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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아신다[요4:1-14]

주하인 2013. 1. 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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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모든 어려움 아신다면서도

어찌

모습을 보이시지 않으시는 지요

 

이리

소리내어 울부짖지는 못했어도

가끔은

넋놓고 손발에 힘풀어

저항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한동안은

주님이 아실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시지 않는

주님의 임재를

의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기에

얼굴 붉어집니다

다시한번

손들고 눈물뿌려

회개합니다

 

이제

다시한번 간구합니다

주님의 아심을 아는

온전히 믿고 아는

제가 되게 하소서

 

그 아심을 아는

어떠한 상황도

선하심임을 감사하고 기뻐하는

그런 나

되게 하소서

 


 1.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주께서 아신지라'

 

주께서 모르실 것이 있으실 것인가?

주께서는 다 아신다.

요한의 인간적 마음이 처할 상황에 대하여서도 아시고 이해하실 것이지만

요한의 자기 정체성이 인간적인 것에 멈추어 있질 않음도 아셨을 것이기에

그 분은 더 이상의 '위로'는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나.

어쩌면 '너무 위로만 바라'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누군가?

나에 대하여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

그 원하심을 내 원함으로 받아야 하지 않던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이 내 사실을 모두 아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내 속의 갈등은 사라지지 않을까?

아니, 갈등을 넘어서 기쁨이 생겨나지 않을까?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상처 많은 사마리아 여인.

그 여인을 만난 것이 '피곤하고 배고프실 ' 18시 즈음 이시다.

오후 여섯시.

인생의 50대 역시 24시간의 6시 즈음이 아닐까?

그것은 나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것 같이 느껴진다. ^^*

 

점심을 먹고 차한 잔을 하면서

가만히 쳐다보니 올해로 모두 '50'대에 든 사람들 뿐이다.

새삼, '아.. 축하합니다.   50대 되신것...' 하니

깜짝 놀라며 당혹스러워하는 얼굴 빛이 스치더만

금방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 만큼 40대와 50대가 주는 느낌은 유다르다.

어쩌면 더 피곤하고 더 무겁고

조금은 더 늙은 듯한................

50대를 먼저 진입한 나에게 어떠냐 하길래 그랬다.

'그냥 편하다.'.

정말이다.

나의 오십대는 세상적으로 그리 성공스러운 것 같지는 않지만

아니.. 오히려 vision의 끝이 무거워짐 - 자식... 의 문제 포함 ㅜ.ㅜ;;- 으로 인하여

힘이 빠질 듯 함에도

'괜찮다'는 느낌이 날 사로잡는다.

이전보다 그만큼 편안하고 자신이 생긴다.

 예리하신 P원장이 그런다.

'모두 다 그러한 것은 아니예요.

 잘 받아 들이고 계신듯하네요.'

맞다.

난 주님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50대의 여러 무게들을

그냥 내려놓고 받아 들이며

어깨의 짐을 주님께 맡긴 덕인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 40대의 전부와 50대 이후의 전부를 각각 평균내보니

내 감정의 기조가 그랬고

조금 쉽게 그런 고백이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ㅎ

 아직도 매일 매일 수없이 넘어지고

괜한 걱정과 근심과 죄된 심성으로

나와 남을 어렵게 하는지 모른다.

그럴 때 마다 한심하고 어이가 없어 '좌절'하여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도 많다.

하지만, 주님이 일으켜 세우시고 또 은혜로 다독거려 주시는 시간이

점차로 빨라지고 늘어나는게 다르다.

 

오늘 '주님이 아신다' 라는 부분에 눈이 간다.

주님은 특별히 오늘의 내 걱정 부분,

주님의 뜻 안에서의 혼돈 부분에 대하여 '잘 아시고 계신다'고 확증을 주신다.

그렇다.

아시고 계신다.

그 아시고 계심을 '혹시 모르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길 것을 아시고

다시한번 다독이고 든든히 해 주심이다.

감사하다.

 사도 요한의 어려움,

그중에서도 가장 심할 '인생 목표'의 흔들림과

어쩌면 생길 '질투' 등의 발생 가능성들을 모두 아시면서도

그의 '바램'이 그것이 아닐 것을 더욱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를 위로하려 가지 않으신

그 깊은 원리를 '나'는 알아차려야 한다.

 

 오늘의 내 삶 속에서 어쩌면 사도요한 처럼

모든 것을 잃고서 얻어질 지 모르는 허탈함 마져 위로하지 않으시는 듯한

하나님께 대한 '실망'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나이든 자' ,

영적으로 시간이 많이 지나 성장해 있어야 할 자에게는

매사에 위로함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만큼은 다시한번 더욱 깊이 깨달아

매사에 감사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적용

 

1. 주님이 아신지라.

  주님은 모든 것 다 아시는 분 임을 명심하자.

 

2. 주님의 응답.

 주시고 안주시고 모두 그 분의 뜻이시다.

어쩌면 가만히 보고 계심은 '나의 힘'을 인정하시는 것이기도 하다.

나에게 간섭하지 않으심은 내가 성장한 자임을 인정하시는 것일 수도 잇다.

 

3.  인생 여섯 시

참 .. 일도 많다.

잠시 마음이 힘들면 내 몸의 근육은 본색을 드러낸다.

지친다.

하지만, 여섯시 되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다.

오십 넘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가볍다.

나.. 그리 잘못살지 않은 듯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흐르듯 살자.

그러다 주님 부르시면 '간다 ~!'

 

4. 성경 세장 읽으리라.

 

 

기도

 

주님.

귀하신 내 주님이

내 모든 것을 다 아신다고 이리 말씀해주십니다.

심지어는 당연히도 이렇게 위로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라 생각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은 이렇게 해야 할것이라고 생각하던 것 조차

정답이 아닐수 있음을 깨닫게됩니다.

내 주시여.

 혼자 힘이 들지만

그게 옳으면 홀로 두심도 

모든 것을 다아시는 예수님의 뜻이시면

그렇게 하시되

주여.. 부디 저로 하여금

제가 아직도 위로가 필요할지

위로가 필요치 않은 상황인지 알게 하소서.

아니.. 주여...실은 그보다

모든 것 주님 안에서 '선함'이심을 믿어 의심치 말게 하소서.

주님.

다행이도 주님의 은혜로 '중심'을 잡고는 있지만

흔들림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잘아시다시피 머리가 아플 지경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의 어려움 어려움 사이사이

주님의 뜻에 게을러지면 답답하고 처지려 하오니

이제 전혀 그리하지 않게 하소서.

말씀 대로 주님은 다 아시니

그 아심을 내 영혼 깊숙이 각인시키시어

언제나 감사하는 삶 살게 하소서.

주여.

제 그러한 것..

제 아들들 알게 하시고

제 아내 더욱 당연히 믿게 하시어

모두 주 안에서 기뻐하게 하시고

회복되게 하소서.

주님.

모두 그리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진정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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