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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만 아시면 괜찮다 (행 17:16-34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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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만 아시면 괜찮다 (행 17:16-34 )

주하인 2011. 9. 27. 12:32

제 17 장 ( Chapter 17, Acts )

 

내가 여기 있는 것

아무도 몰라도 상관없다

 

내 홀로 있는 것

외롭지만 그래도 괜찮다

 

주위로 몰려오는 외로움

힘들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 영혼을 흐르는

관심이 주님이라면 괜찮다

 

날 알아주는 분이

오직 예수님이시라면 괜찮다

 

내 이름 비록 드러나지 않아도

나 주님과 늘 동행하니 괜찮다

 

주님 만 날 아시면

내가 그 사실을 잊지만 않으면

 

난 정말로 괜찮다

내 모습 이대로

세상에 방향을 보일 수 있기에

그래서 난 괜찮다

 

 

16.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18.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바울은

예수님을 전하고

몸의 부활을 전했다.

 열렬히 전했다.

아덴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게 분해서 그랬다.

분했음이 중요하다.

분했음은 그들이 예수님을 모름에 대한

거룩한 분함이다.

난...

저런 영적 분함이 남아 있는가?

 

 요 며칠..

계속 나의 비만한 영적 상태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이 된다.

 

내 삶.

무엇 때문에 사는가.. 에 대한 답없이

평생 목표 없이 살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는 뚜렷한 목표로

매일 말씀 가운데 감동으로 살던것이

마음이 편해지고 영이 차분해지니

어느샌가 무뎌지고 지금은 둔한 습관 만 남은 것 같이 느껴져

답답했다.

그러면서도

다시금 그 열정을 회복하기에는

힘이 부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것을 주님은 자꾸 말씀하시는가?

'분한 마음'

하나님을 진정으로 모르는

믿는 자들을 포함한 세상의 그들,

불특정 대다수를 향하여 안타까움으로 안절 부절하지 못하는

사도 바울님의 그 마음이 난.. 그립다.

얼마 지나지 않은 한때

나도 저런 비슷한 마음으로 공감했었는데........

지금.. 왜.. ?

 더욱 그 분함의 본질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예수님, 그 십자가의 사랑과 구원의 길을 절절히 다시 사모하고

부활의 그 힘찬 생명력에 대한

열렬한 갈망과 갈증이 다시 회복되길 원한다.

 내 잘 포장된 자아의 성취 감이 아닌

진정한 십자가와 부활 신앙으로 말이다.

 
  
 
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 있었더라 

 그리고는

그 열망 가운데

내가 드러나길 꼭 바라지는 않는

진실한 영적 성숙이 필요하다.

 

 디오누시오, 다마리아. ..

그들은 이름이 성경에 올랐다.

사도 바울 님의 그 열정에의하여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로

드러나게 된 이름이다.

 

 다른 사람.

다른 사람들에 속한 사람들은 어쩌면 억울 할 수도 있다 .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근본 욕구와 좌절의 바탕, 외로움의 근본에는

이 이름이 알려지고

남에게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의 충족이나 충족되지 못함에 의하여

좌지 우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은 죽어서..

호랑이는 죽어서...라는 옛말처럼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누구나의 본능 깊숙이 숨겨져 있는 깊은 욕구의 근본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서는 우리는 다르다.

이름이 알려져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괜찮다.

실은 , 영혼이 구원을 받고

얼마나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었는가가 중요한 문제일 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영혼 깊숙이 체험하고

부활한 영혼으로 성령충만 하게

하루하루를 살다가

영혼의 깊은 성화로 인하여

더 이상 외적이고 인간적인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늘 영혼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샬롬의 상태로 유지 됨만이

그들에게는 중요한 가치일 뿐이다.

그런 자들에겐

그들이 이름이 다마리아든,  누구든..

다른 사람이든 큰 의미가 없게 된다.

오직, 하나님 만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를 불러 주심 만이 중요하게 된다.

 

 

나.

그 긴밀한 하나님과의 교통을 누리던 자다.

그 긴밀한 감동이 요새 조금 흐려지고 있다.

이유를 난 안다.

이제 난 다른 사람이라는 단어가 조금 신경이 쓰인다.

다른 사람이어도 아무렇지 않고

다른 사람에 속한 것 만이 중요하고

다른 사람에 불러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할 수 있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말씀에 침잠해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말씀에 경건해야 한다.

회개하여야 한다.

그리고 누려야 한다.

 

 

적용

 

1.  내 삶의 의미를 다시한번 새기자.

 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하루를 산다.

하루를 말씀대로 사는것이 내 인생의 목표다.

 

2. 난 다른 자다.

다른 자에 속한 게 나다.

다른 자는 이름없는 자이지만

하나님 만이 아시는 자다.

그것을 묵상하자.

 

3. 감사하자.

 난.. 분함을 느낄 수 있는 자다.

 난.  선택받은 자다.

 난... 주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자다.

 

4. 한명이라도 전도하자.

   말씀은 전했다.

 그 분의 영혼이 받아 들이길 기도하자.

그리고 더욱 전파하길 노력하자.

 

5. 성경 세장 읽자.

 

 

기도

 

주님.

귀하신 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 분의 그 고난을 통하여 제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분의 부활로 인하여 제가 이리 두눈 뜨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저들과는 다른 자로 불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여.

성령의 충만함으로 날 채우시고

강력한 주님의 품안에서 날 보듬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여.

내 주시여.

저..

이 부족한 저는

아직도 정신을 놓고 있으면

내가 다른 자로서 묻혀 버리는 것에 대한 당황하고 혼동스러워 하며

내 자아가 기를 쓰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이 구원해 주신 다른 자들에 속하면

난 살아납니다.

그리 살게 하소서.

그런 의식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여.

내 주여.

내 사랑하는 하나님이시여.

절 붙드시고 지키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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