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하나님 나라(눅17:20-37) 본문
(눅17:20-37)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남들이 나에게
' 당신은 독특한 사람야... ‡~&$%^^ ..'
난 나를 볼 때
'난 왜이러지...........' 하며
그들과 나 사이에 '평화' 가 없을 수도 있다.
내가 나와 평화를 이루어
흔들림 없는 든든함이 없을 때가 있다.
어떤 때는 이 삶은 늘 '경쟁'과 '긴장'으로 인한 전쟁터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오직 승자의 번득이는
전율만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그것 만이 오직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상의 감정으로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거기에 허덕이며 그게 전부인양
멈추지 못하는 브레이크 고장난 기차 같이 달려오기만 한다.
거기에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은
꽤나 생소한 이야기 같이 느껴진다.
생각해보지도 않고
생각할 만한 별 가치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새 나이가 들어
머리 숱이 숭숭해지고
눈 밑에 주름이 짙어지고
아랫배는 늘어지고
자신감은 덩달아 줄어 들 때
갑자기 추구하던 인생의 모든 습관들이
어딘지 모를 '잘못'된 듯한 느낌이 자꾸만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제야 , 느림의 미학을 찾고
건강을 위하여 절식을 하고 산을 찾고
부지런히 취미를 돌아보나
그것도 또다른 '휴식의 시간'을 소비하고
다시 쳇바퀴 같은 경쟁의 터에 몰려 나가는 게
대부분 현대인의 일생이다.
이럴 때 세상은 '올레길' , '차문화', ' 템플 스테이', '가로수길'... 의
느리고 여유로운 것을 상품으로 내어 놓고
또 경쟁하듯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지친 그들은 마치 파리 떼 몰리듯이
그들도 알수 없는 깊은 '지침'과 '무기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숨겨진 분노를 해결하고자 찾아든다.
이것.
이런 현상.
무엇이 근본인가?
'쉼'이다.
'안식'이다.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이 6일 일하고 1일 쉬는 안식을 하도록 만들어 놓으신
원리를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으나
이 땅의 성공을 위해서
자신들의 여러 환경으로
깨닫지 못하고 배우지 못했던
그 진리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진리인 위의 것들 마져
그들의 영혼을 채우지 못하게 될때
그들은 극단적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근본.
근본의 궁극은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의 삶'이다.
우리 기독교인들,
깊이 예수님을 체험하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자들은
너무나도 당연히 '천국'',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고 사모한다.
그 영원한 안식을 이해한다.
그 본질을 위해
이 땅의 수고로움을 받아 들이고 녹이고
원죄로 파생된 여러 자범죄들을 십자가에 해결 받아 가면서 살려 노력한다.
그리하여 너희 안에 있느니라 '내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려 한다.
그렇다.
인생을 제대로 살려면
이 땅에 인생으로 베풀어진 짧은 시간을 살다가
진정으로 영원한 생명을 살려면
이 땅에서 부터 '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깨달아야 한다.
회복시켜야 한다.
' 심령천국.'
그 진정한 평강의 삶을 사모해야 한다.
내 안의 하나님 나라.
그 의미는 하나님 나라는
사람마다 특질이 다르기에
조금은 다른 유형으로 다른 형태의 체험을 동반하지만
천국의 기본 특질,
온유, 겸손, 감사, 기쁨, ........ 평강으로 그득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떤 외부상황에도 상관없이
내면은 늘 하나님의 기쁨으로 채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
그것은 오직 '하나님'과의 동행으로 만 가능하다.
성령이 함께하심은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심이다.
성령님은 곧 하나님이시다.
성령님이 내 안에 임재하심은
기도, 찬양, 봉사, 선교 ..........어느 것이든
그 사람의 상황과 특질에 따라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다가오시겠지만
나는 오랜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말씀'이신 하나님과
매일 대화 하는 것만이
내 자아가 들어갈 소지가 많은 다른 어떤 영적 노력보다는
필수적임을 깨달아 간다.
말씀 앞에 난 나를 내려 놓는다.
그 분이 내 안에 어떤 소리를 들리실 것인지를
당연히도.........(당연히도라는 것은 내 말씀에 집중하는 시간, 정성............과 반드시 일치 하지 않아도........'라는 개념을 함유한다 ) ..... 믿고 말씀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깨달아 지기도
그냥 한 글자가 두껍게 들여다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그 말씀을 붙잡고 짧은 기도와 함께
블로그에 묵상을 쓰기시작한다.
그러시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인도하시는 것을 자주 느낀다.
아주 늦게, 아주 정성 부족히 , 죄송히도 했음을 안타까워 하며
빨리 써가는 글에
촉촉한 주님의 어루 만지시는 감성이 느껴지게 쓰이기도 한다.
어제 같은 경우도 그랬다.
나.
참....죄스러운.......급한 특질을 가지고
게으르게 서둘러 썼음에도
그 글에 감동을 느끼신 분들이 글을 남기시기도 했다.
그럴 때 , 난
내 안에 임하시려 하시는 ,
내 어리석음 때문에 더 깊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자주 자주 느낀다.
내가 온전히 그러하신 내 하나님의 말씀을
이 일상에 내려놓고
어서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대로
내 자아를 부인하려 결심하고
나의 성령님께 더욱 깊이 의지하면
'어느새'
내 안에 임하시는 내 하나님의 나라를
빨리 이루겠고
내 삶은 더욱 더 윤기나고 풍성한 인격으로 변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엉터리 같은 자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감사함으로 인하여
매일 임하시는 성령님의 보위로 인하여
이처럼 변했다..라는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을 텐데...........
참으로 아쉽다.
이제 다시 '하나님의 나라'를 묵상한다.
세상이 날 휘몰아쳐도
내안의 오래된 결핍감이 날 오그라 트리려 해도
그 하나님의 나라만 내 안에 임하시면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다정하신 눈길이 느껴만 진다면
그리 걱정할 것없고
매사 행복할 것을..........
이 시간.
오늘 말씀 따라
내 안에 임하시는
나의 하나님과
그 분으로 인하여 누려지는
터질 것 같은 영혼의 풍성함을 사모해 본다.
적용
1. 내 안의 하나님 나라.
나 만의 하나님.
나 만의 하나님 나라다.
나와 하나님 만이 아는 그 세밀한 교류......
묵상하자.
감사하자.
기뻐하자.
2. 이 세상을 사는 이유.
하나님 나라를 내 안에 이루고
그 원리를 세상에 조금이라도 내려 놓는 ,
영향력 미치는 삶을 사는 것.
그게 의미다.
3. 하나님 나라는 평강이 기본 감성이다.
' 평안한 기쁨'
' 조용한 전율의 지속'
' 상황과 상관없는 포근함'
' 흔들리지 않는 든든함'이다.
구름 속, 엄마 품, 고요, 잔잔함..........
4. 성경 세장 읽자.
5. 모든 막힌 것들을 '내 안의 하나님 나라' 에 불러 들이자.
기도하면서 묵상하자.
기도
하나님.
내 아버지.
아버지는 멀리 계시지만
또 가까이 계십니다.
내 안에도 계시고 내 위에도 계시고 천국에도 계십니다.
나를 잠잠히 바라보시며
나를 기뻐 어쩔 줄 모르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실을 인정합니다.
주여.
어제도 그랬고
어제의 어제도
또 그 어제의 어제도 그랬습니다.
주님.
전.......똑같은 죄로 범벅입니다.
그리 변하지 못하는 미련한 자입니다.
그렇다고 절절히 회개도 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신앙인이기 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제가 어찌 귀하시기에
제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실 자격을 주시고
이리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하루를 당신의 귀한 말씀으로 붙들고 살려 노력하는 한
결국 내 안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사랑을 허락하신 단 말이니까?
감사하나이다.
내 주여.
주님
귀하신 사랑의 약속을 믿고
당신의 이 세상에 임하시는
귀한 원리를 깨닫는 자로서
어제보다는 조금은 나은 오늘이 되길 선택하나이다.
주님의 말씀의 약속대로
저를 놓치 마소서.
제 안의 하나님 나라.
귀중히도 지켜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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