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의 정의 안에서[사42:1-25] 본문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예수님.
그가 베푸실 '정의'.
우리는 정의에 대하여 잘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막연히 자리 잡고 있는 정의의 개념이 꼭..옳은가?
딱딱하고,
악을 이겨서 후련하고
조금은 지켜내기 힘들고
비교적 차갑고.......
정의의 지키기 쉽지 않음은 M 교수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쉽지 않고 두꺼운 책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공전의 히트를 쳤음은
사람들이 '정의가 무엇인 정의 되지 않은 ' 사회에 살면서
그것을 자유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맘 깊은 곳에는 그들도 깨닫지 못하는
'정의', 곧 지켜야할 기본에 대한 갈구가 절실하다는 방증이며
또한 '정의'에 대하여 하바드 대학 교수가 그렇게 좋은 머리로 다양한 생각들을
정리했다는 이야기고
돌려 말하면 그도 '잘 모른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그렇다.
세상 어디에 '정의'의 단초가 있을까?
인간들이 도덕이라고 세워 놓은 기초,
인륜지대사라 규정해놓은 수많은 것들 중에 정말 '정의'가 있을까?
정말 옳은 자라고 생각되는 자가 가장 정의로운 칼을 들이 댈때
그때는 정말 '살벌한 칼'이 됨은
'레미제라블' 의 형사가 자살함으로 극명히 깨달아갈 수 있다면
주하인의 지력 (知力 )이 그것 밖에 안되어서 인가?ㅎㅎ
심지어는 '겸손'하다고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 가장 큰 교만이 시작되다고
우찌무라 간조라는 분은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무슨 이야긴가?
인간에게는 '정의'를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강아지들끼리
늑대들끼리 세우는 도덕은 '조폭'의 순위 다툼과 다름없다.
오직 우리의 근거는 '예수님', 하나님이 될 뿐이다.
그 분 예수님은 세상에 오시어
'정의'를 목소리 높여 외치지도 거리에 들리게 외치지도 않으셨다신다.
무엇인가?
그 분 만이 알고 있으시단 이야기다.
그 분 안에 거하지 않으면
그 분이 우리 안에 거하지 않으시면
절대로 정의에 대하여 정의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아침... 이 아침에 이 무거운 주제,
정의에 대하여 굳이 말씀을 하시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
오늘 하루 또 무겁게 보내게 하려시는 말씀이시던가?
아니다.
주님 나라는 '순서'의 나라고 화합의 나라이며
그것은 무거움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이 주시는 '정의로운 조화',
그로 인하여 느껴지는 우리 영혼의 놀라운 '자유로움'에 의한 것이다.
그 정의를 세상에 살면서 알게 하시고
그 정의에 대한 갈구로
세상을 살되 천국을 사는 기쁨을 누리게하실 목적이시겠고
그러한 자들이 세상에 자꾸 늘어나
하나님을 기쁘게 함을 보시고자 함이 아니시던가?
우리를 만들어 누리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기쁜 목적...!!
오늘 정의'의 근거는 예수님이시다.
그 분의 십자가를 다시한번 묵상하고
그 분이 주시는 자유와 평강 안에서
말씀을 매개로 일상 중 대화를 하며 동행하여
오늘 하루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정의로운 하루로 마감해야 한다.
감사하다.
주님.
정의.
듣기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당연히 우리가 가져야 할 당위성을 앎에도 불구하고
정의란 단어가 주는 그 칼같은 냉정함에 대하여
저 뿐아니라 많은 자들이 '자기가 옳은 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늪에 올인하며
죽음을 향하여 다가가는 파리 같은 삶들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
그러나 이 땅에서 인간들끼리 만으로는
도저히 정의를 정의할 수 없고
그러기에 더더욱 큰 정의에 대한 혼란 만을 가져옵니다.
주여.
이 불쌍한 세대를 용서하소서.
불쌍한 이 주하인.,. 미련한 영혼을 가련히 여기시어
우리 주 예수의 정의 안에 거하게 하소서.
세상의 허탄한 것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어지러운 세상의 원리 없음을 부러워 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정의의 차가움이 아닌 ,
옳은 정의의 놀라운 평화와 기쁨을 확장시키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내 주님이시여.
아들과 출근하는 차 안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주님의 정의에서 아들이 많은 깨달음과 깊은 감동을 얻었다고
한참을 떠들떠들 얘기를 펼쳐놓는 모습이 참 귀했습니다.
귀한 깨달음으로 하나님께 한걸음 더 다가가는 자 되게 하시고
크게 쓰소서.
또 한 아들도...주님께 맡깁니다.
주님의 정의 안에서 두 젊은 영혼.. 깊게 넓게 인도하소서
내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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