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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가려진 자 죄가 해결된 자[시32:1-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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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가려진 자 죄가 해결된 자[시32:1-11]

주하인 2014. 4. 25. 08:46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회개하면

허물이 사해짐은 안다.

그러나, 자꾸만 되풀이 되는 죄를

주님께 '회개'하는 것이 죄송하고

나중에는 좌절감도 든다.

회개란 완전히 돌이켜 다시는....인데

또 기회만 되면 그러구 그러구..

 

내 나이.

내 직업의 특수성.

주 앞에 회개했던 수차례의 경험들...

......

모든 것을 감안해도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출근할 때

나도 모르게 '젊고 이쁜~여성'에 눈이 돌아간다.ㅜ.ㅜ;;

이러니..

젊은이들의 그 피끓는 肉性을 어찌할꼬... ㅠ.ㅠ;

세상은 한없이 '죄'의 유혹을 쏟아내고

젊음은 자제하기 힘든 힘으로 밀려오고...

세상이 하나님을 믿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음은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한다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많은 유혹과

속에서 끓어오르는 죄성과

거의 대부분이 '산부인과 의사'가 아님...^^;;.. 과

.......................등으로 인하여

무뎌지고 어려워지는 것이다.

 

회개해도
또 몰아쳐오는 자신의 약점을 발견한 자의 좌절.

좌절이 '죄'라는 것을 인식하기전에

또 몰아치는 유혹, 또 넘어짐.................

그러다가 보면 주위에서 너무도 번연히 벌어지는

죄의 깊어짐과

그 죄에대한 이정도면.. 이라는 속삭임과

'기도'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문명의 이기들과 바쁜 사회생활.....

어찌 '회개'가 쉬울까?

 

회개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지려하는 이유다.

어쩌면

회개라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알지 못하는 미련하고 유치한 자들의 ,

혹은 종교업을 가진 분들의 거룩해 보여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포장기술 정도로만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누구도 '회개'의 그 거룩한 이름과

너무도 당연히 우리의 해야할 기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회개.

정말..

회개하면 완전히 돌이켜져

다시는 '죄'에서 멀어질까?

위에서 고백했지만

어제 한 회개(정확히 '회개의 부담 ^^;)가 아침에 자전거 몰고 나오면서도

또 눈을 돌리게 하고

머리를 혼란케하고

마음이 무겁게 함으로 무너지고 마는데 말이다.

 

 오늘 말씀에

'허물이 사해지고'라 나온다.

그렇다.

세상은 '오물'덩어리다.

아름다운 것, 합리적이고 번쩍이는 것, 편한 것으로 포장하려하지만

세상은 '자원'을 희생시켜 또다른 변형을 시켜내며 고갈시킴을 가속시킬 뿐이고

문명이란 것은 '인간의 사랑'을 이유로 자신의 편함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

모든 지켜야 할 기준들을 무너뜨려버려서

실은 '악'이 창궐하면서도 악이 악인줄도 모르는

진정으로 거친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온전히 돌이켜 온전히 깨끗해진다는 것은

참 힘들 수 잇음이다.

그러기에 어쩌면 회개는

완전히 바뀌어 버려 거룩해짐보다는

그 죄만이라도

아니 그 죄로 인하여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모든 스스로의 , 타인에 비취는 '허물'이 '사해지는 '

즉 '감소'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죄가 없어진다기 보다는

죄가 가려진다..는 표현을 하신다.

 

 그것.

예수님의 그 보혈의 은혜로

믿는 순간 내 '죄'가 백설같이 희어짐을 부정하는 표현이

절대로 아니다.

 

정말...

내속에 드나드는

이 죄의 정도가

누구의 표현대로 수미산을 넘는

하루에 수십만의 죄의 생각들이

(연구에 의하면 몇초에 한번씩 남자들은 여자 생각을 한단다.. ㅎㅎ) 

특히 '남자'들의 뇌를 넘나드는

이 죄덩어리의 무거움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매일 매일 씻기지 않고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예수 보혈은 완전히 죄를 씻지만

위의 고백처럼

또 매일 다가오는 죄들이다.

그 죄들이 누르는 무게 감으로 인한 잘못 이해와 더불어

어쩔 수없는 현대 문명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열려버린 영혼의 유약함에

육신의 강렬한 자극등으로

매일 들어오는 죄가

그 깨끗할 우리의 회개의 결단을 저지시킨다는 의미다.

 

그러기에

개념을 먼저바꿀 필요가 있다 .

진실을 마주해야한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은 매일깨끗이 한다.

그러나 ,우리는 죄의식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고

어쩔 수 없는 현상일 뿐이다.

 

죄는 가려진다는 표현

죄가 닦여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그 십자가 보혈로 매일씻기나

아직 개운치 않은 느낌은

'가려진다'는 느낌 뿐임을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시다.

 

매일 회개해야 한다.

그러한 찝찝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알고 계신다.

죄에 치여서

우리가 숨도 쉬지 못하기 전에

비록 '가려지는 '것 같아도

실은 매일 회개로 매일 새롭게 되는 것이고

매일 부활하는 것이니

우리는 그래야 한다.

 

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그러다가

죄에 치여 뼈가 쇠하는 듯

회복 못할 수잇기 때문이다.

 

회개는

늘 우리를 새롭게 한다.

비록 우리의 부족함,

우리의 더 열심히 기도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우리 심령에 그냥 잠시 가리워진 ㄸ 처럼 ^^;

찝찝할 수 잇지만

그래도 우리는 회개를 하여야 한다.

그래서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면

어느새 죄의식은 옅어지고

죄로 인한 심적 물적 무거움이 가벼워져

우리의 삶은 날아갈 듯해질 것이며

이 땅을 살되

천국을 사는 자가 될 것이다.

 

이 죄에 무거워진 아침을

주님은 어떻게 읽으시고

또 이 죄의식으로 가려진 죄 같은

마음의 혼란까지 읽어주신다.

감사하다.

 

 

주님.

놀라우신 주님.

죄에 대한 주님의 십자가의 그 놀라운 승리,

주님 앞에 다가가 회개만 하면

완전히 회복되어 새로운 영혼이 되는

그 완전한 승리를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그러나,

이 상처 많고 미련한 자,

죄에 대하여 좀더 민감하지 못한 자는

해결하여 주신 '죄'보다

더 많은 죄의식과 동일한 실수로

또 매일을 혼탁히 하고 갑니다.

그래서 자꾸만 마음에

회개로도 ... 라는 어리석은 무게마져

스스로 더 전가하고 있습니다.

 

주여.

오늘 그러한 미련함을

주님께서 '죄가 가려진 자'라시며

읽어주십니다.

 

주님.

죄가 온전히 해결된 자가

곧 되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있는

'죄가 가려진 자'로

자신을 조금더 포용하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점차 성화를 향하여 가며

'죄가 해결된 자'로 가게하소서.

내주여.

지금도 회개에 더욱 열중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성결한 영으로 더 빨리 갈 수는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런 미련함을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주여.

모든 생각과

모든 마음을 주님 십자가 앞에 가져가는

그런 하루가 더욱 되길 원합니다.

또한, 세상의 죄로 인하여 몸부림 치지만

죄책감의 가중으로 인하여 어려워 하거나

죄문제로 고민하는 선한 영혼들이  

저로 인하여 아주 약간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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