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세상의 모든 왕따들이여(벧전2:1-10) 본문
4.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예수"께서는 철저한 왕따셨다.
특히 '주류'에선 철저히 버림 받으시고
결국 비주류 들, 그리 따라 다니던 자들에게 조차 버린 바 되셔서
'십자가 위'
그 궁극의 외로움을 홀로 받으셨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으셨다.
그분이 'Living Stone' , 산돌
그것도 택하심을 입은 '거룩한 산돌'로서
온 우주 앞에 '세움'을 입으셨다.
5.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너희'
나를 포함한
인생의 왕따를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자들...
우리는 예수님의 뒤를 따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선택받은 소수인 우리는
그분 십자가를 지고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야 한다.
정결되고 연단으로 성화되어
하나님 곁에서 영생을 살 자들이다.
그러기에 '왕따'는 우리의 필연이다.
세상의 모든 왕따들아.
나를 포함한 왕따의 기억을 지니고
세상의 주류적 감성 - 모든 것이 옳은 ,... - 에 버림 받아 놀림 받고 손가락질 받을
왕따들아.. .
기뻐할 지어다 .
우리는 ' 왕따'다 .
세상의 버림받은 왕따이며
하나님의 산돌이다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왕따가 두려워
가짜인 이곳의 권세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숨을 줄이고
잠시의 편안함을 취할 것인가?
산돌이신 예수님 닮아
영생을 산돌로 살 것인가?
7.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
이 되고
'보배'
산돌을 보배라고도 하신다.
천국의 성전의 모퉁이 머릿돌로 쓰일
황홀한 보배의 산돌로 살자 .
주하인.
오늘 다시 일주일의 마지막 지점에 가까이 왔습니다.
아무 것도 안해 놓은 듯
죄송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산돌과 왕따의 비교를 통하여
그럴 수도 잇음으로
마음을 낮추었습니다.
주여.
그래도 주님의 말씀,
항상 있고 살아계신 말씀으로 통하여
매일 부활되는 저로 살려 노력은 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던 것은
세상과 약간은 다른 행태를 띄며 살수 밖에없는
지금의 삶이
당연히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앎에도 불구하고
가슴의 감정 부분에 걸리는 부분들,
그래서 머리 한켠이 아픈듯 저린 듯하던
그런 적은 요동으로 남아 있던 것을
다시금 말씀으로 이리 가볍게 하십니다.
세상의 왕따들아 ..
보거라.
그것.
하나님 뜻 가운데서 바라보기 시작하면
이제는 '산돌'의 증거임을 알아채거라. ...하시는
당당함의 근거요.
하나님.
이제 그것.. 논리적 추리가 아니고
마음 깊숙이
영혼 가득히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 들입니다 .
그러게 하소서.
제 딱딱히 굳은 심비에
성령의 불같은 힘실어 주심으로 인하여
더욱 깊이 아름다운 '흐름'으로 새겨지게 하소서.
내주여.
저를 더욱 낮추고
그것을 더욱 더 기뻐하고
그러함이 내 영생의 산돌로서의 굳건함의 조건으로
감사하며 살길 원합니다.
비난과 송사와 아픔이 있어도
기뻐하길 원합니다.
그래서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빕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때가 가까이 왔다[벧전4:1-14] (0) | 2015.07.07 |
---|---|
지금 내 고난은[벧전3:13-22] (0) | 2015.07.06 |
항상 계시는 하나님(벧전1:13-25) (0) | 2015.07.02 |
더욱 많아진 평강[벧전1:1-12] (0) | 2015.07.01 |
완전한 善의 조건(살후3:6-18) (0) | 2015.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