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말씀에 붙잡혀 ( 행18:1-11 ) 본문
제 18 장 ( Chapter 18, Acts )
세상과 나
어둠과 빛
비추임과 비춤
나
아직도 양 사이에서
가끔은 흔들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시고
난 듣습니다
그럴 때
내 영혼 깊은 곳에
감동이 일렁입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에 사로잡혀
나 이제
내 가진 달란트
세상에 뿌려내고 싶습니다
주님의 빛
발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어둠을 밀어내고
세상을 밝게 할 수 있길 원합니다
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업도 충실히 했다.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그리곤 그의 인생의 전부인 '강론'과 전도를 했다.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하나님 말씀에 붙잡혀서 했다.
6.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대적하여 훼방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말씀 증거가 자신이 해야 할 것임을 알기에 했다.
소명이기에 했다.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훼방하는 자들은 있었지만
듣고 믿는 자도 있었다.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사도바울은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결과는 주님이 하셨다.
바울이 하시는 일 조차
주님이 간섭하셨다.
성령으로 그리하셨다.
11. 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때와 기한.
그게 일년 육개월일지 십 육일이 될 지
주님이 아실 일이다.
사울.
서슬이 시퍼런 자였다.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던 시절은
자기 의로 넘치던 때 였다.
그때는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걱정도 많았을 것이다.
사도 바울님.
단순하게 살게 되었다.
업을 열심히 했다.
말씀 전하는 것 최선을 다했다.
훼방하면 갔다.
고민하거나 대적하지 않았다.
주님이 있으시라면 있고 전하라면 전한다.
걱정하지 말라면 하지 않으셨다.
그게 가능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기에 그렇다.
나.
걱정 많고 생각 많았었다.
비교적 실수는 하지 않는 삶이긴 했지만
그것은 나와 내 가족으로 하여금
탄탄한 긴장을 조성하는 데 일조를 하였다.
나.
늘 삶이 불편하고 힘들었다.
그러다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하며
하나님과의 동행을 느끼기 시작하게 되며
하루를 말씀에 맞추어 살려는 노력은
그 이상의 괜한 심적 소모를 할 이유가 없어지고
살아계신 그 분의 말씀은
인생, 그 어두운 길목에 '등불 ' 밝혀주심이 되었다.
당연히도 난 한걸음 한걸음 잘 나가게 되고
그 걸음을 수년 밟아 나오는 순간
뒤돌아 보니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것에 대하여는 수도 없이 많은 감탄과 더불어
이 블로그에 글로 올려 놓았다.
그러나, 매일 매순간이
늘 쉽고 평탄히만 나오진 않았음도 사실이다.
거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대다수는 '내 영적 상황'에 의하여
조삼 모사하는 나태함과 교만함 탓이기도 했다.
영적으로 밝음을 향해 나가는 자에게
어두움의 세력들의 유혹은 가만히 있지 않았고
나약한 나의 의지는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말씀 묵상과 기도에 게을러져 가고
한동안 되풀이되는 그러한 영적 나태는
여지없이 내 발걸음을 헛디디게 하는 일이 있게 만들었다.
며칠 전 부터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런 나의 영적 나태를 지적하셨고
언제인지 모를 시점부터
나의 영이 무뎌져
'감동'이 사라지던 현상을 경계하셨다.
그랬다.
습관적으로 말씀은 들여다 보는 듯 하지만
나의 관심은 다른데 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나태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은 전설처럼 들려오기 시작하며
자꾸만 옛 성품인 '짜증'과 ' 걱정'이 날 사로잡고
마음은 멍해져서
감동은 없어지고
마치 마취되어 통증 뿐 아니라 선한 촉감까지 사라지듯
그러한 영적인 상태로 매일 매일을 살게 되며
어느새 난 나도 모르게
사울의 강팍한 눈빛을 연상시키는
그러한 강팍함이 내 속에 들어참을 느끼게 되었다.
당황했지만 난 그냥 습관처럼 유지되는
그 평온에서 벗어나기 싫어서
또 가지가지 핑계를 대며 날 합리화의 틀속에 가두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 수록
내 감성은 무뎌지고
결과로 찬양은 줄어들고
사진은 덜 찍혀지며
글은 쓰기가 점점 더 힘이 들어감을 느낀다.
나.
바울 님 처럼
세상에 하나님의 감동을 전하고 픈
나름의 '분함'을 가지고 있던 터,
그게 사라져감은 인생의 목적이 흐려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음에 초조함이 생긴다.
그러다가 여행 다녀온 후
몸의 피곤과 시차의 적응에 혼란에 겹쳐
환우들의 밀려옴은
어쩌면 더욱 더 약해지고 나태해져야 햠에도
하나님은 말씀으로 계속 나를 찌르신다.
레마의 중심은 그렇다.
' 감동의 회복'이시다.
그러면서 그게 공부 조금 잘하는 아들을 둔
아비의 초조한 밂이 아니고
감동을 기억하게 하심이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야할 굵직한 이유,
내 삶의 목표가 흔들려서는 되지 않는
바로 그 큰 이유에 대한 깨달음을 회복하게 하시는 것이시다.
말씀에 찔림을 받기 시작했다.
어제는 아주 짧은 기도에도
내 마음에 들어차는 가슴 떨린 감동이 느껴져 옴을 난 느꼈고
수영하는 물속에서조차
내 움직이는 팔과 다리에 상관없이
머리 속은 계속 회개의 기도를 읊조리고 있었다.
말씀에 사로잡힘.
누구가 그러함 감동을 맛볼 수가 있는가?
믿는 자 , 대다수 보다는
주님을 사랑하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몇 안되시는 분들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라 생각될
나만의 착각 속에서
난 내 영혼 깊이 스며드는
은혜의 지속적 느낌을 누리고 있었다.
회개가 된다.
자식들의 문제에 대하여
너무 적어 보이는 가슴 뚫어짐의 체험을 하게 된다.
모두........
내 부족해져가는 영적 나태에 대한
말씀을 통한 집중의 노력 탓이리라.
그 적용을 기뻐하신 탓이리라.
이제
그런 주님과의 동행이 지속되고
나날이 커져,
더이상 나태의 침범이 영혼을 사로잡지 못할 상황이 되면
매일 매일을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살게 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때는 모든 시름과 걱정은
다 주님께 맡겨 버리고
난 십자가 아래에서
성령의 은총으로 자유를 누리게 되리라.
삶의 무게는 걷혀 가고
삶은 어느새 어떤 상황에서도
구름 같은 평안으로 지속될 것이며
여러 문제는 어느새 해결이 되어 있을 것이며
내 입에서는 고백만이 나올 것이다.
주여.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이 잘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언제라도 주님은 선이심을 확신합니다.
......라고.......
적용
1. 말씀 세장 읽겠다.
2. 회복의 조짐을 감사를 드린다.
3. 기도원 갔다 간다.
4. 말씀에 붙잡혀.. 를 오늘 집중할 묵상으로 삼고 하루를 지낸다.
5. 내 모든 근심, 걱정... 다 주님이 해결하실 줄 믿는다.
내 바램과 다를 지라도 그것이 가장 선이심을 믿는다.
자식들...................
그러리라 안다.
할렐루야다.
6. 회개한다.
기도
주님.
내 삶을 동행하시는 이시여.
오늘 ..
편치 않는 삶 속에서
업을 같이 하며 열심히 살다가
때가 되면 그 장소에서 하나님을 열심히 증거하는
사도 바울님의 인생관을 보고 있습니다.
그가 사는 이유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이 허락하시면
일년 육개월도 머물고
허락지 않으시면 다른 곳으로 감에도
아무런 걱정과 근심을 풀어내지 않는 그를 봅니다.
그가 인내심이 많아서가 아니고
그의 영혼에는 늘 잔잔하고 열정적인 기쁨과 감동이 넘치고
자신도 모르는 당연히 그래야 할 당위성으로 그렇게 삶을 봄니다.
때로는 훼방하는 자들 나타나도
개중의 얼마는 자신의 증거로 인하여
하나님을 영접하고 돌아오는 그들을
영혼의 양식을 삼고 기뻐하는 삶,
그러면서 주님의 하심이 모두 선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삶,
정말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내는
하나님 말씀 안에 사로잡힌 그의 모습을
부러워 하며 바라봅니다.
저..........
그리하소서
주님 뜻대로 ................아무 걱정없이.....
아무런 흔들림 없이 그리하게 하소서.
내 가진 적은 달란트나마
주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을 다해 풀어낼 수 있는
감동의 삶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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