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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구름타고 오시는 그날(계1:1-10:8)

주하인 2006. 7. 24. 11:14

(요한계시록1:1-10:8)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

   에게 보이시려고

3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

  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7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8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 전능한 자라 하

  시더라 

( 저 구름 어디엔가 주님 타고 오실 것 같다... )

 

 

 계시록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이유로는

예수그리스도의 계시이기 때문이며

성경에 기록되었기 때문이고

이 안의 내용은 반드시 이루어 지는 내용이고 속히 이루어질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각 기독교인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어야 하며

반드시 들어야 하며

이 가운데 기록된 것을 하나하나 지켜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복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때가 가까와 졌기 때문이시란다. 

 

전 세계적으로 ,

국가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지금은 종말의 징후를 짙게 보이고 있다.

 

그러한 현상을 굳이 들추지 않아도

이런 내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계시록을 알기를 싫어하고

계시록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금문율 처럼 되어 있는 이유는 웬일인가?

또한 개인적으로도

계시록에 대하여 그리 깊게 다가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또 무엇인가?

 

우선 계시록의 예언적 성격 때문에 많은 오류와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굳이 시한적 종말론자들과 많은 이단들이 이용하는 내용이 이 계시록이라는 게 그 반증이다.

 그 뿐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때가 가까움이라"는

이 문장에 원인이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때가 가깝다는 게 어찌 문제가 된단 말인가?

 

우선 ,

계시록은 예수님 돌아가신 80년 경 뒤인

2천 여년 전 부터

계속 '때가 가깝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그게 이루어 지지 않은 이유도 있다.

 

논리적으로 그걸 어찌 해결해야한단 말인가?

 

 성경의 어느 곳에 보면 '천년이 하루같이 하루가 천년 같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세상의 시간과 주님의 시간이 다르다.

그리고

이러한 계시록에 대한 인간 들의 다른 이견에 의한 굉장히 다양한 반응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데 , 그리고 우리 각 개인의 영적 성장을 달리 하시고

천국의 재목으로서 크기를 선택하실 도구로도 이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개인적 생각이지만

종말에는 세상의 종말 뿐 아니라

개인적 종말도 해당되지 않을 까.. 하는 생각도 있다.

 

막연하게..

 

 그러나,...

무엇보다 확실한 논리적 배경은

이런 비논리적인 '때가 가까울' 이천여년의 시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 들 사이에는 전혀 의심치 않고 계속 유지 되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추후에 계시록에 충만한 수가 ...라는 문장이 나오는 걸로, 주님이 예정하신 천국의

   일정히도 필요한 수가 채워지기 위한 시기가 가까왔으나 , 그 시기가 우리 인간들의

   타락으로 점점 뒤로 늦추어 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시 표현하자면 Interactive..한 시간 !!)

믿어지는데야 어찌 이유가 있을까?

믿어지지 않을 수 도 있는데 믿어지게 하는 데 주님의 놀라우신 살아계신 증거가 아닌가?

아직도 계시록을 들춰 보며 경이의 감정이 든다.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

라는 이 구절은 이해가 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주님의 살아계심이 느껴질 때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의 개념이지

주님의 개념이 아니라느 사실이 다시 느껴진다.

 

그분은 이천년전에도 계셨고

성령으로 지금도 바로 곁에 계시고

7절에 이제 곧 살아계신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실 것을

누구도 보게 된다고 하신 구절이 성령 충만하면 사실로 확신이 된다. 

 

 이러하다면 때가 가까움이라

는 사실에 대하여 다시금 깊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늘 하나님 앞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세상을 보아야 한다.

절제를 해야 한다 , 그리함으로써  경건해져야 한다.

 성경구절에 나와 있다.

 ' 육체에 대한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에 대한 연습은 내세에 도움이 된다.'고..

늘 성경을 보고 읽고 깨달아야 한다.

시간이 되면 종말의 시간의 안타까움에 대하여 경각심을 던져야 한다.

( 저 바위 위에 올라 앉으면 주님 오시는게 빨리 보일라나 .. )

 

그래야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는 그날

그 구름빛이 오색 빛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그래야

휴거여부와 상관없이 그분의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위안과 확신과 칭찬을 받게 되지 않을까?

 

그래야

천국행 준비 하려고 세상재산 다 팔아 모이지 않아도 주님께서 가장 선한 방법으로 우리의 재산을 지켜 주시지 않을까?

 

그래야

부족하고 결점 투성이었던 이 육신에서 갑자기 빛이 나오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며 가장 건강하고 세상에서 보기 힘든 미남미녀로 변하는 부활체를 입게 되지 않을까?

 

모든 걸 주님께 맡기자.

내가 걱정하고 머리돌리고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해도, 남들을 다르다고 핍박해도 , 함부로 이단 정죄해도 그것은 주님의 눈으로 보시면 헛된 개미들의 장난보다 못한 영역싸움인 걸..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적용

 

1. 어제 일요일 내가 옳다고 혈기를 냈다.

   회개합니다.

  

2. 오시는 모든 분들 주님으로 보겠다.

   습관적으로 짜증이 나려한다.

   그럼에도 더 친절하게 주님 모습으로 보려고 집중하겠다.

 

3.  성경 10장 읽겠다.

 

4. 묵상하겠다.

 

 

 

기도

 

주님

이제 계시록 묵상입니다.

 

참으로 주변을 보아도

세상을 보아도

나라를 보아도

윗분들을 보아도

아래를 내려 보아도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평안한 것 같은 것이

마치

성경에서 도적같이 오시는 그날이 연상됩니다.

 

너무나 혼란 스러운데

너무나 아무렇지 않은....

 

어제는

정신차리지 못한 제가

함부로 옛버릇을 놓아두었습니다.

용서하시고

특별히 오늘 계시록을 통하여

오늘도 , 어제도, 내일도 살아계신 우리 주님에 대하여

묵상토록 허락하신게

저에게 다시한번 주님을 바라보고

급한 이 시절에 마음을 다잡으라고 하시는

주님의 뜻이라 알겠나이다.

 

주님

회개합니다.

 

주님.

올바로 살지 못했습니다.

 

주님

바쁜데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늘 제자리 올시다.

 

주님

가장 중요한 것을 뒤로하고

썩어져 갈 것에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주님

도우소서.

 

주님 뜻대로 살 수 있길 소원합니다.

 

주님 부르실 때

깨끗하고 망설임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변화시키소서.

간절히 소원합니다.

 

늘 살아계신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도의 삶의 발전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험하며 얻는 지식의 성장과 일치한다.

- A. W. 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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