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더 기도하고 더 기대하자[사41:21-29] 본문
한참을 쳐다보아야
전선줄 사이의 달이 보이듯
어느 땐
인생의 절망이
삶의 질곡들이
눈앞을 흐려
그것 들이 전부인양 할 때
주여
오직 주만 바라보게하소서
더 기도하게 하시고
더 기대하게 하소서
어느새
가린 인생의 줄 대신
넓고 광활한 하늘 보게 하시고
그 뒤를 받치고 있는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22.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이 어떠한 것도 알게 하라 우리가 마음에 두고 그
결말을 알아보리라 혹 앞으로 올 일을 듣게 하며
29.보라 그들은 다 헛되며 그들의 행사는 허무하며 그들이 부어 만든 우상들은 바람이요 공허한 것뿐이니라
우상을 찾는 사람들은
그들이 '미래'를 알려 줄 거라는 기대를 하고 간다.
또, 과거의 지나간 것들의 의미를 깨우치게 할 것이라고도 생각하는 지 모른다.
하나님은 미래를 알려주시지 못하는 분이라 생각하고
과거를 어루 만지지 못하는 분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너무나도 크신 분이라 부담스러워서 인가?
아실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세세한 인생의 문제들로 다가가서 아뢰기힘들어서 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우상의 특질에 있다.
인간은 눈에 보이고 즉물적, 즉각적인 것 만을 이해할 수 있는
지력의 한계 탓이 아닐까?
그래서 하나님을 자기 들이 이해할 수 있는 형상의 틀에 넣어 만들려 한다.
그 극명한 증거가 시내산에서 모세가 오랫동안 보이지 않자 만든 금송아지 사건을 보아서
쉽게 알 수 있지 않던가?
하나님은 온 우주를 만드시고
지구를 만드시고 나라를 만드시고 나를 만드시고... 모든 것을 다 만드신
너무나 크고 위대하신 분인데..어찌 겨우 금붙이나 돌조각에 가두려 하던가?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시던가?
나.
우상을 만들지는 않는다.
아니.. 매사에 그렇지는 못하지만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할 지력은 가졌고
무엇보다 말씀으로 훈련 받는 과정 중에 있다.
그러기에 100%라고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형상 안에 가두는 어리석은 짓은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자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무엇을 바라시는가?
어쩌면 '역으로' 오늘 저들, 우상을 섬기고 점을 치고 , 세계 평화를 외치며
각종 인본 주의 적이고 유물론적 사고에 익숙한 저들보다
믿음이란 면에서 강도가 적은 것을 찌르시는 것이 아니시던가?
미래와 과거를 알게해달라고
돈내고 무릎꿇고 빌고 몇천배를 하거나 오체투지를 하는 저들의 간절함을
나는 지금 가지고 있더냐?
하나님이 그러시는 것 같다.
'주하인아.
나는 미래와 과거를 너에게 보여줄 수 있다.
그것은 너의 풍부함과 평안함과 흐름과 통합을 줄 것이다.
더욱 간절히 기도해봐라.' ....
나의 형상을 만들지 않음과
그에 따른 간절함의 부족함의 상관관계.
어차피 인생은 그렇다.
허무하고
바람이고
공허한 것 뿐이다.
그들이 그토록 매달려 바라는 물질의 풍요와
이생의 자랑과 육신의 강건함과 자손의 번영들...
예정되어 있는 인생의 시간 앞에 스러지는 모래성일 뿐이다.
그것에 그토록 열정적으로 빌고 꿇고 울부짖기 싫다.
그래서 무엇을 만들어 내고 이상화 시키기도 싫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려 하니 인생이 재미가 없다.
별 낙이 없었다.
그게 ..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 전의 내 생활 패턴이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를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내 메마르고 공허한 속을
감동으로 채우고 감사로 바꾸고 나니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은 '희망'이고 '소망'이었다.
그래서 난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사진이 따라 붙었다.
내게 주어진 달란트인 '찬양'을 통해 스스로 쓰임 받게 하셧다.
의술의 기법을 개발시키시고
논문을 쓰게 하셨다.
조금은 나아진 아버지나 남편과 아들로서 틀을 잡아 주시게 하시고
무엇보다 은퇴 시간 이후 에 무엇을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하여서도
막연하지만 방향을 잡게 해주시었다.
그것... 아직도 갈길이 멀고 잡아주신 틀을 곤고하게 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하나님은 '우상'과는 다르심을
확신하게 하시는 '나의 변화'이란 이야기다.
난.. 삶의 반경이 크지 않다.
전세계를 다니며 세상사람들을 상대로 얻는 경험이 풍부한 사람도 아니고
비교적 특수한 대인관계를 해야 하는 '의사'라는 위치에 있기에
조금은 그렇다.
그렇기에 조금은 더 단조로울수 밖에 없는 인생의 패턴에서
하나님은 나에 맞는 저러한 변화를 가져오신 것이시다.
그것, '상전벽해'다.
우상.
그것들이 그럴 수 있는가?
심지어는 '비젼'이라는 이름 하에 이 땅의 기독교인들이 세우고 추구하는
그 목표 지상주의적 믿음도 어찌 보면
'우상' 아닐까?
하나님을 틀에 가두고 실적이란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자신을 올인하는 것...
그러나, 그것이 과거를 말해줄 수 있고
미래를 장담할 수 있겠던가?
그렇다.
세상의 '믿음'도 신념이란 이름하에 성공을 가져오긴 한다.
우상 들도 준다.
비젼은 이룸을 조금 더 빠르게 다가가는 목표이기도 하다.
인생을 매진하는 눈가림을 가져와
더이상의 고민과 갈등을 필요하게 하지 않는다.
더더구나 조직속에서 포함되어 만족을 느끼길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의 취향에는
아주 잘맞다.
그러나, 우상은 모두 조건이 있다.
하나를 주면 다른 것을 요구한다.
빠른 것 같지만 결국은 느리다.
성공하는 것 같지만 망한다.
왜 하나님이 주시는 저러한 '통합'적인 발전을
우리는 기대하지 못하던가?
나.
나의 예를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떠밀려 왔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날 수가 없도록 얼기설기 묶어놓은 제재들이 내 안에 많았다.
그리그리 오니 여기까지 왔다.
물론, 여기까지 온게 성공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보다 대단한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은 아니다.
단, 하나님의 원리를 내 안에서 조금씩 증명해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난..기쁨을 잃지 않고 있다.
감동과 감사가 내 인생의 주이고
그것을 따라 하나하나 변화가 되어 왔다는 것이다
문제는 오늘 서두에 고백했듯
우상 믿는 자들의 열심과 절박함이
아직
나에게는 조금 부족한 것이 있다.
그 분이 내 과거와 미래를 모두 알고 계시고
더욱 확실히 선한 것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확신하고
간구하고 갈구하는 것이다 .
거기에는 내 자식들의 미래도 포함되어 있다.
내 그들과 엮여진 풀지 못한 과거들마져 포함되어 있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그러셧다.
예수님 보내심으로 우리의 과거와 미래까지 다 주장할줄 모르느냐고..
오늘 말씀이 그러시는 것 같다.
조금더 믿고 기대하자
조금 더 현재를 감사하고 미래를 기대하고 과거를 내려놓자 .
주님은 우상보다 당연히도 크신 분이시다.
적용
1. 주님은 크신 분이시다.
그분은 우리에게 즉답 즉현 하시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 분이 우상에 비해 적으신 분이라 생각하는 것은 진정 어린 오해다.
그 분은 당신의 시간에 가장 선한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기대를 놓지 말자 .
2. 더 절실하게 기도하자 .
하나님은 형상을 만들 수 없는 분이다.
그냥 기대고 말씀 아뢰고 기대할 분이다.
그 분은 미래도 말하고 과거도 풀어주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뜻대로다.
우리가 할 일은 '기도'하고 기대하는 일 뿐이다.
오늘 더 그러자.
3. 성경 세장 읽자
4. 우리 가족 미래와 과거를 놓고 조금 더 기도하자 .
저녁마다 아내랑 하는 기도 제목이 응답 받았다.
이사문제..
일년간 기다림 끝에 얼마전..ㅎ
이젠 가족을 위해 더 하겠다.
5. 형상을 만들지 말자.
어떤 것이든 목표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목표가 하나님을 앞서지 않게 하자.
늘 말씀으로 균형을 잡는 목표가 되도록 하자.
미래는 목표라는 말과 연관이 있다.
미래를 위해 너무 기다림도
지나친 앞섬도 필요없다.
지나치 앞섬은 우상이 되고
너무 기다리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음은 '우상' 만들지 않기 위하여
미래를 빌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6. 옳은 믿음은 자유로운 지혜다.
위의 적용을 보아서도 그렇다.
율법과 방종의 지옥 사이에서 옳은 믿음을 선택함은 매일 매일의 의무다.
말씀 앞에서서 가지는 선택은 '자유'를 보장한다.
괜한 에너지를 쓰지 않게 하고
주님 원하시는 길로 옳게 가게 하여
일상의 모든 것 조차 풀어지는 '귀한 길'이다.
기도
주님.
오늘은 우상과 비교하시며
당신은 안그러심을 강변하십니다.
오실 예수님.. 우리에겐 오신 예수님을 말씀하시며
그 분의 그 과거와 미래마져 주장하시는 너무도 당연한 일에 대하여
저들, 불신자와 신자를 자처하지만 '우상'을 만들기 좋아하는 자들과
아니라면서 내 안에 또 또아리를 틀지 알지 못할
교만의 우상들을 지적하시사
말씀 앞에 내려 놓고 그런 위험들을 태워 없애길 기대하십니다.
주님.
저 그러하신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길 결심하나이다.
지혜로 절 채우시고 의지로 절 붙드시고
늘 그러하셨듯 그러한 저를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영으로
또 뜨겁게 제 영혼을 사로잡으소서.
그래서 이땅이 살만하고
주님이 계신 저나라가 희망으로 다가오시게 하시고
이 땅의 제 부족한 것 모두 알고 계시고 어루만지시고 계실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 특별히 우상 믿는 자들에 비하여,
생각없이 함부로 비전이라는 이름 하에 하나님을 도구로 이용하려는
지혜없는 자들의 그 강한 '기대'는 배우길 원합니다.
더 절절히 기도하고
더 간절히 기대하길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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