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조심하라 용서하라(눅17:1-10) 본문
(눅17:1-10)
저물더라도
실망치 않겠습니다
어두워지더라도
당황치 않겠습니다
생각과 다르더라도
용서하겠습니다
주님 말씀하신대로
조심하며 하늘 보겠습니다
그때에 보이실
그 하늘의 아름다움을
다시한번 깨달아 보겠습니다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것.
이 땅의 복잡 다단한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당연히도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갈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기도하고 간구해도
자꾸만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갈등의 소지들이 있다.
정말 열심히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면서
내 속의 영이 점차로 더욱 정결해지면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원리 가운데 그렇게 됨을 알아가다가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이전 보다 훨씬 정결하게 되어서 주님 앞에 가는 것이
이 인생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알면서도
어느새....
정말 어느새..
내가 내 주인이 되어서
버젓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그들과 묘한 대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참으로 부지기수다.
그것,
용서하지 못하는 게
깊은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안다.
용서하지 못함은
자신을 미움의 틀 안에 묶이게 하는 것이며
타인에게는 실족하게 할 빌미를 주는 것임을 알면서도
한동안 그 강력한 에너지에 나의 영혼을
힘없이 맡기고 싶은 충동은 얼마나 많은가?
주님은 '용서하라' '용서하라''......신다.
어제도 성경 읽을 때 그리하셨고
오늘도 또 말씀에서 그리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을 실족시키는 일이고
그것은 큰 죄임을 이렇게 보이신다.
그렇다.
나.
어쩌면 많이 착해졋을 지도
어쩌면 남들의 악함에 비하여 훨씬 착할지도
'모른다.'
정말 ...모른다..가 맞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착함과 악함의 구분 조차 싫어하는 시기고
회개니 용서니 하는 단어 자체가
부끄러운 고리타분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어쩌면.. 나도 이러한
말씀의 붙드심과 일상에서 날 그쪽으로 관심 가지도록 하는 것은
어쩌면 '소모성'이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머쓱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을 때가 있다.
그런데 , 정말 그런가?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이 땅의 성공, 행적 , 잘남..... 은 하나님의 뜻에서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며
매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나를 변화해가는 결심과
그에따라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흐름이자 태도'임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어쩌면
어제 되풀이하고 있던 '죄'에 대한 고민은
오늘도 다시하고
내일도 또 부족한 부분을
말씀에 투영시켜 거울 처럼 들여다 보며
내 삶을 바꾸고
그 삶에 타인을 껴안아 들이는게
내 숙명이자
그들이 알든 모르든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의 의무이고
절박히도 행해내야할 원리가 맞지 않던가?
그 하나님의 원리가
오늘은 다시 내 하루 속에
'용서하라'
'용서해서 타인을 실족케 하지마라'는 레마에 집중하게 하신다.
실은 그랬다.
나.
고백한다.
가까운 자에게 함부로 하는 못된 심성이 있다.
아내는 나보고 '이해할 수 없게도 권위적인 부분이 많다'이라고도 한다.
아니지 않다.
나도 안다.
수술 assist 간호사(SA).
착하다.
열심이있고 주위 동료들과도 관계가 좋다.
그런데 '공적'인 부분에 좀 약하다.
지난 구정 잘못한 바 있다.....
나... 과감히 지적했다 ^^;
그런 후 조금 소원해졌다.
그럼에도 병원 일., 그중에서도 SA 의 소속과 일의 특성상
일반 직장들처럼 정확하게 지켜나가야할 시간과 소속 개념이 부족하다.
그래서 인가..
수술이 없을 때에도 출퇴근 시간을 정확히 지키지 않는다.
내가 센터장인데.....
솔직히 이해할 부분이긴 하지만
난 .. 내 속의 이 자존감 탓인 듯..
권위주의 탓인 지...모르지만 조금씩 마음에 부담이 생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조직사회'에서 나름 지켜야할 예의 .. 부분에
내 논리가 집중이 되며 '짜증'이 올라오려 한다.
나.
솔직히 잘 유지해나가는 조직의 '상사'로서 권위를 찾고 싶었던 마음이 큰 모양이다.
그러면서 조용히 데려다 가르치는 게 좋을 듯 싶지만
자꾸 비슷한 실수를 하는 그 SA에
'울컥'하려는 마음이 올라온다.
이것은...나를... 지켜보자..는 생각이 든다.
그 삐닥한 내 시선을 아시는 지..
계속 '용서'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어제도 '디모데 후서 2:24-25절'에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라 나오신다.
그렇다.
용서해야 한다.
솔직히 내 체면 살리려는 마음이 더 우선 이 아닌가?
그럼에도 주님은 용서의 훈련을 시키신다.
오늘도 동일하시지 않는가?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용서하라'
'용서하고 용서하라.. .또 용서하라'
주님은 내 속을 다 아신다.
어제 집에 가면서 많이 회개했다.
말씀에서 그래서 그랬다.
불러다 조용히......(솔직히 속상히 보일때 조용히 얘기하는게 내 습관은 아니었다. .^^;).. 얘기했다.
'조직사회.
불규칙한 근무는 인정하겠지만
그래도 출퇴근시 상사에게 보고함이 옳지 않게는가?'
얼굴 밝게 그러겠노라 한다.
그렇다.
내가 먼저 용서하고 타인을 대하면
갈등은 덜한다.
그러고 보면 난 행운아다.ㅎ
남들이 잘 '울컥' 안할 때도 그러니.^^;.. 이렇듯 말씀 적용이 쉽지 않은가?
솔직히 그런 내가 속상했었다.
좀......더 유했으면.....했고....
그럭저럭 한세상......할 수 있으면 얼마나 그 마음이 편할까..했다.
그런데 조금씩 난 내 이런 특질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매일 더 가까이 할 수밖에 없음이
오히려 '감사'할 때가 늘어난다.
그렇기에 어쩌면 내 이런 내 속을 들여다 볼 재료가 많음에
한편은 타인에게 미안하지만
나 스스로는 조금씩 내 존재의 든든함을 깨달아 가고 있다.
이제....난..나도 용서해가나 부다.ㅎ
적용
1. 용서하라
. 이유없이 용서하라.
. 다가오면 무조건 용서하라.
2. 화.
참자.
좋은 마음으로, 용서하는 마음으로 대하자.
그들이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인내하자.
3.내 생각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모든게 하나님의 뜻이다.
나에게 허락된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4. 오늘 하루.. '용서' 일곱 번 하리라.
이해하지 못할 것도 그리하리라.
5. 말씀 세장 읽으리라.
기도
주님.
창피한 일입니다.
이 나이에
이 오랜 하나님 말씀의 단련 동안에도
아직 이처럼 용트림 하고 있는
갈등의 소지들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요.......
주여.
절 불쌍히 여기시고
제 부족한 인성을 고치시고
제 품성을 넉넉히 하시어서
어서 빨리 하나님의 고치심을 세상에 목도시키게 하소서.
주여.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제 부족함을 통하여
아직 조금 흔들리는 갈피 못잡는 분들의
예가 될 수 있는 도구가 됨이 그렇습니다.
주여.
또한 감사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는 훨씬 격랑의 폭과 기간이 줄었다는 것이고
또 감사한 것은
주님께 맡기기 시작했으며
그런 제가 그리 밉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주여.
더욱 간절히 소원할 것은
제 마음을 굳게 하시사
그 용서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하시고
그리하여 남은 에너지가 주위를 위하여
화합의 배려로 나오게 하소서.
지혜를 주시어
권위와 나를 낮추어 얻는 이익의 차이를 알게 하시어
쓸데없는 에너지가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주여.
제가 절 용서하게 하소서.
절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구원해주신
귀한 존재로 인정하여
귀히 여기게 하소서.
남들은 긍휼히 여기고
날 사랑하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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