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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주의 뜻일 수 있다면 [행15:36-16:15]

주하인 2024. 6. 4. 07:48

부제)그 어떤 것도 그럴 수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하소서, 그리되게 하소서

.

 

[행15:36-41]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 깨달음들 

 

1.

 인간사의 피할 수 없는 갈등들

. 마가 요한이 다시 돌아올 때의 그 마음

. 돌아온 마가 요한을 '조직'에서 그냥 인내하며 바라본 바울의 마음

. 착한 바나바가 '바울'과 다툴정도로 '마가요한'에 대한 다른 시선

 맞는지 틀리는 지가 아니고 다른 것임을 결과로 알게 되지만

 남의 판단을 함부로 정죄하지 말자

. '서로 심히 다투'었다. 

 '피차 갈라섰다. '

 원수 같이....누구 ^^;.. 들 같이... 

 어차피 '주안에서 ' .. '주님의 이유로'.. 갈등을 통하여

 복음은 더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지 않던가?

 

2.

 그 후 '바나바'님은 성경 속에서 이름이 사라졌으나

 마가요한 (아래에 AI인 Copilot의거하여 그에 대하여 정리한 것 긁어다 놓음^^*)은 

 마가복음 및 바울과의 협력으로 화려하게 ^^; 다시 등장하였다. 

 생각이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

 그게 일반적인 상리에서 어긋난 과도한 잘못이 아니며

 하나님 원리 안에서 벗어나지 만 않는다면 

 무엇이든 '큰 눈으로 바라 보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어느 것도

주님의 허락 하에 있지 않은 일이 없음이

새삼스럽다.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3.

 크게 싸우고 피차 갈라선 바울이

 또다시 '주의 은혜'를 이유로 (^^;; , "싸운자 .. 다툰 자.. 갈라선 자.. 가 주의 은혜를 들먹이는게 쑥스럽지 않은가 .. 넉살 좋게..?.."가 사단의 소리고 그래서 좌절하여 멈추게 하는 게 영적 어두움의 소리라면, "그래도 주의 시계는 돌고 주의 시간은 간다..난 주의 길을 갈 뿐이다.   내 이리 다툼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은혜가 여전하니 그것은 '옳다'.."가 맞음 아니던가?.. 주의 은혜로 이루어진 주의 은혜를 선포함^^*)

과감히 '실라'를 다시 택하고 

형제들에게 당당하게(싸움에도, 갈라짐에도 불구.. 쪽팔려 하지 않고 ^^;; ,  난.. 이 모든 일에 주의 뜻이라면 당당할 수 있음을 본받아야 한다.) 

주의 은혜에 부탁해달라는 말과 함께 

전도여행을 떠난다.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그리고 그 결과 '교회가 견고'해 졌다 

싸우고 다투고 갈라진 '바울'에게서 .. 말이다. ^^*

 

[행16:1-15]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4.

 더베와 루스드라.

그 부흥과 절망의  영적 심리적 롤로코스터를 (비록 바울님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지만)  타게 하고

돌로 쳐서  그를 죽음직전까지 몰고 갔던

그 '더베와 루스드라' 에 또 다시 이르렀다. 

 그리고 그 곳에서 또다시의 부흥... 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불안.

미래에 대한 괜한 어두운 상상으로 가슴졸임...*&^%$

바울님에게는 그런게 일체 없는 것 같다. ^^*

그냥..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허락되어지면 허락되어지는 대로... 다. 

이 분...

바울님은 '아~ 무' 인간적 스트레스나 두려움이 없나 보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제자들을 만나고

거기에서 '디모데'라는 걸출한 인물을 길러낸다. 

 

 그렇다 .

그는 '세상의 두려움과 인격적 갈등에 대하여서는'

한단계 떨어져 바라보는 거 같다. 

 별 미움도 없고

자신에 대한 큰 '자의식'도 없다 (뻔뻔한 건가?...ㅎ.. 아니다. .. 그의 흐름은 그냥 자연스럽다.. 분노 뒤의 선택도 갈등도... 두려움과 롤로코스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한 위축도 없다 ... 초연한 거다.).

뻔뻔함을 넘어서는  초연함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중생'된 자의 어떠함...

그게 주님의 뜻이라면

달라 붙는 모든 '사단'의 흔듦에 대하여

외부적으로나

내적으로 당당함.. 초연함.. 말이다. 

그리고 이루어지는 '누구나 다 아는 ' 대 복음 전파의 현장......!

 

 그 이유를 16장 15절에서 

'성령이 ' 전하게 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구절에서 

극명히 알 수 있었다. 

 

 그의 다툼,

그의 갈등...

추후에 알게 되지만 '마가요한'에 대한 편협하고 왜곡된 판단(물론 그 시기의 요한에도 덜 성장한 미숙한 문제와 바울의 덜 다져진 조급함이 있어서 그랬겠고 추후 피차 성장하고 은혜와 성령으로 무르익은 성화의 이유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지만...)... 모두

들어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복음의 세계화'에 들어쓰신거다. 

 

 오늘 바울처럼

내게 필요한 것.

 

다툼, 갈등... 없어야지만 

있다면 

그게 주님의 일 중에서 이루어진 판단 착오와 

그로 인한 갈등의 결과로 생긴 어려움이라면

다시 한번 '주 앞에 내려 놓고' 열심히 살아가도 될 문제라는 거다. 

 

 그 어떤 일. .

심지어는 '죽을 위기 있어 피한 더베'지역의 

또 닥칠 위험이 예상될 '부흥'일 지라도

아니면 잘나가지만 '내 의견'과는 아무 상관없는

'성령의 막아섬'이 있을 지라도 

우리느 흔들릴 일이 없다는 거다. 

 

현재, 지금.. 내가 '주님의 말씀'을 또 이렇게 

묵상하고 존중하고 바라보고 잇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주여.

너무도 피곤한 어제 였습니다. 

단잠을 자고도 정~말 일어나기 싫은 아침이었지만

제 의지와는 상관없는 깨우심,

습관화되고 버릇된 

옳은 깨워짐으로 일어나게 해주심.. 

주님이 정말 기뻐하실 줄 압니다. 

 

그렇습니다. 

제 안의 어떠한 갈등이 몰아치고 

현실에서 '남의 눈치'를 살펴야 마땅할 일임에도

오늘도 또 당당하고 담담히.. 

아니 오히려 아무런 두려움 없이 

하루를 말씀과 함께 시작합니다 .

부디 바라옵기는

주의 은혜를 어제보다 조금만 더 허락하시고

성령으로만 이끌리어 사는 자되게 하소서.

 

 더 간절히 바라올것은

그게 제 '논리'에 어긋나고 

제 생각에 맞지 않은 거 같더라도

주님의 성령의 뜻이 아니시라면 

막아서심을 순종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여.. 

어제부터 갈등하는 문제 .. 아시지요?

다 밝히지는 못하지만

그냥 이게 주의 허락하심이라면 그대로 나가게 하시고 

아님.. 편하게 해결해주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주님.. 

제 모든 생각을 판단하시고 주장하실

제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가 요한에 대하여)

 

마가요한, 즉 요한 마가는 초기 기독교 교회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마가복음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는 바나바와 친족 관계에 있었으며, 바나바의 외삼촌이었다고 전해집니다12.  초기 교회에서는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 기도 모임 장소로 사용되었고, 이곳은 많은 성도들이 모여 기도했던 곳으로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2.
 바나바 자신도 초기 기독교 교회의 중요한 인물로, 그는 격려와 위로의 은사를 가진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과 함께 여러 선교 여행을 다녔으며, 특히 사도행전 11장에서는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며,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라고 권면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1.

 

 

요한 마가와 바나바의 관계는 초대 교회의 선교 활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들의 친족 관계는 성경에 기록된 여러 사건들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

 

 

추후 바울과의 이어지는 관계

 

바울과 마가요한의 관계는 복잡하면서도 결국 화해와 협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초기에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요한을 제1차 선교 여행에 동행시켰지만, 마가요한이 여행 도중에 돌아가면서 바울은 실망했습니다1. 이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논쟁이 발생했고, 이것이 제2차 선교 여행에서 마가요한을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1.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바울은 마가요한을 용서하고 그의 사역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마가요한을 자신의 사역에 유익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고,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서는 마가요한을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요청하기까지 했습니다2. 이는 바울이 마가요한의 변화와 성장을 인정하고, 그를 다시 신뢰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바울과 마가요한의 관계는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서로를 위한 사역자로서의 존중과 협력으로 발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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