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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그 터치 (왕상11:14-25 ) 본문

구약 QT

하나님의 그 터치 (왕상11:14-25 )

주하인 2010. 10. 1. 12:38

제 11 장 ( Chapter 11, 1 Kings )

 

 

아이는 달린다

이 아침에 달린다

이 가을의 아침에 달린다

 

아침의 햇살을 머금고

이 대기의 싱그러움을 따라

아이는 달린다

 

아이의 생기는

 이 시간과

이 지점을 허락하신

그 분 하나님의 역사를

경탄과 함께 느끼게 한다

 

 


14.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저는 왕의 자손으로서 에돔에

     거하였더라  
15.  전에 다윗이 에돔에 있을 때에 군대장관 요압이 가서 죽임을 당한 자들을 장사하고 에돔의 남자를

      다 쳐서 죽였는데     
23.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저는 그 주인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도망한 자라  
24.  다윗이 소바 사람을 죽일 때에 르손이 사람들을 모으고 그 떼의 괴수가 되며 다메섹으로 가서

     웅거하고 거기서 왕이 되었더라  
25.  솔로몬의 일평생에 하닷의 끼친 환난 외에 르손이 수리아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

      하였더라
 
 하닷과 르손.

모두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이고

파란 만장한 삶을 산 '풍운아'가 맞는 듯 하다.

운명의 역경을 건너 뛰어 한 나라를 일구고 거대 제국 솔로몬의 이스라엘을 괴롭힌

그나라 역사에 남을 인물 들이다.

멋진 설화의 주인공일 듯도 싶고

아마도 '하나님'을 전제로 하지 않고 그 나라 입장에서 보면

영웅이 틀림이 없다.

 

 생각을 해보았다.

이들은 모두 '솔로몬'과 상관없는 '다윗'님의 정벌의 결과로 만들어진

그 나라의 영웅 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솔로몬'의 우상 숭배 여부와 상관없이도

그 나라에서 그렇게 그렇게 자기들의 운명은 개척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솔로몬이 마음을 바꾸어 다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섰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그들이 애굽 바로 왕의 눈에 들었을까?

어쩌면 운명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그게 나비의 날개 짓이 태평양 넘어 미국에 태풍을 가져온다는

어떤 이론과 흡사하지 않을까?

르손은 또 어땠을까?

그 역시 떼의 괴수가 되었더라도 그냥 도적질하는 집단으로 멈추어 버리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열심히 성공을 향해 가다가 배반하는 부하의 칼에 찔려

중도에 객사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이스라엘의 번영은 훨씬 더 오래가지 않았을까?

 

 솔로몬의 죄를 징죄하는데

솔로몬과 직접 상관없는 '저들'이 들어져 쓰인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 들을 징죄하는 채찍으로

'전혀 예상치 못하던 ' 불신자들을 들어 쓰시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참으로 놀랍지 않는가?

다윗으로 인하여 생긴 '불씨'가 '솔로몬' 대에 와서 쓰이다니..

 솔로몬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

여인들에 의하여 흔들림으로 생기는 잘못된 선택을 이유로

시간을 넘고 , 공간을 넘어

그들의 '스토리'를 엮으셔서 그 스토리의 결과물로

현재의 '하닷'과 '르손'을 만드셔서 채찍 역할을 하시게 하시다니...

솔로몬이 회개를 했더라면

그들의 스토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쓰일 뻔 했었음을

위에서도 상상해 보았다.

정말 놀랍다.

묵상 과정 중에서

온 세계의 그 한사람과 엮어진 다른 사람을 통하여

각양의 다른 변수를 만들어 내고

그 변수와 시간을 조합하여

결국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솔로몬의 이스라엘 왕국을 징벌하는 도구로 이용하시다니...

 

정말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온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편협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산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하나님은 나 만을 위하여 축복하고 침묵하시고

고난을 주시고 평강을 주시고... 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러나 ,주님의 그 크시고 놀라운 능력은

공간의 지배자 이시자

시간의 지배자 이심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 공간을 넘어섬은 비단 '애굽'과 '이스라엘' 및 '다메섹'과 '이스라엘'을 넘어 설 뿐 아니라

온 우주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보좌에서

이 우주의 말단에 속한 '지구' 땅 '한국'의 '안양'까지도 미치실 분이시라는 이야기시다.

 시간.

'하나님은 산과 바다가 만들어기 전 영원 전부터 계시고 영원까지 계실 분이시고

 하나님 앞에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으며

 그 천년은 한밤의 경점과 같기도 하시다. '

그러신 분이시기에 그 분은 그 시간의 지배 속에서

상상하기 힘든 운명을 엮어가고 계실 수 있는 분이다.

 이 상상을 불허하는 그 분의 무한한 능력 앞에

감히 '몸이 비틀어져 ' 육신 속에 갇혀 사는

' 머리' 만 비상한 물리학자, S 호킹이라는 사람이

자신이 보지도 못한 만지지도 못하는 그 분을

'안계시다' 하는 그 어리석음을 어찌 비웃어 주어야 가슴이 시원할까...??

 

 난... 그렇다.

세상의 머리 좋은 사람들.

감히 올려다 보기 힘들 정도의 비상한 사람들이 범하는

그 실책의 어리석음이 마치 어린 아이 같다는 생각...

 아버지를 보지 못한 '고아'가 커가며

머리는 비상하여 나름대로 아버지의 '정의'를 내렸다 가정해 보자.

'아버지는 선물을 사오시는 분이시다.

아버지는 키가 크신 분이시다.

아버지는 돈을 벌어 오시는 분이다.

아버지는.... .....................'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외로움'과 '분노'가 있을 것인가?

그 비상한 아이는 결국 자기에게는 '그러한 존재'가 없기에

'아버지는 없는 존재다' 하고 진단을 내려버리고 선언해버린다.

그러나.... 아이가 아무리 그리 불쌍하지만 비상한 눈으로 '아버지란 존재는 없다'고 선언해도

아버지가 없으면 어떻게 태어났겠는가?

그게 사실인가?

그 비상한 아이는 '너무도 어리석은 아이다'

 성경에 '그 많은 지식이 널 죽였다.'라는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이 어리석은 머리 좋은 성인 아이들이 세상을 어지럽힌다.

'HSC"이라는 유명한 게이가 세상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게이가 전염병이던가?'

아니라고 멋진 옷을 입고 나와 소리를 내고 있다.

육체적으로는 아니고 증명할 수 없지만

게이는 습득되는 것이다.

게이가 성공하고 게이가 떠들면 게이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진다.

죄에 대한 경계가 사라진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그 분에 대한 경외가 사라짐은

세상을 혼탁하게 한다.

 

흥분했다.

오늘 묵상은 온 우주를 아우르고 시간을 움직이시고

그 상상할 수 없는 변수의 조합으로

솔로몬을 징죄하시고

결국 이스라엘 대 왕국이 무너지고

온 세상의 힘의 분산이 움직여

현재 2010년 세상의 결과를 가져오시는

그 어마어마한 하나님을 느껴 보는 것이다.

 

나.

이제 다시 오늘 묵상의 나에 대한  말씀하시고자 하는 부분으로 돌아온다.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

내 생각이다.

생각이 어려서 부터 많았다 .

늘 결론은 '회의적'이고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삶에 힘이 없었다.

도전의식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 '산'을 오르고 무엇인가 하기 위해 애쓰는 자들이

참으로 어리석어 보였다.

결국 썩어져 갈 저것들...........

하지만 조금씩 오히려 달라진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평강을 체험하며

세상은 내 뜻이나 내 의지 ,

무엇을 하고 자 하는 긍정적 마음을 먹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내 생각대로 '망하는 '일도 벌어지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이 적은 나라가 금융대란의 태풍에서 가장 먼저 무너질 줄 알았다.

급등하는 유가를 보며 곧 나라가 망할 줄알았다.

그러나, 달랐다.

그 모든 일에 돌아보니 이유가 있었다.

환율인상이 되어도 다른 나라가 더 올랐다.

10몇 년 전의 IMF가 고난이 심했지만

그것을 통해 체질이 강화가 되었다 .

북한이 아무리 요동을 해도

..........

지금껏 우리나라는 부흥을 향해 달려왔다.

마지막 날을 위하신 하나님의 배려 탓이다.

모든게 하나님의 뜻과 의지와 그 분의 '터치' 탓이다.

 엮어지고 역동해 나가는 것을

그 안에 빠져 다메섹 주민 처럼 , 히닷의 백성처럼 눈으로 보면 그 안에 빠져서

인간을 영웅시할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관점을 배려하고

그 분의 능력을 염두에 두면 모든게 이해가 간다.

다시 나에게 주어진 뜻으로 돌아온다.

'주님의 뜻'이 모두다.

걱정할 것 없다.

흔들릴 것없다.

어려움도 어려울 것없다.

모든게 하나님의 터치하시면 급전하고 변화될 것이다.

지금의 환란은 곧 축복으로 변할 것이고

지금의 부러워하는 성공자들도 주님의 터치 하나면 '바람 속의 먼지'처럼 사그러질 것이다.

그것을 오늘 묵상을 보면서 이해하게 된다.

 

나.

오늘.

금요 찬양 예배하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간다.

수일 전의 상태.

모든 것 다 주님의 허락하심이다.

내 잘못한 것은 회개하고 돌이키면 된다.

하나님을 놓치지 않으면 된다.

그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신뢰하면 된다.

모든 것이 어려운 것 같아도 주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면 달라진다.

모두가 그렇다.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게 오늘 하루의 주님의 배려시다.

 

 

적용

 

1. 성경 세장 읽는다.

 

2. 찬양을 올린다.

 주님의 그 크심을 경배한다.

 주님만 보겠다.

 

3. 모든 걱정 내려 놓는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 살겠다.

 

4. 기도한다.

 주님의 그 크심을 찬양하는 기도를 한다.

 내 예상 할 수 없는 그 광활하시고 무한하심을 찬양하는 기도를 한다.

 

 

 

기도

 주님.

오늘은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능력을 묵상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그 능력이 시간을 넘어 공간을 넘어

오늘 제 인생에 들어오심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

귀하신 주님.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어리석은 '부정적 '생각들,

제가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는 오래된 습관들...

이제 주님 앞에서

그 놀라운 주님의 능력 안에서 내려 놓길 선택합니다.

어두워도 주님.

밝아도 주님

힘들어도 주님.

좋아도 주님...

어떤 때도 어떠해도 주님의 말씀 한 마디면

온 우주의 역동이 변화해서라도

선으로 변하게 될 것을 이해합니다.

감사합니다.

느낍니다.

귀한 주님.

이제 주님께 모든 것 맡기나이다.

내 자식들.

저.

제 아내.

제 지인들..

모든 분들 다 주님 안에서 귀한 축복 누리고 살길 소원합니다.

이제 어려운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고난을 당해도 주님을 놓치지 않고 있으면

그 고난을 통해서 훨씬 큰 이룸이

우리의 예측과 생각보다 훨씬 크게 이루어지도록 기도합니다.

어서 어서 그리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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