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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려라 그래도 나는 간다 ( 눅 9:51-62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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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려라 그래도 나는 간다 ( 눅 9:51-62 )

주하인 2008. 2. 2. 12:38

제 9 장 ( Chapter 9, Luke )

주님은 곧

승천하신다.

하지만....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승천은

기쁜 일이시고 좋은 일이신데

예루살렘 올라가는 데

왜 굳게 결심까지 해야 하는가?

 

 우리는 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분은

그 사실을 알고 계실 수 밖에 없는 분이시란 걸 ..

 

 그 엄청난 십자가와 그 전 후의 고통을 아시는

신이신 분이

육신의 껍질을 통한 고통이

어떤 정도라는 것도

당연히 알기에

그 분은 망설이지 않으실 수 없다.

 그러나,

그 분은 고통을 피하지 않았다.

굳은 결심을 하시며

올라가신다.

 

 주님에게는

당신의 고통보다는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 들의 무지함에 대한 사랑이

훨씬 더 크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소명이 나에게 달려들어 물어뜯는

고통이나 두려움 보다

더 클 수가 있을 까?

 

 어떻게 하면

우리 주님 처럼

남을 위하여

나를 처절히 희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절대절명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남을 위한 명분으로

당당히 맞설 수 있을까?

 

 그 분은

처절히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한편

가슴이 아픈 것은

예수님은

마치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기에는

로봇 같으시고

자판기 같으신 분이라서

가끔 감정을 들어내시기는 하지만

이처럼

그 분도 '선택'을 하고 계심을 보고

아..

전혀 죄악성은 없이

인간의 세상을 걸으시지만

그 분도

늘 선택을 할 기회가 있으시구나 생각하니

더욱 친근함을 금할 길이 없다.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촌으로 가시니라

 제자들은

멋지게 불내려서 사마리아를 혼내시길 바라지만

주님은

돌아서 가신다.

 

 능력도 있으시고

많이 힘드실 상황일 텐데

전혀 그 분은

흔들림이 없다.

 

 그 분은 사랑 그 자체시다.

그 분은 온유 그 자체이시다.


 


57.  길 가실 때에 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한 사람이 얘기 한다.

예수님의 마음도 모른 체...

아이 들의 생각없는 말 처럼

어디든지 따를 것이라고..

주님은

현학적 답을 하신다.

 

 한 사람.

이 사람은 누굴 말하고 무엇을 상징하는가?

나라면

이 사람의 말이 속에서 들려왔을 때

그래,

의지할 자.

데리고 다니면 마음이라도

덜 허전할 자.. 라며 반겼을 것이다.

 

주님은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고

의지할 데가 이 세상은 아니심을

허탈한 심사에 실어

말씀하신다.

 

 얼핏 생각하면

시조 한수 ,

'휘영청 달 밝은 밤에

 수구초심이라.

 여우도...........................' 읊는 사이

하늘에는

정말  휘영청 달이라도 뜨고

퉁소 소리라도 들려올 것만 같은 허탈한 여백이 느껴진다.

 그러나

가만히 들어보면

그 분위기가 아니기도 하다. 

이 세상은 당신의 고향이 아님을  확고 부동히 보여 주고 계시는

의지 표명이 그 허허로움 속에 숨어 있다.

 

 주님은 제자에게 대하여 말씀하지만

아직은

주님과 같은 확고 부동한 소명이 없는

주 하인 이하

다른 사람 - 이 아래에도 계속 나오는 '사람' 셋은 흔들리는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에게

흔들리지 않는 소명의식을 가지길

넌지시 권하시는 것이다.

 
 
59.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

      하옵소서  
60.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주님께서 권고하신다.

'나를 따르라'

 그러니

또 다른 사람이 이런다.

부친을 장사하길 허락하라고...

맞다.

세상의 원리로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전파가 우선이다.

소천하시는 길이 너무나 두렵지만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전파하는 대명을 가지신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길 선택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만 한다.

 

그러나,

주모..

얼마나 많이 세상에 흔들리는가?

흔들리지 않기를 알면서도

왜이리 흔들리는 가?

 

 

61.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또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한다.

세상과 작별하기 위한 시간을 허락하시라고..

그럼에도

주님은 단호하시다.

 

 주님은 세상에 사는 것이

세상의 것을 누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

즉 본향을 가는 길이 인생 여정이고

그  하나님 나라를 이웃에게 전파하여

같이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의 소명임을 말씀하시며

그 과정에

특별히 선택된 소수들은

세상의 일부를

내려 놓고

주님을 온전히 좇아야 됨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과연

한편으로

이 사람 들

이 사람들은 과연 왜 흔들리는가?

주모는

또 왜 흔들리는가?

 

우선,

이런 선택된 삶이

과연 나에게도 해당이 되는 가 하는 데 대한

의문이다.

과연, 부족한 나 같은 자들도

주님께서 그리 생각하실까?

내가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또한

지속적으로

흔들리는 세 사람으로 예표되는

흔들리는 마음이

끝없이 붙들려고 하고 있다.

그 논리는 이해가 간다.

인간적이다.

다정하다.

그립다.

당연하다.

........

 

 또한,

선택 받은 자들 중의 특별한 소수가 된 행운에 대하여

모르기 때문이다.

 성령의 충만한 정도가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이 땅의 삶이 더 이상 그들에게 거치가 되지 못한다.

하늘에서의 상급이 크다.

이러한 생각들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그 분의 사랑을 실체적 감각으로 느끼기 전에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신기루 같은

이야기 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러기에 구원 받은  것도 행운이지만

소수로 선택 됨은

영원을 주님 곁에서

큰 은혜 가운데 거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이기에

티끌 보다 짧은

이 세상의 삶은

그들 선택 받은 자임을 확연히 느끼는 자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일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몇 몇 생각나지 않는가?

 '선다 씽

 주기철

 성프랜시스

 십자가 성요한

 ..................'

 

 그러나 그러한 만큼 

주님을 따르는 길은

외롭고 힘든 길이다.

좁은 길이라고 한다.

좁은 길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외로운 길이다.

어려운 길이다.

 그 길은 오늘 주님 예수님의 심사에서 읽혀지듯

고난이 심한 길이다.

그러기에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은

두렵기 그지 없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그 길이

외적으로  어찌 표현 되는 지도

뚜렷히 장담할 수 없음도

따르는 자들에게 혼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확증적인 비전으로

선교사를 나가기를 응답 받거나

목회를 하기로 떠밀려 가거나

몇 대에 걸친 믿음의 집안으로 벗어날 수 없는 선천적 소명이 있거나

하지 않고는

뜨거운 열정 만 가지고는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

불문가지이다.

명약관화다.

 

그러기에

오늘 세 사람의 흔들림이

정감있게 다가오지 않는가?

 그럼에도

주님은 확신있게 말씀하신다.

 

 그런 우리들에게는

'세상은 내 집이 아니라는 본향을 위한 순례자와

 내것은 없다는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 한다. '

' 죽은 사람, 죽은 구습, 죽은 옛사람은

과감히 손털어 끊어 버리고

다시는 옛날의 달콤했던 기억은 돌아보지 말것'을

다짐이 있어야 한다.

'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 상의 일들에도

 그 불의를 묵과하고

 그 단점을 받아 들이고

 그 악의를 용서하고 인내함이 필요하다'.

 

 주님 예수님은

오늘 그것을 나에게 넌지시 말씀하신다.

 

 

 

기도

 

주여

선택된 소수의 행운과

그들이 해야할 결심과 선택에 대하여

그리고 앞날에 놓인 고통과 고난에 대하여

그럼에도 우리의 선택으로 인하여

우리의 인생과

앞으로의 영원 속에서

최고의 은혜를 누릴 수 있음을

묵상 중에 알게 되어 기쁩니다.

주여

의지를 주시고

깨어 있을 마음을 주시고

우리의 소명에 대한

확고 부동한 인식이 있게 하사

주님 말씀하시면

언제라도

버리고 따를 수 있는

그러한 자가 될 수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마져

내 기분에 따른 선택이 아니고

주님과 늘 동행하는 훈련과 주님의 주도적 사랑 하에

자연스러이 결정될 수 있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주여.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 주시고

그 논리에

주님의 원리로 과감히 마주할 수 있게 하소서.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항해자)
 주하인은
이래도
주님을 향하여
그 나라를 향하여
가기를 다짐함다.
 
찬양으로...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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