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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감당치 못하게 당당하다(히11:23-4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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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감당치 못하게 당당하다(히11:23-40)

주하인 2006. 7. 19. 10:49

(히브리서11:23-11:40)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no ordinary child 평범치 않은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러한 평안을...)

 

 

 믿음 있는 자들의 특징이다.

 

 도대체가 무서워 하지를 않는다.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그런 자들은 좀 이상하다. 

 

세상의 성공에도 초연하다.

권력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다.

희한하다.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마치 고난을 즐기는 듯한 사람 같다.

 

실은 '죄악으로 몸이 즐거워 지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다.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

 

 

 이런 믿음있는 자들의 어리석은 듯한

아니, 약간은 질투심을 유발하는 당당한 행동의 원인에 대하여 가끔 이해할 수가 없었었다.

 

그러나,

그들의 깊은 심사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것이라면 어떠한 능욕도 더 기쁜 것으로 받는다는

확고부동한 의식이 있음을 알고 나서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그런 명제는 아직도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었으나

이제 일상에서

고통이지만

그리스도를 위한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의 전환 노력과 더불어

그에 따르는 기쁨을 조금씩 체득하기 시작하고

그 기쁨이 주님의 쓰다듬는 듯한

평강의 기쁨을 느낌으로서

점차로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점까지 진행이 되어 온 지금은

"주님..

 자격이 되면 저도 그런 믿음 주세요"

라고 고백하고 싶기도 하다.

 

더구나... .

그 뒤에 큰 상이 있다니 그 믿음의 댓가가 얼마나 대단한가?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

    도다

32 내가 무슨 말을 더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

    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

    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

    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믿음있는 자들은 이런 무지막지한 일에도 두려워 하지 않고 담대하다.

전혀 두려움이 없다.

 

 사람으로 가능치 않은 일인듯하다.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 사탕 많이 먹으면 우리 몸이 감당치 못합니다 ^^;;;)

 

 

 성경에도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세상이 그들을 담기에는 그들은 너무 큰 자질 들이고

세상은 믿음이 있는 그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너무 하찮은 것이다.

 

정말 끊임없는 유혹에

살아가는 그 긴 기간 동안 인간으로 끝까지 가능한가?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의 순종과

그 분의 인도하심에 의해

강력한 믿음이 가능한 것이다.

 

아..

믿음이 순종을

순종이 다시 믿음을 더 강화 시키는 것이다.

 

그 안에는

주님과 나 만이 알 수 있는

기쁨과 사랑의 감정이

커지는 현상이 있기에 가능하다.

 

따라서

믿음이 커지면서

사랑과 평안함, 온유함 , 기쁨 등의 성령의 열매는 외부로

표출되어 누가 봐도 하나님의 사람임이 당연히 느껴지게 되어 있는 듯 싶다.

 

이래서

그들 믿음이 대단한 자들은

그들의 이해치 못할 행동과 더불어서

그들이 보이는 온유한 카리스마로

세상이 도저히 감당치 못할 것이 당연한 것이다.

 

 

적용

 

1. 가끔 어리석은 듯 보이는 , 세상이 보기에 무식지 않아 보일까 하는 스스로의 혼란을 오히려 기뻐해 보아야 한다.

 . 전도

 . 말씀 증거

 . 주님의 일을 하면서 남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을 오히려 누르는 어리석은 현상임을 깊이 인식한다.

 

2. 세상이 감당치 못하 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눈, 두려움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기도한다.

 주님 뜻이라 생각되면 과감히 행동하겠다.

 

3. 주님의 것과 내 아집에 의한 것과 구분을 할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다.

 주님의 것은 평온의 기쁨이다.

 

 

기도

 

 주님

계속적인 믿음에 대한 구절이 생각케 하는 것이 많습니다.

저처럼 무모한 듯 보여도

세상이 감당치 못할 망나니 처럼 보일 수 있다고 스스로 당황스러워도

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큰 담대함으로

우리를 감싸 주시는 주님의 도우심과

그 기쁨을 아는 믿음의 소유자들의 마음을 알게 하시고

그 들의 감당치 못할 온유함과 성령의 열매를 이해케 하시어서

사모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은 돌아보아도

전혀 가능치 않아 보여도

이제

주님이 허락하시면

높은 믿음의 저희가 될 수 있기를 믿습니다.

 

현실의 어려움도 해결해 주시고

주님의 뜻이 아니시면

그 어려움을 기쁨으로 감당할 마음을 더 부어 주셔서

어렵고 힘들지만

반드시 지나가야할

이 인생의 여정을 마감할 즈음에

그 사람은

믿음이 충만한 자였어..하고 아쉬워할

그런 자가 되도록 도우소서.

 

일상에서

순교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준행하는 자가 되도록 해달라는

어떤 분의 기도처럼

마주치는 모든 분들이

우리 주님의 또다른 현신으로 보이게 하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만 그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 C. S.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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