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선택된 소수에게 만( 눅 9:18-27 ) 본문

신약 QT

선택된 소수에게 만( 눅 9:18-27 )

주하인 2008. 1. 30. 13:43

제 9 장 ( Chapter 9, Luke )

 오직

주님 만 봅니다.

주님을 향하는

이 푸른 마음을

잊지마소서.

주여.

 

 
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수많은 자들이 따르나

주님과 함께하는 자들은

소수다.

 

 그들은

기도하는 자들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따로의 기도를 하는 자들이다.

주님의 뜻을

깊이 알 자격이 있는 자들이다.

 

 

22.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주님은

그들에게만 말씀하신다.

그러나,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다.

죽는다는 소리다.

고난당한다는 소리다.

듣기 싫다.

무섭다.

싫다.

왜 내가 들어야 하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죽음같은 고난은

3일 후에 끝이 난다는 것이다.

들리지 않는다.

오직 고난 만 두렵다.

부활은 잊혀지려 한다.

너무나 힘들고 두렵고 외롭기 때문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이 고난은

버리지 못하는 진득진득한 고난에 그치지는 않는다.

자신의 안에 고립된 삶에 머무는

고난이 아니다.

주님의 그것은

오직 남을 향한 고난이다.

그 분은

오직 구약의 모형적 제사를

단 한번의 실제적 제사로 들이시기 위해

이 땅에

어린 양으로

제사장으로 오신 것이시다.

그것은 우리 인생의

끝없는 고통을 짊어지고 가시기 위해 그러신 것이다.

십자가에 그 모든

희망없고 기약없는 고통을

일시에 다 던져 올려 묶어 버리기 위해서 그러신 것이다.

그러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주님이 그리도 반기시길 원하시는

천국의 문을 열고

들어올 길을 만드신 것이다.

 

 부활

 천국

 

 안다.

오랫동안 들어서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안되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바보나 이단이나 지진아 될 것 같은 분위기로

이야기 하기에

그래 부활이 너무나 고맙고

천국에 갈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이 너무나 감사해.. 하지만

가슴 깊이 부활과 천국이 형상화 되지 못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기에

작은 고난 만 있어도

부활과 천국에 대한 소망이 사그러지고

그러기에

세상은 온갖 적은 유혹에도

온통 마귀들이 뒤끓는 듯 소란 스럽기만 하고

그러기에

날이 갈수록

기독교의 세속화가 이루어지고

기독교인의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오늘

주님은

소수에게만 이야기 하신다.

 고난은 그냥 고난이 아니다.

남을 위한 고난이다.

고난이 있지만

이게 소아적인 내 삶에 따른 고민이나 갈등이 되면 안된다.

 고후12:10)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일상에서 겪는 어떤 고난도

주님을 위하여 받는 고난으로 받으면

이는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된다.

그것은 약해지지만 강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의 원하시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것이

주님이 오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고난을 따라가는 것이다.

남을 위한 고난은

자신을 위한 비천한 인내보다는 훨씬 힘이 있다.

그것은 강함이다.

강함이 영혼 속에 쌓이기 시작하면

그 강함은 그 영혼의 지평이 넓어지게 되고

어느 순간에

주님이 원하시는 때가 되면

그 영혼은

주님 예수님이 무덤에서 나오시듯이

나방이 꼬치를 열고

부화하듯이

놀라운 부활의 새 지평이 열릴 것이다.

이것은

온통 그를 붙잡고 있던

세상의 번뇌와 갈등과 고민 등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로 부터

초연해 질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은

이 땅의 천국이다.

어디를 가든 주님의 평안이 함께 하신다.

놀라운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신다.

 주님의 십자가

이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이타주의가 내 속에서 이루어 져야 할 뿐더러

세상과는 다른

주님과의 깊은 교제가 있어야 하며

세상의 원리와는 조금은 다른 만남이 있어야 한다.

주님이 원하시지 않으시는 것은

하시라도 털고 일어날

제자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적용

 

1. 비교, 억울함, 욕심을 내려 놓겠다.

 난 안된다.

오직 주님이 도우셔야 한다.

주님 만이 모든 것 다 하실 수 있다.

주님께 맡긴다.

주님을 위해

주님의 제자가 됨을 위해

이 땅의 천국을 위해.

천국을 위해.

 

2. 부활에 대하여 묵상한다.

 나에게 부활은 어떤 의미인가?

새로 태어난 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과거로 부터 자유롭고

미래의 걱정으로 부터 자유롭고

현실의 비교로 부터 자유로운

한결 같은 주님에 대한 충성심으로 흔들리지 않는 삶이 그것이지 않을까?

 

3. 성경 여섯 장 읽겠다

 

4. 천국을 사모한다.

 주님.. .한번 보여 주세요

 

 

 

 

기도

 

 주님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주님의 12제자 같은 자는 비록 아닐 지라도

주님의 가까이 가고 싶은 자로서

주님과 같은 고난을 십자가로 지라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난 안되는 데..

비록

이 세상의 모든 소유가

티끌보다 못함을 알고

하시라도 털라시면

미련없이 버릴 것 같은 막연한 의지는 느껴질 지라도

아직도 주여.

버리라시면

눈물이 날 듯하고

허탈하기 이루 말할 것 없을 것 같고

남들은...이라는 생각에 견디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런 마음이 듭니다.

단지 허무 맹랑한 상상이라도 말입니다.

주여.

고난을 지라는 말씀에

지금도 힘이 많이 드는데..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턱하고 막히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내 짐이 아니고

남의 것을 지는 대신의 짐이라 생각하니

한결 가볍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제

부활이라는 대 사건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감사하고 귀하지만

막상 부활의 실체에 대하여 생각하면

흐린 창문 밖 같은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디 간절히 빌 것은

부활의 그 놀라운 사건이

제 인생에 인격적으로 느껴지게 하소서.

지진아의 부탁 같은 것 올시다.

천국이 뚜렷이

제 가슴에 각인 되도록

은혜를 주소서.

환상이라도 보여 주소서.

주님

부족한 저에게

힘을 주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