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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두려움을 마주함[삼상28:3-2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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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두려움을 마주함[삼상28:3-25]

주하인 2022. 6. 21. 10:48

(펌)

 

아이의 두려움이라고

그 두려움의 크기마져 작을까

 

다행이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의 두려움이 아니라면

그 두려움은 곧 평온으로 바뀌리라

 

오늘 마주할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가져갈 수 있음이 

참으로 다행이고 자랑스럽다

오히려

 

3.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4.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니
5.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매사 두려워 한다. 

 

 그런 그의 성향은 

'하나님을 두려워 ' 하면서도 

욕심이 두려움을 누르고 일을 저지른 후

그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 위하여 무리수를 많이 행하는 자다. 

 

오늘... 

'사무엘' 선지자가 돌아가심으로 

그는 불현듯 하나님을 인식했고 

그러함은 그의 불안을 자극하여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듯한' 행위

즉 박수..등을 그 땅에서 쫓아내는 

정말 뜬금없는 행동을 함으로 자신의 불안을 가라앉히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곧 

블레셋들의 침범으로 

그는 다시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자신이 쫓아냈던 무당을 찾아가게 되고...

 


10.사울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상황에 맞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정말 뜬금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들먹이며 맹세까지 한다. 

 

'비정상적 두려움'

가장 힘이 센 위치에 있는 자가

가장 두려워 한다. 

 

그 두려움의 실체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함'인 자의 

욕심에 근거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소유를 놓치게 됨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기보다

하나님의 결국 있으실 징벌이 두려운 것이고.......................

 

 

 두려움에 대한 것이다. 

 

나.

참.. 세상 사는 게 힘들었었다. 

여러가지가 그랬다. 

비교되는 것도.. 

실패할 것도 ... 

홀로 있을 것도... 

남들에게 ..도... 하는 것이 싫었었다. 

그래서

젊을 적 '분노'가 많았었다.

 나름 '정직'하고 '착하게 살려'하는 데

맘에 안드는 것들이 많았었다.

 

 그것.

두려웠던 것이었다. 

매사에 그랬었다. 

.....

삶이 지루하고 힘들고 두렵고 어려워

재미도 없고 의욕도 없었다 .

나~~~~중에 알고보니 '만성 ㅇㅇ'였다. 

......

 

그러다가 예수님 영접하고 

강력한 구원의 증상으로 

어찌나 좋던지... 

날아갈 것 같았다. 

그렇듯 힘들게 하던 불면증도 하루 아침에 녹아나 버렸고

20년이나 두갑씩 피우던 담배도 잊어버릴 정도로... 

모든 중독적 현상 , 

담배, 당구, 게임.................도 어느새 잊혀져 버렸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아주 아주 많은 변화로 

여기까지 왔다. 

 

 아주 아주 많이 편해졌고

걱정과 막연한 불안..............정말 많이 사라졌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인생광야의 연단 덕임을

다시금 사울의 저 복잡한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깨닫게 된다. 

 

아.. 

나... 

주님이 안계셨다면

주님의 은혜보다 다른 부수적인 것을 더 사모했더라면

'사울의 두려움이 내 두려움이 그대로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그는.. 두려워한다. 

세상도 아주 많이들 두려워 한다. 

대부분 두려워 한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 위하여 그들은 몸부림을 치며 피해오는 것이다. 

 

남들에 비교하여 ..........두렵지 않기 위하여 전 인생을 걸고 

무의미한, 의미찾지 못할 썩을 것들을 얻기 위하여 그리 몸부림친다. 

자신의 두려움의 실체를 받지 않기 위하여 

그리 끼리끼리 모이고 그 군중의 다수의 소리에 파묻히려 한다. 

홀로 있는 것을 두려워 한다 

홀로 있으면 반드시 마주 해야 할 '진실'에 두려워서 그런다. 

'죽음'.. 

'그 후의 알지 못함'이 두렵고

'살아있어야 할 이유'에 대하여 알지 못함이 두렵다. 

두려움이 두려워 그들은 온통 매달릴 다른 마취제(돈, 성공, 섹스, 자극, 갈채'... )에 매몰된다. 

자신들과 다른 진리의 소리 (하나님, 예수님, 은혜, 생명, 구원, 천국, 오직 예수..............)를 듣길 무서워 한다. 

그들의 반응은 너무나 비논리적이다. 

사울의 그것과 하등 다름없다. 

........................

 

그러나.. 나.. 지금.. 

정말 두려워 하지 않는가?

두려워 하고 있음을 모르는 두려움은 없는가?

내가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의 실체는 그렇다면 무엇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두렵다면

나 역시 그 부분 그대로 욕심으로 ,아니면 마주하기 어려운 다른 것으로 

복잡히도 엵여 있는 것은 아니던가?

내 두려움.

...........

 

이제 그를 마주 바라보는 방법은 최소한 안다. 

'매일 말씀 만 바라보며

하나하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마주하며 승리하는 기록을 쌓아가는 것.

그리고 내 나중이 반드시 '선'임을 믿는 것.

어떠한 결과라도 다 받아 들일 수 있는 것.

........

그를 위해 '말씀묵상을 매일'하고

그 말씀을 통해 흐르는 하나님의 임재감으로 

하루 하루 기쁘게 살아가게 되다

마침내 부르실 그날이 되면 영생을 위하여 기쁘게 소천하는 것' 

그 잘 정리된 믿음의 길을 가는 내가.. 

그래서 '하루 하루' 다가오는 

이전의 여러 쓸데 없는 도전과 자극들은

비교적 가벼히 흘려 보낼 수 있어야 함에도

따라서, 늘 가볍고 감사하게 살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은 

아직도 

내 하루에 남아 

날 흔들어 보고 가곤 한다. 

 

그때.........

외로움은 많이 외롭게 느껴져

때론 '두려움'에 소스라치려 하고

두려움은 때로 세상이 암흑처럼 보이게 하며

무기력은 나의 팔다리를 묶어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려 하고 있지만

그래도 '말씀' 묵상을 기뻐하시는 

주님이 계셔서 

난 지금까지 

내 아주아주 오랜 어두운 예견에도 불구하고 (오래 살지 못할, 살기 싫은... ㅠ.ㅠ;) 

잘 살아있고

점차 가벼워진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내 두려움은 

아주 오래된 습관이라 말했다. 

거기에 어쩌면 내 깨닫지 못하는 '죄'로 인한

그보다 더.......하나님의 깊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반드시 해결해야할 용서와 회개 문제에

아니면 '병'의 문제로 인하여

남아 있는 잔존한 문제들을 

오늘 '사울의 두려움을 보며' 한번 마주해보라 권면하심 같다. 

감사하다. 

 

 

주님

가끔은 두려움이 절 힘들게 합니다. 

주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을 마주 보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

다행이도 사울의 '하나님 모르는 자의 궁극'으로의 

사망의 두려움과는 다른 방향을 알게 하셔서

훨 가볍습니다. 

 

주여.

하지만.. 주님이 제게 예비하신 

더 나은 나라를 위하여

그 작은 두려움 마져 없는 나라를 위하여

남은 두려움을 마주 하라 권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여

홀로 영광 받으소서.

내 주여.

거룩하시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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