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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저런 모습으로..(계1:9-16)

주하인 2006. 7. 25. 10:36

 

 

(요한계시록1:9-1:16)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세상은 지독히도 빨리 돌아가나 누구나 알지 모를 '외로움'이 있고 그걸 잊기 위해 더더더 하며 세상에 몰두하고 있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

 이 외로움과 고독은 영혼을 갉아 먹는 질병이다.

 난, 예수님 믿기 오래 전 부터 깊은 외로움이 있었다.

그 분이 오셔서 치유가 시작이 되고 이제 거의 평안의 나날을 보임에도 가끔 엄습하는 알지 못할 외로움이 있다.

중년이 되면서 호르몬 체계의 영향인지 그 외로움이 스쳐지나가는 날이 종종있다.

이건.. 과거의 유산으로 인한 왜곡된 외로움이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생리적 작용에 의한..ㅎ

어쨋든 꼬리가 주님 앞에서 잡힌...

그래서 인가.

어제는 생전 처음으로 기도굴에서 이리 기도했다.

올바른 기도여부를 따지기 전에 솔직히...

'주님.

힘듭니다.

입신시켜 천국이라도 보여 주시면 더 힘이 나겠나이다..'

 

 

 이런 외로움에 대하여 밧모 섬에 갇힌 '요한사도'께서 느끼게 하신다.

그럼에도 우리의  평범한 이러한 고독감보다...그분의  고독은 훨씬 선했을 것이다

그분은 예수님의 환란을 같이 받기 위한 고독을 느끼시는 것이시다.

예수님의 나라에 ,

그 분이 주시는 고통을 인내하는 범인으로 알수 없는 기쁨에 동참하기 위한 고독이시었다.

 

 여기에

인간의 영혼을 죽이는 '고독과 허탈한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향하여 고정된 시각은 이 고독 마져 승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니

오히려 고독은 주님을 향할 기회인 것이다...

 

이제 고독은 꼬리가 잡혔다 .

주님을 기뻐하고

주님의 일하던 중의 고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결과로 오는 지탄과 손가락질을 , 고독과 함께 주님 십자가 앞에 받쳐 올리면

그것은 오히려 성화가 되는 지름길이 된다.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성령에 감동하니 고독은 물러간다.

그 대신 훨씬 큰 주님의 위로와 임재가 함께 하신다.

언제나 나의 등 뒤에서 함께 하시는 그 분 예수님이 큰 흔적을 보이신다.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누구도 들을 수 없는 개인적인 교류.

어찌나 그 분의 임재하심이 대단하신지 나팔 소리 울리는 것 같은 큰 소리로 느껴진다.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어제 바로 윗 동서가 집에 놀러왔다.

그분은 집사이시고 오래 믿었던 분이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노는 것을 워낙 좋아하시는 분이시라

수많은 가산을 탕진하고

가정적으로도 거의 파탄지경에 와 있었으며 몸은 당뇨에 심장이상으로 엉망진창이다.

 처형과 장모께서 대단한 기도자들로서 최근에 주님께서 기도 중에 큰 소리로 ' 그 영혼 거두어 가리라'는 경고를 주셨음에도 동서는 비웃고  일용직으로 멀리 일을 나갔다가 장마빗 속에 일은 못하고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생생한 환상을 주셨고, 일일히 지도하는 말씀을 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작전기도 들어가면 또 한번의 뚜렷한 응답을 보여주시었다.

일일이 말하기는 어렵지만 몇가지는 너무도 정확히 맞아서 그 말을 들어가며 입을 쩍 벌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분의 너무 강한 육성 탓에 주님께서 직접 임재하신 것이 분명하였다.

다른 증거가 또 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차분해져 있었다.

이십년을 안타까이 지켜보던 그 분이 아니었다.

 

환상이나 계시의 옳고 그름,

삶에 적용시키는 부분을 얘기코자 한 것이 아니다.

어제의 그 일 후

 

 오늘 특별히 요한사도의 계시 장면이 묘사되어 있음을 보면서

그 장면을 하나하나 묵상 해보았다.

 

말 그대로 그림을 그려보면 해괴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똑바로 보는 사람이 없듯이

그분의 임재에 보이는 것은 너무도 강렬하여 직접볼 수가 없고 그의 영혼을 통해 느껴지는 느낌이 그냥 뇌리에 아마도 이랬을 것이야..하고 생각되는 것일 것이다.

 

 가슴 근처어디에서 강렬한 금빛이 보이며 그의 감정에 황홀한 기분을 초래 했을 것이며

주님은 너무도 순수하셔서 그 분을 뵈는 순간 머리털은 너무 순수한 흰색으로 느껴지며 그의 가슴은 순백색의 순수함으로 가득찼을 것이며

눈을 보는 순간 그 분은 이글거리는 열정으로 쏘아져 들어 오는 것으로 느껴졋을 것이다.

발의 주석은 그 분의 든든하심과 흔들리지 않을 고귀함으로

그 분이 말씀하시는 순간, 많은 물 소리... 웅대한 자연 속에서 폭포수 같이 맹렬하고 편안한 의지를

혀에서 나오는 날센 검은 '영육혼'을 쪼개는 그 분의 모든 걸 다 아시는 세심함

얼굴의 햇빛은 영혼 속에 아직도 잠재하고 있을 어두운 부분을 쬐이는 치료의 따사로움을

그의 영혼에 각인 시켰을 듯 싶다.

 

 

묵상 중

요한 사도의 묘사가 내 머리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순간..

 

오래된 외로움이 순간 마치 물방을 터져나가듯이 터져나가는 듯하고

마음에 편안함이 찾아들며

내 알지 못할 깊은 부분까지 그 분께서 다 아실 듯 하며

알 듯 모를 힘이 생겨 나는 듯 했다.

 

 주님은 참으로 다양하게 사람 마다 주님의 의지대로 임하시고 역사하시지만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어제 동서의 환상과 그의 변함을 보이시고 난 후

오늘  아주 약간이나마 사도요한의 환상을 묵상하도록 허락하여 주신 바

주님 앞에 정말 올바로 서려고 몸부림 치면

살아계신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을 들어내시며

나를 완벽히 치유하시고

가장 큰 기쁨으로 맞아 주시고

뜻대로 위안하시며

모든 걸 다 가르치시고

주님이 구름타고 재림하시는 그날

옳다 칭찬하시게 될 것이란 것을 다시금 확신 시키신다.

 

 그리고

주님을 믿고

주님을 생각하며

일상에서 주님으로 내 모든 관심이 꽉찰 때

그리하여

영혼이 주님과 아주 많이 닮아 가 있게 될 그때

우리의 내면에서 용틀임치는 거대한 선의 에너지가

오늘 묵상에서 느껴지는

그 주님의 에너지로 바뀜을 확신 시켜주실 때

간간히 나의 삶을 붙들고 흔들어 대는

어두운 구석은 이제 더 이상 좌절이 되지 못할 것이며

세상은 이제 더 이상 유혹이 되지 못할 것임을 알게 해 주신다.

 

아..

내가 주님으로 열심히 살다가

주님 나라에 갈때

그 분 예수님의 보이시는 저런 위용과는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저러한 빛을 발하며 살게 되지 않을까?

 

 

 

 

기도

 

감사하신 하나님

 

세상의 삶은

어찌 살아도 고민스럽습니다.

돈이 많아도 가슴 한구석은 답답하고

명예가 높아도 어딘가 모르게 허전합니다.

주님을 믿어도 주님 십자가에 내려놓지 못하고

그 외로움으로 깊이 어려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삶의 질곡은 원치 않는 갈등과 오해로 인하여

이웃과 단절되고 깊은 상처에 들어 앉아 있도록 하기도 합니다.

 

오늘

요한 사도의 고독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님을 향한 고정된 시선으로

그 고독이 훨씬 더 큰 진리로 나가게 됨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 맞추어진 온전한 시선은

주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케 하게 하시고

그 속에 들어 앉았던 아주 약간의 죄악마져

마치 귤 속살이 터져 나가듯이

톡톡 터져나가고

그의 영혼엔 희망과 열정과 순수와 힘과 섬세함과

위로와 용기와소망으로 가득차게 됨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리하고 싶습니다.

원과는 다른 모습으로 많이 살고는 있는 보람차지 않은 인생인듯 스스로 느껴지지만

우리 주님..

주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도우소서.

그런 마음마져 주소서.

그리하여서

주님이 보이시는 제 장래의 모습을 하루 빨리

내 영혼 깊숙한 내면에서 부터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길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조만간

이 육신 장막을 벗는 바로 그때

주님 보다는 못하지만

그리 닮게 하소서.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주님을 섬긴 뒤에 상처를 받으면 부활 경험과 같은 기쁨으로 이어진다.

 - J. I. 패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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