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목자있는 행복한 양 ,나[왕상22:15-28] 본문
결국
그때가 오게 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비록
아직 부여잡고 싶은
한때의 화려함이 남아 있을 지 몰라도
그게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서러운 미련일지 몰라도
곧 우리네 인생은
갈 곳으로 가게 되어있고
그리도 자유롭고 영원할 것 같던
생명도 꺼지게 되어 있다
그때
난
갈 곳이 있다
그게 확신이 있다
내게는
주인이 있기 때문이다.
부르시는 대로 향하고
인도하시는 대로 움직이다가
그 분이 뉘여주시는 그곳
그 영원한 곳에 갈
당연한 소망이 있기에
오늘도 난
행복하다
17.그가 이르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에게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목자없는 양.
교회에서 너무도 많이 써오던 단어들.
하지만 오늘 따라 저 구절이 그리도 눈에 들어 옴은 웬일이던가?
외로우려 하는가?
내가?
잘 놀다 와서 괜히 허전하려 해서인가 보다.
나름 휴가가서도 기도는 하려 애썼지만 그래도 형식에 그치는 느낌이 없지 않아서인가?
귀찮은 기도행위를 안하니 사실 편했다.. 육신적으로는..
하지만 그래서 내 강한 자아...ㅠ.ㅠ;; 가 또 힘을 얻었던가?
혼자 이리 저리 내 마음의 감옥으로 튀쳐 나오려 하고 있는가?
그래.
주인없는 삶, 의무가 없고 힘이 덜 드는 것 , 자유로운 것 같아 좋은 듯 하다.
그러나,
결국 광야에 떨어진 '들떨어진 양'이요,
홀로 세상에 방치된 고아가
과연 언제까지 자유로울 수 있던가?
22.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비록 그 깊으신 뜻이야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욥기와 여기에서 보이듯
거짓말하는 '영', 사단의 영까지 하나님께 허락 받아 인간을 유혹 한다.
무리, 군중의 힘을 빌고 다수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그 거짓이 잘 먹힌다.
시대가 너무 험하다 .
주인이 없다한다.
내가 좋으면 다 옳다한다.
남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단다.
그러다 보니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들도 옳다한다.
............................이구 , 그만하자.... ㅜ.ㅜ;;
목자없는 양 같이 행동하는 이들의 모습은 , 이시대의 흐름이
내 머리를 깨지게 하려 하는 듯하다..이구..
25.미가야가 이르되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 날에 보리라
왜 이리 통쾌하게 들리는가?
다수에 대한 소수의 저항?
시대를 가르는 '진리'의 외침?
정의의 승리?
........이구 어떤 표현을 가져다 부칠까?
카타르시스가 오는 듯하다.
하지만.. 그러함은 시원하고 가려운데 긁어서 좋은 듯하지만
현실에서 저려면 당연히 왕따다.
유수의 대단한 지성인들이 모이고
젊은 , IT와 새로움으로 무장된 수많은 네티즌들이 SNS로 한 목소리로 뭉치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촛불이나 태극기로 모여서 외쳐댈때
그 에너지 파동에
현실의 위협에
다수의 물리적 횡포에 견뎌낼 자신이 있던가?
스스로 그리할 자신이 있던가?
현실을 다 포기하고 곧 팽개쳐질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저 분의 저 소리는 '시원'하고 힘이 있다.
왜 인가?
난...안다.
저 분은 '목자 있는 양'이기 때문이다.
그 목자가 허튼 목자가 아니고
말씀 한마디로 온 우주를 만드시고
성령으로 운행을 제어하시고
천지 만물의 이치를 허락하시는 (심지어는 거짓..의 영까지..)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 분이 그를 시키시기만 하는 게 아니고
은혜와 충만한 성령으로 도우시기까지 하시기 때문이다.
천군 만마의 힘으로 이기게 하시니
그 한마디에 어찌 400명 쯔~음이 문제가되겠는가?
"보라.. 지금은 네가 내게 이러지만
곧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그날..
너,, 네 ..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방탕한 삶을 사는 자들은
골방에 들어가 숨게 되리라.. "라는 것 아닌가?
인격적 하나님, 나의 하나님, 체험의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동행하고 교제하는 삶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은
그 다수와 방탕의 재미와 유혹을 이겨내고
그 뒤에 다가오는 유한한 죽음의 숙명의 두려움과 외로움 , 그리고 절망을 본다.
그보다 더 큰 우리 믿는 자들의 소망과 든든함을 안다.
오늘 내게 새삼 '목자 있는 양'으로서의 나를 알게 하심
그리고 비록 저분 미가야처럼 담대함은 따를 수 없을 지라도
그 시원함을 보이심은 웬일이신가?
출근 길이 참 시원했다.
바람도, 마음도..
피곤하고 쳐지려는 휴가후의 발걸음을 힘있게 하심이다.
감사하다.
주여.
오늘도 아침 일찍이 눈이 떠져
휴가처와는 다른 일상의 땅을 밟으면서 출근했습니다.
주여.
마음껏, 주인의 눈치 보지 않고 살던 여유로움도 좋았지만
다시 돌아와 늘 똑같은 일상에서 주의 말씀을 듣는 것도 또한 행복하다 느껴집니다.
그랬습니다.
참으로 이전과는 많이 다른 느낌입니다.
어디가 도 자연스럽습니다.
어떻게 되어도 든든합니다.
가만히 두어도 행복합니다.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담담함이 저를 붙듭니다.
그것..
내게는 '주인'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전능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이 주인으로 계시고 인도하시고 계심을
제가 알고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고스 하나님께서 그리 오늘도 깨우치십니다.
다시.. 제 귀를 흔드는 거짓의 소리들에 저항하며
미가야님처럼 소수이지만 정확한 사자후를
내 영혼 깊이에
혹여 다가올지 모를 주위의 거짓들에 발할 수 있는 자 되길 소원합니다.
오늘도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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