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래도 가자 (히12:1-13) 본문
(히브리서12:1-12:13)
오늘 구절은 구구절절이 가슴에 온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할렐루야.
증인 들 뿐이겠나이까?
제 자신도 많은 체험을 하고 살아오지 않습니까?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죄는 달지만 결과는 무겁고 찐득합니다.
아예 더 짓기 전에 벗어 버려야지요.
어제 생활의 답답함으로 나름대로 기발하고 오래 전부터 깊이 생각해왔던 아이템을 집사람에게 얘기 했다가 주님 앞에 '죄'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아니라고 부인하며 발끈하려 했었다.
그래.
인간적으로 죄가 아니라도 주님 앞에서는 홀가분 하지 않을 수 도 있다.
그래서 그게 나를 얽매일 것 같은지 좀더 시간을 두고 기도 해보아야 겠다고 다짐하던 차...
주님이 경고하신다.
살아계신 그 분.
인내로써
초신자들이나 별로 고민 않고 살아가는 선데이 크리스찬으로 나를 규정지으려면 '은혜'와 '은사'만 처절히 사모하면 된다.
그러나 누구나 인정하지만 주님은 성장을 요구하신다.
성화를 원하신다.
인내가 필요하다.
오늘 아침 '인내'가 필요함을 난 알고 묵상구절을 읽으며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경주, 달리기를 달려야 하는 것은 필연이다.
이 모든 것이 당한것이지 내 잘못만은 아니다.
즉 , 당연하지만 내 주위의 모든 어이없는 고통조차도 모두 주님의 뜻에 의해서 성화라는 경주를 위해 예비된 것이니 달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제일도...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믿음은 어제까지 그리도 강조가 되어 있다.
믿음의 주체이고 믿음을 허락하시며
그렇게 되기까지 완전하게 만드시는 분도 모두 내 의지라기 보다
예수님 탓이라는 것이다.
바라보자
난 예수님을 바라보려는 노력 만 필요하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즐거움?
어떤 즐거움이 있길래...
주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인간으로 오셨지만 하나님을 직접 마주 앉는 천국의 기쁨을 아시는 것이시다.
인간을 위해 희생하시는 그 거룩한 사랑의 기쁨을 아시는 분이시다.
그 즐거움이 얼마나 크시던지..
십자가를 참으사
십자가의 그 엄청난 고통을 참으셨다.
아니...그보다 더 큰 두려움을 참으셨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십자가의 운명을 잉태 되셨을 당시부터 아셨을 것을 생각하여도 33년 이상이나 지독한 두려움을 견디신 것이다.
두려움 뿐이랴..
부끄러움을
아는 자들에게 배반당하고
옷을 찢기고 매달리고
손가락질 당하고
호산나에서 가장 나쁜 자로 급전직하당하시고
머리 뒤통수를 세상의 가장 추할 듯한 로마 병정에게 맞으심 당하고
침 뱉어지고
군중의 손가락질.................
부끄럽지 않을 것인가?
가장 높은 자가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내려오신 것만 해도 대단한 부끄러움을 물리치실 일인데..
바꿔 놓고 난 하루만 돼지 우리에서 누워 지내라면 가능키나 할 것인지 생각지도 못하겠다.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난 개인적으로 부끄러움이 많다.
실은 어제 별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대화 중 지적에 오래된 부끄러움이 또 작동을 하면서
답답한 현실과 묶이면서 속에서 부글~ 하려 했다.
이것은 오랜 묵상과 연단에도 잘 없어지지 않는 내 내면의 오동작이다.
그럼에도 꼬리는 잡혔다.
특별히 주님은 날 개인적으로 말씀하신다.
개의치 말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왜 그러신가?
그 분은 즐거움이 앞에 있다는 걸 아신다고 하셨다.
그 즐거움의 실체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 보좌 우편.
아..
천국의 그날.
이 땅에서 모든 자가 주님의 다른 모습으로 보일 때
내 거하고 향하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이 될 수도 있다.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이게 가끔은 도전으로
가끔은 피하고 싶은 말씀으로 다가오는 구절이다.
죄는 반드시 없어져야할 내 속의 더러운 부분이지만,
그리고 얼마나 끈질긴지 혼자힘으로 극복하기 이토록 어려운 것을 알려주시기도 하지만 ,
죄는 반드시 피흘리기 까지 싸워서라도 뽑아내야할 것이라고 주님께서 격려하시는 것이기도 하다.
화이팅 !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 우리 주님은 날 혼자 두시지 않는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으나 그냥 더 누웠다.
아침에 예정된 시간대로 나가서 주님을 묵상하고 내 시간을 1시간 정도 깊이 가지는 것을 얼마동안 잘 지켜왔다.
어제의 내적인 동요로 마음이 무거우니 몸이 천근이라서였다.
주님은 절묘하시게 아신다.
"아들아"라고 하시며 날 안으신다.
낙심하지 말라라고 위안하신다.
그러면서 경히 여기지 말라고 권면하신다.
참으로 다정하시다.
예.. 그래야지요.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그렇습니다.
혹 생각하는 불행한 일이 제 앞에 닥쳐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가혹한 일이 저를 막아서도
주님의 뜻입니다.
징계는 주님 뜻이요.
그것은 그분의 사랑의 표시이지요.
제 안의 죄가 끈적여서 도저히 벗겨지지 않을 것을 아시기에
그 분은 위안으로 징계로 그걸 벗겨내시는 것이시지요.
때로는 얼마나 아픈지 '채찍질'로 느껴지기도 할 것이라 말씀하여 주시니
주님의 그 세심함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주님은 징계가 당연한 것 처럼
우리의 참음과 인내가 당연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신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예수님도 그러셨다.
나도 그래야 한다.
그래야 난 주님의 아들이다.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관계없는 자에게는 관심도 없으시다.
무관심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버려진 저주이다.
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주님 하나님은 이리도 섬세하시다.
알아도 잊어버리고
엄청난 간증과 더불어 첫사랑의 갇힘 안에서 신앙을 시작했어도 잊어 먹어버리는 것이 정말로 창피하고 냄새나는 거북한 존재인 우리들이다.
지금까지 알려주신 것을 이렇듯
세심한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될 우리, 특히 나에게 강조 또 강조하신다.
'사랑해요 .
아버지 하나님 ! '
( 이 사랑보다 훨씬 훨씬 훨씬 더요 ~ ^^* )
아들 주하인 이하 모든 성숙할 기독교인 아들 올림
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잠시' 다.
환란과 고통이 끝이 없이 지속될 것 같은 암담함안에 있어도 이 고통은 잠시다.
분명히 주님도 말씀하신다.
잠시라고..
그것도 그 분 뜻대로라고...
고통스러운 것은 마음의 차이다.
실제는 아니다.
그 분을 의식하고 있으며 받는 고통은 기쁨이다.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드디어 정답에 가까워 진다.
고통은 유익이다.
고통은 거룩할 기회다.
고통은 주님 예수님과 같은 행사에 참예할 기회이다.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그래..
머리로는 지금까지의 모든 사실을 잘 알지만 너무 힘들면 그게 지속이 되는가?
좋은 부모는 자식의 마음을 그냥 읽어주고 공감해주고 가만히 쳐다봐 주는 자란다.
주님이 그런 부모같은 분임을 가끔 성경을 읽다가 느끼면서 가슴이 뭉클 해질 때가 있다.
고통이 즐거워 보이지 않다는 걸... 잘아시고 계신다.
하나님이 인간을 아신다.
슬퍼도 보인다고 하시지 않는가?
얼마나 다정하고 다감하신 아버지이신가?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면서도 갈 수 밖에 없는 인생여정에 대하여 다시한번 확인시킨다.
고난은 의롭게 한다.
의는 평강을 허락한다.
고통은 이롭다.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다정한 아버지의 위로가 또 이어진다.
" 얘야 안타깝구나.
피곤해서 팔이 축쳐져 있구나..
얼마나 넘어지고 쓰러졌던지 네 다리가 참으로 연약해 보이는구나.
그래도 이제 다시 힘을 내거라.
네 피곤한 손에 힘을 내어라.
네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라"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 곧게 걷도록 노력해라.
그리하다보면
저는 네 다리가 어느새 흔들리지 않고
이리 삐둘
저리 삐둘 휘청거리던 네 다리가
어느사이에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고침을 받을 것이다. "
참으로 소망이 있는 말씀이다.
감사하고 귀하신 하나님.
기도
고맙습니다.
살아계셔서
다정하게 이해해주시고
부드럽게 공감해주시고
세세하게 나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주시고
하나하나 안내해주시며
앞으로 있을 희망적인
사실을
자분자분 깨닫게 해주시는
정말 좋으신 아버지 모습을 보이셔서 감사합니다.
자칫
흔들릴까봐
걱정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읽혀져서
오늘 아침 다시한번 뿌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위대한 업적은 힘이 아니라, 인내에 의해 성취된다.
- 새뮤얼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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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F.Handel, arr.H. Harty"/ Water music suite Alleg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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