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매일[삼상26:13-25] 본문
그 어느 것도
디지탈이든
아날로그이든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지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인식하여
내 판단과 행동의 근거가 되게 되는 것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기본 아니겠는가?
오늘 하루라도
아니
오늘 이후부터
매사 매시 그리되는 내가 되길
진정으로 바란다.
주께서 원하시니 내가 그리
주님을 경외하는 자의 삶이 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13 이에 다윗이 건너편으로 가서 멀리 산 꼭대기에 서니 거리가 멀더라
위험한 것은 '멀리' 해야 한다
특히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위험한 일.. .은 멀리..
분노, 죄를 유발한 것은
아예 그 유혹과 논리와 어떠한 자극에도 '멀리' 서야 한다.
14 다윗이 백성과 넬의 아들 아브넬을 대하여 외쳐 이르되 아브넬아 너는 대답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아브넬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 하더라
다윗은 미워야할 '사울'대신 '아브넬'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라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을 지켜 행하는 모습이다.
이것... 배워야 할 바가 많지 않은가?
세월이 지날 수록 '어른 공경'이 당연하다는 듯 사라진다 .
세상의 원리 .. 너무 강요하면 율법이지만
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수 불가결하고
그를 잘지켜 행하는 젊은이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보이며 그 부모를 칭찬하게끔한다.
교육...
이런 면에서 '다윗'의 '하나님을 인식함으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실 일을 어떤 상황에서도 실행하지 않는'
즉 '경외'하여 원칙을 지키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고
그로 인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하나님이 '선하신분'이심을
그를 통하여 세상에 지금까지 선포하게 하는 예가 되니
그거야 말로 마땅히 해야할 우리의 도리가 아니던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냄'.......
마땅한 선교의 기본이기도 하다.
16 네가 행한 이 일이 옳지 못하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너희 주를 보호하지 아니하였으니 너희는 마땅히 죽을 자이니라 이제 왕의 창과 왕의 머리 곁에 있던 물병이 어디 있나 보라 하니
그는 '당연한 아브넬의 잘못'을 통렬히 지적함으로
'사울'의 마음을 흔든다.
그리고는 마침내 '사울'의 반응을 유도한다.
23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그리고는 그는 드디어 사울에게
사실을 직시시킨다.
그 사실은 아무리 세상의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를 도입해도 이룰 수 없을 것임을
다시한번 확실히 보여준다.
사실, 진실은
'하나님께 바로섬과 바로서지 못한 자의 결과'에 대하여.. 다.
다윗은 쫓기는 자고 현재 힘이 없지만
하나님 앞에 바로 서니
'왕의 목숨'을 취할 수 있을 기회가 생겼지 않던가?
반대로 아무리 힘이 있어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 목숨은 추풍낙엽 , 풍전등화 신세가 될 수 있음을
사울에게 강하게 직시시킨다.
통쾌하다 .
사이다다.
24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라
그리고 다윗은
그 모든 생사의 기준은 하나님께 있으시고
자신을 죽이고 살리실 분은 오직 '하나님' 이나
인생들은 '환난의 도구'일 뿐이니
더 이상의 괴로움을 길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사울에게 '멀리 떨어져' '강하게' 외치고 있다.
그렇다 .
고난이 길어지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방법과 길을 알아보고
그리 해달라고 주님 앞에 몸부림 치기(아... 여기 까지의 믿음도 아주 많은 길을 돌고 돌아서 발전한게 사실이니 주께서는 흐뭇은 하시겠지만 안타까워 하실 믿음이 맞을 듯 ^^;)가
과연 성숙한 자의 믿음이 맞을까.. 돌아보게 하시는 말씀 같으시다.
내 안에 거북스러움
어떻게 하든 털어버리고
더군다나 그것이 마침 '하나님'의 뜻이라면 서슴없이
가장 편한 방법을 취하려는 태도는
허락되어진 거지만
하나님의 기뻐하심이란 면에서는 돌이킬 필요가 있음을
다윗의 입을 통해 다시한번 넌지시 제시하시는 것 같다.
이 땅을 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방법' .....이게 오늘 내게
조금은 더 성장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 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내가 어찌
오늘
하루를 바라볼까?
그렇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맞다.
내일일은 난 몰라요..다.
오늘 하루는
내가
아직도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며 편하게 침범하는 '율법'을
어디까지 다시 단속하여 세울까?
어찌해야 나로 하여금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말의 도구라도 되게하는 것일까?... 가
오늘 붙들고 살아야 할 말씀이다.
내 마음.
내 속에서 아직 '억울타'고 몸부림 칠 수 있는 문제들...........
여기에 다 표현해내지는 못하지만
그 문제의 대상을 향해 기도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이제 '그'를 더 내려 놓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욕구'이니
다윗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세우신 '관계'이므로
더 이상 끈은 잘라라.......라 심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바로 얼마전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광야'로 또 쫓아나오는 저 미련한 (악령..은 추하고 더럽다.. 사울의 분노가 미련하고 추함이 그렇다. ) 사울같은 자도
비록 '자신의 손'으로 단죄를 해도 될 듯한 상황에서 조차
하나님의 기뻐하지 않으실 것을 신경씀으로
최대한 자신의 분노를 절제하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세우신 그들은
하나님께서 단죄하고 해결하시도록
이제라도 내 마음을 단속하고 또 단속해야한다.
세상을 살되
모든 판단과 행동의 이유는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더............
주님
너무 잘아는 내용들.
하지만 오늘은 무엇을 말씀하시려 하는 것일까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심에
다른 깨달음이 있습니다.
주여.
알지만 일상에 들어서면
여지없이 제 뇌리를 사로잡으려는 이 세상의 악한 생각들은
잠시 허용하는 순간 여지없이
하나님이 허락하셨으니 내 손으로 어찌... 라며
마음을 혼동시키려 합니다
주여.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멀리 ' 떨어지게 하여 주셨으니
다시한번 더 마음을 잡으려 합니다.
오직 주님을 인식하고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은
더 이상 행하지 않으려 하나이다.
교묘한 생각을 통해 제 마음을 흔들려는
사단의 논리들은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의 기뻐하지 않으실 방법임을 확인되면
무조건 절제하고 멀리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과 따라오시는 성령의 은혜로
제 그러한 선택과 결단이 힘있게 되게 하사
제 영혼이 승리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오늘이라도
오늘부터라도 더 그러하게 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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