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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선택 나발의 선택[삼상 25:1-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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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선택 나발의 선택[삼상 25:1-22]

주하인 2022. 6. 16. 09:02

(펌)

이 조합이 가능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오직 하나님 앞에 바로선 자의 선택에 의함이리라

 

그 자연스러움의 

항상 그러함은 

천년왕국의 모습이며

천국 백성들의 본질이고.........

 

오늘도 

내 안에 남아 

헛된 야수의 본성을 드러내는

나발의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또 하나님을 의식하고

항상 예수님을 생각하며

늘 성령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길

사모하고 또 사모하여야 하리라

 

 

1.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절망적 상황에서 오직 의지할 분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오직 기대고 의뢰할 오직 한분이신 사무엘선지가 소천하시니

그 상실감과 슬픔이 얼마나 컸을까?
 그리고 나서 또 돌아갈 곳은 결국 '광야' 

'좌절되고 탈진'될 상황.ㅜ.ㅜ;;;

그러나... 

 

 

3.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한편 , 갑자기 '나발'이란 남자 (소주를 나발 분다..뭐 좋지 않은 이미지의 '나발'이란 동명 한국 단어가 있긴 하다.ㅎㅎ )가 등장한다.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다'고 나온다. 

'갈렙'족속인 것으로 나옴은

그는 '믿는 자'의 상징임에도 그런 사람이라함을 보이시기 위함이 아닐까?
 

 그는 부유한 자로 하나님을 믿는 자지만 완고하고 악하고

다윗은 쫓기는 신세지만 한편으로 힘이 있는 믿는 자, 

 


7. 네게 양 털 깎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해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힘이 있지만

함부로 남을 해하지 아니하고 

힘을 자제할 수 있는 '선함'을 지닌 자............로

두 사람이 대비가 된다 .

 

 나발은 '재산'... 의 스스로 믿는 힘이 있는 자.

다윗은 '군대'의 힘을 가진 힘이 있는 자.

 

 나발은 '악하고 완고한 자'

다윗은 '참고 인내하며 순리를 준하는 자'

둘 모두 '믿는 자'의 상징.

 

 

10.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11.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나발의 완고함과 미련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왜 이리 '미련한 완고함'을 가졌을까?

그의 험한 말은 오늘 날에도 쉬이 자주 볼 수 있다.

살아서 옆에서 발하는 익숙한 언어를 직접 듣는 듯 귀에 팍팍 꽂히는 언어다.ㅠ.ㅠ;

 

 '힘'이란 표현을 했다. 

권세.

재력...

그는 자신이 가진 재산의 대단함을 가지고 '힘'으로 착각하며

아마도 주변인들에게 일상적으로 대했듯 

다윗의 전령들에게도 함부로 대했을 것이다. 

그것.

'안하무인' , '독불장군'이라는 표현이 합당한 것 같고

그러함은 정말 미련하고 완고하고 악한 자들의 특징이 맞다. 

제일 무서운 게 '미련하며 힘을 가진 자' 아니던가?

자신을 다치게 하고

타인을 상처 입히는 유형.

 

그의 그러함은 웬일이며 

 

21.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더 쉽게 남을 해할 수 있을 물리적 힘을 가진 '다윗'은 

왜 참아 내며 '선하게 ' 대했을까?


 자신이 자신의 선을 입으로 발할 정도로

그는 그의 나발의 소유물을 지켜주면서도 

그동안 쉬운 방법,

도적이나 강도처럼 , 아.. 마적처럼

쉽고 편한 대로 댓가를 강요하거나 넌지시 압력을 가하지 않고

의지적으로

부드럽게 대하여 왔음은

그 스스로 '나의 선'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으며

그러함이 절대로 자신도 모르게 착한 천성에 의한 것만은 아님을 

역으로 알 수 있는 표현이다. 

 누구도 잘 알듯이

다윗들은 쫓겨 다니는 자들이다. 

사울의 ㄸ 냄새까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만한 악취 속에서

제대로 먹지도 닦지도 못하며

기약없는 광야의 생활을 하면서도

즉 , 극에 달하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인내하면서 '참아내며 선을 행하는 ' 스스로의 상태임을 

그의 표현에서 읽어낼 수 있음이다. 

 

그렇다면

그 둘의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힘을 가진 자들의 

정반대의 외적표현의 차이 말이다. 

 

 물론 , 그들의 성장 과정과 유전적 소인

거기에 배움의 차이...........등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의 인격을 결정하는 차이 말이다. 

 

 아마..어쩌면 

나발은 소주를 나발로 부는 아버지 ^^;; 와 거기에 지친 어머니의 우울한 자포자기 환경

즉, 역기능 가정에서 성장하며 자수성가했을 개연성이 크다. 

 아니면 정반대로

아무 고민과 어려움 없이 자라서 

주변의 아픔이나 어려움을 이해할 개연성없는 '금수저'로 자라나며

부모의 미안함을 '돈'이나 물질로 해결 받아오며 큰 자........로

'힘'을 쓰는 일에 아무런 꺼리김이 없는 자.. 말이다. 

 그런데 그가 '갈렙'지파인 것으로 보아

믿는 자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것이 아닌 

믿지만 하나님을 중심에 둔 자와 아닌 자 중

'힘을 가진 자'들의 모습에 대하여 

대비시켜 보여주심이다. 

 

 다윗과 나발은 

모두 힘을 가진 기독교인을 상징하여 보여주며

그 외적 인격의 차이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매사 하나님을 신경쓰고 사는 가 아닌가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며

그러함이 과연 '믿지 않는 자 들에게 어찌 비칠가를 두려워 하고' 

그러한 완고함은 결국 자신에게까지 피해로 돌아올 수 있음을 경계하여

그러함이 발견된다면 

하나님 앞에 더 다가서는 계기로 '회개'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보여 주고 있으신 것 같다. 

 아..

나에게 !

 

 나.

나발 같은 모습.

있다 .

자주 있었고

덜 자주 있지만

지금도 있다. 

 

힘.

내겐 '힘'이 없고 난.. 늘 피해자 인것 같은 착각이 있었지만

난.. 아버지로 약한 자식들에게 함부로하는 '힘'을 

어쩌면 지금도 행사하는 지 모르고

'의사'로서 약하고 꼭 내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라 생각되어지는 환우들에게

'힘'을 가졌다는 나도 모르는 착각으로 

그 분들에게 나발처럼 행했을 지 모른다. 

아...솔직히 '틱틱'도 가끔댄다. 

특히 내 오랜 성품적 문제인..두번 세번 얘기하게 하시는 '약한 ㅜ.ㅜ;; 환우'분들에게

나도 모르게 나발 같이 스스로 느껴질 때도 자주 있었다. ㅠ.ㅠ;

이제는 많이 (죄송합니다.. 주여..  하지만 다윗이 스스로 선하다는 것처럼 저도 '많이'라고 붙여봅니다..은혜임도 깨닫습니다. ) 덜하지만 아직도 순간적으로 

나발같은 퉁명스러움으로 튀어나오곤 합니다. 

 

 그것... 

하나님께서 

저를 보고 그러신 듯합니다. 

 

" 더 낮아져라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매일 매시 서 있는가 스스로 돌아보거라.

혹여 지금 나발 같은 언어를 뱉고 그런 마음으로 사로잡혀 있는가?

하나님을 잊고 사는 시간들이다. 

돌이키라.

하나님의 영으로 은혜가운데 스스로 거하면

다윗처럼 자신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

다윗은 '선'하게 태어난 것 보다

선하기를 선택한 것이며

그러함은 '하나님을 인식'함으로 가능했다. 

그 절망의 순간에도 

그는 '선함'을 선택하고 이루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매사 매시 서 있음'이 아니던가?

주하인 너도 가능하다."라 하시는 것 같다. 

 

귀한 깨달음.

주님 감사합니다. 

저...

자주 나발의 면모와

아직은 덜 자주 '다윗'의 면모를 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주여.

그를 고백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다윗의 선함의 선택..

그러할 이유와 그러할 수 있음을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잠시 말씀 묵상 전 기도에서

주님께서 깨닫게 하신 레마입니다. 

 

주여.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은

광야의 존재들입니다. 

저희는 요.,

 

특별히 사무엘이란 큰 눈 앞의 모델을 

다시는 보지못할 절대의 고독의 순간에 

다시 바란 광야로 내려갈 수 밖에 없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그는 '선함'을 선택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악하고 쉽게 ' 타인의 재물을 탈취할 것을 자극하는 

악한 영들의 장난이 있을 것이고

그는 분명 현실의 배고픔과 주변의 요구에 

흔들릴 법도 했지만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이기에

그는 '선함'을 선택했고

자연스러움을 선택했으며

흐름을 선택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선을 행하다보면 

물흐르듯한 배고픔의 해결..........등을요.

 

그러함을 

제 삶에 다시 적용해봅니다. 

주여.

은혜로 도우소서.

'광야'로 다시 돌아가는 듯 .. 

어두움과 외로움의 슬픔과 차가운 두려움이 

슬그머니 저를 사로 잡으려 합니다. 

그러면서 '힘'을 상실하는 자로서의 당혹감도 

한편 저를 붙들려 합니다 

주여.

하나님 앞에 바로서지 못했음을 돌아봅니다. 

은혜의 기억이 옅어졌었음을 깨닫습니다. 

 

흔들림이 덜합니다 

그러한 힘듦은 

누구에게도 

심지어 다윗에게도 '더욱 ' 허락되어진

하나님의 사랑의 다른 표현이심을 

오늘 다시 깨닫습니다. 

제 그러함... 

하나님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 보길 권고하시는

또다른 사랑의 현상임을 깨닫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오늘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힘'이 주어진 자의 선택에 대하여

다시금 돌아봅니다. 

주여.

성령의 강하신 은혜로 

다윗같은 선택하게 하소서.

나발을 버리게 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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