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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같은 왕 왕같은 종(왕상12:1-9) 본문

구약 QT

종같은 왕 왕같은 종(왕상12:1-9)

주하인 2010. 10. 3. 15:43

 제 12 장 ( Chapter 12, 1 Kings ) 

 

 
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오히려 애굽에 있는 중에  
3.  무리가 보내어 저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로보암의 마음이 어땠을까?

선지자의 왕이 될 거란 말을 듣고도 애굽생활 40년.

그리고 솔로몬 서거의 소문을 듣고도 또 기다렸다.

그는 선지자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마음에 붙들고 기다렸을까?

만일 그랬다면 그 불신자는 아니라도  선택받은 사람이 아닌자가 붙드는 그 '믿음'과

선택 받은 '나의 이 부족한 믿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와 나의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는가?

 결국 여로보암은 40년을 애굽에서 도망자 생활하며

굳게 왕이 되리라는 믿음을 흔들리지 않고 지켜 기다리며

부름을 받고는 '이제 때가 되었단 생각'으로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게 되었는가?
  세상 사람들 중에서도 특별한 소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성공하겠다는 세상적 성공의 믿음 하나 가지고

불굴의 의지로 성공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어이없는 대상인 , 썩어져갈 세상의 믿음을 가지고도

성공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진실을 아는 자로서의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도

난 어찌 이리 흔들리고 있단 말인가?

진실하게 믿고 너무나도 가치있는 '말씀'을 믿어야 한다.

그 믿음의 강력이 최소한 이 여로보암의 그것을 넘어야 한다.

 

  
7.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르호보암도 아마도 솔로몬 서거 후의 나라가 나뉘어질 것을 들었을 지 모른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이 열족속의 왕으로 만들겠다시며 세우시려 했던

'여로보암'을 죽이려 했던 그 사실을 들었을 것을 들었더라면

'노인'들의 가르침을 들었어야 한다.

 '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이라 한다.

그러면 아마도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실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영원히 르호보암의 종이 될 것이라고 한다.

너무도 희망적인 소리가 아닌가?

나라가 나뉘지 않을 것이고 솔로몬의 대 제국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왕.

그 왕이 될 것이란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겸손'해 져야 한다.

사람들의 '종'으로 자처해야 한다.

섬기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좋은 말투로 자신을 무장해야 한다.

그게 남이 자신을 왕으로 모실 길이다.

르호보암은 '아는 자'였을 가능성이 많다

나도 그렇다.

난 안다.

그렇지만 마음이 두 갈래다.

'힘을 가진 자'로서의 마음대로 하고 픈 마음과

'말씀을 아는 자'로서 '종 같은 왕'.

 


8.  왕이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 
 자기와 같이 자라난 소년.

오래된 습관들.

행동하고 생각하기에 편하고 그럴 듯한 논리들...

상처로 인하여 용서하기 싫은 마음.

교만하고 싶은 마음.

힘을 가진 자로서 대우 받고 싶은 마음.

...............

 

 

  고백한 대로다.

난 두갈래 길에서 잠시 방황하고 있다.

힘을 가진 왕같은 권세자 - 어쩌면 진짜로 이것으로 인하여 '종'으로 될 것 같은... -와

더욱 몸을 낮추고 마음을 낮추어 '종 같은 태도를 취하는 ' 겸손한 자.

겸손하고 긍휼히 여기고 아파하는 마음을 이해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그러고 싶지 않은 '속상한' 마음이 마음을 갈기 갈기 찢으려 한다.

당직을 서가면서 내내 마음이 답답하다.

알면서도 .........

 분만을 받고 두시가 되기 까지 한시간 여 남아 있다.

두시에 병원내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예전에는 원목님이 오셔서 주관하셨지만 '여전도사님'이 주관되어

환우를 위해 40분 내에 짧게 드리는 '주일 예배'다.

보통은 준비된 것이 너무 적어 은혜 받기 보다는

당직 서야 하는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드린 다는 마음의 ...

나름 예를 갖추기 이해 '의관'을 정제하고 참여 했다.

 마태 복음의 '불의한 종'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그 두 마음을 묘사하시는 데 내 눈이 크게 떠진다.

'역시 하나님은 누구의 입을 통해서라도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하시는 구나'

눈을 아래로 내리 뜨고는 있었지만 내내 마음이 집중 되었다.

말씀을 계속 하신다.

"'축복'을 이 세상의 것만 국한 시키는 것은 '꽃' 만을 바라는 것이로되

 하나님은 '영생'이라는 '열매'를 주시기 바라지 안으시는가? " 하신다.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시다.

꽃이 있어야 열매도 있다.

세상의 것도 그렇지만 영생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니던가?

꽃이 없으면 열매도 없는 것 처럼 세상의 것도 축복을 허락받아야 하긴 하다.

그러면서 '두 가지 마음'에 대하여 절묘히도 설명해 가신다.

 그랬다.

 내가 내내 마음이 뻑뻑했던 것은

'종으로서 자처하여야 하는 왕'임에도 불구하고

'왕으로 대접만 받고 싶은 왕'의 태도 만을 고집하는 탓이었다.

르호보암은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후자를 선택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야 함을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말씀의 묵상에 이렇게 적어 놓으시고

평시에 그리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던 '여 전도사님'의 입술을 통해

내 영혼에 소리치시는 듯 했다.

마음이 내내 무엇으로 충만한 느낌이었다.

마지막 마무리 하시면서 '다윗'의 고백을 선언하시며 말씀을 마무리 하실 때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느꼈다.

' 시편 139:23-24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
그리고는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 찬양을 인도하신다.
눈물이 비쳐나오려 함을 누르려 애썼다.
나름 '의사' 아닌가?^^;;
비록 4층 로비에 의자를 늘어 놓고 몇명 안되는 산모들을 모아 놓고 드리지만
그들에게 눈물을 보이는 것이 창피 했다.
겨우 눈물을 누르고 시편 어디인가 여쭈어 보았다.
나중에 메시지를 보내신다하신다.
내 두 마음을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나를 살피시 나를 시험하시어서
나도 잘모르는 내 마음과 내 뜻을 아시고
종으로 자처하지 못하는 르호보암 왕같은 내 마음과 뜻을 알아 달라신다.
마치고 난 계단을 올라 내 당직방을 올라가는 동안
영혼의 깊숙한 곳에서 부터 울음이 올라온다.
마음이 충만히 차오는 듯하다.
그렇다.
마음이 하나로 정리됨을 느낀다.
' 종같이 나를 낮추어야 한다.
 주님이 주신 것.
 주님의 뜻대로 하시라 하겠다.
 나를 낮추겠다.
 다 양보 하겠다.
 그리고 좋은 말을 하겠다.
 말투를 더 정하게 하겠다. '
귀하신 하나님의 뜻이 그것이시면 그런다.
 며칠 전 부터 약간 씩 빙글 빙글 도는 듯한 느낌이 나면서 심히 피곤하다.
자고 일어나도 그렇다.
어제도 내내 잤다.
간간히 환우로 인하여 깨었지만 그랬다.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랬다.
중간에 나가 분만 한 분, 제왕절개 한분 하고 저녁시간이 되어
처음으로 식사를 한 후 또 잤다.
그러느라 조금 묵상을 진행하다가 또 잠이 들어 분만이 있다하여
이제 겨우 오늘 묵상을 완성해 간다.
뚜렷하다.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르호보암'과 다른 선택을 하라 하신다.
오래된 '노인'들의 경험과 지혜의 말을 순종하는 것이다.
그게 옳다.
비록 내 마음에 달갑지 않지만
어쨋든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다는 것은
세상의 습관을 벗는 것이 아니던가?
그것은 그리 쉬운 일 이 아니다.
아픔을 초래한다.
그럼에도 반드시 우리의 선택을 필요로 한다.
나에게 선택은 뚜렷하다.
늘 하나님이 적절하게 말씀으로 인도하시기에 그렇다.
눈물로 나를 인도하신다.
슬프지 않고 억울하지 않음에도 그렇다.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나로 감동을 가져오심으로 그렇다.
그게 성령의 인도하심 아니시던가?
내가 알지 못하는 깊은 곳까지 말없는 허탄의 안타까움으로
하나님께 직고하셔서 나의 선택을 돕는
능력의 강력을 허락하시사
나의 영혼 속의 친구 같이 몸을 숨겨 교묘히 나로 악의 선택을 하게 하여온
그 습관을 깨뜨리도록 돕는 것이시다.
감사하고 귀하다.
눈물이 난다.
 
 
 
귀하신 하나님
난..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주님을 통해 구원 받고
주님을 알아가는 게 너무 즐겁고 기쁩니다.
정말 입니다.
내 이 기쁨을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알아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면 하는게 제 바램입니다.
그래서 전 이리 글을 쓰고 찬양을 하고 외칩니다.
그게 그리 즐겁지 않고 머리가 복잡한 때도 찬양을 합니다.
그럴 때도 사진이 찍혀집니다.
그럴 때도 글이 써집니다.
그 럼에도 주님의 말씀 앞에 서면
반드시 주님이 나를 해결하고 내 묶인 마음을 풀어주시고
나로 하여 깊은 통쾌함을 주의 보좌로 부터 주시고
나의 이 척박하고 강팍한 영혼에 눈물을 허락하심을 체험하기에 그렇습니다.
오늘 역시 그랬습니다.
제 마음을 아시고 말씀으로 이리 허락하시고
예배 중에 그러셨습니다.
걸어 올라오는 계단을 눈물과 감동으로 채워져서
저도 모르게 한층을 더 올라가 다른 방의 문을 열다가
깜짝놀라 돌아 내려오면서 전 웃음을 머금을 수 있었습니다.
누가 ..
이 경험을 .. .
이렇게 하겠습니까?
어찌 생각하면 전 두 마음 사이에서 결박 당해 머리가 터질 듯하고
환경은 갈등을 향해 치닫고 있는 데 말입니다 .
모든게 제 선택이었습니다.
그 선택을 주님이 도우십니다.
노인 같은 지혜의 성령으로 말입니다.
전 또 체험했습니다.
주님..
살아계셔서 너무도 감사합니다.
 
특별히 제 사촌 동생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메시지가 방금 왔습니다.
주님.
오늘.
어려운 환경의 오십대를 들어서는 가장의 푸념이 가슴을 찌릅니다.
동서가 자주 '죽음'의 유혹을 느끼는 모양입니다.
비록 행동은 아니지만 푸념을 하는 게
동생의 가슴을 찌른답니다.
주님.
누가 있어 그 어려움을 모르겠습니까?
그럼에도 나갈 길이 없어 저러고 있습니다.
그 아픔을 이해하시는 주님이시여
당신의 기쁨으로 동서의 영혼을 채우시사
그가 주님의 기쁨 안에서 고난을 이겨나가게 하시어서
세상의 축복도 맛보게 하시되
영생의 열매도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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