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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에서 ( 눅 9:29-36 ) 본문

신약 QT

구름 속에서 ( 눅 9:29-36 )

주하인 2008. 1. 31. 09:03

제 9 장 ( Chapter 9, Luke )

그때

그 시간

변화산 중에

저런 구름이

뜬금없이

쏟아져 내려

몰려들지는 않았을까?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1.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 
 주님은

새벽까지 홀로 기도 하셨다

때로는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고

- 형광색으로 투명하게 빛이 나셨을 것이다. 

  눈에 선명히 그려진다 -

때로는

피가 땀에 흐를 정도로

때로는

무아지경에 빠져 기도하셨다.

 그때

기도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틀림없이

피가 땀이 되는 기도는

'자신에 대한 기도'이시다.

물론,

그 자신에 대한 기도조차

온 세상을 위한 십자가에 대한 것이지만

어쨋든 겪으실 수 밖에 없던 고난에 대한

개인적 두려움을 기도하신 것은 사실이시다.

 오늘

형광의 기도는

무슨 기도셨을까?

 아마도

남을 위한 깊은 기도

세상에 대한 주님의 뜻을 잊지 않으시기 위한 기도는 아니셨을까?

차분한 모습의 무아의 기도는

주님의 사랑을 퍼부움 받기 위한

관상의 기도셨을 듯 싶다.

 

피와

형광빛

무아의 경지

 

그로 대변되는

주님 예수님의 기도의 깊이를 닮고 싶다.

주님 예수님의 기도의 방향을 닮고 싶다.

이제

소아적 기도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투명한 형광을 발할 정도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절대의 기도를 하고 싶다.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에너지를 받고 싶다.

 

   
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저희가 무서워하더니  
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산부인과 의사라서

군대 대신  대위 신분으로 무의촌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근무지였던 무의촌은

강원도 사북인데,

탄광촌으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강원도 산중이라서

아주 고지대의 '재'가 많았는데

그중 태백을 가려면 '싸리재'라고 국내에서 가장 높은 재를 넘어야 만 한다.

이 곳은 1268m 해발-맞나 ? ^^;;- 로 지나다 보면 구름 속을 지날 때가 많다.

 한 겨울에는 내리는 폭설과 더불어 안개보다 짙은 구름 속을 통과하게 될 때는

정말 섬� 섬�할 때가 있다.

 온통 어두움과 하얀 안개같은 구름으로 덮히면 두렵기 그지 없다.

사람에게 갑자기 앞이 안보이인다는 사실이 얼마나 두려울 것이라는 것이 이해가 간다.

 

 아직 잠이 덜깨어

헛소리를 하고 있는 베드로 일행에게

하늘로 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구름은

아마도 태백 싸리재의 그 구름보다 훨씬 짙어서

하얀 솜 같은 색으로

온 전신을 다 휘감지 않았을까 싶다.

그 안에서

하얗고 투명하게 바뀌신 예수님은

베드로의 가시권에서 사라져 보이셨을 것이고

어두운 밤

갑자기 하얀 운무에 쌓인 그 베드로는

겁이 덜컥 났을 것이다.

 

 어느 땐가

싸리재에서 폭설로 눈이 뒤덮혀

이곳 저곳에 차들이 도랑에 빠져서

차가 막혀 가지 못하다가

올라가려는 경사는 헛 바퀴 돌 수 밖에 없어

그 진한 안개 속에 라이트를 켜놓고

체인을 감으러

가시 거리가 1미터 갓 넘는

그 구름 속 도로로 나갔다.

바람은 내 몸 - 이 85키로가 넘는 육중한 몸-을 천길 낭떠러지로

밀어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두려웠다.

밖에나가서 쳐다본 

 하얀 색 내 차는

내리는 눈 속에서

구름 속에서

흔적을 숨겨가고 있었다.

그나마  켜놓은 실내등 불 속의

우리 식구들이 보이기에 그 나마 덜 두렵지,

나를 천길 낭떠러지로 밀어내는

그 강풍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뒤 트렁크로 가서 체인을 꺼내어

그 어두운 흰 대기 속에 쭈구려 앉아

체인을 바퀴에 감는 동안

불신자였던 당시의  나는 아내와 애들이 없었다면 

그 두려움 속에서 체인 작업을 마치고 무사히

싸리재를 넘어갈 수가 없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떨며 차 안에서 앉아 있을 수 밖에...

 얼마나 두렵고 춥던지

나가서 체인을 잡는 순간 부터

지금까지 흘려본 콧물 중에

아직도 그리 길고 큰 콧물이

줄기차게 나와본 적이 없을 정도로 대단했었다. ㅎㅎ

 체인 친 차도 '덜덜덜'

 운전하는 나도'덜덜덜'

구름속의 그 고생은 지금도 기억이 선연하다.

 

베드로가

정신 못차리고 맞은 그 구름은 두려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나는

흰눈 속에 하얀 차의 실루엣 안에 포근한 아내의 눈빛이 보여지기라도 했지,

저 당시의 온전한 깜깜함과

아주 하얀 구름은 겁이 나기에 틀림이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글을 쓰는 동안

그 구름 속이 포근한 느낌이 든다.

아내의 눈빛과 아이들이 나를 믿고 잠든 뒷 자석,

온 세상이 하얗고 까만 상태에서

그 차안 만 따사롭게 날 비춰주는 연상을 하니..

그때는 불신자였다.

하지만 예수님 믿었더라면

아마 떨면서 콧노래라도 했을 것이다.

'나~~아~~아~~가~~~트트트~~은

죄~~죄죄죄~~이 ~~이히히히인~사~~아아아아알리~비~~비비 ~~시~~인~~

그 ~~~으으으 ~~으은혜에에에~~노~오오오~~ㄹ~~라~바바바바바~~♪ '

(혹시 모를 분을 위해 곡명을 말하자면  '나같은 죄인 살리신- 405장' ㅎㅎㅎ )

 

 베드로도 그랬을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있었더라면

그 구름이

지금의 미세먼지로 오염되어

깊이 들이마시기에

폐속이 아린 것 같은

공해의 안개가 아님을 금새 알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구름은 천상에서 내려오는 천국의 구름이고

그것은 깊이 폐부까지 들여 마시면

너무나도 좋은 것일 것이고

눈 앞에 펼쳐지는

온통 하이얌은

두려움이 아니고

포근함임을

아주 금방 알 수가 있었을 것이다.

 주님은 흰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추신 것이 아니고

흰색 포근함 속에

그 분의 투명한 존재가 녹아들어

온 천지

마시는 모든 대기 안에 그 분이 계심을

눈으로가 아닌

폐부로

육체가 아닌 영혼으로

느낄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황홀이지

결코 두려움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우리는 안그런가?

주님의 계심을

구름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고

현실의 일에 혼란 스러워 하고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지 않은가?

 주님은 어디에도 계시다.

보이지 않는 속에 스며 계시다.

그 보이지 않음은 두려움이 아니고

따스함이다.

포근함이다.

기회다 .

그 분은 눈으로 보고

육체로 느끼지 않아도

들이시는 숨에 계시고

내 영혼에 스며 계시다.

 

적용

 

1. 주님의 기도를 닮자

 주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한다.

형광색 투명함은 '중보기도'와 '주님의 뜻에 순종코자 하는 결단'의 기도 이고

피땀을 흘리는 기도는 자신의 문제에 최선을 다해 주님께 내려 놓는 기도고

무아지경의 묵상의 기도는 주부적 관상기도이다.

주님과 함께하는 기도이다.

 

2. 구름 속

 시야가 보이지 않는 때가 생겨도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다.

주님은 어디에도 계시고

주님이 어디에도 계심을 늘 상기하는 게

지금까지의 나고

그렇다면

그 분은 내 폐속에도 , 눈 속에도, 어디에도 계신다.

난 어디에 있더라도

안전하고 자유롭다.

난 그걸을 믿는다.

깊이 들이키며

난 주님을 묵상한다.

아..

감사하다.

흰 구름 속

포근한 담요 속...

 

3. 성경 여섯 장 읽겠다.

 

4. 전인치유 최선을 다해 주님을 만난다.

아침 부터 목이 아프고 감기 기운이 있다.

소리가 안나온다.

주님에게 맡길 준비가 되었다

몇 년간의 경험이다.

 

5. 기도한다.

주님을 닮은 기도

 

 

 

기도

 주님

구름을 상상하며

주님의 계신 곳을 느꼈습니다.

눈이 안보이는 두려움을 상상하면서  

주님 믿지 않던 시절

그 싸리재의 두려움을 상상했습니다.

같은 상상이지만

그 시절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은 조금 다릅니다.

그 시절은

강력한 의지였지만

이제는 주님께 내려 놓은 안전감의 편안함으로

똑같은 구름 속에서

강풍을 맞을 수 있을 듯도 싶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여

아직은 때때로

구름 속에 갇혀 발버둥 할 때도 있지만

그 구름이 어쩌면 포근함일 수도

어쩌면 주님을 호흡할 수 있을 기회일 수도 있음을

이제는 조금씩 느끼고 있습니다.

부디 간절히 소원할 것은

주님 예수님의 그 기도의 모습을 닮게 하소서.

피를 흘리는 내 기도를 하게 하시고

희고 투명한 형광빛의 남을 위한 기도를 하게 하시고

가끔은

주님의 주도적인 사랑을 부여 받는

주유소 같은 사랑의 관상기도를 하게 하소서.

현실의 눈을 가로 막는

원치 않는 고난의 구름이

솜사탕같이 느껴지게 하소서.

주님이 어디에도 계심을 느끼게 하는

심호흡하는 계기가 되게 하소서.

약함이 강함되게 하시고

그리하여

주님을 기뻐하게 하소서.

주님을 위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그러다가

그러다가

주님 오시면

주님 부르시면

잠자듯

주님 곁으로 가게 하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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