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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게 다 아는 것인가? (눅 10:25-42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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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게 다 아는 것인가? (눅 10:25-42 )

주하인 2008. 2. 5. 12:59

제 10 장 ( Chapter 10, Luke )

 안 보인다고

구름이 없는가?

나무가 푸르다고

가을이 오지 않았는가?

 

 


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율법사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면서

다 아는 듯이 시험하려 묻는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주님은 이러신다.

'다 아는게 다 아는 것인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같은 얘기 해도

어떤 분은 성질을  

어떤 분은 아주 기뻐하기도 한다.

 왜 인가?

나름의 색안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색안경은

주님의 말씀을 올바로 지키려는

이스라엘 인들을

바리새인으로 인도하였다.

 인간의 認知의  한계는 너무나도 제한이 되어 있다.

 

 얼마 전 '스폰지'라는 모 방송국의 방영에서

마술사의 탈출 묘기를

분석하며

중심인식 이라는 말을 심리학자가 했다.

중심 만 보고

주변을 못보는 사람들의 공통적 인지 능력에 대하여

말한 것이고

그것으로 마술 사들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속이는 지 보여주고 있다.

 이

바리새인 율법사는

자신의 중심 만 인식하는 능력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서

다 아는 듯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주님은

' 네가 읽지만

 제대로 이해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역사가 증명하지 않는가?

신교

구교

감리교

장로교

...

순복음.

이단....

수도 없이 갈라지는 것은

인지의 차이 때문이다.

 

 

 

 
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읽는 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나와 있다.

 

올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속으로 자신은 그대로 다 했다고 생각하며

이웃이 누구냐고

멋지게 물어보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 
 

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사마리아 인에 대한 유명한 비유.

이것을 보며

몇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자.

그러려면

눈에 보이는 모든 자들을 다 사랑하면

내 생활을 어쩌나?

의사로서

모든 불쌍한 환잘 다 꽁짜로?

어디까지 해야 하나?

 

 


 
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이런 

칭찬을 어떻게 들을까?

 한계가 있지 않은가?

 내 인식 능력으로 어찌 해야 하는가?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마르다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이 많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예수님 오시니

접대를 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니

마음이 분주하다고 나와 있다.

분주한 것은

틀림없이 나쁜 것이다.

어떤 유명하신 분은

분주한 것은 마귀에 의하여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귀 자체라고 까지 표현할 정도로. ..

하지만

주님을 위하려는

그 깊은 마음이,

구제하는 게 나쁜 것일까?

온 맘을 다해

온 목숨을 다해

온 힘을 다해

온 뜻을 다해

분명히 마르다는 시행을 하거니와

무엇이 잘못인가?

 위의 예화대로 하려는

그 노력이 가상치 않다는 말씀이신가?

왜 이런 논리적 배반이

한 묵상 구절에서 나오게 되는가?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세상에 주님의 뜻을

어떻게 설명하여 주고

내 스스로 어떻게 해야

힘있는 삶을 허락 받을 수 있단 말인가?

 

 
 
41.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차이는

'염려와 근심'

'사랑과 긍휼'이다.

물론,

바리새인도

마르다도

주님의 이름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그 근본 마음은

긍휼과 사랑이 아니다.

주님의 명령이나

주님을 대접하기에 대한

부담이 우선이다.

 

 반면 마리아는

주님의 명령대로

온 힘을 다하고..... 해서

이웃을 도우는 태도는 아니지만

우선,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선이다.

 

 이것이 원리이다.

 

우리는 인지의 공백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일 뿐이다.

특별히 주하인은 개중에 더 심한 인지 장해를 가진 자다.

 이런 인지의 능력의 헛점을 가진

불완전한 인간 들은

특별히 큰 사상이라 생각되면

거기에 전 의식을 걸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이라는 대의 명분은

어떤 일이라도 하게 한다.

무서운 일

가장 사탄적인 냉정한 일 조차도

주님의 이름이라는 타이틀 만 걸리면

거침없이 해치우는 게 인간이다.

 

하지만

주님은

이것을 아시기에

두 예화를 걸어서

올바른 순서를 찾기 바라시는 것이다.

 

우선,

주님의 말씀 앞에 겸허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늘 가까이 해야 한다.

 

그리고는

말씀의 원 뜻인

사랑의 마음

긍휼의 마음에 맞추어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외적인 힘듦 등에 상관없이

성령으로 인하여

기쁨을 가져옴을 전제로 한다.

평화로움을 가져온다.

넓어진 영혼의 지평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환자 문제

이웃에 대한 구제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주님께서 하신다.

내가 못하는 것은

주님께 기도하고 내려 놓아야 한다.

정말 마음이 쏠리는 것은

주님이 시키시는 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할수도 있다.

 

 어제는

구정 전이라서

몇개의 선물이 들어왔다.

나눠 주고

한 개는 집으로 달랑 달랑 들고 들어왔다.

걸어오는 동안

낮에 전화왔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생각이 났다.

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 친구는

성장 환경 탓인지

받는 데는 익숙해도

베푸는 데는 인색하고

꼭 필요할 때만 전화하는....ㅎㅎㅎ....

그런 조금은 거북한 친구였다.

 주하인.

거북한것 참 싫어하는

인지의 장해를 가지고 있었던 바...ㅎㅎ

들고 들어가는 것.

아내가 참 좋아하는 과일인데..........

전화를 드는 순간

강렬하게 마음이 동했다.

'야..

 경비실에 내려왔다가 가봐...'

'그래.'

얼른 두고 돌아나왔다.

난,

요새

예전에 배우지 못했던

다양한 감성을 연습하고 있게 하신다.

그 연습의 기본 바탕에는

말씀이 있음을 난 확신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준행하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굉장히 흐뭇하다.

내 생각이 우선이 되는 것을 내려놓고

그 친구는 옳지 않아.. .라는

내 인지가

주님의 말씀에 앞서 가려는 것을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善을 행하는 것을  先으로 행하기를

결단하니

주님이 증거로

날 기쁘게 하신다.

평강을 주신다.

 이런 것이다.

아주 적은 아이가

아버지가 시키는 일을 겨우 해내고

힐끗 힐끗

겨우 고개 들어

아버지를 쳐다보니

아버지가 입가에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짓고 계셔서

마음이 전율하듯 기뻐서

갑자기 펄쩍 펄쩍 뛰어나가며

콧노래라도 부르는 것 같은..

 그게

실체감으로 온다.

그럴 때

난 성령 충만함을 느낀다.

내 표현대로

마음이 한없이 지평이 넓어짐을 느낀다.

점차로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어느새 내 영혼의 흐름이

선 순환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게 주님이 원하시는 것임을 느끼며

마음 한 구석이 하루의

오랜 시간 뿌듯해진다.

난,

내 인지의 부족 부분을

주님의 말씀으로

주님의 원리 가운데

이끌림 받기에

평강이다.

샬롬이다.

행복하다.

 

 주님은

나 주하인에게

남들,

착하게 커온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을 통해

하나하나 주님의 원리를 깨닫게 하시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 깨달음은 자주

묵상을 통해 펼쳐질 때가 있다 .

그럴 때 마다

이 묵상의 진행이 내 일생에

그대로 펼쳐질 것의

결과에 대하여 생각하며

난 가슴 뿌듯해 하고 있다.

또한

내가 묵상을 통해 깨닫는

이 주님의 원리가

세상 모든 자들에게 나눔을 하고

그 나눔을 통해

또 한번

주님이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는 체험을

곳곳에 계신 님들이 공유하고

그들에게도

내  느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하심이

나눔이 되었으면 하게 된다.

 

 오늘

사마리아 인과

마리아의

올바로 나감을 이해하고 있음이

참으로 감사하다.

 

 

적용

1.  주님의 말씀이 우선이다.

  성경 여섯 장 읽겠다.

 

2. 읽어도 주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자.

 

3. 사랑이 바탕이 아닌 것은 배제한다.

 

4. 주님과 이웃과 나의 손해를 강요하는 것은 배제한다.

 아무리 그럴 듯 해도..

 

5.  당직 서며 기도한다.

 

6. 주님 인도하심에 내려 놓는다.

 

7. 긍휼함과 사랑으로 마음의 폭이 넓어지기를 기도한다.

 

 

 

 

 

기도

 주님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배운 것

제 삶을 통해 그대로 유지되길 소원합니다.

늘 주님의 말씀을 접하기를 선택합니다.

말씀이 제 안에

올바로 인식될 수 있도록

주여 도우소서.

늘 성령으로 인도하셔서

지혜로 채우소서.

감동으로 채우소서.

그리고

견디지 못하는 실행의 의지로 절 미소서.

저항하지 않고 순종하는

차분함도 주소서.

주여

제 삶이 주님으로 가득채워져서

상황에 상관없는

평강으로 가득차게 도우소서.

그리하여

내 주위 모든 자들을 위해

주님의 영광드러내며

주님의 사랑을 만끽시키도록

그리 도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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