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항상 계시는 하나님(벧전1:13-25) 본문
늘
저와 함께 하시는 줄
제가 압니다
비록 지금
사정은 이러해도
주여
주께
자리 내어드리오니
제 안에
앉아 주소서
항상
그러소서
내 주여
23.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난.. 매일 '부활'한다.
주님 예수님의 보혈과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렇다.
점점 느려지고 옅어지긴 하지만
죄와 그로 인한 화살이
나와 대상으로 하여금 자주 죽을 것 같은 힘듦을 초래하지만
그래도 다시 살아나 힘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은
예수님의 부활 탓이다.
그것.
머리속의 유희가 아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신 은혜의 결과고
그게 믿어지고
일상에서 점점 더 맑아지는 이유가 되고 있다 .
그런데
오늘 말씀에
거듭난 것이 '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라 신다.
난.. 당연함을 깨우치고 있다.
처음 내 영혼이 꽃피우듯 살아난 경험,
그 강렬한 첫사랑,
성령님의 강권적 임재함의 기쁨의 폭죽 같음은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그때 그게 '부활'의 기쁨,
천국의 기본 감성,
샬롬의 느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부활의 결과임을 정리해서 느껴지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말씀,
말씀이신 하나님.
말씀으로 임하시는 '로고스'의 하나님의 실체를 깨달아가며
일상에서 점점 더 적용되어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기쁨' , 샬롬임을 알게 되었다.
매일 부활하는 자,
점차로 부활의 회수가 줄어들어
덜 부활해도 깨끗한 자 되기 위하여
말씀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준행할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되고
그것이 나를 궁극의 목적지
하나님이 계신 그 '천국'에 들어갈 자의
마땅히 정결해질 유일한 방법임을
난 깨달아 간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활된다...라 선언 하신다 .
그런데 매일같이 말씀에 감전되어
교통하면 좋겠지만
부활하기 위해서는 죽는 조건이 있음인 것 처럼
사망의 화살들이 우리를 늘 가만히 두느냐가 관건이지 않는가?
'영적 전투'
죽을 때까지 벌여가는 그 연단의 허락되어진 과정 속에서
말씀이
딱딱한 논어나 맹자 같이 느껴지도록 만들고
도덕책처럼 무게로 다가오는 때는 없는가?
당연하다.
그 질곡의 시간에
그렇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고
부활의 당연함이 존재하지 않던가?
아니다.
하나님은 늘 살아계셔서
그 때에도 안타까운 맘으로
날 지켜보고 계심을 난 안다.
'말씀'에서 그리하셨고
몸으로 느끼고
영혼이 체휼하고 있다 .
그것을 오늘
'살아있고'
'항상있는..'이라 하셨다 .
힘이 된다.
항상 살아계시고
항상 곁에 계신
내 아버지 하나님.
말씀으로 다가오셔서
은혜와 감동으로 흔적을 보이시는
내 하나님이
나를 영원토록 버리지 않고
함께 하신단다.
오늘.
하루가
또~ 밝았다.
비온 후라서인지
요즘 며칠 하늘이 너무 맑다.
특별히 이곳 충주, 산 속의 아침과 저녁은
너무나 상쾌하여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어제는 퇴근하다가
메르스로 산기슭 쪽 뒤편출입문에 앉아서
출입하는 분들의 인적사항을 적고 체온을 감시하는
당직 직원을 잡아 끌어
우리 숙소 뒤편의 산속 정자 쪽에 걸려있는
마지막 햇살의 황홀함을 같이 보길 권하며 그랬다.
' 이곳에 사시니 이곳의 아름다움을 모르시지요?'
그러니 그렇단다.
' 이 황홀한 공기를 마시며 남은 몇시간 더 힘내세요' 하니
기뻐한다.
나.
조건이 이곳에 이사온 후 이전보다 들어가는게 더 많다.
그러나 '행~복'하다.
금전적인 손해와 가족과의 이별 ㅎㅎ 이 조금은 그렇지만
매사에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증거로 보이니
아름다움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황홀한 아름다움'으로 느껴지고
싱그러움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아 ' 절절한 싱그러움'으로 보이며
어려움은 감경되어 '견딜만한 그러함'으로 스쳐지나가게 되어 버려진다.
이거.
내 '부활'의 증거 아니던가?
이 나이 ..
생물학적으로 꼬부라져도 한참 꼬부라지기 시작할 나이.
심정적으로 자꾸만 두려웁고 외로와져야 하며
걱정은 산더미처럼 늘어야 할 이시기에
나..그래도 '행복'하다.
그거.
내 자주 그러는 '부활' 탓이다.
어쩐 지 자꾸만 벌~떡 일어나진다
원하지 않아도 몸을 따라 흐르는 '생기'가 느껴진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감사하며 감동해진다.
저항하지 못하는 내 특성으로 인한 것에
아직도 속절없이 넘어지긴 하지만
그 죄에 대하여 더 깊이 회개한다.
그리고는 벌떡~ 다시 일어난다.
더 무거움으로 다가오는 '자책'은
털푸덕 하고 집어 던져 놓게 된다 .
하나님이 말씀으로 그러하셨기에 그렇게 된다.
나.
그 모든 내 변화를
'예수님의 부활'을
내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
부활되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니
생기가 돋아 새싹이 나고
무성한 풀이 돋아나며
꽃을 피워야 하지 않는가?
나.
꽃도 피워낸다.
지금까지 10년간 발칙한 큐티 꽃을 피우고 있다.
일상에서 서서히 발전한다
매일 조금씩 조금씩 인격이 나아지고있는 것 ^^* ..느끼고 있다 ㅎ.
그래서 감사하다.
하나님 말씀이 이렇듯 말씀하시는대로
내 일상에서 '체험'하고 체득하여지는 것을 보니
내 '영생'마져 확신되어지니 말이다.
점점 더 그 영생의 사실화에 대하여 뚜렷이 확신되어져 간다.
이제 내가 하여야 할 일이 있다 .
더 겸손해지려는 노력.. 이다.
어제 퇴근 후 늘 가는 충주호 뒷편 길 (왕복 9.6km)을 라이딩하며서
KBS '세상의 모든 음악'이란 프로그램을 듣던 중
진행자이신 J님 의 글 소개 중
" 나이들어 동기모임을 가진 후 집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고장이 나서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올 수 밖에 없어
투덜거리다가
같이 내려오던 친구 왈,
' 이 엘리베이터가 고물의 처지가 되어가는 우리를 잘 깨우쳐 주네..'라는
말과 더불어 차분한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같은 시간을 살았지만
불평만 하고 크진 못한 성인 아이와
옹골차게 나이들어간 자의 두 모습을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을 통해서 보게 되었다." 라며 마음을 다잡았다는 이야기.
세상의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난.. 불현듯
하나님으로 인한 잘나가는 나에대하여
너무 치중한게 아닌가 .. 하는 깨달음이 왔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내게 '겸손' 이 가장 귀한 덕목임을 누누히 말씀해왔는데...
그렇다 .
이제 항상 계신 하나님의 말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더 깊은 부분이 내게 들어오기 위해서는
더욱 내가 '고물' 되어가는 현실,
실제적으로 나이가 60을 향해 치달려 가면
세상적으로 자랑할 만한 젊음은 사라지는 것이다.
내게 임하셔
나와 하나님 만이 아시는 '생기'와 부활을 말씀하시지만
그 분께서 내게 진정으로 바라시는 부활은
' 더 겸손하여 져서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으로의 부활이 아니실까... 하고
불현듯 깨닫는 하루였다.
주님.
제 모든 것을 다 알아
제게 기쁨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더욱 살아계셔서
항상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날 가장 좋은 곳으로 이끄시는 내 하나님께서
제게 이제 그리 말합니다.
내 상태
내 나이의 상태
내 현재 위치의 상태
내 하나님이 원하시는 분량까지 어느정도 미치었는지의 상태... 에 대하여
더 온전히 깨달아
더 겸손한게
더 기쁨으로 받아지고
겸손을 위하여 더욱 부활이 이루어져야 함을 말입니다.
내 하나님.
날 위하여 삼위일체 온전하신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리되게 절 이끄소서.
제 마음이 그 깨달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성령으로 붙드시사
매사에 삶에서 나타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주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 내 고난은[벧전3:13-22] (0) | 2015.07.06 |
---|---|
세상의 모든 왕따들이여(벧전2:1-10) (0) | 2015.07.03 |
더욱 많아진 평강[벧전1:1-12] (0) | 2015.07.01 |
완전한 善의 조건(살후3:6-18) (0) | 2015.04.20 |
확신 후의 마음(살후2:13-3:5) (0) | 2015.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