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종같은 왕 왕같은 종(왕상12:1-9) 본문
제 12 장 ( Chapter 12, 1 Kings )
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오히려 애굽에 있는 중에
3. 무리가 보내어 저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로보암의 마음이 어땠을까?
선지자의 왕이 될 거란 말을 듣고도 애굽생활 40년.
그리고 솔로몬 서거의 소문을 듣고도 또 기다렸다.
그는 선지자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마음에 붙들고 기다렸을까?
만일 그랬다면 그 불신자는 아니라도 선택받은 사람이 아닌자가 붙드는 그 '믿음'과
선택 받은 '나의 이 부족한 믿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와 나의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는가?
결국 여로보암은 40년을 애굽에서 도망자 생활하며
굳게 왕이 되리라는 믿음을 흔들리지 않고 지켜 기다리며
부름을 받고는 '이제 때가 되었단 생각'으로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게 되었는가?
세상 사람들 중에서도 특별한 소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성공하겠다는 세상적 성공의 믿음 하나 가지고
불굴의 의지로 성공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어이없는 대상인 , 썩어져갈 세상의 믿음을 가지고도
성공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진실을 아는 자로서의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도
난 어찌 이리 흔들리고 있단 말인가?
진실하게 믿고 너무나도 가치있는 '말씀'을 믿어야 한다.
그 믿음의 강력이 최소한 이 여로보암의 그것을 넘어야 한다.
7.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르호보암도 아마도 솔로몬 서거 후의 나라가 나뉘어질 것을 들었을 지 모른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이 열족속의 왕으로 만들겠다시며 세우시려 했던
'여로보암'을 죽이려 했던 그 사실을 들었을 것을 들었더라면
'노인'들의 가르침을 들었어야 한다.
'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이라 한다.
그러면 아마도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실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영원히 르호보암의 종이 될 것이라고 한다.
너무도 희망적인 소리가 아닌가?
나라가 나뉘지 않을 것이고 솔로몬의 대 제국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왕.
그 왕이 될 것이란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겸손'해 져야 한다.
사람들의 '종'으로 자처해야 한다.
섬기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좋은 말투로 자신을 무장해야 한다.
그게 남이 자신을 왕으로 모실 길이다.
르호보암은 '아는 자'였을 가능성이 많다
나도 그렇다.
난 안다.
그렇지만 마음이 두 갈래다.
'힘을 가진 자'로서의 마음대로 하고 픈 마음과
'말씀을 아는 자'로서 '종 같은 왕'.
8. 왕이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
자기와 같이 자라난 소년.
오래된 습관들.
행동하고 생각하기에 편하고 그럴 듯한 논리들...
상처로 인하여 용서하기 싫은 마음.
교만하고 싶은 마음.
힘을 가진 자로서 대우 받고 싶은 마음.
...............
고백한 대로다.
난 두갈래 길에서 잠시 방황하고 있다.
힘을 가진 왕같은 권세자 - 어쩌면 진짜로 이것으로 인하여 '종'으로 될 것 같은... -와
더욱 몸을 낮추고 마음을 낮추어 '종 같은 태도를 취하는 ' 겸손한 자.
겸손하고 긍휼히 여기고 아파하는 마음을 이해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그러고 싶지 않은 '속상한' 마음이 마음을 갈기 갈기 찢으려 한다.
당직을 서가면서 내내 마음이 답답하다.
알면서도 .........
분만을 받고 두시가 되기 까지 한시간 여 남아 있다.
두시에 병원내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예전에는 원목님이 오셔서 주관하셨지만 '여전도사님'이 주관되어
환우를 위해 40분 내에 짧게 드리는 '주일 예배'다.
보통은 준비된 것이 너무 적어 은혜 받기 보다는
당직 서야 하는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드린 다는 마음의 ...
나름 예를 갖추기 이해 '의관'을 정제하고 참여 했다.
마태 복음의 '불의한 종'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그 두 마음을 묘사하시는 데 내 눈이 크게 떠진다.
'역시 하나님은 누구의 입을 통해서라도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하시는 구나'
눈을 아래로 내리 뜨고는 있었지만 내내 마음이 집중 되었다.
말씀을 계속 하신다.
"'축복'을 이 세상의 것만 국한 시키는 것은 '꽃' 만을 바라는 것이로되
하나님은 '영생'이라는 '열매'를 주시기 바라지 안으시는가? " 하신다.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시다.
꽃이 있어야 열매도 있다.
세상의 것도 그렇지만 영생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니던가?
꽃이 없으면 열매도 없는 것 처럼 세상의 것도 축복을 허락받아야 하긴 하다.
그러면서 '두 가지 마음'에 대하여 절묘히도 설명해 가신다.
그랬다.
내가 내내 마음이 뻑뻑했던 것은
'종으로서 자처하여야 하는 왕'임에도 불구하고
'왕으로 대접만 받고 싶은 왕'의 태도 만을 고집하는 탓이었다.
르호보암은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후자를 선택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야 함을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말씀의 묵상에 이렇게 적어 놓으시고
평시에 그리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던 '여 전도사님'의 입술을 통해
내 영혼에 소리치시는 듯 했다.
마음이 내내 무엇으로 충만한 느낌이었다.
마지막 마무리 하시면서 '다윗'의 고백을 선언하시며 말씀을 마무리 하실 때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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