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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힘내도 될 이유[행14:1-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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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힘내도 될 이유[행14:1-18]

주하인 2024. 5. 31. 00:15

부제)지쳐감과 환희 사이의 굴곡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좌절하지 않아도 될 깨달음

        주님으로 인한 항상성, 내 나아갈 바

(펌)

.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2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인간적 실망과 어쩌면 '사역에 절망의 싸인'일 수 있을

'마가요한'의 일을 딛고

'더 나아가' 도착한 '이고니온'에서는 

'두 사도가 함께' 합력하며

'말씀'으로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되는 '부흥'..

이글거리는 번성을 누린다. 

아.. 철저히 조금은 민감한 흐름에 대한 내 인간적 감성에 '번성'으로 느껴진다는 말이다 ^^;

 그러나 또 여지없이 

그 흥황함 뒤에 

선동 ,악감.. 의 사단의 음모는 일어나고

'두 사도(이 표현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하나님 말씀, 은혜, 복음, .. 가운데 사단의 영적 방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이 인간사의 흐름, 갈등, 광야의 고통에서 두사도가 합력하여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모본 !)'의 합력으로

잘 나가는 듯하던 '이고니온'의 사역을 뒤로하고

 

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도망치듯 탈출한 '루스드라와 더베' 근처

'거기에서' 다시 '복음'을 전하였다.

 

 사도 행전적 시대,

성령이 정말 이글거리며 임하던 시대가 아니었으면

과연

저 인간적 실망과 좌절, 부흥, 절망, .......의 롤러코스터를 딛고

여전히  '두 사도'의 행로가

변함없이 아름답게 보이는게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스물거리며 다가온다 .ㅠ.ㅠ

 

 그럼에도 그러한다.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그렇다.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이게 오늘 내게 허락되어진 

말씀의 레마처럼 다가온다. ^^*

틀어놓으며 잠든

'유 ㄱㅅ' 목사님의 설교 중

'고멜'.. 창녀 아내와 결혼 시키신 '호세아'님을 묵상하시면서

그 호세아님의 심령에 대하여 명쾌히 설명하시는게

언뜻 잠귀로 들려왔다.

 

그 심사와 어찌 안 비슷한가?

 

 어쩌면 이 삶...

내가 그토록 어둡게 젊은 시절을 묶이고

지금도 틈만 나면 다가오는

그 '버거운 느낌'..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도망가고 싶은

'버거움'의 비슷한 느낌들의 정체가 이런 거 아닌가?

 

 좋지만 나쁜 일이 도사리고 있어

언제든 뒤 엎어질 것 같은.. 

웃고 잇지만 웃고 있음의 허무함,

기대하고 다가가면 포기하고 도망할

대단했던 '성령 시대에서의 '마가요한'같은 존재들...

 부흥이지만 웃기엔 조금은 ........그러한...  

하나님의 뜻으로 그 모든 것 잘 받아 들이고

'두사도'같은 '합력'의 기쁨도 가지지만

끝없이 되풀이 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원상복귀'의 도피.......좌절..........뭐 .. .그러함에 대하여

'지쳐감'..

 

 그렇다 .

지쳐감에 대한 '묵상' 아니실까?

 

 이들이 과연 

뜨겁고 열정적인 '성령'의 밀림에 의해서만

이렇게 했을까?

 그렇다면 그들, 사람으로서의 

저 롤러 코스터는 '내면적'으로 어떻게 받아 들여서 

그들 안에 녹이고

'사도'로서

'복음전파의 최첨단 사명자'로서

한결 같은 '항상성'.. 항상 일정한 고른 마음을 

어찌 유지하였을까?... 가 

질문이 아닐까?

 내 내면에서 자꾸만 부딛쳐오는 부담감.. 에 대한.. .

그리고 앞으로도 붙들고 살아야 할 

올바른 ........?

(펌) 앉은뱅이가 jump up,뛰쳐 일어나다 ^^*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NIV; jumped up and walk  뛰쳐 일어나 걷다)

 조금 '유다른' 현상을 (아.. 기적은 너무도 많이 일어나던 시절이지만... 왜 갑자기 여기서만... ?.. .이 물음이다 )

갑툭튀 ^^* .. 

 

 이런 기적들을 '이고니온'에서 

말씀과 함께 보였더라면 

도망하지 않아도 되었을 거 아닌가?

 

 표현을 보라.

 한글 번역을 통해서와는 전혀 다른 확실함이 NIV에서 알 수 있지 않은가?

마치 '전기'를 쏘인듯 '일어나라'는 선언에 

펄쩍 뛰쳐 일어나는 앉은 뱅이...........!...  와우.. 다.

 

 마치 적에게 쫓겨 도망가는 어떤 만화영화의 주인공이

손에서 전기를 쏘며 주변의 앉은 뱅이를 일으켜 세워 

자신의 뒤를 막아서게 하는 것 같은 특이한 장면..ㅎ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그러하자 루스드라에서 한마디로

'난~~리'가 난다. 

 

사람들의 칭송이 대단하고

구름떼처럼 몰려들며

그들을 '신'으로 칭송하며 올리려 한다.  

 

그러자 '어찌하여 이러한 일.. 이런 헛된 일을 벌이느냐' 하며

한사코 사양한다. 

그리고 또 다시 대 부흥.

 

 당연히도 '성령'의 하심.

사도행전의 시대에 일어나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

 

 그러나, 왜? .. 다.

이고니온에서도

'말씀' 뿐 아니라이러한 기적도 보였더라면..........(예수님 때는 또 안그랬던가? .. 굳이 수없이 많이 보이던 기적들을 인간적 눈으로 필요한 때에 안쓰시고.. ㅠ.ㅠ).. 이 

아쉬움과 함께 의구심으로 다가오려 하지 않는가?

 

 그때의 '바울님과 바나바님'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게

자신들의 '사역'에 도움이 될 것과

하나님이 싫어하시니...........라는 성경에 표현되지 않은

자신들 만이 아는 규약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가요한'의 배반 ^^; 등 인간적 갈등 사건으로 인한 

'두 사도 '사이의 갈등 역시 없었으리라.

매사에 다 하나님의 뜻으로 포기하고

받아 들이는'인간적 결심' 내지

판단이 아니었을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도망'..'이적'.. '말씀만으로'.. 

'저 놀라운 기적들을 자제함'......... 

그 모든 것.. 

자연스러운 흐름 가운데 있었음을 말하는 거다. 

 

위의 묵상 중.. 

'지쳐갈 때' .........는

'사역'이 일이 되고

원칙으로 서로 간의 약속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지쳐감'에 대한 묵상이 옳을 수 있다 .

 

 하지만.. .그마져

'성령' 하나님이 운행하시는 대로......

흘러 가는 것...

당연하지만

'하나님을 앞서지 않는 '사역의 행태........

자연스러운 흐름...안에서 있음을 의미한다면...?... 이 

깨달아 지는 바다 .

 

 이러한 거다.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나.

 

'자주도 지치려 한다' .

굳이 저 분들 처럼 '사역'의 길에 나서지 못하는

소시민적 신앙인지만

나에게는 나의 '삶의 방향' 가운데

'하나님의 뜻' 가운데 

그래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려 몸부림치고 있다. 

 

그런데.........

내 의지와는 하나도 상관없는 일들이

오늘도 다가오고

이 들어가는 나이와 더불어 눌리려 한다. 

 이럴 때 '표적'이라도 확하고 보이셨다면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왜... ?... 하는 

내면의 물음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

하나님의 뜻이시다. 

하나님의 시간이시다. 

말씀으로만  .. 

말씀을 통해 흐르는 '성령의 어루만지심'이든지

외적으로 드러나는 '전율의 기적'이든지

그 어떤 방향이시든지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방법대로 이끄실 것이심이다. 

 

문제는

도망하게 되는 '현실적 상황'이면 도망하여도 되고

'절망'하는 세상적 절망들이 포위하면

적나라하게 절망해도 된다.ㅣ ㅠ.ㅠ

힘들지만... 

하지만... 그래도 해야할 일.. 

'두 사도'가 어우려져 '말씀'을 전하고 보이는 것.. 

하나님의 영광은

내 일상에서 틈날 때마다 

의지적으로도 해야한다는 거다.

 

 잠시 그 얼굴을 내게 숨기시사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정말 '지치는 순간'이라도 

그냥 끝까지 놓치지 말고 

주님의 일을 하다보면

또 어느새 '주님께서 살아계신 표적'들을 

마구 드러내 보이실 수 있다.

 

그때 되어도

난.. 드러나서는 안된다. 

전혀..........

 

 보라.

안보이신다고 안계시던게 아니라 하지 않는가?

 일상에서 보여지는 일반적 은총만 가지고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느끼게 되는 

'만족'에 대하여 말씀하시지 않은가?

 

 그렇다. 

지치는 것.

사역이라는 큰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성령의 허락하신 은총으로 받은 능력에 너무 감탄을 하며

잘 나가지는 현재에 대하여 과도한 신뢰와 자신감으로 

자칫

하나님을 앞서는 혹은 최소한 동격으로 생각하여지는 오류가 범해지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절망'에 너무 절망하지 않고 

실망에 너무 실망하지 않아 

쉬이 지침을 좌절하지 않게 된다. 

 

과도한 기쁨과 

과도한 절망은

아직도 번연한 내 자아의 흔적이다. 

십자가에 달아 말려야 할 내 자아... 말이다. 

어찌 그게 하루 아침.. 

내 의지로 가능한가?

 매일 매일 말씀으로 날 돌아보고

내 모든 '감정'의 뒤에 숨은

어쩌면 내 자아의 틈을 밀고 들어오려는 사단의 소리들을

하나하나 들추어 내야 하지 않는가?

 

오늘은 '지쳐감'과 '환희 사이'에 존재하는 

내 자아의 오류를 들여다 보라신다. 

 

 그렇습니다. 

주여.

어쩌면 지금의 내 삶의 위치.........

어느 정도는 예견되었던 내 젊은 시절의 불안한 끝의 모습을 띄고 있는 듯도 합니다. 

아무도 없는.....

홀로만의 ..............

 

하지만...

저들 사도님들의 목숨의 위협과 

그 사이에서 또 배반의 절망과 

육신적 곤란함에 비할바가 있을까요... 

하지만 저들은 지치지 않아 보입니다 .

 

그리고 또 그 지침을 

놀라운 기적들을 눈으로 목도하고 픈

인간적 열망을 발하지도 않음을 보고 있습니다. 

 

마치 제 이 지치려 함의 상태에서는

가지고 있는 능력을 마치 이리 저리 전기 쏘듯 쏘아

앉은 뱅이가 튀쳐 일어나고

죽은자가 벌떡 일어나 절하는 통쾌함을 목도함으로 

스스로를 확인받고 싶은 유혹이 생길 것도 같지만

저들은 그냥.. 

그대로 흐르고 

아무렇지 않게 또 루스드라에서 

'말씀'대신 '기적'으로 우선.. 사역을 또 시작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주여.

저 크게 흔들리지 않는 흐름을 부러워 하나이다. 

그 내면 깊숙이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셔서' 허락하신

두분의 저 순간의 내면의 흐름을 

닮고 싶습니다. 

 

 기뻐할 일에 너무 크게 기뻐하지 않고 

절망할 일에 너무 크게 좌절하지 않으며

그냥.. 그 상태에서도 하나님의 일,

복음 전파에는 

하나도 감정적 방해를 받지 않고 

또 새롭게 그 자리에서 열렬하면서도 조용히.. 

차가우면서도 강렬히......전하는 

저들의 저 '항상성'을 닮고 싶습니다. 

 

지치는 일에 덜 지치길 원합니다. 

주여.

제게 힘을 주소서.

그 얼굴을 제게 비추사

오히려 힘이 나게 하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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