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이제 더 잘 살아내기 위해[삼상27:1-28:2] 본문
27장
1.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이상하게도 '매사'기도하는 다윗이
'기도'하지도 아니하고 (어쩌면 매사 기도하는 자 맞지만... 그냥 너무 당연해서 기도했음을 안썼을수는 있다. .. 그러면 다행지만... ㅜ.ㅜ) 블레셋 땅으로 도망할 것을 결정한다.
4.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그리고는
사울의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위협,
그 .. '불안' (불안이 그렇다. . 실체없이 끝없이 두려움을 오랫동안 가져오는 것이 불안이다.)으로 부터
6.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7.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산 날 수는 일 년 사 개월이었더라
일년 4개월 간의 '자유로움'을 허락받았다 .
이것..
시글락이란 땅이 '유다'의 것이 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실수도 있으며
늘 기도하는 '자'의
허락되어진 '불안'으로 부터
허락되어진 피할 길일 수도 있다.
그 무엇이든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있음은 당연하다.
비록 '열렬히 그를 두고 기도 하는' 것이 뚜렷이 표현되지는 않았어도
늘 기도하고 항상기도하고 더 기도해야함은
그게 맞는 듯 싶다.
하여튼..
그러나 , 침흘리며 미친체하고 빠져 나왔던 '아기스'로 돌아간 것은
또 의외이기도 하다.
어쩌면
내 상황과 유사한 점이 없지 아니함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시던가?
아..
난.. 침흘리고 .. 뭐 그런 일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내 계획된 (하나님에게 자주 기도하지는 못하지만 ... ) 장래 그림 안에
몇년 더 이 병원에서 근무하고
스스로 은퇴하여 그 이후 내 본집인 ㅇㅇ으로 이사하여
가능하며 이전의 병원(미션 병원, 비록 그때 나올 때 모습은 아기스와 미친체 다윗 비슷하게 아주 약간 닮아 있다.. 그러고 보니 ... )의 편한 곳으로 옮겼으면 하는데
그러한 모습이 비슷히 투영되던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내 상황과 어딘지 모르는 유사한 흐름이
오늘 말씀에서 보이는 것 같아
강하게 레마로 오는 구절은 없지만
조용히 말씀을 그리듯 쫓아가보고 있다. ^^*
8.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
10.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
그리고 , 기도하고 당당히 행동하여 하나님의 영광보이는
훌륭한 신앙인이 보이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지만
대신 자신의 민족들을 보호하고 이방인을 타파하는
인간적으로는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오늘 '주석설교'를 하시는 목사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다윗에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그래서... 깨달은 바가 있다.
나.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며 사는 자
매일 삶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려는 자.
하지만... 내 지금의 환경이
성경에 나오는 귀한 모델들의 뜨거운 모습이나
'선교지'에서 처절한 영적 투쟁을 거쳐가며
하나님의 말씀을 뜨겁게 증거해나가는 자...
혹은 이 삶속에서 더 열심히 하나님의 명령하신 바 대로
'구제'와 '전도'와 '자아 부인'을 위하여 처절히 사는 자도 아니다 .
어느때는 그렇지만지금은 안그렇다.
그냥 매일매일이 똑같다 .
나름 불안하여 기도하다가
불현듯 '은퇴'에 대하여
다른 자들은 어찌 살던가
어떤 잉여의 인생을 보내던가 궁금하여
얼른 '유 ㅌㅂ'를 들여다 보는 등.. .
그리고 내 나머지의 늙어가는 삶동안
무엇을 할지 (바라기는 내 내면을 변화시켜 '선교사'까지도 했으면 좋으련만... 하나님은 아신다. .. 나도...기도하고 있다...나를 변화시켜.. 그리하시길... . ㅠ.ㅠ) 정확히 결단내리지 못하겠다.
그러다 보면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내 안의 '사울'같은
정체 뚜렷지 않은 ' 두려움'들이 밀고와
'사뭇' 어디론가 피하고만 싶은게
다윗의 그 어이없던
'아기스 앞의 미친 체 하던 기억'이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더 열심히 기도하고 응답받지도 않고
확하고 가버리는 모습에서 날 돌이켜 보고 있게 하신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정신을 차리고
신앙을 잃지 않고
내 나머지의 시간 (아마 영적으로 상징적으로 1년 4개월 )동안
더 확실히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며
내가 더 이상 망가지지 않을 '경계'는 어디까지 인지
스스로 하나님 앞에 다 잡으라 심 같이 느껴진다.
그렇다.
오늘... 새로운 ,
변화없는 이곳 광야 ,
영적 엔게비 사막 같은 곳에서
나를 돌아보고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선 자인지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지
내가 무엇을 하고 픈지...
솔직히 충분한 은퇴자금과 ,
넉넉한 인간관계와 ..
적당한 의미의 일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
그것도 다윗의 일년 4개월이 축복의 시간만은 아닌 ,
연단의 기간인 것 처럼 ..
조금 더 확실히
내 나머지 시간동안의 정체를 알수 있길 원한다.
주님.
다윗의 오늘 모습이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 않지만
그 마져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하나님의 그러하심을 알고
허락되어진 숨쉴 틈, 인간적 약함을 가련히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허락하신 시간임을 봅니다.
이제..
그러함에도 다윗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백성에 대하여 절대로 해가가지 않을 이유로
확고부동한 삶의 원칙을 가지고
지속되는 불안과 두려움에 대하여 피하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더 하나님께 기도하고
뚜렷한 응답으로 행했으면 좋겠지만
만성적으로 길어지는
큰 자극없는 불안한 두려움 안에서
마치 까마귀 밥 날라 주시던 그 엘리야의 무기력하던 시간처럼
그러한 시간에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하에 허락되어진
다윗의 시간임을 알아갑니다.
그러함에도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
최대한 선을 지키며 사는 다윗이
오늘 제가 해야할 모습처럼 보입니다.
저..
주님을 사모하는 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임을 압니다
내... 어려움,
내 두려움...
내 불안함.. .
내 장래의 어떠함에 대하여 더 뚜렷한 확신이 없음으로 인한
막연한 힘듦.........지침..........
여러 정황들을 말씀에서 비슷히 바라보게 하십니다.
주여.
다시한번 제게 지혜를 주시사
제가 어떻게 살아가며
무엇을 하며
내가 이시간 부터 누구인지를 더 정확히 깨달아
살아갈 방향을 깨닫게 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시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전 묵상.. 읽어보세요.. )
2008.06.25
선한 유대 인
꽃이
너무도 아름답다.
붉은 계열...
백일홍인가?
어떤 것은 다른 것 보다더 붉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우리의 판단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같은 보혈의 은총도
주님의 그 붉은 피로
더욱 새 하얗게 빛나는 세마포를 입은 자들도 있다.
그들은 감히 비교하고 판단할 바가 아니다.
오직 주님 만이
네가 더욱 아름답구나..라 하실 수 있다.
내 눈에는
백일홍이
유난히도 아름답다.
모두.......
1.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2.
일어나 함께 있는 육백인으로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다윗이
주님께 묻지도 않고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들어가 아기스에게로 간다.
그러나,
주님께 질책을 받았다는 구절이 없다.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각기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 되었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다윗이
남의 부인이었던 아비가일과 산다.
죄다.
하지만, 주님께 경고 받았다는 흔적이 없다.
11.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의 행사가 이러하여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다윗이
들킬까 두려워
남녀 모두를 죽여 버리는 일을 벌인다.
무서운 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주께선
아무렇지도 않으신가 보다.
엊 저녁에
응급수술을 마치고
다음 주 부터 있을
새벽예배 찬양 인도
일주일 분을 선곡하고
파워포인트 만들고 나니
12시가 다 되어 간다.
병원을 나서서
버스를 기다리니 오지 않는 듯,
마음을 바꿔 걸어가기로 했다.
한참을 걸어서
안양역 근처를 넘어
더 내려가다 보니
건널목 사거리에
모퉁이 건물 벽에
한사람이 고꾸라져
거의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워 있다.
젊은 남자인데
술냄새가 진동을 하고
이상한 냄새까지 나는게
아마 실례를 한 모양이다.
얼굴을 찡그리고 약간 떨어져
건널목 앞에서
파란 불로 바뀌기 만을 기다리는데
영 바뀌지를 않는다.
자꾸만 그 사람에게 신경이 쓰인다.
몇 사람이 힐끗거리고 쳐다보고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지만
누구도 다가가지 않는다.
냄새도 심하고
치한으로 오해 받을 소지도 있고
더구나 허리디스크 있는
늙어가는 남자로서
난 이전에 그랬듯,
꿋꿋이 참견을 하고 싶지 않았다 ^^;;;;;
그런데,
불이 바뀌지를 않는다.
내 시간 개념이 달라져 버렸나..
서서히 마음이 자꾸만 그리로 쓰인다.
저러다가 사람이 뜸해지면 틀림없이
치기배에게 당할 텐데..
그냥 방치하고 갔다가
내 이 죄를 어찌 감당할까.. 생각이 자꾸 든다.
머리 속에서 갑자기
'선한 사마리아인' 이 떠오른다.
그래도, 현실의 벽은
너무나 두껍다.
그래도.
그래도...
그러다가,
큰 느낌이 버럭하고 다가온다.
'내일 모레.. 이 모습으로 .. 무슨 ... .집회에.....'
그렇다.
난
자꾸만 '하나님'이 의식이 되기 시작한다.
하나님 소리만 들으면
내 판단은 하나로 흘러 버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게
내 유일한 장점이긴 하다.ㅎㅎ
어떻게 해야 좋은 방법일까 생각하며
난
대기하고 섰던 건널목 신호등 아래에서
청년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리저리 그 사람의 자세를 살피려
몸을 굽히며
'이걸 어쩌지..'라며 중얼 거리자
나랑 같이 섰던 중년의 부부 - 죄송하지만 술도 드시고 담배도 피우고
얼굴을 뵈니 남자분께선 그리 정의로와 보이질 않았다. ㅎㅎ -가
갑자기 뭐라한다.
그 분은 그러면서
담배를 피워무는데
얼굴이 약간은 벌건게
약주 한잔 하시고 오시는 모양이시다.
들어보니 이러신다.
' 제가 119에 신고했어요'
그러시면서
' 올 때까지 저희가 있을 께요.'
난 소름이 확 끼쳐온다.
'그게 그러했었구나.
이 분들이
선한 사마리아 인이구나.'
속이 짠하여온다.
한편
더러운 오물과 술냄새에,
또
내 허리의 고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유로와 질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더우기,
예상되는 모진 오해나
경찰에 의한 볶임 등으로 부터
자유로와 질 수 있다는 안도감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무엇보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안도했던 것은
만일 그대로 갔더라면
주님께서 안타까와 했을것 같다는 것과
이 기쁨을 맛보지도 못했을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난 순종으로 답했다.
그렇다면
이전의 나는
예수님을 믿었으면서도
비슷한 수 많은 선한 일의 기회에
그러지 아니하고 왔을 때에도
주님은 이리 날 속상해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또한 그게 맞다면 - 속상해 하지 않으실거라라는 것...틀림없이 맞을 것이다. -그
수미산 보다 높은 죄를 뚫고
내가 어찌 주님의 사랑을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주님은 그래도
날 이리 위로하시는 것을 보면
날 사랑하시는데
이 추악한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또 어찌되신 분이신가..하는 생각이다.
답이 그거다.
난,
그때보다는 컸고(영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
상황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주님은
나의 상황에 맞추어
최대한 사랑을 주시고
이해하시는 분이시며
가장 적은 순종을 보시고
이전의 모든 것은 잊으시는..
정말 놀라운 망각력을 가지신 분이시란 것 !
이러한 깨달음들은
날 자유롭게 한다.
난
자유로운 영혼의 상태를
순간적으로 느끼고
놀랍도록 기쁘다.
손을 들어 엄지 손가락을 위로 들었다.
그리고는 팔을 뻗어
그 분들의 앞에 들이 밀었다.
눈에는 힘을 주었다.
목소리는 깔고
맑은 톤으로 이랬다.
' 선생님
오늘 정말 좋은일 하셨어요.
얼마나 기쁜지요.......'
그러면서
한걸음 돌아서 가다가
다시 돌아보고
또 한번 그랬다.
'정말...........'
눈을 힘을 주고
고개를 낮추며
손가락을 도장찍듯이
두 부부를 향해 꾹 내밀었다.
담배를 피워 물던
남편 - 약간은 불량스러워 보이시던.ㅎㅎ - 께서
담배를 피워 물고
불을 켜려다가 '멈칫 '한다.
그러면서
가능하면 자제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거친 사내의 입꼬리가 약간은 말려 올라가며
씰룩씰룩 웃음을 참으려하는게
정말 귀엽게 ^^; 보인다.
'역시 사람에게는 칭찬이 최고다.'
돌아서니,
그제야 '푸른 불 신호'가 들어온다.
가던 발걸음을 재촉하여
내 집으로 열심히 걸어왔다.
생명은 이리 강하다. 생명은 이리 아름답다.
주님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놓치지 않는 자를
정말 귀히 여기신다.
늦은 밤이지만
상쾌한 밤이다.
하늘을 우러러 올려다 보았다.
별이 맑다.
강변으로 내려섰다.
늦은 밤.
아름다움은
곳곳에 숨어있다.
아침에 읽어본
묵상 구절의 다윗은
그동안 그리도 칭찬해온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모습을
하나도 보이지 않고 있다.
어떻게 보면
모조리 자기 뜻대로
자기 판단대로 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주님은 뭐라 하지 않으신다.
갑자기
어제 상황이 떠오른다.
이전에는 그냥갔어도 아무소리 안하시더니
어제는 부담을 주신다.
부담에 순종하니
은혜를 주신다.
돌아보니 어이없는 악한 유대인 같이
행동했을 때에도
주님은 날 사랑하셨었다.
그러고는
일상에서의 작은 순종에
주님은 놀라운 은혜로
날 붙드신다.
입에서 자유라는 소리가 나온다.
12시 넘어 퇴근하는 (내가 비록 초래했지만 )
격무와 걸어오는 길
외로운 내 발걸음에
무엇이 날 기쁘게하는가?
주님이다.
다윗은 그랬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그 분은 놀라운 영적 친밀감을
그 분 하나님과 누리고 있다.
그게
그때쯤의 다윗에게는
거침이 없는 믿음의 성장을 이루게 된 것이다.
마치
어릴 적 간섭없이 크다가
학창시절 심한 간섭 하에 성장하고
더 커버려
전문인이 되거나 사회인이 되면
자신의 선택이 중요한 것 처럼
다윗은
성장한 사람이다.
그는
누가 간섭을 하지 않아도
웬만한 일에는
거칠 것이 없는 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주님을 손잡고 가다가
이제는
주님을 숨쉬는 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의 행동이 비록
현대인의 눈으로 보거나
이전까지의 판단으로 보면
그리 본받을 만한 일은 아니지만
어쩌면
주님과 깊은 교류 가운데
허락 맡았거나
주님의 이해 가운데서 행해진
일 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그는 자유로운 것이다.
그걸
현 상황의 내 영적 성장으로 가지고
그 분을 판단함은 오류일 수 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이 바라시는 것은
'자유'다
그 분 안에서의 자유.
비록 내가
어떤 위치
어떤 상황
어떤 어려움에 있더라도
그 안에서 누리는
기쁜 자유...
주님은 그것을 누리면서
인생을 살다가
인격적으로 정화되지 못했던 부분들을
가벼히 털어버리고
당신 곁에 좀더 가까이 와
사도 바울이 말하던
그 삼층천의
진짜 천국의 삶을
영생하길 원하시는 것이다.
다윗은
한걸음 더 다가간 사람으로
보인다.
오늘.......
적용
1.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판단은 주님 만이 하신다.
난 월권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2. 자유를 감사한다.
당황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주님 만 판단하신다.
남의 눈치살필 필요조차 없다.
3. 주님은 주님의 일을 할 때
깨달음을 허락하신다.
아침에 집앞 다리를 건너오면서
갑자기 '오지수'가 보고싶다.
한참 격랑치던 내 속에 큐티를 인터넷에서 나누기 시작하자마자
9살배기 큐티어...가 그 방에 나타났다.
천사같던 그 아이.
샤바락샤바락,
비밀의 방.
..........너무 맑고 좋은 단어로
온 큐티어의 시선이 집중되던 아이..
그 아이를 통하여
놀라운 은혜를 나누게 하시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그렇게
주님은 날 잡으셔 간다.
그때는
그 천사 같은 지수 큐티어로..
지금은 말씀 묵상으로 ..
다윗도 그랬다.
때가 되면 도우미가 나타나고
때가 되면 변화가 된다.
3. 성경 여섯 장 읽겠다.
4. 회개한다.
늘 정결한 마음으로 ..
기도
주님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을 하려 애를 써도
어느 순간
사람들 앞에서
군림하고 싶어하기도
칭찬을 받고 싶어 안절 부절 못하기도 하고
가르치고 싶어하기도 하고...
어찌 이리도 변화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지요.
다윗의 모습을 보면
그 때 거기에 있었더라면
아마도 손가락질하고
비웃었을 지도 모를 저 올시다.
주님
그럼에도
그런 나를 사랑하시어
조금만 잘한 점이라도 보이면
그리도 은혜를 쏟아 부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전 너무도 감사합니다.
늘
살아계신 주님을 인식하고
그 인식이 제 삶이 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호흡하는 중에 느끼게 하소서.
그리하여
자유로운 삶을 살되
선한 사마리아인보다
더 선한 유대인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6.06.17 자 묵상
어쨰도 일어나자
2.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다윗이 일어나..
결단이다.
선택의 순간이다.
그는 결단을 하고 실행을 했다
블레셋으로 가는 것.
지탄 받을 수도 있는 일...
아니라면 깊은 자괴의 일일 수도 있는 일인데
그것을 시행하는 것....
5.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바라건대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내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 하니
블레셋 가서 외곽을 주거지로 달라는 것.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불신자의 땅에서, 원수의 땅에서 기거하는 것...
정말 치욕스러운 일이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지만 사울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기만술...
스스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겠는
믿는자,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생각이 어찌 많지 않을까?
11.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서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이 행한 일이 이러하니라 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거주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지독한 일도 서슴없아 한다.
사랑을 모토로 하는 우리의 눈으로 보아
거침없는 나쁜 일.
고대의 관습상 살인이 큰 죄가 아닐 수도 있지만
살기 위하여 더 심한 일을 해야 하는 것.
역시 많은 생각이 도는 일이 아닐런가?
말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과연 살기 위해 선택한 일이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하나님이 이런 일을 알면서도 나에게 이런 길을 허락하실까?
내 백성을 위하여 타인을 ?
유치하고 치졸한 방법으로 과연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가?
두렵다.
외롭다.............................
하나님이 계시면...................
나.
40 가까이 되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이라 확신하며 미션병원에서 14년간을 근무하다가
참...희한한 갈등.....에 의하여
밀려나오듯 그 미션~이란 타이틀을 건 희한한 집단 (죄송...그때의 속상함..ㅠ.ㅠ;;;)에서
나오려 하면서
4개월간 많은 기도와 생각을 하고 대화도 했다.
그러다가 결심을 하면 (일어나 !) 서 타 병원에 가기로 되고나서
가장 마음에 부담이 가는게
이 불신자들의 세계에서 과연 내가.............였다.
충주의료원.
대단~했다.
아마 그들 논리에 비교적 그럴 수 있었지만
내 오랜 신앙적 기준으로 감당키 힘들었던게 사실이다.
그래서 내 뾰족한 침을 들었다.
그러다가 지금의 병원으로 옮겼다.
어디고 안그럴까..
불신의 직장에서 (블레셋의 나라) 나름 부딪치는 생각들이 많다.
그런데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
다윗의 오늘 여러 상황에서 그의 변화를 보며
그게 잘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그 시대의
그 현실에서
그가 선택할 때
그 내면의 움직임이 과연 어떠했을까...하는게 주안점이다.
아마...
나라면 뒤집혀 폭팔하거나
생을 포기하거나
광야로 도망쳐 혼자 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다윗이다.
삶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하나님의 원리와...
하나님의 계명대로 청정하게 살려노력하되
원리에 맞추어 세상을 조절해가는 것.
무엇보다...매일 매시 여쭙는 사실.
하나님을 강하게 의식하며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음을 고백하며 잊어버려 버리고
자유를 누리는 마음.....
그것이다.
세상에는
새로운 인생이 그 앞에 놓여
당황할 많은 분들이 있으시다.
특별히 우리 세대....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그 불신의 세상에
많은 갈등이 우리의 내면을 짖칠 것이 예상이 된다.
그때 정말 필요한 것....
그래도 누리는 자유다.
그 자유는
어떠한 갈등의 조건들이 내게 다가오고 몰아쳐도
하나님께 아뢰었다는 사실...
그래도 하나님을 의식했다는 사실로
십자가앞에서 아뢰었다는 사실로
그 선택에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묵상입니다.
주여.
부디 간절히 바라옵기는
어떤 부당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내게 놓여지고
그로 인하여 선택이 어려울 경우에라도
주님을 의식하고 주님의 원리에 조금이라도 합당한 노력을 했다면
그게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임을 믿고
옳은 선택이었음을 확신하고 나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주 안에서 자유.
도저히 감당키 어려운 이 세상의 불합리 가운데
그래도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한 은혜 뿐임을 알게 하시사
힘내어 일어나 새로운 삶을 이어가게 하소ㅗ.
내 주여.
나 뿐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게 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펌)
아기스
(Achish)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블레셋 사람들을 통치한 가드의 왕. 그는 마옥 또는 마아가의 아들이었고, 시편 34편의 머리글에서는 아비멜렉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아마 파라오나 차르와 비슷한 칭호였을 것이다.—삼첫 27:2; 왕첫 2:39.
다윗은 사울에게서 도망했을 때 두 번에 걸쳐 아기스 왕의 영토에서 도피처를 구하였다. 첫 번째로 갔을 때, 다윗은 적으로 의심받자 미친 체했으며, 아기스는 그를 해가 될 것이 없는 바보로 여기고 놓아주었다. (삼첫 21:10-15; 시 34 머리글; 56 머리글) 두 번째로 찾아갔을 때는 다윗이 600명의 전사와 그들의 가족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그래서 아기스는 그들이 시글락에 살도록 지정해 주었다. 그들이 그곳에 있던 1년 4개월 동안 아기스는 다윗의 부대가 유다의 성읍들을 습격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다윗은 그술 사람들과 기르스 사람들과 아말렉 사람들을 약탈하고 있었다. (삼첫 27:1-12) 그 속임수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아기스는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 왕을 공격하려고 준비할 때 실제로 다윗을 자기의 개인 경호원으로 삼기까지 했으며, 블레셋의 다른 “추축 성주들”이 강력히 요구하자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다윗과 그의 부하들을 시글락으로 돌려보냈다. (삼첫 28:2; 29:1-11) 다윗이 왕이 되어 가드와 전쟁을 했을 때, 아기스는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솔로몬 통치 때까지 살았다.—왕첫 2:39-41. 가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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