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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울 때 그때[왕상22:1-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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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울 때 그때[왕상22:1-14]

주하인 2017. 6. 27. 09:38



1.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삼 년을 지냈더라
  '전쟁이 없이 ' 지냈고



12.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하더라

 400명 쯤의 선지자가(400명이 아니다.. 쯤이다.ㅎㅎ)


귀에 달가운 소리를 한 목소리로 (아마 그들 선지자들 사이에서 다른 소리 내지 말자며

그 전날 밤에 아마 술한잔씩 돌려가며 의기 투합을 했고 멋져 보이는 기도의 의식을 정하고...떠들고..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인간적으로 재밌지 않았을까? ㅎㅎ. 괜한 상상이다. ) 승리를 외치나



14.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가끔.. 시대와 상황에 맞지 않고 '툭'하고 튀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거기에 ' 하나님이 ...' 하며 애매한 고집을 부리는 자,

시대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자가 있을 때

이것을 '옳은 믿음'이라 존중하고 생각할 마음의 버퍼가 내게는 과연 있을까?


 내 자아는 '여러 틀린 증거'들을 모아서 어쩌면 나쁜 자라 정죄하고

내 편한 삶을 해치는 그 자를 '적'으로 간주하려 할 지 모른다...

나.. 내 자아.. 오래된 내 습관.. 많은 다수의 그러함에 파묻혀서.. 그렇게 그렇게 .. 말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자'로 ..분노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적대감...

 

 하지만.. 그 반대의 상황.. 진정한 선지자일지 모를 그 분을

그 모든 옳은 정황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식하기 위하여는

내 그 자아를 누르고 들어오는 평화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기도'가 그래서 중요하다.

깨어 있음이 그래서 중요하다.

어제..

'나를 팦아 '라는 표현이 가슴에 왔다.

느즈막히 지만..

그 말씀은 꺼꾸로 '나를 팔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고

그러함 만을 통해서 시대를 꿰둟는 진리의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

오직 주님의 은혜, 성령의 사로잡으심,

거기에 그러함을 위한 우리의 '선택'이 필수다 .


하나님은 이 평화로울때, 잘 나가고 잇는 것 같을 때

더 깨어 있어서

옳은 것 같고 많은 사람들의 동조가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필요한 시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미가야의 입장에서

다수의 무게에 짖눌림을 대항해서

외로운 소수의 소리를 내는게 얼마나 힘들겠는가?
외롭고 두렵고 무섭고 비참하고... ..

하지만.. 그러함은 '인간'으로만 존재할 때

사람으로서 '자아'만이 다 인지 알때에 드는 생각과 소리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그 약하고 곤란하고 핍박을 받을 때가 오히려 강할 때다.

오직.. 그마져 내 결심과 깨달음으로 되는게 아니다.

'은혜'에 충만할 때 만이 가능한 이야기고

그 비밀을 아는 자들의

'내밀하고 개인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소망과 행복과 기쁨이 넘침은

간구하고 사모하는 '선택'받은 소수 들에게만 알게 하시는 원리시다.


평화롭고 전쟁이 없음은

인간들의 노력으로도 가능하다.

3년... 이란 시간은 상징적 시간이다.

제한되고 유한한..

 하지만..

하나님의 평화는 세상이 어떻든..

전쟁 속이든

어제 '중국집 사장'님의 자랑 처럼 '안동 산속 집'을 소유한 고요한 자연 속이든

거하고 말하고 움직이다가

멈추어 서서 '기도하고 은혜'를 누리는 그 장소가 바로 ' 은혜'의 자리다.

그러기에 그러한 우리는 '소망'과 '행복'의 단초를 잡았음을 느끼고 있다 .

그래서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어떤 분들은 '순교지'로

어떤 분들은 '청렴'의 자리에

어떤 분들은 '교사'의 모습으로

또 어떤 분들은 '가정 주부'의 자리에...

그 어떤 곳이든 점점 더 기도하며 묵상하며 자신을 내려 놓으려 애쓰게 된다.

감사하다.

깨닫게 됨이..


 주님.

오늘은 평화로울 때.. 가 잘나가고 있을 때만은 아니며

다수의 긍정적인 소리가 진리가 아닐 수가 있고

소수의 어두운 소리가 그의 자아의 왜곡된 소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묵상했습니다.

주여.

내 자아의 소견에 거슬리더라도

그게 하나님의 말씀인지 정말 기도하고 받아 들여 보는 선택의 시간이

제게는 필요할 듯 싶습니다.

이 버거운 급박하고 강팍한 심사는 급히 내 의견에 다른 소리를 절제하는 습관이 있사오니

부디 그것 조차도 우리 주님의 은혜로 막아 주시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느껴지는 평강의 확신이 있으면

죽음의 두려움, 왕따의 괴로움, 오래된 손가락질과 비아냥의 핍박이 있어도

오히려 감사함으로 이겨나갈 수 있도록

우리 주님이 도우실 줄 믿습니다.


내 주여.

힘을 주소서.

내 자아를 타고 흐르는 급박한 경박함을 막으소서.

오직 주님 만의 은혜와 사랑으로 세상을 보게 하시고

주여.. 하나더 간구할 것은

'영생'에 대한 사모함을 더 크게 히여 주소서.

 어제. 귀국시 에어포켓을 크게 경험하며

평시에 생각했던 '저럴 때 예수님 찾아야지'라는 결단이 생각나

급히 기도하며 마음은 편히 유지했지만

정확히는 내게는 '영생'에 대한 기쁨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그런게 맞다고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겠지만

주여.. 그런 상황에 오히려 감사하고 잔잔한 기쁨이

이 가능치 않을 상황에도 있게 해주소서.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그런 가능치 않을 상황이 제 마음에 차갑게 내려 앉음을 막아서는

주님의 고요한 잔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주여.


살아계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

오늘도 깨어서 살수 있도록 해주실 줄 믿으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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