그러다가 바빠지면서 아침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잠깐 들여다 보고
하루 늦게 되어서야 말씀을 정리하고 올렸다.
그래도 거의 매일 빠지지 않았다.
그러다 점점 빠지면서
사진올리고 시 올리는 것 빠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마음에 부담이 많았다.
하루를 말씀을 들여다 보지 않고 지낸다는 것은
나에게 생각하지 못할 일이다.
정말 불가피하게 말씀을 들여다 보지 못할 때는
회개하는 마음이 많이 앞서길.. 노력했다.
그런데.. 이제는 자주 .....잊어도 아무렇지 않다.
아니....솔직히 편하다.
그것.....
하나님의 궤를 다시
내 영혼의 성전에 모셔 들여야 하는 일이 아니던가?
그러하면서 난 자꾸만...
주님 말씀의 기본을 잊어 가고 있는 듯하다.
두려워 해야할 하나님을
사랑으로만 생각해 게을러지고 태만해지는 것.
오늘 .
토요일.
벌써~다.
또 올 한해의 반이 가버리고 있다.
벌써~ 다.
나........무엇을 했던가?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나타낸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진정.. 나.. 주님 말씀대로
내 영혼의 성장은
이루어 내고 있던가?
주님 말씀을 더 깊이 사모하자
내 회개할 것은 없던가 기도하자.
하나님 앞에서 난 어떻게 살아야 하던가 더 몸부림쳐보자.
기도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을 제 영혼에 깊이 모셔서
늘 신행일치되는 삶을 사모하기는 하지만
살다보니 자꾸만 흐트러지고 흐려집니다.
어떤때는 제가 의도하던 아니든
하나님의 뜻을 위배하는 일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여.
그러한 어리석음을 절제하게 하시고
주님의 뜻 가운데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하소서.
아침.
눈을 뜨니
괜한 고민이 제 머리를 흔듭니다.
이유.
압니다.
주님.
절 붙드시사... 더욱 강력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우심으로
절 세우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제 안에 오늘도 다시좌정하셔서
제게도 온전한 영육간의 축복을 허락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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